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9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91화(591/1105)
591회
72. 공작님과의 재회 (3)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세르펜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에 따라 어깨에 얹어진 무게감 또한 사라졌다.
끼얹은 물이 완전히 마르기 전이라 녀석의 머리칼은 아직 촉촉했다. 두 눈은 금방이라도 다시 눈물을 쏟아낼 듯 물기가 가득했다.
그런 비 맞은 새끼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세르펜스가 내 이름을 옹알거렸다.
“어우웅···.”
나는 세르펜스의 입에서 손수건 뭉치를 빼냈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손수건은 축축했다.
순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 고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빨래가 아니니까.
축축한 손수건을 대충 집어 던지고 손에 묻은 침은 세르펜스의 옷에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하나 꺼내어, 눈물로 범벅된 세르펜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제 다 울었어요?”
“훌쩍···!”
세르펜스가 코를 훌쩍이며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덜 울었지만 울음을 그친 기특한 자신을 칭찬해달라는 뜻이리라.
나는 그 바람을 외면하지 않고 녀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오구오구, 우리 공작님 참 장하시네!”
한껏 울고 쓰다듬을 받자 기분이 나아졌는지, 세르펜스의 입꼬리가 헤실헤실 말려 올라갔다.
이제 완전히 안도한 모습이다.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일단 그 밧줄부터 처리하고 나서 편하게 얘기하죠.”
내가 손을 거두어들이며 그리 말하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히 서로를 바라만 보았다.
“···선우?”
“왜요?”
“어째서 가만히 있지?”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무래도 세르펜스는 내가 밧줄을 풀어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세르펜스가 자력으로 밧줄을 끊어낼 줄 알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포박된 사람이 몸에 힘을 주자 밧줄이 투두둑 끊어지는 만화 속 장면을 기대하며.
“세르펜스라면 혼자서도 밧줄을 끊고 포박에서 벗어날 수 있잖아요? 제가 일일이 매듭을 푸는 것보다 빠르기도 하고요.”
“그냥 선우가 풀어주면 안 되는 건가? 긴장이 풀려서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세르펜스가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칭얼거리는 투로 말했다.
몸을 축 늘어뜨린 것도 아니고, 반듯하게 앉아서 저런 소리를 하니 설득력이 하나도 없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티가 팍팍 났다.
‘작정하고 열연을 펼치며 속이지 않아도, 내가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러는 거겠지.’
세르펜스가 정확히 무슨 꿈을 꿨는지. 아직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절대 평온한 꿈이 아니란 것만은 안다.
그러니 이렇게 별거 아닌 일에도 어리광을 부리며 내게 의지하려 드는 걸 테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세르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녀석의 뒤로 이동하여 내가 손수 묶었던 매듭을 풀어냈다.
그러다가 녀석의 새하얀 손목에 남은 붉은 밧줄 자국을 발견했다.
비단 손목만 그러한 게 아니라, 밧줄에 눌린 다른 부위들도 붉게 멍들어 있을 터였다.
“너무 세게 묶었나? 아프진 않았어요?”
“아니다, 잘했다. 그리 아프지도 않고···. 날 걱정한다고 너무 약하게 묶으면 어쩌나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묶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말이죠.”
“그래도 혹시 모르잖는가.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오늘처럼 나를 묶어다오.”
세르펜스의 말에 나는 매듭을 풀던 손을 멈췄다.
성검펜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돌아온 세르펜스가 대뜸 자신을 묶어달라 요구하고.
악몽에 시달리는 녀석을 깨우려 애써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진땀을 빼고.
그렇게 일어난 세르펜스가 울고불고하는 통에 정신이 없어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 자식이 자진해서 성검을 잡는 바람에 이런 사달이 난 거였잖아?!’
그 사실을 깨닫고 났더니, 눈앞에 보이는 녀석의 등짝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이 찾아왔다.
“선우···?”
내가 밧줄을 풀다 말고 가만히 멈춰 있자 의아함을 느낀 것일까?
세르펜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선···우···?”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나는 표정을 와락 구기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자신이 실언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세르펜스가 자세를 고쳐 무릎을 꿇어앉았다.
아직 팔다리가 묶여있는데 잘도 자세를 바꾸는구나 싶다.
“뭐 하는 짓입니까? 그렇게 앉으면 밧줄을 어떻게 풀라고요?”
“미, 미안하다.”
내 지적에 세르펜스가 흠칫 놀라 급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려다가, 균형을 잃고 침대 위로 엎어졌다.
이런 걸 두고 가지가지 한다고 표현하나 보다.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풀어줄 테니까.”
나는 다시 일어나려고 꾸물거리는 세르펜스를 말리고 못다 푼 밧줄을 마저 풀어냈다.
손목과 몸통에 이어, 발목을 묶어둔 밧줄까지 전부 풀어내고 나서야 세르펜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가 시키기도 전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팔 내리고 무릎도 꿇지 말고, 묶였던 곳이나 치료하세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르펜스가 그것을 이행했다.
나는 녀석의 소매와 바짓단을 슬쩍 들어 올려, 손목과 발목에 붉은 자국이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상처를 방치하던 성검펜스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세르펜스가 그럴 리 없다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르지 않는가.
