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9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95화(595/1105)
595회
72. 공작님과의 재회 (7)
“세르펜스는 볼타 산맥에서 2회차의 꿈을 꿨었잖아요. 혹시 그때 무언가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2회차의 세르펜스가 다른 회차를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 같았다거나?”
“잘 모르겠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내 의식이 흐려진 것도 있고, 혼란스럽기도 해서···.”
도움이 안 되어 미안하다는 듯,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괜한 질문을 했나 보다.
“모르겠으면 말고요. 일부러 떠올리려고 노력하진 마세요.”
“으음···, 그래.”
“그건 그렇고 2회차의 세르펜스가 정말로 다른 회차의 존재를 인지했다면, 마왕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나는 세르펜스가 성검과 접촉해 2회차의 기억을 엿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나라면 마왕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숨겼을 거다.”
“역시 그랬겠죠?”
“선우의 표현을 따르자면···. ‘1회차’의 나는 신성력을 이용해 하늘을 나는 방법을 터득했잖은가?”
세르펜스가 뜬금없이 성검펜스를 언급했다.
내가 세르펜스에게 <성검의 주인>의 내용을 전달할 때, 타락펜스에게 비행 기술이 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타락펜스는 날아다니지 않았으니까.
만약 타락펜스가 1회차를 본 게 확실하다면, 성검펜스의 비행 기술을 익혔을 텐데···.
“자신이 1회차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마왕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비행 기술을 숨긴 것 같다는 뜻입니까?”
내가 생각을 정리하여 확인차 질문하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해 주었다.
마왕이 1회차의 기억을 지닌 회귀자라는 걸, 타락펜스가 눈치챘다는 전제가 깔린 의견이었다.
이상할 거 하나 없는 얘기다.
마왕의 그림자 하나 못 본 나조차 마왕에게 이전 회차의 기억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악숭 세력에 들어간 타락펜스는 당연히 눈치챘겠지.
‘분명 마왕 놈은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이 회귀자라는 걸 여기저기 티 내고 다녔을 게 뻔해.’
타락펜스가 그런 마왕을 비웃으며, 뒤통수칠 준비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실 뒤통수도 아니다. 1회차에서 당한 일을 되갚아 준 것에 불과하니까.
그마저도 성검펜스가 당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떤 거요?”
“‘이전’이 존재한다는 건, ‘다음’ 또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도 2회차의 나는 신성력을 버리고 마왕의 힘을 얻어, 성검의 주인에게 처단당하는 최후를 택했잖은가.”
세르펜스의 말대로, 이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나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고민한 끝에 한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룩스메아를 엿 먹이기 위해서···?”
“엿···?”
“곡식으로 만든 사탕 비슷한 음식이요. 아! 엄청나게 달고 찐득찐득하다는 점에서는 캐러멜에 더 가까우려나? 맛은 있는데 먹기 힘들고 불편해서, 고생 좀 해 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일종의 관용어죠.”
나는 세르펜스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의 눈높이에 맞게 ‘엿 먹어’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어차피 어원이 불분명한 말이기도 하고, 이곳은 다른 세상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내 말뜻을 이해했는지, 세르펜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침을 꼴깍 삼켰다.
‘엿’이 어떤 맛인지 상상해 봤나 보다.
“으음···. 어쩌면 신에게 완전히 내쳐지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
세르펜스가 언제 입맛을 다셨냐는 듯, 다시 진지하게 의견을 냈다.
2회차에서 타락펜스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그렇게 해석할 만도 했다.
더군다나 최종장에 이르러서는 신성력을 버리고, 마왕의 힘을 흡수하는 짓까지 저질렀으니.
작정하고 신의 미움을 사려는 게 아니고서야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다른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식으로 말이지?”
“이런 짓을 해도 자신을 계속 사랑해 줄 수 있냐고. 또다시 기회를 줄 거냐고···. 자신에게 ‘아도르’라는 세례명을 내렸던 신을 시험해 본 걸 수도 있잖아요.”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
나를 만나기 전의 세르펜스는 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도, 돕고 싶다며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밀쳐내지 못했다.
이번에 만난 성검펜스 또한 그러했다.
자신을 돌봐주기 위해 보내진. 그리고 실제로도 자신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신의 사자’인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다.
그러니 타락펜스 또한 누군가의 사랑을 애타게 갈망했으리라.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모른다.
1회차와 달리 성검이 다른 사람의 손에 쥐어진 이유가 자신이 실패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1회차에서 고통받던 자신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인지.
그조차 불명확했으니.
타락펜스에겐 그게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뭐,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을 시험하다니···. 그거야말로 내쳐지기 위해 작정한 짓이군.”
“사춘기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시험해보려고, 비행을 저지르거나 사고를 치는 일이 종종 있긴 합니다.”
“나는 결코 선우를 의심하거나 시험할 생각이 없다. 믿어다오.”
딱히 현재의 세르펜스를 두고 한 말은 아니었건만.
세르펜스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사정했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한 모습이다.
‘정말 속으로 나를 의심했거나 시험할 계획을 세운 건 아닐 테고···.’
역으로 내가 자신을 의심할까 봐, 지레 겁먹어서 저러는 것 같다.
겸사겸사 자신은 비행 같은 건 저지르지 않는 착한 아이라는 것도 어필하고.
“암요, 믿고 말고요. 비록 성검을 잡음으로써 커다란 사고를 치긴 했지만요.”
“그건···, 미안하다.”
“알면 됐습니다.”
“다시는 선우의 허락 없이 성검을 잡지 않겠다.”
