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3화(63/1105)
63회. 공작저에 찾아온 손님 (2)
비록 친동생은 아니었지만, 미혹에 빠진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하는 셈 치고 제온에게 말을 걸었다.
“굳이 왜 공작저까지 찾아온···거야?”
최대한 편하게 말하려 해봤지만, 나도 모르게 말꼬리 처리가 조심스러워진다.
오리지널 시온이 가족들을 대할 때 어떤 말투를 사용했는지 잘 모르니 어쩔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할 때 의식적으로 ‘이런 말투를 써야겠다!’라고 일일이 의식해서 말하고, 또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은가.
‘적당히 할 말과 못 할 말만 구분하고, 나머지는 그냥 나오는 대로 말하는 거지.’
대화의 흐름이라면 모를까, 자신이 뱉은 말을 어조까지 완벽히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달리 방도가 없잖아. 진즉에 집 내놨다며? 새벽에 도착해서 편지 상의 주소로 찾아갔는데, 딴 사람이 나와서 얼마나 놀랐던지.”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슬슬 주소 이전 서비스도 끝나갈 텐데···.”
덕분에 아직 우편을 받아볼 수 있었지만, 조금만 시간이 더 흘렀다면 그것조차 반송될 뻔했다.
“···아무튼, 그래서 공작저까지 물어물어 찾아오니까 이 시간이더라.”
화가 나지만 세르펜스 앞이라 참는다는 듯, 제온이 이를 악물며 작게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할 말이 없어져, 괜스레 비스킷을 하나 집어 들고 우물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아니, 작은 형 진짜···. 공작님 앞에서 예의 없게 뭐 하는 짓이야.”
“저는 괜찮습니다, 동생분도 편히 드셔도 좋습니다.”
“예?! 하, 하지만···.”
“만드신 분의 정성이 담겼습니다. 이대로 가만두고 보기만 하면 음식이 너무 가엾잖습니까.”
가증스럽게도 세르펜스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가긍히 여기는 표정을 자아냈다.
그 모습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고상한 태도에 제온의 기세가 누그러졌으니 너그럽게 봐주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내가 안 봐준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렇다면 공작님께서도···.”
“네? 아···. 후후, 그렇군요.”
그런 답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처럼, 세르펜스가 조금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는 마치 제온이 불편해하니 맞춰 준다는 느낌으로,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초코칩 쿠키를 하나 집어 든다.
자세히 보니 다른 것에 비해 초코칩이 유난히 많이 박혀있다.
‘그냥 좀 집어 먹지, 그런 것까지 계획을 세우냐?!’
나름 인간의 심리를 유도하는 계획이었음에도, 그 결과물은 무척이나 한심하고 하찮다.
한 편으로는, 그런 머리를 대륙 멸망이 아니라 과자를 집어 먹기 위해 쓰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24년 동안 밀린, 달달한 음식 분량을 모두 채우고 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모르겠다.
시선을 돌려 옆에 앉은 제온 쪽을 바라보니, 긴장해서 입안이 마르는지 뜨거운 차를 잘도 마셨다.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수도까지 올라온···거야?”
“편지 못 받았어?”
“받긴 했지. 받기야 했는데, 굳이 편지로 해도 됐을···.”
“작은 형이 답장만 잘 보냈으면 나도 안 왔어.”
하는 족족 백번 옳으신 말씀뿐이라, 어디 따지지도 못하겠다.
“얼마나 바빴기에 답장도 안 한 거야?”
“마, 많이 바빴어. 배울 것도 많고···.”
“엄마···, 아니. 어머니께 내려진 데임 칭호는 또 뭐고?”
“어~ 그게, 으음···.”
세르펜스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며 구조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수신 거부 상태였다.
현재 그의 포지션은 형제간에 우애가 넘치는 대화를 훈훈하게 지켜보고 있다 설정.
흐뭇한 미소를 꾸며내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 같은 눈빛으로 나의 눈치를 보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지금 상황만 아니라면, 심리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순수하게 기뻐했을 테다.
“조금 사정이 있었어. 그게 업무적인 일이라 말하기는···.”
“그런 거면 됐어. 하지만 어머니께서 걱정 많이 하시니,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연락해줬으면 좋겠다.”
“그, 그래···.”
다시 적막이 감돌며, 비스킷과 쿠키가 바스러지는 소리만 응접실 내부를 울렸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세르펜스였다.
“그러고 보니, 리벨론 군은 수도에 얼마나 머무르실 예정입니까?”
“일주일 정도로 예상하고 왕복 기차표를 끊어놨습니다. 그동안 작은 형이 자취 중인 집에서 지낼 생각이었는데···.”
“그래! 머물 곳도 없을 텐데, 얼른 내려가는 게 좋겠다. 내가 표도 새로 끊어 줄게!”
일주일이나 이 불편한 시간을 지속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냉큼 말을 가로챘다.
중간에 말이 끊겨버린 제온이 내 쪽을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빈방도 많으니 공작저에 머무르시는 게 어떻습니까?”
“아, 안됩니다! 차라리 제 돈으로 여관을 잡아주고 말지!”
내가 절박함에 가까울 정도로 난색을 보이자, 세르펜스의 표정에 아리송하다는 느낌이 떠올랐다.
짐작하건대 ‘가족들과 사이가 안 좋은가?’라는 의문과 ‘아닌가? 원래 저게 보통의 가족인가?’라는 의문 사이에서 헷갈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의 표정을 읽고 있자니, 갑자기 옆구리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악─!”
“리벨론 경?! 괜찮으십니까?”
“아, 아니···. 그렇게까지 세게 꼬집지는 않았는데···?”
