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2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29화(629/1105)
629회
74. 공작님과 세계수 (18)
적당히 배를 채웠으니, 이제 세계수를 방문하게 된 본래 목적을 이행할 때다.
“아, 참. 선우야, 너 검 바꾸기 전에 쓰던 거 아직 가지고 있지?”
휴마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검이 매인 검대를 끌러내며 물었다.
우리 일행 중 검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휴마누스와 세르펜스, 윈스톤. 그리고 나뿐이다.
‘그런데 세르펜스와 윈스톤은 각각 세검과 대검을 사용하니. 자신과 비슷한 형태의 장검을 가지고 다니는 나에게 빌리려는 거겠지.’
덧붙여 세니어를 빌리지 않고 전번에 쓰던 검이 있느냐고 물어본 건, 세니어에는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담겨 있는 까닭일 테다.
아무튼 휴마누스의 짐작대로, 나는 예전에 쓰던 검을 아공간 주머니 속에 방치하고 있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그 검을 꺼내어 휴마누스에게 건넸다.
‘세니어나 성검에 비하면 구닥다리나 진배없는 물건이지만···.’
어쨌거나 세르펜스가 나에게 쓰라고 준 검이다. 일반 검들에 비하면 제법 명검 축에 속하리라.
휴마누스가 성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내게 빌린 검을 허공에 휘둘러 보았다.
쇄액, 검날이 공기를 가르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이 정도면 괜찮겠네. 고마워, 잘 쓸게.”
휴마누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말하며, 세계수의 그늘에서 벗어나 들판 한가운데로 향했다.
먼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세르펜스가 자신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검 한 자루를 새로 꺼냈다.
녀석도 예전에 쓰던 검을 계속 가지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휴마누스가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 그냥 지금 쓰는 거 그대로 써도 돼.”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그런 미세한 차이로 승패가 뒤바뀔 만큼, 우리 실력이 비등한 것도 아니잖아. 내가 성검을 든다면 그 틈을 메꿀 수 있겠지만···.”
휴마누스가 자신의 패배를 기본 전제로 깔고 얘기하며 말끝을 흐렸다.
세르펜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에 쓰던 검을 아공간 주머니 속에 넣고, 허리춤에 매인 검을 검집에서 뽑아 손에 들었다.
그에 휴마누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이 검은 성검이 아니니까, 난 최선을 다해서 너를 공격할 거야. 검집을 제외한 용사의 무구도 그대로 착용할 거고. 할 수만 있다면 순수하게 내 실력만으로 겨뤄 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해서 말이야.”
휴마누스가 왼 손목에 고정된 방패를 슬쩍 눈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짐짓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무구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는 것도 휴마누스의 실력이자, 성검의 주인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응. 그러니까 너도 봐주지 말고 제대로 공격해 줘.”
그렇게 말하는 휴마누스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입만 산 것이 아니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휴마누스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무릎을 살짝 굽혀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검 끝은 세르펜스를 겨누고 있었다.
“으음···. 알겠습니다.”
세르펜스는 망설이는 듯했으나, 그 미적거리는 태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겨눠진 검과 그 검만큼이나 날카롭게 빛나는 휴마누스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녀석 또한 표정을 굳히고 준비 자세를 취했다.
“오···! 진지하게 하려나 본데?”
푸로르가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탄성을 흘렸고, 윈스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입을 꾹 다문 채 진중한 낯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두 사람의 대련에 관심을 보였지만, 근접전을 주로 하는 푸로르와 윈스톤과는 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나도 검을 쓰니까 저쪽에 속해야 하긴 하는데···.’
고수들의 대련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려면 최소한 중수 이상은 되어야 했다.
내 실력이 중수는커녕 하수 축에도 못 끼는 허접 나부랭이라는 건,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
‘오죽했으면 그냥 대련을 지켜보는 것뿐인데, 세니어가 버프까지 걸어줬겠어?’
심지어는 내 주위로 결계까지 형성되었다. 추측건대 대련이 격해져서 돌가루라도 튈까 봐서 이러는 게 아닐까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세니어를 검 형태로 만든 건 여러모로 실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신성석을 검으로 가공한 것조차 세르펜스의 과보호가 반영된 결과였으니. 이렇게 되는 건 처음부터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응원이나 하자.’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잡생각을 지워버리고,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눈 두 사람의 모습에 집중했다.
먼저 움직여 선제공격을 취한 건 휴마누스다.
땅을 강하게 박차며 방패를 앞세워 돌격하는 모습이 제법 위압적이다.
측면에서 지켜보는데도 그렇게 느껴졌으니, 정면에서 맞이한다면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질 테다.
그런데도 정작 그것을 마주한 세르펜스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휴마누스의 방패를 가볍게 피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녀석은 방패 너머에서 찔러 들어오는 검까지 얇은 세검으로 간단하게 걷어냈다.
그로 인해 자세가 흐트러질 만도 하건만.
휴마누스의 두 다리는 굳건하게 땅을 디디고 서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방패가 몸통을 보호했다.
방패의 크기가 전신을 가릴 정도는 아니어서, 허벅지를 노리고 검을 내지른다면 충분히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음···.”
세르펜스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신중하게 거리를 벌렸다.
옳은 판단이다.
휴마누스의 방패는 용사의 무구다. 신성력을 밀어 넣으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보호할 수 있다.
다시 한번 휴마누스가 땅을 박찼다. 이번에도 세르펜스는 몸을 틀어 휴마누스의 돌진을 가볍게 피해내는 듯 보였다.
바로 그 순간.
세르펜스를 후려칠 것처럼, 휴마누스의 방패가 크게 휘둘러졌다.
황금빛 신성력을 한껏 머금고, 후웅 하고 위협적인 소리까지 내며 휘둘러진 방패는 더 이상 보호 장비라 부를 수 없다.