세르펜스는 방금까지 꿈을 통해 성검펜스의 기억을 엿보다 왔으니.
“세르펜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죠?”
“선우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성검을 잡았다···?”
내 질문에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부모님 몰래 식칼을 들고 요리를 시도한 어린애가 할 법한 말이다.
‘허락을 하고 말고를 떠나, 잡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안 한 건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어린아이가 식칼을 잡는 건 절대로 안 될 말이지만, 성검은 식칼보다 더 위험한 물건이다.
주인 인식 기능이 있어, 성검의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잡으면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된다.
더군다나 세르펜스는 성검과 접촉하지 말라고 신에게 경고까지 받은 몸이다.
“그게, 음···. 어떻게든 될 것 같아서···. 달리 생각나는 방법도 없고, 휴마누스가 나를 지키려다 기절했으니···.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맹세하건대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입 다물고 가만히 노려만 보고 있자, 세르펜스가 떠듬떠듬 말했다.
변명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으나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도 아니고,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그랬다는데 어쩌겠는가.
더군다나 성검을 잡았을 때, 다른 회차의 세르펜스가 튀어나온다는 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니.
“···잠깐만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요? ‘이렇게’가 ‘어떻게’인지 아는 겁니까? 성검펜스가 활동했을 때, 의식이 있었어요?!”
“음···. 수면 아래에서 바깥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어렴풋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봤는데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렴풋하든 또렷하든, 어쨌거나 당시의 일을 기억한다는 건 매한가지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성검펜스에게 두 개째 ‘초코 퍼지 마시멜로 쿠키 샌드’를 주려고 했던 일이다.
덤으로 유지스의 흑역사도 떠올랐다.
“그···, 으음···. 유지스에겐 말하지 말아다오.”
세르펜스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덧붙였다.
저런 소리를 하는 거로 보아 정말로 의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계속 모르는 척하려고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선우가 나를 어린아이로 보듯이. 막연하게 유지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유지스의 말대로 나는 아직 누군가와 그런 관계가 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자신 없이 대답했다.
다른 문제라면 자신을 가지라고 말하며 등을 두드려 줬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죠. 유지스에겐 비밀로 할 테니까, 그 문제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주 가끔. 떠오를 때만 한 번씩 고민해 보세요. 그거로 충분합니다.”
“가끔···. 그것도 한 번씩만···?”
세르펜스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염없이 녀석의 성장을 기다려야 하는 유지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게 최선이다.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고 고민해 봤자 초조해질 뿐입니다. 그리고 초조함은 그릇된 선택을 불러오기도 하죠. 세르펜스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확신이 섰을 때 결정을 내리셔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네. 세르펜스는 아직 자신의 감정에 좀 더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유지스도 그 점을 알고 기다려 주겠다잖아요?”
세르펜스가 유지스를 좋아하게 되고, 반대로 유지스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세르펜스가 작정하고 꼬시면 다시 반할 테니까.
“그러니까 그 문제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하던 얘기나 계속합시다. 세르펜스, 아직 덜 혼나셨잖아요?”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 아니었나···?”
“성검을 잡은 건, 내키진 않지만 용서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일행들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하, 하지만···?”
세르펜스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내 마지막 말을 따라 했다.
자신이 성검을 잡은 것 말고도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가 ‘안 묶어도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을 때. 세르펜스가 뭐라고 말했었죠?”
“혹시···, 다음에도 묶어 달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들었나?”
내가 엄한 표정으로 다그치자, 세르펜스가 넌지시 찔러보는 듯한 말투로 조심스레 질문했다.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는 소리다.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면, 자신의 전용 구속구라도 마련해서 내게 맡겨놓기라도 할 기세다.
“그게 아니라 ‘다음’을 기약하는 것부터가 문제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번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또 성검을 잡을 생각입니까?”
“만약에···,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온다면···.”
세르펜스가 고개를 숙여 내 시선을 피하며 우물우물 말끝을 흐렸다.
이 자식은 다른 인격체한테 몸을 뺏긴다는 것에,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더라도.
세르펜스의 의식이 사라졌을 때, 내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면 이 녀석이 이딴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서, 설령 선우가 책을 통하여 보았던 그 시대의 자아가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선우라면···. 어떻게든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으음···.”
“그딴 헛소리를 하는 게 요 입이냐!”
결국 나는 솟구치는 화를 참아내지 못하고 세르펜스의 입술을 잡고 흔들어댔다. 내가 흔드는 대로 녀석의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세르펜스는 으으븝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낼지언정, 내 손을 피하거나 뿌리치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자각이 있는 걸 테다.
“잘못한 걸 아는 사람이 그딴 소리를 해?!”
“읍, 으븝, 으으읍!”
“반성해, 안 해?”
“브븝, 흐브읍···!”
“말 똑바로 안 해?”
“흐으브! 흐브으, 으으!”
세르펜스가 억울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제 진정하고 그만해야겠다.
이 이상 계속하면 훈육이 아닌, 홧김에 하는 무의미한 체벌이 되어버릴 테니까.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알겠어요?!”
나는 세르펜스의 입술을 놓아주며, 마지막으로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