그 고통에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내 비명에 놀라서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진 세르펜스가 먼저 물었고, 당황한 제온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무래도 세르펜스의 제안이 내심 마음에 들었는데, 그걸 내가 방해하자 얄미워서 살짝 꼬집은 모양이다.
“괜찮습니다, 조금 놀랐다뿐이지, 아프지도 않습니다.”
“치료라도···.”
“아뇨, 이 정도라면 멍도 안 남아요.”
무의식적으로 제온을 생판 모르는 남이라 생각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한 탓이다.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기에, 오늘도 설정에 충실한 세르펜스에게 손을 내저었다.
“음···. 아무래도 동생분은 공작저가 궁금하신 모양인데, 견학이라도 시켜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세르펜스가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그래. 일주일 내내 공작저 안에서까지 제온의 눈치를 살피는 것 보다, 오늘 하루 몰아보는 것이 낫겠지.
제온도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일주일이나 머무른다면, 퇴근 후에는 또 만나야 하는 거 아냐?’
···이제 그만 현실 도피를 끝내고,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당장은 제온이 세르펜스에게 정신이 팔려서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였지만, 저 상태가 오래가지는 못할 거다.
시간이 흐르고 그와 둘만 있게 되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할 테지.
‘시온의 영혼이 내 몸속에 남아서 이럴 땐 이렇게 말하라고 알려주거나, 원할 때 교체할 수 있다거나! 그런 기능은 없나?’
오리지널 시온은 정말 어디로 사라진 걸까. 혹시나 해서 속으로 ‘어이! 시온 리벨론! 인마!!’하고 불러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럼 리벨론 경께서 일어나신 김에, 지금부터 안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공작님도 같이 가시는···거죠?”
“아닙니다, 더이상 제가 끼어들면 불편하잖습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계속해서 그가 함께해 줬으면 좋겠다.
“오늘 업무는 제가 다 처리할 테니, 공작저를 다 돌아본 후에는 동생분과 함께 수도라도 구경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일을 하고, 세르펜스가 제온의 안내역을 맡으면 안 되나?
오늘만큼은 진심으로 야근을 하고 싶어졌다. 집무실에서 밤을 불사르고 싶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온이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에 세르펜스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의 일정이 결정됐으니, 세르펜스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온은 나와 함께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아까부터 그 말투와 태도는 뭐야?”
“으, 응? 내가 뭘?”
복도로 나오자마자 제온이 얼굴을 굳히며 따져 들었다.
그렇게나 내가 오리지널과 달랐나?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의심하다니.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빠른···.
“공작님 앞에서! 아무리 관대한 분이시라지만, 너무 무례한 거 아냐?”
그렇게까지 빠른 건 아니었나 보다.
“아, 아냐···! 공작님께서도 내게 편하게 하라고···.”
“하아~. 작은 형은 사람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탈이라니까.”
정말 못 말린다는 듯, 제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저나 저 말을 들어보니 시온은 상당히 어리바리한 녀석이었나보다.
나도 그에 대해 ‘순박한 시골 청년’ 같은 이미지를 잡고 있었으니, 알맞은 노선을 탔다고 봐도 되려나.
“그보다 공작님 말이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으신 분 같더라.”
“응. 정말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은 사람이더라.”
내가 알고 있던 것. 그러니까 [성검의 주인]에 나왔던 세르펜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동의했다.
“보좌관의 가족이 온다고 바쁘신 와중에 직접 맞아주시다니! 이런 분이 세상에 어딨겠어?”
이건 제온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 녀석, 요즘 엄청 한가해!
그리고 세르펜스는 그를 맞이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구경하려고 따라온 거다.
“게다가 배려심은 또 어떻고? 오랜만에 만난다니까, 함께 있을 시간을 준다고 오늘 하루 일도 빼주시고···.”
나는 그 시간을 피하고 싶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
게다가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휴가 딜이 성사되기 직전에 무산된 상태라, 전혀 배려라고 못 느끼겠다.
가슴 속에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만큼 제온의 마음속에는 세르펜스를 향한 존경심이 쌓였겠지?’
물어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눈을 반짝이며 세르펜스를 칭송하는 그의 모습에서 익숙한 공작저의 향기가 났으니.
제온이 세르펜스의 칭찬을 하나씩 내뱉을 때마다, 주변의 눈길이 따뜻해졌다.
“얼마 전에 보내주신 선물들은 또 어떻고? 공작님께서 작은 형을 이렇게 아끼시는데, 형은 기본적인 예의도 잘 안 지키고 말이야.”
부인이 예쁘면 처가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니다.
고향에 선물까지 보냈다니, 이젠 자칭이 아니라 누가 봐도 세르펜스가 나를 아낀···.
“···뭐라고? 누가 뭘 보냈다고?”
“공작님께서 평소의 감사라면서 이것저것. 한정판 와인이나, 어머니 액세서리 세트라던가. 값비싼 예술 작품 같은 거? 친필 편지도 왔는데, 그건 큰형이 개인 소장하겠다며 액자에 넣어뒀는데···. 그보다 뭐야, 설마 몰랐어?”
전혀 몰랐다. 그런 건 또 언제 보낸 거지?
‘짜식,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을 할 것이지! 그건 쑥스러웠나?’
비록 진짜 내 친가족에게 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코끝이 살짝 찡해지는 것 같다.
그렇구나, 세르펜스가 나 몰래···. 게다가 친필 편지···.
‘···그 큰형이란 작자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인데?!’
편지까지 생각이 미치자, 감동의 물결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혹시 어머니의 편지에 쓰여있던 가족회의는 수도에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가겠다는 카론을 뜯어말리는 것이 주요 안건이지 않았을까?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자문회와 리벨론 가문의 가족회의 현장이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