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59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00화(600/1105)
600회
73. 공작님과 아르케 왕국 (2)
나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반대로 에드나는 세르펜스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예사롭게 입을 열었다.
“세르펜스 님도 걱정이 많으셨나 보네요.”
“예.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제가 얘기를 한다고 해서 선우가 조언으로 받아들여 줄 것 같지가 않아서···.”
세르펜스가 말끝을 흐리며 쓰게 웃었다.
그 씁쓸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미안함과 함께 머쓱함이 밀려들었다.
‘같은 말을 세르펜스가 했다면 어땠을까? 순순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세르펜스가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
녀석은 내가 옆에 있을 때 안정과 위안을 얻고, 곁에 없으면 외로움을 느끼며 불안해한다.
‘그런 주제에 개인 시간을 갖자고 먼저 제안한다? 자신의 독립성을 보장받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자신 때문에 내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은 고맙지만, 어린애가 어른을 걱정하느라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을 포기하는 거 아니다.
그런 말이 먼저 튀어나왔을 게 분명하다.
이는 녀석이 내 피보호자 자리에 머무는 이상. 그리고 내가 녀석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르펜스가 에드나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감사를 표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신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 준 거니까.
“두 분께서 서로를 걱정하고 배려하니만큼, 앞으로는 괜찮을 거예요. 제가 조언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니까, 세세한 건 두 분의 상황에 맞게 알아서 조정해 보세요.”
“언니, 너무 멋쪄···! 아니마는 커서 언니야 같은 사람이 될 꼬얌!”
에드나가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니마가 혀 짧은 발음으로 찬사를 보냈다.
존경심은 분명히 담겨있었으나 진심은 없는 말이다.
정말로 그녀가 에드나처럼 되고 싶었다면, 저 혀 짧은 발음부터 진작에 집어치웠을 테니까.
그러니 아니마의 말은 의미 없는 추임새에 불과하다.
체면을 가차 없이 내다 버린 아니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르펜스의 체면이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조언은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도 앞으로 이런 얘기는 좀 비밀리에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왜, 방음 마법 한 방이면 간단하게 해결되잖아요? 저래 봬도 세르펜스는 공작이라,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어서···.”
“네? 체면이라면 포기하신 거 아니었어요?”
내가 염치 불고하고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에드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야말로 당황스럽다.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아니었나 보네요. 선우 씨에게만 몰래 얘기하면, 세르펜스 님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 고민할 것 같아서 지금 말씀드린 거였는데···. 음···. 세르펜스 님은 체면을 생각하고 계셨구나···.”
에드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중얼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방음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건 일부러였나 보다.
나를 걱정해서 꺼낸 얘기라는 걸 생각하면 옳은 판단이다.
그녀의 말대로.
세르펜스가 없을 때 개인 시간을 가져 보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뤘을 테니까.
내가 대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니, 앞으로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에는 내게 말 걸지 말라고 얘기한다 치자.
그렇다면 세르펜스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무작정 미안하다고 빌 게 뻔하다.
‘그러면서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고칠 테니 제발 말해 달라고 사정하겠지···.’
이유를 설명해주면 진정하겠지만, 내가 거리를 두자고 ‘통보’한 시점에서 녀석은 충격을 받을 거다.
그 사실을 알기에, 세르펜스가 가여워서라도 절대 그렇게는 못 한다.
반면에 지금은 제삼자가 내린 처방을 세르펜스와 함께 들은 상황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세르펜스도 상처받지 않고, 함께 조율해 나가는 게 가능하다.
‘나도 핑계 대면서 빠져나가는 게 불가능하고···.’
한 가지 의문은 이렇게나 현명한 에드나가 어째서, 제국의 공작인 세르펜스가 체면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느냐다.
세르펜스가 아니마처럼 굴었다면 모를까.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혹시 제가 사람들 앞에서 세르펜스를 ‘우리 애’라고 지칭한 것 때문입니까?”
“그건 그냥 선우 씨가 별나서 그렇다는 거, 알고 있어요. 선우 씨는 윈스톤 경도 어린애 취급하고자 마음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너무 조심성이 없었나 싶어, 반성하는 마음으로 넌지시 질문을 던져보았다.
하지만 에드나는 애초에 내 태도 따위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는 듯 일축했다.
그렇다면 에드나는 무엇을 근거 삼아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일까?
“저번에 세르펜스 님께서 자신은 선우 씨 앞에서 ‘그런 짓’을 한다고, 제게 당당하게 말씀하시길래 당연히 그런 줄로만 알았죠.”
의문이 고스란히 표정에 드러났는지, 에드나가 알아서 답을 내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그런 짓’이란, 세르펜스가 야옹 하고 고양이 소리를 낸 것을 일컫는 걸 테다.
하긴. ‘나는 보호자 앞에서 고양이 흉내를 내며 재롱을 부린다.’라는 말을 듣고도, ‘얘는 사회적 체면을 중요시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거다.
정확히는 에드나가 정말로 야옹을 했느냐고 물었고, 세르펜스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뿐이지만.
일말의 부끄럼 하나 없는 태도로 그것을 긍정했다면 그게 그거다.
나는 에드나를 이해해 주기로 했다.
“당당하게···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와서 민망해졌는지, 세르펜스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아마도 거짓말일 거다.
