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0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04화(604/1105)
604회
73. 공작님과 아르케 왕국 (6)
* * *
우리는 아르케 왕국의 수도, 디우실바에 도착했다.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르케 왕국에 거주하는 타 종족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뭐, 타 종족이라고 해봤자 인간과 드워프뿐이지만. 애초에 메로우는 물속에서 사는 데다가 폐쇄성이 강한 종족이니 없는 게 당연한 거고···.’
인간들의 나라에서는 엘프와 드워프를 거의 볼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당장에 신성 루멘 제국만 해도 그렇다.
가끔 찾아오는 여행객. 혹은, 국가적 차원에서 교류하기 위해 파견된 외교관을 제외하면 이종족을 찾아보기 힘들다.
드워프들은 아름다움 연수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유학 생활 중이거나, 그렇게 왔다가 눌러앉게 되었다는 모양이다.
인간들은 룩스메아 교단 소속의 신관이 대부분이었고, 아주 드물게 아르케 왕국에 여행 왔다가 엘프와 가정을 이룬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따라서 엘프와 인간 사이의 혼혈도 간혹 보였다.
그들은 엘프만큼이나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지만, 순수 엘프와 쉽게 구분해낼 수 있었다.
가장 간단한 구분법은 그들의 귀를 보는 것이다.
인간의 둥근 귓바퀴와 비교하자면 끝이 뾰족하고 길었지만, 엘프의 귀보다는 확연하게 짧았다.
그리고 두 번째 구분법은 바로 체형이다.
하나같이 길쭉길쭉하고 호리호리한 엘프들과 달리 그들의 체형은 다양했다.
미묘하게 팔다리가 짧거나, 반대로 근골이 장대하거나. 지방이 붙거나 근육이 붙거나.
“그러고 보니 결혼할 수 없는 성직자를 제외하면, 아르케 왕국에는 인간보다 드워프가 훨씬 많은데. 정작 드워프와 엘프 혼혈은 한 번도 못 봤네요?”
나는 길거리에 보이는 혼혈 한 명을 힐끔 쳐다보며 유지스에게 질문했다.
엘프의 기준에서 보면 인간이나 드워프나 못생긴 건 마찬가지일 테다.
인간과 가정을 꾸렸다면 드워프와 못할 것도 없다. 특히 수명을 생각해 본다면, 드워프가 인간보다 더 낫다.
그런 의미에서 던진 질문에 유지스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엘프들은 어릴 때부터 드워프들의 감언이설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대단한 바람둥이거든요.”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유지스는 그렇게 서두를 열더니, 드워프들은 가장 먼저 기피해야 할 연애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추파를 뿌리고 다닌다나 뭐라나?
“특히 ‘당신의 아름다움이 내 영감의 원천’이라는 말은 드워프들이 가장 흔히 쓰는 작업 멘트예요. 그러니 세르펜스도 주의하세요.”
“네, 네?”
나와 대화를 나누는 듯했던 유지스가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자, 세르펜스가 당황스러워했다.
어째서 어린 엘프들이나 듣는 경고를 자신에게 하느냐는 듯. 얼떨떨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유지스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정말 걱정이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얘가 오죽 순진해야 말이죠. 저러다 사탕발림에 홀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건 아닐지···.”
나도 한숨을 내쉬며 유지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런 우리 둘을 보며 세르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따질 것도 없이 세르펜스는 남을 홀리는 쪽이었고, 의심과 경계도 상당해서 마음을 쉽게 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의심의 장벽만 넘어가면 누구보다도 쉬운 녀석이라는 게 문제다.
‘내가 신의 사자라는 걸 알게 된 뒤, 성검펜스가 의심 없이 내가 하는 말을 받아들인 것처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드워프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리 없다. 그런 믿음을 갖고 녀석이 드워프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
드워프는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세르펜스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 요구할 것이 자명하다.
“세르펜스, 유지스가 하는 말 흘려듣지 마세요. 광장 한복판에 아슬아슬한 천 쪼가리 하나만 두른 반나체 동상이 세워지고 싶지 않으면.”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 겁니까?”
세르펜스가 난감하다는 듯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개소리 좀 그만해라.’라는 의지를 강력하게 전달했다.
문제의식이 결여된 그 모습이 내 불안감에 불을 지폈다.
“만약에 제가 취미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칩시다. 그래서 모델이 필요하다면 도와주실 거죠?”
“그야 당연히···.”
그냥 ‘네’도 아니고 무려 당연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녀석의 대답에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인체를 익히기 위해 크로키할 누드모델이 필요하다면요? 그래도 도와주실 겁니까?”
“으, 으음···.”
이어진 내 질문에 세르펜스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한 가정일 뿐인데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자체가 글러 먹었다는 증거다.
이 정도면 저번 생일에 녀석에게 받았던 ‘효도권’을 쓸 가치조차 없다.
내가 ‘같은 남자끼리 부끄러워할 게 뭐가 있습니까? 예술은 그저 예술일 뿐입니다.’ 하고 쿡 찔러주면, ‘듣고 보니 선우의 말이 맞는 것 같다.’라며 고개를 끄덕거릴 게 분명하다.
‘그래, 예술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
하지만 얼굴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누가 봐도 세르펜스인 조각상이 세워지거나 그림이 전시되는 건 다른 문제다.
예술가는 순수해도 그것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이 순수하리란 보장도 없고, 도난 문제도 있으니까.
“정말로 그림을 배우실 건가요?”
“안 배워요.”
내 대답에 유지스가 안도와 실망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세르펜스에게 유지스를 경계하라고 스리슬쩍 얘기해 줘야 하나?
진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것보다 아르케 왕국의 왕성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사방이 나무라서 도통 보이지가 않네···.”