그 단단한 둔기를 막기 위해, 세르펜스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왼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금방이라도 둔기에 부딪혀 으스러질 듯, 무척이나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나.
– 콰앙!!
눈 깜짝할 사이에 펼쳐진 은빛 결계가 황금빛 방패를 막아내며, 묵직한 굉음을 일으켰다.
그런 굉음에도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혹은 그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 카앙!
두 자루의 검이 부딪히며 고막을 찢을 듯한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힘겨루기라도 하듯 검을 맞댄 것도 잠시.
세르펜스가 손목을 빙글 돌렸다. 얇은 세검이 마치 나무를 타고 오르는 뱀처럼 휴마누스의 검을 휘감듯 움직였다.
휴마누스는 검을 놓치지 않도록 더욱 세게 움켜잡으며, 자신의 검을 옭아매려는 세르펜스의 검을 떨쳐내기 위해 강하게 휘둘렀다.
카가각, 검날이 갈리듯 부딪혔고 금빛과 은빛 신성력이 마치 불티처럼 허공에 튀었다.
‘시작 전에 휴마누스가 워낙 자신 없이 굴어서 일방적으로 밀릴 줄 알았는데, 꽤 하잖아?’
[성검의 주인] 시기와 비교하면 악숭이들의 공세가 소극적이긴 했으나,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휴마누스는 공국 전쟁에 참여했다. 그렇기에 부족한 경험을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었다.
전장은 일대 다수. 혹은 다수와 다수가 싸우는 난장판이다. 그러니 휴마누스가 상대한 건 자신보다 약한 다수의 적이었을 테다.
전쟁 중에 악마와 싸워 이긴 전적이 있긴 있었지만.
‘그 한 번이 전부겠지.’
즉 현재의 휴마누스는 자신보다 강하거나, 실력이 엇비슷한 강자와 싸워 이긴 경험이 거의 없었다.
[성검의 주인]에서 끊임없이 강자와 싸우며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이어나가, 끈질기게 성장했던 것과는 상반되었다.강자와의 전투 경험이 부족한 건 세르펜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검술을 연마했고, 그렇게 자신의 검술에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양쪽 모두 경험이 부족하다면 강한 쪽이 이기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검이 맞부딪히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휴마누스의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졌고, 전투가 길어질수록 휴마누스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다.
세르펜스라고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건 아니지만, 전투에 지장이 생길 만한 공격은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크윽···!”
세르펜스의 검이 갑옷 틈새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휴마누스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반면에 휴마누스가 내찌른 검은 아슬아슬하게 세르펜스의 옆구리를 스치는 것에 그쳤다.
어깨가 뚫리는 상처를 입었으니 응당 대련을 멈춰야 한다.
하지만 휴마누스는 이를 악다물고, 자신의 어깨에 틀어박힌 세르펜스의 검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세르펜스의 허리 옆에 멈춰선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아니, 그러려고 팔에 힘을 주었다.
어깨를 꿰뚫린 채로 휘두르는 검에 힘이 제대로 실릴 리가 만무했다.
세르펜스는 붙잡힌 자신의 검을 놓아버리고, 신성력으로 손을 보호하며 휴마누스가 휘두르려 한 검날을 잡아채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는 휴마누스의 손목을 가격하여 그의 검을 빼앗아 버렸다.
녀석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앗 하는 사이에 휴마누스의 어깨에 틀어박힌 자신의 검까지 회수했다.
검이 단숨에 뽑히며 휴마누스가 악 소리를 냈다. 그의 어깨에서 상당한 양의 피가 왈칵 쏟아졌다.
“이제 그만 하십시오.”
세르펜스가 두 자루의 검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휴마누스의 어깨에 손을 대고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피가 순식간에 멎어 들고 상처가 치유됐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휴마누스의 안색도 평온을 되찾았다.
“공격이 막힐 줄은 알았는데, 검을 빼앗아 버릴 줄이야···.”
휴마누스가 불만스럽게 툴툴거렸다.
그런 휴마누스의 작태에 세르펜스의 표정이 굳으며 눈빛에 노기가 서렸다.
“어째서 단순한 대련에 이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미안해. 하지만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어.”
“무엇을 말입니까?”
“내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악마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지.”
“그게 무슨···?”
“이렇게 허를 찔렀는데도, 나는 결국 너를 이기지 못했어. 그렇다는 건, 너보다 더 강한 악마들을 상대로 이기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뜻이겠지.”
가장 최근에 마주한 악마들만 해도, 세르펜스와 휴마누스의 실력을 웃돌 정도로 강했다.
만약 휴마누스가 세르펜스를 보호하지 못하여, 기절한 것이 세르펜스였다면. 우리는 성검펜스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 전멸을 면치 못했으리라.
세르펜스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그리고 세르펜스 본인 또한 그 악마들을 상대로 자신의 한계를 실감했기에.
녀석은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꺼내지 못했다.
“손···, 이리 주십시오. 검날을 그렇게 움켜쥐었으니, 베이셨을 거 아닙니까.”
“괜찮아. 이 정도는 내가 치료할 수 있어.”
“그래도 이리 주십···. 아니, 리에나 님에게 가서 치료받고 오십시오.”
“으응?”
갑자기 말을 바꾸는 세르펜스의 행동에, 휴마누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휴마누스의 얼굴을 마주하며 세르펜스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공중전도 대비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
리에나에게 치료를 받은 휴마누스는 다시 쌩쌩해졌지만, 이어진 2차전은 일방적이다 못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휴마누스는 세르펜스에게 처발렸다.
세르펜스는 휴마누스보다 신성력 날개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것에 능숙했고, 성검펜스가 악마들과 싸웠을 때의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건 마땅한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