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9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92화(592/1105)
592회
72. 공작님과의 재회 (4)
세르펜스가 한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입을 보호하듯 가리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말에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요.”
“이번처럼···.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닥친다고 하여도 안 되는 건가? 내가 성검을 쥐는 것 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 하여도? 선우와 유지스를 비롯한 모두가 위험에 처한다 해도? 나는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건가?”
발언권을 주자마자 세르펜스가 질문을 쏟아냈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든, 절대 안 된다고 못 박아둘 작정이었다.
세르펜스가 꿈을 통해 다른 회차의 기억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안쓰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다음번에 타락펜스가 나온다면? 과연 그가 성검펜스처럼 협조적으로 나올까? 세르펜스에게 몸을 돌려주지 않겠다며, 성검을 들고 도망간다면? 그 상태로 대륙을 배반하고 <성검의 주인>에서 그러했듯, 수많은 죄를 저지른다면?’
그렇게 영영 세르펜스가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어찌어찌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난 이후라면, 세르펜스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뜯어말려야 하는데···.’
하지만 녀석이 내뱉은 마지막 문장을 듣는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싸우는 일행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모두를 구할 방법이 있다면. 부작용이 생긴다고 하여도,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방법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대부분의 사람’에 속해 있었다.
그렇기에 더는 안 된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아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세르펜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세르펜스가 초조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았다. 그런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안 돼···?’ 하고 간절히 묻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만약 타락펜스가 나타났을 때, 내가 녀석을 제대로 통제 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마왕펜스가 된 녀석의 최후를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다고 가정해 보았다.
있던 자신감도 겁먹고 도망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부터가, 세르펜스의 말에 완전히 말려들었다는 뜻이겠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세르펜스를 째릿 노려보았다.
“세르펜스는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선우는 ‘성검의 주인이 된 나’에 관한 정보를 모르는 채로도 감화시켰잖은가?”
그러니까 타락펜스가 나타나도 잘 달래줄 수 있을 거란 소리였다.
참 말은 쉽다. 자신은 성검을 쥐기만 하면 되고, 그 이후의 일은 알 바 아니다 이건가?
얄미운 마음에 다시 한번 녀석을 꼬집어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나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대신,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 없습니다.”
“선우우···.”
세르펜스가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애처롭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백기를 들어 올렸다.
“아, 그래요!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다른 방도가 없다면 어쩔 수 없죠. 네! 인정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딱 그 짝이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패배 선언을 내뱉었다.
그러자 세르펜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가 이대로 넘어가 줄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크나큰 오산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너무 성급했습니다. 휴마누스의 근처까지 간 김에, 신성력으로 그를 치료하고 깨우는 방법도 있었잖아요.”
“그 정도로는 승산이 없었다.”
“아니요, 둘이 최대한 호흡을 맞추며 버티기만 해도 충분했습니다. 악숭이들을 처치한 동료들이 힘을 보탰을 테니까요.”
“그건···.”
이번에는 세르펜스가 말문이 막혔는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실수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생각에, 침착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로잡혔겠죠. 아닙니까?”
“···선우의 말대로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내 말을 인정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었다.
“여차하면 성검을 쥐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거 아주 위험한 행동이니까. 지금은 운 좋게 성검펜스가 나와서 신성력으로 날개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고, 순순히 떠났지만···. 이렇게 일이 잘 풀린 상황에서도, 세르펜스는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잖아요.”
“오늘처럼 선우가 위로해 준다면···, 괜찮다.”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딜 어떻게 봐도 괜찮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꽉 말아 쥔 주먹도 덜덜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꿈속에서 본 장면이 다시 떠오른 모양이다.
그런 주제에 괜찮다는 말을 잘도 꺼내는구나 싶다.
“제가 불안해서 못 견디겠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될 수 있으면 성검을 쥐는 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세요. 충분히 고민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고 난 후에. 정말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런 선택을 내린다면, 그때는 저도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음···.”
“이 시대의 ‘성검의 주인’은 휴마누스입니다. 좀 더 그를 의지하고, 현재의 자신이 지닌 능력을 믿어주세요.”
“···노력해···보겠다.”
세르펜스가 머뭇머뭇 대답했다. 시원찮은 목소리가 영 마뜩잖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확언을 받아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진짜죠? 저랑 약속한 겁니다?”
“다음번에 성검을 쥘 일이 생긴다면, 반드시 선우의 허락을 받겠다.”
“그건 아주 좋은 자세긴 한데, 뭔가 복선 까는 것 같으니까 입 밖으로 꺼내진 마시고요.”
“입조심하겠다.”
세르펜스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번 반응은 마음에 든다.
나는 크게 안도하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려준 뒤 손을 내렸다. 아쉽다는 듯, 세르펜스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꽤 침착해 보이시네요?”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질문의 의도를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아까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땐 울고불고, 보통 난리가 아니었잖아요.”
“선우가 곁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으니, 이제는 괜찮다. 다소 거친 방법이었지만.”
