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596화(596/1105)
596회
72. 공작님과의 재회 (8)
“이제 슬슬 나가볼까요?”
“잠시만 기다려다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나를 붙잡았다.
무언가 할 말이라도 남은 건가 싶었으나 그건 아닌 듯했다.
세르펜스는 한참 동안 울어댄 탓에 부어올랐던 눈가를 신성력으로 치료했다.
그러고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한 후, 아공간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내어 하나로 묶고 안경까지 썼다.
귀족 특유의 화려한 복장이 아니라 간단한 여행자 복장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세르펜스의 기본 세팅이 모두 갖춰진 셈이다.
성검펜스의 자아가 몸을 차지했을 때와 녀석이 ‘신관 프레이’로서 지냈던 기간.
그 둘을 합치면, 세르펜스 본연의 모습을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뭔가 굉장히 반갑네요.”
“음···?”
“그 모습을 보니까, 이제야 진짜 세르펜스가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나서요.”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세르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미안한 거 알면 앞으로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녀석과 함께 천막 밖으로 나가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내가 방음 스크롤을 사용했으니. 세르펜스가 깨어난 걸 눈치채고 늦은 점심을 준비 하고 있었나 보다.
음식 냄새를 맡자 잊고 있던 허기가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거리며 오늘의 메인 음식을 유추하고 있는데, 모두의 시선이 나와 세르펜스에게로 쏠렸다.
일곱 쌍이나 되는 눈들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주목을 받은 김에 이름을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유선우’입니다! 편하게 그냥 ‘선우’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모여있는 일행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자기소개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유선우’가 내 본명임을 인식하고 한마디씩 던졌다.
“원래 살던 곳에서는 자기소개를 그렇게 하나 봐?”
“어째서 시온 씨. 아니, 서어···누 씨는 매번 진지한 얘기를 해야 할 때마다, 저렇게 장난스런 행동을 취하시는 거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잖아요.”
푸로르와 에드나는 내가 이름을 밝히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반응은 정반대였다.
내 과장된 행동이 재밌었는지 푸로르는 낄낄거리며 웃어댔고, 에드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히 우리 언니를 곤란하게 하다니···!”
에드나 옆에 꼭 붙어있던 아니마가 내게 시비를 걸었다.
그냥 무시하도록 하자.
“유, 서누···. 그게 시온의 본명인가 봐요? 제대로 발음하려면 연습을 좀 해야겠어요.”
“정말 낯선 발음이네요.”
유지스와 리에나는 내 이름 자체에 집중했다.
그리고 세르펜스가 처음 내 이름을 들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모범생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반복하며 발음 연습에 들어갔다.
“기억해 두겠소.”
그와 반대로 윈스톤은 곧바로 내 이름을 입에 담는 대신에 기억하겠다고만 말했다.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게 민망해서 저러나?
반면에 휴마누스는 아주 당당하게 내 이름을 잘못된 발음으로 불렀다.
“그래, 앞으로 서누라고 부르면 되는 거지?”
“안 됩니다. 연습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주세요.”
내 대답이 불만스러웠는지, 휴마누스가 댓 발 튀어나온 입으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대충 들어보니 ‘쟤는 맨날 나한테만 저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간 있었던 일은 ‘선우’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모두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성검펜스가 왔다 간 이 상황에도 대외펜스 설정을 계속 유지할 작정인지, 세르펜스가 매우 정중한 태도로 일행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는 뒷전이고 본 목적은 따로 있는 듯했다.
내 이름에 힘주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나는 진작부터 선우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며 발음 또한 완벽하지!’라고 자랑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성검펜스의 자아가 육체의 주도권을 쥐었을 때, 본인의 의식은 잠들어 있었노라 거짓을 알리는 게 두 번째 이유일 테다.
“드, 드드드, 들었다니! 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요?!”
발음 연습에 한창이던 유지스가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순간 대체 왜 저러나 싶었으나, 붉어진 얼굴로 귀를 파닥거리는 유지스의 모습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유지스의 취향 얘기는 안 했습니다.”
“취향···?”
나는 유지스를 위해 하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세르펜스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꾸며내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세르펜스는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유지스가 우리의 말을 믿고,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순진한 척하는 세르펜스와 달리, 유지스의 순진함은 진짜였다.
“참! 세르펜스를 묶었던 건 도움이 좀 되셨나요?”
행여나 세르펜스가 자신의 취향 얘기에 관심이라도 보일세라, 유지스가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정말 괜한 걱정이었지만, 나는 유지스를 위해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저번이랑 다르게, 이번에는 얌전히 깨어나서 아무 소용도 없었어요.”
“대체 저번에는 어떻게 깨어났길래···.”
“알면 다쳐요.”
“제가요?”
“아뇨, 세르펜스의 여린 마음이요.”
“그렇다면 대답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유지스는 마음까지 넓어서, 자신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너그러운 이해심을 보였다.
아기펜스가 아직 이성을 향한 관심에 눈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나 매력적인 사람이 좋아한다고 고백해 왔는데도 넘어가지 않는다니, 참으로 대단한 녀석이다.
어지간한 사람은 ‘오늘부터 1일’을 외치며 유지스를 받들어 모시기 바쁠 텐데.
자신도 유지스 못지않게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이건가?
“그럼 이제까지 세르펜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준 거야?”
휴마누스가 잠시 끊긴 대화의 틈에 끼어들며 질문했다.
방음 스크롤을 찢은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가 나왔으니, 그가 의아해할 만도 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삐졌던 것 같은데 회복이 참 빠르다.
놀리면 재밌는 반응을 보이고 이렇게 후환마저 없으니까 계속 놀리고 싶어지나 보다.
