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9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93화(593/1105)
593회
72. 공작님과의 재회 (5)
“아무튼 그래서 세르펜스의 얘기는···. 1번,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 따위는 이제 내 알 바가 아니다. 2번, 앞으로도 어디 가지 말고 옆에서 자신을 돌봐 줘라. 이 둘 중 어느 쪽입니까?”
“···2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세르펜스가 솔직하게 이실직고했다.
나는 그 보상으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쿠키 샌드를 하나 더 꺼내어 건네주었다.
“솔직한 아이에게 주는 상입니다. 분유, 아니. 따뜻한 우유도 한 잔 내어 드릴까요?”
“그냥 우유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리고, 으음···. 꿀 케이크는 남은 거 없나? 맛있어 보이던데···.”
받아먹는 주제에 말이 참 많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자신이 직접 사 먹으면 될 것을 왜 저러나 모르겠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요, 아끼는 것도 아닌 주제에.
나는 못 본 사이 어리광이 부쩍 늘어난 녀석을 흘겨보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작은 우유병을 하나 꺼내어 녀석에게 건넸다.
“꿀 케이크는 나중에 사 줄게요. 아마 제국 수도에도 파는 곳이 있을 겁니다.”
당장은 없다는 말에, 세르펜스가 우유병을 건네받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수면 아래가 어쩌고 어렴풋하니 어쩌니 하더니. 그 와중에도 꿀 케이크를 보며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아유, 우리 공작님! 먹보가 다 됐네!”
“······!!”
세르펜스가 쿠키 샌드를 먹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내 말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던 걸까?
“잘 먹어서 보기 좋다는 뜻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드세요.”
“으음···.”
내가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멈췄던 녀석의 입도 오물오물 움직이며 쿠키 샌드를 야금야금 베어 물었다.
그러다가 쿠키 샌드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불쑥 말을 꺼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직도 두렵고 괴롭다. 그래도 선우가 사라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선우만 곁에 있어 준다면, 그 시절의 기억은 언젠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난다. 하지만···.”
녀석이 말끝을 삼켰다. 그래도 뒷말은 제대로 전해졌다.
나에게 부담이 될 만한 얘기를 쉽게 꺼내는 애가 아닌데. 이런 말을 대놓고 하는 걸 보면, 꿈속에서 나를 떠올리지 못한 일이 여간 두려웠던 게 아니었나 보다.
“걱정하지 마세요. 계속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저 못 믿어요?”
“믿는다. 하지만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됐습니다. 아시다시피 돌아가는 방법이 그따위잖아요? 세르펜스가 절 붙잡지 않아도, 어차피 엄두가 안 나서 못 갑니다.”
“···그걸 지금 기뻐하라고 하는 소린가?”
세르펜스가 샐쭉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녀석이 너무 자책하는 것 같아서, 그러지 말라고 해 본 소리였는데. 오히려 기분만 더 상하게 했나 보다.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녀석의 시선을 피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시간 순서대로 기억을 보셨네요? 저번에는 뒤죽박죽이라고 하셨잖아요. 무슨 차이지? 그때 휴마누스도 시간순으로 봤으니까, 성검의 주인과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 일단 그 얘기는 조금 나중에 하고···. 선우. 당신은 앞으로 어쩔 셈인가?”
세르펜스가 내 말 돌리기를 원천 봉쇄하고, 대화의 주제를 다시 ‘나’로 돌려놓았다.
“어쩌긴 뭘 어째요? 지금처럼 세르펜스를 잘 키우다가, 다 크면 효도를 받으며 평안한 노후를 즐길 셈인데요?”
“그런 당연한 얘기 말고.”
제국 최고의 귀족인 공작이 내 노후를 보장해 주겠다니. 세상에 이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안락의자에 앉아, 세르펜스를 꼭 닮은 손주 녀석들의 재롱을 보는 흐뭇한 상상이 이어지려는 찰나.
“선우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는 걸···, 모두에게 들켰잖은가?”
“아, 그거.”
“대체 그 반응은 뭐지?”
“그게 좀, 며칠 된 얘기잖아요? 그런데 그 후에도 일행들이 똑같이 대해주니까, 깜박했지 뭡니까?”
“······.”
세르펜스가 입을 떡 벌리고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돌연 손에 남은 쿠키 샌드를 와구와구 먹어치우더니, 우유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홧김에 빈 술잔을 쾅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놓기라도 하는 모양새로, 빈 우유병을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 거친 행동에도 폭신한 침대는 흔들림 없는 편안함을 제공했고, 포근한 이불이 우유병을 쥔 세르펜스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까먹을 수도 있죠! 그동안 제가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았는지 아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르펜스가 손가락을 세워 머리칼을 빗듯이 쓸어넘기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괜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제 걱정 많이 했어요?”
“당연하잖은가.”
“성검펜스가 나와 있는 동안에도 의식이 뚜렷했나 봐요?”
“그렇지는 않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잠깐, 은근슬쩍 말 돌리지 마라.”
내 질문에 대답해 주는 듯했던 세르펜스가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말을 돌리려던 건 아니었건만.
그래도 한때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그걸 까먹다니 내가 생각해 봐도 좀 너무하긴 했다.
세르펜스도 돌아왔으니 이제부터라도 고민해 봐야겠다.
“일단 소설 얘기는 빼고, 간편 요약본 같은 걸 받아 읽었다고 말하려고요. 제 의지와 무관하게 이동했다거나, 누나 대신 온 것 같다는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될 것 같고···. 성검 일행이 휴마누스와 연인 관계였다는 건 당연히 말하면 안 될 테고···.”
“그런 것 말고. 선우, 당신에 관한 얘기는?”