세르펜스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 모습으로 보아 거친 방법이라는 건, 조금 전 내가 녀석의 입술을 잡고 마구 흔들어 댄 것을 말하는 모양이다.
“그건 좀···, 미안해요. 제가 너무 울컥해서 그랬습니다. 그러잖아도 세르펜스가 사라진 동안 불안했었는데,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다음에도 내가 사고 치면 뒷수습 잘 부탁해!’였으니.”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그런 뜻이었습니다.”
“···미안하다. 내가 혼날 짓을 했군.”
자신이 했던 말을 되짚어본 것인지, 세르펜스가 잠시 침묵한 후 반성하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나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바른 어린이에게 상으로 ‘초코 퍼지 마시멜로 쿠키 샌드’를 하나 꺼내 주었다.
시무룩해졌던 녀석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당장 쿠키 샌드가 먹고 싶었던 건지, 세르펜스가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드세요. 얘기는 천천히 해도 되니까.”
내 말에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벗겨냈다.
그리고 쿠키 샌드의 끄트머리를 살짝 베어 물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맛을 음미하는 행동이다.
감동에 젖어 든 그 표정으로 보아 성검펜스가 활동했을 당시, 대화는 주워들었어도 미각까지 공유한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녀석이 쿠키 샌드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분이 꽤 좋아진 것 같은데···. 꿈속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봐도 되려나?’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닌지 걱정되면서도, 녀석이 서럽게 울어 젖히며 연신 옹알거렸던 걸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기 망설여진다.
당장은 괜찮아 보여서 시간의 흐름에 맡기며 묻어두었다가, 나중에 곪아버리면 큰일이니까.
그렇게 물어볼까 말까 속으로 저울질하는 사이. 세르펜스가 쿠키 샌드 하나를 완전히 해치웠다.
나는 고민 끝에 세르펜스에게 선택권을 넘기기로 했다.
“그래서 아까 울면서 무슨 말을 했던 겁니까? 떠올리기 힘드시면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는데···.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털어놔 주세요.”
내 말을 들은 세르펜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역시 괜히 물어본 걸까 싶어, 나는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엄청나게 옹알옹알 떠들어대시길래, 제게 할 말이 많으신가 싶어서 얘기를 꺼낸 거였습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이야기는 성검펜스에게 들었으니까, 억지로 말하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정말로요!”
“아니다, 선우가 들어주었으면 한다.”
“넵. 그럼 말씀하세요.”
내 대답을 들은 세르펜스의 표정에 황당함이 번졌다.
들어 달라길래 그러겠다고 답했을 뿐인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
세르펜스가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다가, 표정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내가 꿈에서 본 건, 성검의 선택을 받은 이후부터 첫 번째 시련을 겪을 때까지 있었던 일이다. 정확히는 시련 도중에 깨어난 거지만···. 선우가 나를 깨워주지 않았다면···.”
상상만으로도 두렵다는 듯, 세르펜스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어쩐지 과할 정도로 두려움에 질린 것 같더라니.
성검펜스는 첫 번째 시련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수도 없이 첫 번째 시련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남은 기간을 걱정하며 다음 시련을 치르기 위해 그곳을 벗어났다고 했으니.
실제로 첫 번째 시련 장소에서 보낸 시간은 이틀에 불과하다고 했으나, 체감 시간은 그 이상이었을 거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도전했다는 건···.’
그걸 1인칭 시점에서 지켜본 세르펜스는 그 끔찍한 환영을 반복해서 봤다는 뜻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련의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얼마나 공포에 질렸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 기억을 보면서···.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했는지 아는가?”
“그야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이겠죠.”
내 대답에 세르펜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외였다.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 부인, 사람들의 시선, 전대 공작의 똘마니 노릇을 하던 집사 한스,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처웃는 휴마누스의 낯짝까지.
되는대로 이것저것 던져 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전부 아니란다.
“그럼 뭔데요?”
“시련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절실히 갈망하는 한편, 나는 무의식중에 누군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꿈속의 나에게 동화된 탓에, 내 의식이 흐려져서···. 그 누군가가 누구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누군가를 찾을 수 없다는 게 가장 두려웠다.”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실감했으니, 이제는 괜찮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었나 보다.
세르펜스가 서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표정이 ‘꿈속에서 떠올리면 짜잔 하고 나타나서, 나쁜 사람들을 혼내준다더니!’ 하고 탓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로 녀석이 나를 탓하려고 꺼낸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호언장담해 둔 게 있어서 지레 찔렸다.
“죄송합니다, 꿈속에 나타나지 못해서.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세르펜스가 저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과를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건 알지만, 원래 보호자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아이가 다치면 괜히 자기 탓 같고, 미안하고.”
“내가 다치더라도 그건 선우, 당신 탓이 아니다.”
“당연하죠.”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닌가?”
“애초에 세르펜스가 다칠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내 완벽한 논리에 세르펜스가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