“그런 것도 있죠. 그 밖에도 혼란스러워하는 녀석을 좀 달래주기도 하고, 함부로 성검에 손대지 말라고 혼내기도 하고···. 그러다 나왔습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려 대답했다.
이미 타락펜스의 존재를 알고 있는 휴마누스라면 모를까.
그 이외의 사람들. 특히나 그중에서도 아직 세르펜스를 잘 모르는 성검 일행 앞에서, 타락펜스를 언급하기는 이른 감이 없잖아 있어서다.
그렇지 않아도 대외펜스와 성검펜스의 성격 차이만 놓고 봐도, 과연 이게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텐데.
여기에 타락펜스까지 더해지면 혼돈 그 자체다.
“그보다 저로 인해 일정이 상당히 지체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세르펜스도 타락펜스에 관한 건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적당히 끼어들어 말을 돌렸다.
대단히 송구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녀석의 표정에 휴마누스가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덕분에 유용한 기술을 익힐 수 있었는걸? 아직 미완이긴 하지만, 제대로 익히면 적들을 상대할 때 큰 힘이 될 거야.”
“아! 그 얘기라면 들었습니다. 선우의 말에 따르면, 제가 휴마누스와 주교님을 가르쳐 드려야 한다던데···.”
“내가 이론 적어둔 거 있어! 일단 이거부터 읽어 봐.”
세르펜스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말끝을 흐리자, 휴마누스가 주섬주섬 자신이 필기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르펜스는 이미 그곳에 적힌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냥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다.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와 리에나를 가르치는 과정을 모두 보았으니. 몇 번 실습해 보면 곧장 두 사람을 가르칠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세르펜스는 휴마누스가 건넨 종이들을 받아들었다.
“그건 나중에 보시고, 우선 식사부터 하세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음식이 다 되었는지, 에드나가 국자로 냄비에 든 수프를 떠서 그릇에 담아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크루통을 한 움큼 집어넣었다.
내내 에드나 옆에 붙어있던 아니마가 그녀에게서 떨어져, 크루통이 왕창 올라간 옥수수 수프를 부지런히 테이블로 옮겼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식사 당번인 윈스톤이 샐러드를 나눠 담았다.
야영 첫날은 나와 윈스톤, 푸로르가 한 조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푸로르가 혼자 고생하게 된다. 그러한 까닭에 식사 당번 조를 재편성하게 됐다.
단기 속성 과외 수업에 매진하는 세 사람은 열외였고, 에드나와 아니마를 떨어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에드나와 아니마 사이에 윈스톤을 끼워 넣기 뭐해서, 내가 저들과 한 조가 되기로 했었는데···.’
오늘은 내가 세르펜스와 함께 천막에 처박힌 탓에, 결국 윈스톤이 내 대타로 저들 사이에 끼게 된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혼자 따로 놀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아무튼 때마침 잘 나왔어.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나가는데도 안 나와서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거든.”
나와 세르펜스가 자리에 앉자 휴마누스가 살갑게 말을 붙였다.
“그런 거면 당연히 불러야죠!”
“응. 시온···이 아니라. 서, 서어언···. 서···.”
“저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고 얘기하려고요?”
나는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려고 버벅거리는 휴마누스의 말을 끊고, 그가 하려던 말을 넘겨짚었다.
그러자 휴마누스가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그래, 그거야!’를 외쳤다.
“정 발음이 어려우면 그냥 서누라고 하세요.”
“아까는 연습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야 한다면서?”
“그냥 장난이었어요.”
“됐어, 내가 오기로라도 해내고 만다!”
“그래 주면 고맙고요.”
내가 씩 웃으며 대답하자 휴마누스가 묘하게 찝찝하니 어쩌니 하며 투덜거렸다.
또 놀림당한 기분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도 휴마누스는 오기로라도 해낸다는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휴마누스는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정말 착한 친구다.
“아 참! 그래도 대외적으로 저는 ‘시온 리벨론’이니까, 여기 계신 분들 외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선우 대신 시온으로 불러주세요.”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오, 눈치가 많이 느셨네요!”
“대체 내 눈치를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정말 듣기를 바라요?”
“···아니.”
휴마누스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아니마가 가져다준 수프를 떠먹었다.
말을 돌리는 수준을 넘어서, 대화 자체를 삼가는 모습이다. 나도 이제 식사에 집중해야겠다.
“저···. 여러분께서 괜찮으시다면, 식사를 마치는 대로 바로 이동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저희는 상관없어요. 그러는 공작님이야말로 괜찮으시겠어요?”
나 때문에 삐져서 말이 없는 휴마누스를 대신하여, 성검 일행의 정신적 지주인 리에나가 세르펜스의 말에 대답했다.
이제 막 정신을 되찾아 혼란스러울 텐데 일정을 강행해도 괜찮겠냐는 뜻이리라.
“괜찮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이 언제 어디서 일을 벌일지 모르는데, 계속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불안하기도 하고···.”
세르펜스가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 때문에 일정이 늦춰졌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불안함 때문에 서두르자고 재촉하는 것 같아 미안한가 보다.
“아까 휴마누스가 괜찮다고 한 얘기를 왜 또 꺼냅니까?”
“하지만 다른 분들은···.”
“괜찮아요, 괜찮아. 애초에 세르펜스가 성검을 쥔 게, 우리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나 마찬가진데. 그거 가지고 탓할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다들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마는 무시할 줄 알았는데, 그녀도 고개를 끄덕인 게 조금 의외였다.
‘에드나의 안전도 포함되어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세르펜스에게 가장 무관심하던 아니마까지 이렇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이제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신경 쓰였던 건데, 우리 앞으로 그냥 서로 이름으로 부릅시다! 함께 싸워나갈 동료끼리 공작님이니 주교님이니. 직급으로 부르거나 성으로 부르는 건 너무 사무적이고 정이 없잖아요?”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모두에게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