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01화(601/1105)
601회
73. 공작님과 아르케 왕국 (3)
세르펜스는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좌불안석했고,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유지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어나시려고요?”
“아···. 윈스톤 경을 불러와야 할 것 같아서···.”
유지스의 기습 질문에 세르펜스가 순발력 있게 변명했다.
급하게 짜낸 것 치고는 매우 적절한 답변이다. 성검 일행도 동석한 마당에 윈스톤만 쏙 빼놓고 중요한 얘기를 나눌 수는 없으니까.
유지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세르펜스에게 어서 다녀오라는 말을 건넸다.
‘윈스톤은 자리에 없어도, 원격으로 주군을 지켜주는 참된 기사구나···!’
세르펜스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윈스톤이 있는 천막으로 향했고, 나는 속으로 윈스톤을 향해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얘기를 말하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휴마누스가 굳이 눈치 없이 입을 열어 유지스의 눈총을 샀다.
유지스가 자신을 공범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새눈새가 알아챘을 리는 만무한 탓이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휴마누스를 향해, ‘닼숭이’라고 키워드를 던져 주었다.
눈치는 없으나 이해력은 준수한 휴마누스가 이제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째서 유지스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깨닫지 못한 듯 보였다.
성검 일행이 ‘닼숭이’의 뜻을 묻고, 휴마누스가 ‘다크 엘프 악마 숭배자’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설명해 줄 즈음.
천막에 들어갔던 세르펜스가 윈스톤과 함께 모닥불가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유지스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세 분께서 이 문제를 숨기셨는지는 알아요. 그리고 이해해요. 엘프와 관련된 일이니, 제가 충격을 받을까 봐 그러셨던 거겠죠.”
“잠깐만, 세 분이라면···. 혹시 나도 포함되는 거야?”
이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휴마누스가 검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유지스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휴마누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닼숭이에 관해 유지스에게 알려야 한다고 열심히 주장했음에도, 우리와 한통속 취급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안타까운 일이나, 이미 변명의 때는 지나갔다.
나는 휴마누스를 향해 동정의 눈빛을 던져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유지스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치, 무슨 말을 하든 오해하지 않고 전부 들어줄 테니 천천히 얘기해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세르펜스가 돌아오자마자 묻고 싶었을 텐데.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다려 준 그녀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사실은 말이죠, 저는 실시간으로 신의 계시를 받는 게 아닙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에 오고 난 뒤로 신 룩스메아와 연락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비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언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쌍방 소통이 아니었으니 연락이라 말하기 뭐하다.
내 말에 유지스가 ‘네? 하지만 선우는···.’ 하고 말끝을 흐리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 이해했어요.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알고 있던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움직였던 거로군요? 그 정보는 아마도 미래의 일이자, 이미 지나간 과거···. 성검의 선택을 받은 세르펜스에 관한 건 선우도 몰랐다고 하니, 그때와 현재 사이에 벌어졌던 사건들이겠죠.”
유지스는 이내 상황 파악을 마치고 정확한 추론을 내놓았다. 무엇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정답이다.
그 덕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많은 설명을 생략할 수 있었다.
“저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 굳이 설명할 필요 같은 거 없었던 거 아냐?”
푸로르가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너무 공감 가는 말이라,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나는 애써 푸로르의 혼잣말을 한 귀로 흘리며 유지스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유지스의 말이 정확합니다.”
“선우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으셨던 건, 저를···. 아니, 저희 모두를 배려하기 위해서겠죠. ‘일어날지도 모를 일’과 ‘이미 일어났던 일이 또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라는 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니까요.”
“네, 뭐···.”
“세상이 재시작되었다는 건 그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대륙이 망가졌다는 뜻이죠. 그곳에서 살아가는 저희 또한 고통받고 괴로워했을 거예요. 그런 얘기를 당사자에게 하는 건 선우에게도 고역이었을 테니, 어째서 말하지 않았냐고 나무랄 생각은 없어요.”
유지스의 말을 듣고 나자, 긴장이 풀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상황이 많이 나빴어?”
푸로르가 넌지시 질문했다.
그 질문에 [성검의 주인] 결말이 자동으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성검의 주인]은 주인공 일행이 최종 보스인 마왕펜스를 무찌르며 끝이 났다.외전으로 휴마누스와 성검 일행이 가정을 이뤄 잘 사는 모습을 보였으니, 얼핏 해피 엔딩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놓고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결말이다.
‘최대한 해피 엔딩이 될 수 있도록 각색했다는 솔레르티아의 말이 개소리로 들릴 정도로···.’
성검 일행은 전원 돌아갈 장소를 잃었다.
아니, 그냥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최종 보스는 주인공이 친하다고 여겼고, 친해지길 바랐던 친구였다. 마지막 남은 고향의 편린이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다.
그러니 휴마누스는 최종 보스를 물리친 게 아니다. 하나 남은 친구를 포기한 것이다.
최후의 결전 당시, 그들이 나눴던 대화도 그런 분위기였다.
휴마누스는 승리의 기쁨이 아닌 상실의 슬픔을 느끼며 허탈해했다.
‘그러고 보면, 일행들을 물리고 둘이서만 대화를 나눴던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치명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마왕펜스는 방심해도 될 만한 상대가 아니다.