“아니, 함부로 복선 깔지 말라니까 또 이러시네?”
“다시는 선우의 허락 없이 복선을 깔지 않겠다.”
녀석이 간절히 눈을 빛내며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어쨌거나 나를 웃겼다는 사실에 만족했는지 세르펜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무튼 2회차의 세르펜스에 관한 건···. 당장 고민해서 답을 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선우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혹시나 해서 질문하는 건데, 나중에 2회차 세르펜스가 튀어나왔을 때를 대비해서 제게 정보를 던져준 건 아니죠?”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기반으로 떠오른 가정에 대해, 선우에게 의논을 청한 것뿐이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이잖은가? 선우야말로 복선 깔지 마라.”
세르펜스가 지금 자신을 의심한 거냐며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럽긴 한데 심증만 가지고 녀석을 다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이번에는 특별히 넘어가 줘야겠다.
“그 밖에 제가 알아야 하거나 주의해야 할 점 있어요?”
“으음···. 당장은 없는 것 같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요? 다시 잘래요? 아니면 나갈까요?”
“나는 좀 더 선우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안 되는가?”
언제 토라진 표정을 지었냐는 듯, 세르펜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무구한 저 눈망울을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녀석의 저 눈빛 공격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악숭이 뿐이리라.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선우에 관해 듣고 싶다.”
아무래도 내가 살짝 입에 담았던 자기소개서의 뒤 내용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VOD 미리 보기 서비스도 아니고, 살짝 맛만 보여주고 도중에 끊어버렸으니. 원래 이런 게 더 감질나기 마련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저에 대해서라···.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으려나?”
“태어날 때부터.”
세르펜스가 무리한 요구를 해 왔다.
과연 오늘 중으로 대화를 끝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미래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제 성장 과정은 나중에 공작저로 돌아간 뒤, 이력서와 함께 제출하겠습니다.”
내 말에 세르펜스는 살짝 갈등하는 듯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으로 남겨두어 두고두고 읽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지금은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거로 질문해 주세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도 생각해야죠.”
“알겠다. 그럼···.”
세르펜스가 신중한 표정으로 질문거리를 골랐다.
사실 녀석이 물어볼 만한 건 뻔하디뻔했다. 우리 가족에 관한 거나, 고향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 관해 물어보겠지.
‘가장 친한 친구라면 역시···.’
내게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하나 있다.
어릴 땐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성인이 된 후로는 내가 그 친구의 자취방에 자주 쳐들어갔다.
오랜만에 그 친구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있는 그때, 세르펜스가 질문했다.
“선우는 그···, 연인을 사귀어 본 적이 있는가?”
“엑···?!”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세르펜스가 이런 질문을 해 올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 애들은 유치원에서부터 연애질을 시작한다더니!’
아도르는 아직 아기인데, 벌써 보호자의 첫사랑도 아닌 첫 연애를 궁금해할 줄이야.
빨라도 너무 빠르다.
“반응이 왜 그러지?”
“너무 뜬금없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라, 좀···. 아니, 많이 놀라서···.”
“뜬금없는 질문이 아니다, 잘 생각해 봐라.”
나는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세르펜스가 시킨 대로 잘 생각해 보았다. 주로 최근에 나눴던 대화를 중심으로.
그러자 놀랍게도 세르펜스가 내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유지스···!’
그녀가 성검펜스에게 세르펜스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차였고, 세르펜스는 그것을 엿들었으며, 그 사실을 알아챈 내게 함구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자신보다 어른인 나의 경험을 참고로 삼으려나 본데, 안타깝게도 이 부분에 관해선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
“제가, 그···. 연애를 해 본 적이 있긴 한데···, 어···.”
물어봤으니 대답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말문을 열긴 했는데,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잘 안 떨어진다.
내 서툰 과거를 세르펜스에게 들려주는 게 좀 민망하기도 하고, 유지스에게 미안해서.
“있긴 한데?”
“그게 저기, 연애라고 부르기는 좀 그래서···.”
“그건 무슨 뜻이지?”
내가 자꾸 말끝을 흐리며 어물쩍거리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머뭇대는 내 행동이 되려 녀석의 호기심만 자극한 모양이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성장 과정이나 늘어놓을 걸 그랬다.
나는 속으로 후회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은 모범이 될 수 없다면, 반면교사라도 되어야지 어쩌겠는가.
“원래 그 아이와 저는 그냥 친한 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도 잘 어울린다, 사귀어라 그러면서 떠들어대니까, 그 친구도 저도 괜히 막 설레기 시작해서 등 떠밀리듯 사귀게 되었는데···.”
“되었는데···?”
“막상 사귀고 났더니, 어색해지기만 하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어서요. 그러다 고3 올라가고 공부 핑계로 서로 거리를 두다가, 그대로 자연 증발했습니다···. 하, 하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모르긴 몰라도 내 얼굴은 민망함 때문에 붉게 달아올라 있을 게 분명했다.
세르펜스는 내 말이 큰 충격이었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 눈을 커다랗게 떴다.
“큼, 크흠!! 그러니까, 뭣이냐···. 세르펜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정말 자신이 그 사람을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게 맞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연애를 시작하도록 하세요. 아시겠습니까?”
“아, 알겠다. 유념하도록 하지.”
세르펜스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히 유지스의 청춘사업을 방해한 게 아닐까 걱정되긴 했지만, 어중간한 마음으로 사귀다가 안 좋게 헤어지는 것보단 낫겠지.
어차피 이 모든 건, 유지스가 세르펜스를 얼마나 잘 꼬시느냐에 달렸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