내가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자니, 세르펜스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별로 도움이 되는 의견은 아니다.
“저에 관한 거요? 이름 빼고 더 얘기할 게 남았던가? 어렸을 적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로 바쁘신 와중에도 저와 누나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 주셨으며.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나는 심부름을 많이 시키긴 해도, 저를 귀여워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저는···. 뭐, 이런 자기소개서라도 작성할까요?”
“자기소개라기보다는 가족소개에 가깝지만, 선우가 자기소개라 생각한다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력서와 함께 직장에 제출해 주었으면 한다.”
그냥 아무 말이나 떠들어댄 거였는데 세르펜스가 관심을 보이며 눈을 빛냈다.
말이 좋아 ‘직장에 제출’이지 그냥 자신이 읽고 싶다는 소리였다.
그 꼴이 기가 막히는 한편, 뿌듯하기도 했다.
나도 어렸을 때, 누나와 함께 부모님의 사진첩을 종종 들춰 봐서 안다.
아이가 부모님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한다는 건, 그만큼 좋아하고 친근함을 느껴서다.
그리고 부모가 앞서 지나간 길을 따라 걷고 싶어 하는 존경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미안하다, 안 그래도 많이 그리울 텐데···. 내가 너무 무심했다. 나는 그저, 선우의 어린 시절이 너무 궁금해서···.”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세르펜스가 울적한 목소리로 내게 사과를 해 왔다.
정말 괜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세르펜스, 그리움은 묻어둬서 좋아질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외면하고, 삼키고. 그러는 게 더 해로워요.”
“선우···.”
세르펜스가 애잔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녀석은 기껏 나를 불러 놓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물쩍거렸다.
나는 녀석이 왜 저러는지 안다.
그리움을 외면하고 삼켰던 건 바로 내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마음껏 그리워하고, 추억하려고요. 사실 그리운 마음은 그것만으로도 꽤 해소가 되거든요.”
그리고 이 또한 내 얘기였다.
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세르펜스는 종종 내가 살던 세상에 관해 질문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게 지금까지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한다.
정말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았더라면, 진작 향수병으로 몸져누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언제든 좋으니 내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한다.”
“그럼 지겨워질 때까지 떠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대의 얘기가 지겨워지는 일은 없을 거다.”
내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도전장을 내밀듯 말하자, 세르펜스가 피식 웃으며 농담처럼 받아쳤다.
딱 내가 바라던 반응이다.
“옜다, 기분이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지막 하나 남은 쿠키 샌드를 꺼내 허공에 던졌고, 세르펜스가 정확하게 그것을 잡아챘다.
“이번이 세 개째라는 걸 알고 있는 건가?”
세르펜스가 쿠키 샌드를 등 뒤로 감추며 물었다.
평소에는 간식 양을 적당히 조절했으면서, 오늘은 무슨 일로 척척 내어주냐는 뜻이다.
마땅히 제시할 수 있는 의문이다.
그도 그러할 게, 저 쿠키 샌드가 어디 보통 단 음식인가?
“세 개째이지만, 그와 동시에 마지막 하나 남은 ‘초코 퍼지 마시멜로 쿠키 샌드’이기도 합니다.”
“······!”
마지막이라는 말에 세르펜스의 동공이 흔들렸다.
녀석이 망설임 가득한 표정으로 등 뒤에 숨겼던 쿠키 샌드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결심했다는 듯 표정을 굳히며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선우가 잘 보관하고 있다가···, 이번처럼 상으로 내어다오.”
세르펜스가 아주 큰일 날 소리를 했다.
이는 부모님께 세뱃돈을 맡기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위다.
“저한테 맡기면, 휴마누스에게 줘 버릴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먹든, 직접 가지고 있다가 먹고 싶을 때 꺼내 먹든 하세요.”
내가 먹는다고 하면 눈물을 머금고, ‘선우가 먹고 싶다면야···. 내가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어깨를 축 늘어뜨릴 게 뻔했다.
그래서 휴마누스를 들먹거렸더니 곧장 효과가 나타났다.
세르펜스가 화들짝 놀라 쿠키 샌드를 다시 등 뒤로 숨겼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성검펜스의 자아가 나와 있는 동안 보관하고 있던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를 건넸다.
세르펜스가 하나 남은 쿠키 샌드를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담았다.
“그건 그렇고, 모두에게 제 본명을 밝힐까 하는데. 세르펜스는 어떻게 생각해요?”
“선우가 그러고 싶다면야···. 내가 무슨 권리로 그것을 막겠는가?”
세르펜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쿠키 샌드를 먹는다고 하면, 세르펜스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상상했던 그대로다.
그 탓에 나도 모르게 황당한 질문을 던지고야 말았다.
“제 이름이 쿠키 샌드와 동격입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럴 리가 없잖은가?”
세르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미간이 살짝 찡그려진 게, 기분이 많이 상한 듯 보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지스나 윈스톤 경이라면 모를까, 다른 이들에게까지 선우의 이름을 알려주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휴마누스 정도는 끼워주지, 너무하시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일 뿐이다. 선우의 이름은 세례명이 아님을 안다. 일종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도 불리고 싶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 욕심으로 혼자 독점하며, 특별함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르펜스가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가볍게 무시하고 제 할 말을 끝냈다.
그 진지한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긴장하며, 녀석의 말을 되새겼다.
“사람이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한 겁니다.”
특히나 세르펜스처럼 인간관계가 좁은 사람은 더 그러하다.
자신은 친구가 한 명뿐인데, 그 친구에겐 자신이 수많은 친구 중 하나라면.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절친 자리를 꿰차고 싶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