개인의 무력도 상당한 데다가, 여차하면 암기(暗數)를 쓰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으니까.
‘일행들이 눈치껏 입 다물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쩌면 솔레르티아가 말했던 각색이란 게, 성검 일행의 생존 여부를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외전은 아예 성립 자체가 불가능했다.
악숭 세력의 잔당은 대륙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평화가 도래한 것도 아니다.
‘아직 싸워야 할 적들이 잔뜩 남아있는데, 도란도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아이까지 낳고?’
소설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겠지만,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너무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더군다나 휴마누스의 자식이 등장한 걸 보면, 결말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일 텐데 그 또한 말이 안 된다.
‘그때까지 가만 놔둘 거면 뭐하러 세상을 다시 시작하겠어?’
외전은 그냥 독자들을 위한 솔레르티아의 서비스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댓글 창에서 누가 진 히로인이냐는 의견이 분분했으니 그것을 의식한 탓일 수도 있고.
“정말 보통 절망적인 게 아니었나 보네···.”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나가느라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보며, 푸로르가 찜찜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상념을 떨쳐내고 주변을 살폈다.
리에나는 기도라도 하듯 양손을 모아 잡았고, 아니마와 에드나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윈스톤은 우직하게 평정심을 지켰다.
그리고 유지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선우는 그 시기에 저희가 겪었던 일들을 전부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거죠?”
“뭐어···. 일어날 가능성이 크고,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건 말씀드리겠지만···. 말하기 그런 내용도 꽤 있는 데다가, 상황이 많이 변한 탓에 쓸모없어진 정보도 많고, 그것을 맹신하다가 도리어 함정에 빠지기도 쉬워서···.”
“이번에 세르펜스가 그랬던 것처럼요?”
유지스의 지적에 세르펜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슬쩍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케 왕국의 경우, 닼숭이 하나가 원인이었으니까요. 문제가 커지기 전에, 한 명만 처리하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이 조바심을 일으켰다고 해야 하나···.”
“침착함을 잃다니, 세르펜스답지 않네요.”
“그 사건 때문에 유지스가 힘들어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막고 싶었던 거겠죠.”
내 말에 유지스가 감동한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반짝거리는 레몬색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는지, 세르펜스가 민망해하며 그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본 유지스가 무언가를 참아내기라도 하듯 불끈 주먹을 쥐었다.
지금은 수줍어하는 세르펜스를 감상할 때가 아니었기에, 유지스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대화를 진전시켰다.
“성검의 선택을 받은 세르펜스도 그 다크 엘프에 관해 말했었죠?”
“네. 그때는 세계수를 불태웠고, 제가 아는 2회차에서는 엘프와 다크 엘프 사이에 불화를 일으켰으니. 어떤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그자가 사건의 중심이 될 겁니다.”
“불화를 일으켰다니, 어떻게요?”
나는 [성검의 주인] 내용을 떠올리며 유지스의 질문에 답변해 주었다.
악숭 세력과 전력으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고작 이간질 따위에 놀아나, 내부에서부터 무너져버렸다는 설명에 유지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엘프들은 그동안 세계수의 맹세 덕분에 서로를 의심해 본 적이 없으니, 이간질에 더 쉽게 휘둘린 건가? 누가 그딴 계획을 세운 건지는 몰라도, 허점을 제대로 찔렀네! 다크 엘프가 된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악랄하기까지 하고.”
말문이 막혀버린 유지스를 대신하여, 푸로르가 뿌득뿌득 이를 갈며 분통을 터트렸다.
나는 세르펜스가 걱정되어 슬쩍 녀석의 안색을 살폈다.
2회차의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인지 세르펜스의 표정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지레 찔려 남들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바로 그 주모자다.’라고 광고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악랄한 악숭 세력의 수작질에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그보다 대안은 있으신가요?”
리에나가 푸로르의 어깨를 짚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깨달은 푸로르가 진정하며 심호흡을 했다.
세르펜스도 마음을 추스르고 리에나의 물음에 답했다.
“아직 뚜렷한 대안은 없지만···. 아르케 국왕 전하께 이 사실을 알릴 예정입니다. 상황이 그때와 같이 흘러가지 않도록, 어떤 과정을 거쳐 내분이 일어났는지 될 수 있는 한 상세하게.”
“확실히,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이네요. 그래도 이번에는 그분께서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움직이실 테니, 저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리에나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낙관론을 입에 담았다.
방심은 금물이라지만, 부정적인 말을 꺼내어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시들시들해졌던 유지스와 세르펜스가 희망적인 이야기 덕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되찾았다.
“유지스 님은 아르케 국왕 전하의 조카라고 들었어요. 그분은 충분히 믿을 만한 분이시죠?”
“그렇고 말고요! 삼촌께서는 꼭 이 문제를 해결하고, 아르케 왕국을 지킬 방법을 찾아내실 거예요! 제가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유지스가 머쓱하게 웃으며 리에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훨씬 밝아진 그녀의 낯빛을 보며, 리에나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성검의 주인]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낸 리에나다운 모습이다.
“고마워요, 리에나 님. 괜찮으시다면 저도 리에나 님을 그냥 리에나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사이 좋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