나는 녀석이 유아적 어휘를 문장 단위로 쓰는 것에 비하면, 야옹 소리를 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 짓’이라는 게 뭔데? 세르펜스 너, 선우 앞에서 대체 뭘 한 거야?”
“흠, 흠! 어찌 되었든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드나 씨. 이런 류의 조언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 앞으로도 떠오르는 게 있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꼭 말씀해 주십시오.”
세르펜스가 눈치 없이 구는 휴마누스를 날개로 가려버리며, 에드나를 향해 부탁 조로 말했다.
신성한 은빛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세르펜스의 모습은 천사 그 자체였으니.
녀석의 부탁이 흡사 신이 내린 지령처럼 느껴졌다.
그에 에드나가 부담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지간하면 두 분이 잘 해결하세요.”
옳으신 말씀이다.
세르펜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크게 아쉬워하긴 했으나 볼썽사납게 조언을 구걸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때마침 순찰하러 갔던 푸로르와 유지스가 돌아온 탓에, 그러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저희 왔어요! 그동안 다들 별일 없으셨나요?”
유지스가 경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나, 별일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없었어요. 유지스 쪽은요?”
“마찬가지예요.”
유지스가 나와 한 칸 떨어진 자리에 앉으며 여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큰일이 있었으면 분위기로 알 수 있었을 테니, 이 문답은 평범한 인사말에 불과했다.
나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이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세르펜스 나리, 배우는 게 엄청 빠르시네?”
푸로르가 눈치껏 나와 유지스 사이. 즉, 세르펜스 지정석을 피해 모닥불가에 자리 잡고 앉으며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그녀의 시선은 활짝 펼쳐진 세르펜스의 은빛 날개를 향한 채였다.
내심 찔리는 게 없잖아 있었지만, 나는 시치미를 뚝 떼기로 했다.
“무슨 그런 새삼스러운 소리를 하십니까? 원리만 알면 배우는 건 금방일 거라고 1회차 세르펜스가 장담했었잖아요. 애초에 세르펜스가 만들어 낸 기술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렇게까지 금방일 줄은 몰랐지. 정말 대단하네! 그래서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했던 걸 테지만···. 저 꼬맹이도 그렇고, 천재라는 게 꼭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닌가 봐.”
푸로르가 에드나에게 엉겨 붙어있는 아니마를 턱짓하며 말했다. 다소 씁쓸한 이야기다.
나는 대충 ‘뭐, 그렇죠.’ 하고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푸로르도 그 주제로 길게 대화할 생각은 없었는지, 내 성의 없는 대답에 트집 잡지 않고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날아봐도 될 것 같은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르펜스와 리에나의 시선이 휴마누스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나서 세르펜스는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고, 리에나는 곤란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반응으로 보아, 휴마누스가 만들어 낸 날개로는 아직 비행할 수 없는가 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죽을만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휴마누스는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내가 모자란 게 아니라, 얘네 둘이 천재인 거야.”
“그건 그렇죠. 세르펜스가 천재라는 사실은 전 대륙이 아는 사실이고, 최연소 주교인 리에나도 천재인 건 마찬가지니까.”
나는 휴마누스의 말에 맞장구치며, 그의 기를 살려주었다.
그와 동시에 힐끔 리에나의 눈치를 살폈다. 은근슬쩍 이름 뒤에 ‘님’을 떼고 불러 봤는데, 어떻게 반응할까 싶어서.
다행히도 리에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
갑자기 휴마누스가 의아함이 가득한 탄성을 흘리며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세르펜스는 뭘 보냐는 듯, 멀뚱멀뚱 휴마누스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오늘따라 조용하다 싶어서. 세르펜스 너, 칭찬받으면 항상 그놈의 ‘아닙니다.’를 운운하며 부정하고 보잖아.”
휴마누스가 놀랍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세르펜스의 자기 부정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냥 겸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눈치 없기로는 대륙 제일인 휴마누스가 그 점을 지적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어딘지 모르게 지긋지긋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보아, 칭찬해 줬다가 무안함을 느낀 적이 많았던 걸까?
아니면 ‘아니야, 너 진짜 대단해!’라고 칭찬으로 맞받아치며, 세르펜스가 인정할 때까지 말싸움을 벌였던 전적이 있거나.
“···안 좋은 버릇이라고 지적을 받아서, 조금씩 고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세르펜스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휴마누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러자 휴마누스는 잘 생각했다며 시원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세르펜스가 우물쭈물하다가 굉장히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흠, 흠! 만약 휴마누스가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하늘이 어두워진 터라 비행 연습을 하는 건 불가합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국경이지 않습니까. 신성력의 빛을 군사 신호로 오인하여, 소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빛나는 날개는 신성함을 얻은 대신 은밀함을 잃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싶다면 모를까, 기능적으로 생각하면 매우 별로였다.
나는 세르펜스와 휴마누스, 리에나의 등 뒤에서 제각기 은색, 금색, 백색으로 빛나는 날개를 계륵 보듯 바라보았다.
“마침 잘됐네요. 그럼 오늘 수련은 그만하고 이리 와서 앉아요.”
유지스는 신성력 날개의 치명적인 단점에도 아무 유감이 없는지, 세르펜스의 지정석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세르펜스가 날개인 척하는 신성력을 몸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냉큼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이어진 유지스의 말에, 녀석은 도로 일어나고 싶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일이면 아르케 숲에 도착하는데, 슬슬 얘기해 주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는 닼숭이에 관한 얘기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