“거의 다 왔어요, 곧 도착해요.”
유지스의 말대로 아르케 왕성은 바로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알아보지 못한 건 사방을 에워싼 나무 때문이 아니라, ‘성’ 같지 않은 아르케 왕성의 생김새 때문이었다.
아르케 왕성은 성이라기보다는 사원이나 신전 같은 모습이었다.
룩스메아 교단의 신전과 비교하면, 대단히 자연 친화적으로 생겼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그 안에서 여러 대소사를 처리해야 하기에 주변 건물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크긴 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란 첨탑도, 의미 없이 넓기만 한 정원도, 화려함에서 오는 위압감도 없었다.
대신에 오래된 거목과도 같은 고고함과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내가 아르케 왕성의 모습을 찬찬히 감상하는 동안, 유지스는 그 앞을 지키고 선 문지기와 소소한 잡담을 나눴다.
“들어가요.”
잡담을 끝낸 유지스가 우리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왕성 안으로 들어갔다.
“어? 설마하니 이 건물은 살아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거예요?”
건물 안에 들어서자, 벽을 유심히 관찰하던 에드나가 놀란 목소리로 질문했다.
유지스가 놀라워하는 에드나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나도 깜짝 놀라서 좌우 벽면과 천장을 살폈다.
‘입국했을 때 봤던 성벽과 비슷한 건가?’
어쩐지 굉장히 자연 친화적이고 거목이 연상되더라니. 진짜로 나무였을 줄이야.
누군가가 나에게 이 세상에 와서 가장 판타지스러운 게 뭐였냐고 묻는다면, 앞으로는 ‘아르케 왕성’이라고 대답해야겠다.
“우선 지내실 방을 안내해 드릴게요.”
유지스가 앞장서 걸으며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설명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조카라고 해도, 다짜고짜 찾아가서 독대를 청할 수는 없는가 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왕이면 엄청나게 바쁠 테니까.
가족이라 해도 공과 사는 지켜야 하는 법이다.
유지스는 나와 세르펜스, 휴마누스와 윈스톤, 에드나와 아니마, 푸로르와 리에나. 이렇게 두 사람씩 묶어서 방을 배정해 주었다.
철저하게 피보호자 두 명을 배려한 방 배정이다.
참고로 유지스 본인은 자신의 방에서 지내겠다며, 우리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럼 쉬고 계세요. 저는 가족들과 인사하고, 삼촌께 시간을 내어 달라고 부탁하고, 세계수 님을 만나 뵐 수 있도록 방문 신청을 하고 올게요!”
유지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되새겼다.
그런 그녀의 얼굴 가득 들뜬 기색이 완연했다. 가족들과 만날 수 있어서 기쁜가 보다.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유지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세르펜스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서···, 으음···. 시온.”
당장 주변에 보이는 사람은 우리 일행뿐이었지만, 이 왕성은 청력이 뛰어난 엘프들의 것이었다.
그것을 의식한 탓인지 세르펜스가 무심코 내 본명을 부르려다가 말을 고쳤다.
그러고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가족들과 만날 생각에 기뻐하는 유지스를 보며, 행여나 내가 서글퍼지기라도 할까 걱정되어 나를 불렀다가.
본명조차 제대로 불러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해하는 걸 테다.
누가 봐도 이상한 세르펜스의 행동에 일행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일단 좀 쉽시다. 하루도 안 쉬고 걷거나 말을 탔더니 힘들어 죽겠네!”
나는 세르펜스의 어깨를 툭 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세르펜스가 졸졸 따라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녀석이 방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벽에 귀를 대보는 거였다.
잠시 후 벽에서 귀를 뗀 녀석이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의외로 방음이 뛰어나군. 겉보기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세르펜스가 벽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엘프들의 청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사생활 보호 겸 벽간 소음을 대비하여 모종의 조치를 해 놓았나 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냅다 신발을 벗고 침대에 엎어지듯 몸을 던졌다.
“내가···, 실수한 건가?”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로 세르펜스가 질문했다.
방금 복도에서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일행의 의문을 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테다.
나는 베개를 쿠션처럼 끌어안고 몸을 돌려 누웠다.
두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아 잡고 고개를 숙인 세르펜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나 지금 반성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자세다.
“실수는 무슨.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아무런 효용도 없고, 오히려 선우를 곤란하게 할 수도 있었던 행동을···. 고맙게 여겨주는 건가?”
세르펜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 물어왔다.
이건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나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세르펜스의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지만, 상황에 따라서 누군가는 아니꼽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세르펜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평소에 저를 걱정하고 있어서, 반사적으로 제 안위를 살핀 건데 뭘 어쩌겠어요. 이렇게 알아서 반성도 하고 있고.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미안하다.”
“네. 사과 잘 받았습니다.”
나는 농담조로 대답하며 씨익 웃었지만, 세르펜스는 웃지 못했다.
녀석은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드러누운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눈높이가 딱 맞았다.
“선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곳에 오게 되었다는 것과 가족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생각이겠지.”
“밝혀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전자는 내가 말하지만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후자의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 ‘이 세계에 온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가족들 안 보고 싶어?’ 하고 지나가듯 묻기라도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동요할 테다.
그 시기가 빠르든 늦든, 어차피 들킬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세르펜스의 실수를 너그럽게 넘길 수 있었던 거다.
“언젠가 일행들이 알게 된다 해도 어쩔 수 없죠.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을지 누가 압니까?”
“······.”
세르펜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여 이불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힘들어하면 힘들어하는 대로, 아무렇지도 않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대로.
이 녀석은 내게 미안해하려나 보다.
나는 쓰다듬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는 세르펜스의 뒤통수에 손을 얹고 살살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