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8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88화(588/1105)
588회
71. 공작님과 성검 (30)
“제게 자책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검펜스가 툭 하고 던지듯 말했다.
죄라도 지은 것처럼 시선을 피하던 휴마누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성검펜스가 말한 대로, 자책감에 젖어 든 눈으로 성검펜스를 바라보았다.
“나는···.”
“첫날에도 말씀드렸지만, ‘폐하’께서는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설령 그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건 전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
“그래도!”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의 말을 가로막았고, 그에 반격이라도 하듯 휴마누스가 성검펜스의 말을 잘라냈다.
화라도 난 것처럼. 휴마누스는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한숨을 내뱉듯이 말을 이었다.
“말로만 친구라 주장하며, 정작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내가 원망스러울 만도···. 아니···, 그래. 너는 다른 누구를 원망할 성격이 아니지. 그렇다 하더라도 작은 불만쯤은 가질 만도 하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성검펜스의 대답에 휴마누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집중력이 흩어진 탓인지,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던 황금빛 날개 또한 흩어져버렸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원망도, 불만도 없었다는 것인즉 기대 또한 없었다는 뜻이니까.
휴마누스의 허망함 가득한 시선에 놀라기라도 한 것인지, 성검펜스가 화급히 변명 같은 소리를 덧붙였다.
“위리디아 님께서 그렇게 돌아가신 후, 제 곁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저를 피하고 두려워하는 게 당연하다 여겨져서···. 그래서 그랬던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휴마누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검펜스가 이해되지 않는 소리를 해서 짜증이 났다기보다, 사람들이 성검펜스를 피하고 두려워했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난 걸 테다.
휴마누스를 포함하여, 이곳에 있는 전원은 성검펜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른다.
‘나를 제외하면 말이지···.’
자신이 먼저 꺼낸 얘기지만,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은지 성검펜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일을 말하는 것 자체가 녀석에겐 상처일 테니.
나는 그런 녀석을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악숭 세력의 이간질에 넘어가서, 세르펜스를 비난했대요. 뭐···, 휴마누스도 비슷한 일을 겪고 계시니, 대충 무슨 얘긴지 아시죠?”
“아···. 이해했어.”
휴마누스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안쓰럽다는 눈으로 성검펜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는 기댈 수 있는 동료들이 있지만, 성검펜스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걸 아니까.
성검펜스가 얼마나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고독함과 싸워왔을지 이해한 걸 테다.
“그래도 좀 충격이긴 하네. 당시의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했다는 게···.”
“폐하께서는 바쁘셨고, 저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휴마누스를 향해, 성검펜스가 짧은 말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와 황제누스는 만나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으며, 편지를 주고받는 것조차 녹록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어째 성검펜스가 아까부터 황제누스를 변호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분명 내 착각이 아닐 거다.
성검펜스가 먼저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긴 했지만, 단순한 선 긋기인 줄로만 알았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는 뜻으로 말이다.
그러나 성검펜스는 휴마누스의 반응을 신경 쓰고 있었다.
“또한,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저를 믿어주는 이 하나 없이, 세상에 홀로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전하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전하께서···. 그리고 폐하께서. 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믿어주고 계셨음을.”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의 눈치를 살피며 어물어물 말을 이어나갔다.
그 내용이 믿기지 않는지, 휴마누스가 멍청해 보이는 표정으로 ‘으, 응?’ 하는 소리를 냈다.
그걸 의문문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성검펜스가 다시 입을 열어, 설명을 덧붙였다.
“전하께서 제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했다며, 자신을 책망하신 것처럼···. 폐하 또한 그러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저를 친우로 여겨, 그 도리를 다하신 셈입니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건 저입니다.”
잘 나가다가 결말이 왜 저러나 싶다.
‘기승전 자기혐오’ 구조를 띠지 않으면 설명이라는 걸 할 수 없는 건가 싶다.
“너만 그랬던 것이 아니야. 우리는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어.”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휴마누스가 씁쓸하게 말했고, 성검펜스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 성검펜스의 모습에 휴마누스의 입가에 쓴 웃음이 번졌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거, 미리 알려주면 좋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저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탓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야. 그냥 아쉬워서 그래. 이제야 대화가 통하는 것 같은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는 게···.”
그렇게 말하며, 휴마누스는 멋쩍게 제 볼을 긁적거렸다. 표정과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뚝뚝 흘러내렸다.
내 옆에 앉아있던 유지스도 휴마누스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검펜스의 시선이 휴마누스에게서 유지스로 옮겨갔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움직여, 이곳에 모인 전원을 둘러보았다.
“제 삶은 이미 끝났고, 제가 살아왔던 세상은 사라져버렸으니. 이곳에 제가 있을 자리가 없음을 압니다.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지난 며칠간 제가 누린 것들은 너무나도 낯설고, 과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느낀다면···.”
“하지만. 그것들은 제 것이 아닙니다.”
휴마누스가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재차 입을 연 성검펜스에 의해 도중에 끊겨버렸다.
비록 끝까지 듣지 못했지만. 휴마누스가 말하고자 하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 또한 성검펜스에게 같은 말을 했으니까.
‘조금만 더 머물다 가라는 소리를 하려던 거겠지.’
세르펜스가 알면 매우 섭섭해할 말이지만.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성검펜스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리고 녀석이 담담해지려 애쓰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휴마누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여러분께서 알고 계신 ‘현재의 저’와 지금 말하고 있는 ‘저’는 다른 사람입니다. 완전한 타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분명, 다들 그렇게 느끼셨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반대로, 제 시선에서 본 여러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련과 괴리감은 함께 자라날 겁니다. 제게는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을 빼앗을 용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는 것이니···. 여러분도 미련을 갖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너는···, 그걸로 괜찮아?”
“네.”
조심스러운 휴마누스의 물음에 성검펜스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저는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 ‘가능성’이 무엇인지, 성검펜스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는 휴마눈새까지.
누군가는 1회차보다 평화로운 대륙의 상황을 떠올리며, 긍정적인 미래를 향한 가능성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유지스를 여정을 함께한 동료. 혹은 소중한 이로 치환하여, 그 생존 가능성을 계산했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다른 것에 대한 가능성을 떠올리며, 성검펜스의 말을 이해한 자도 있으리라.
나는 밤새워 그와 나눴던 대화를 상기했다.
성검펜스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도와줘서. 그리고 자신이 소중히 여겨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성검펜스가 말한 ‘가능성’이란 단어에서, ‘세르펜스 A. 프라시더스’라는 한 사람이 가진 가능성을 떠올렸다.
“세르펜스···.”
유지스가 아련한 목소리로.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성검펜스를 불렀다.
성검펜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지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혹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말문이 막힌 모양이다.
그런 유지스를 향해, 성검펜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께서 그러지 않으셨으면 하지만···.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제가 아닌, ‘현재의 저’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러니 곧 다가올 소중한 이와의 재회에 기뻐하십시오.”
또다시 성검펜스가 로맨스 작품 속 서브 남주에게 빙의했다.
망설이는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에게로 등 떠밀며,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는 듯한 대사였다.
“네?! 아, 제가 그,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런 얘기를 다들 보는 앞에서 해 버리시면···!!”
유지스가 화들짝 놀라며, 새된 목소리로 횡설수설 소리쳤다.
붉어진 얼굴과 쉴 새 없이 파닥거리는 귀를 보아, 그녀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제삼자가 러브 레터를 가로채어 교실 한복판에서 낭독해 버린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면 일행들 모두 그녀의 마음을 눈치챘다는 거다.
“뭘 그렇게 당황해요? 자기 입으로 ‘아직은 사귀는 게 아니고, 클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당당히 떠들어 놓고.”
그러고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나?
어처구니없다는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사람은 성검펜스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내 말을 부정한다는 건 아니다.
“으음···.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겁니까?”
성검펜스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여 유지스를 곤란하게 만든 건 아닐까, 내뱉었던 말을 되뇌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느라 고개를 끄덕일 타이밍을 놓친 거겠지.
실로 세르펜스다운 이유였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어른답지 않게 침착하지 못했을 뿐이에요.”
유지스가 눈물을 머금고 과거의 자신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실수를 인정했다.
오늘 밤. 유지스가 자다 말고 이불을 뻥뻥 찬다는 것에, 그녀가 덮고 잘 이불도 걸 수 있다.
성검펜스는 흑역사를 자각해 버린 유지스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눈을 깜박거렸다.
이 또한 유지스에게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야 할 성검펜스와의 작별이 흑역사로 점철되었으니 말이다.
“그럼···. 전하, 성검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성검펜스가 실시간으로 흑역사를 갱신하고 있는 유지스에게서 눈길을 떼고, 휴마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에 휴마누스가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 응? 유지스와 대화 중인 거 아니었어?”
“위리디아 님이라면 괜찮으실 겁니다.”
“별로 안 괜찮아 보이는데···.”
유지스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린 건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휴마누스는 부끄러움에 몸을 배배 꼬는 유지스를 보고 있었다.
반면에 성검펜스는 후회를 돌이키고 싶어,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던. 굳세고 당당한 유지스를 떠올린 걸 테다.
‘그러니 자신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유지스는 괜찮을 거라는 뜻에서 한 말이었겠지.’
둘 다 맞는 말이어서, 휴마누스와 성검펜스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