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3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31화(631/1105)
631회
74. 공작님과 세계수 (20)
{번거롭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래도 꼭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이제껏 두 분이 다른 회차의 기억을 보게 된 건, 충격에 의한 반작용에 가깝습니다. 절대 자연스러운 게 아니에요.}
하기야 그럴 것 같기는 했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꿈을 통해 이전 회차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그들은 잠든 상태가 아니다.
‘기절한 거지.’
사람이 자주 기절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더군다나 충격에 의한 반작용이라니. 듣기만 해도 신체나 정신, 혹은 양쪽 모두에 엄청난 부담이 갈 것 같지 않은가.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여러 번 누적된다면 악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그럼 세계수 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한다면, 아무런 부작용 없이 이전 회차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겁니까?”
{적어도 최소화할 수는 있지요. 부담이 아예 없을 수는 없으니, 반드시! 일주일 이상의 기간을 두고 조금씩 기억을 되살리셔야 합니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듯. 세계수가 ‘반드시’라는 단어에 강세를 두어 말했다.
그러면서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을 하는 등.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다른 회차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곧장 중단하라며,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그러고 나서야, 첫 번째 용사의 무구를 이용하여 이전 회차의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을 설명했다.
바로 앞에서 이러한 대화가 오고 갔으니, 다들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러나 일행들은 휴마눈새가 아니었다. 따라서 눈치 없게 이것저것 따져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휴마누스가 세계수에게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말씀하신 방법대로라면 세르펜스는 성검에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그렇다는 건 혹시···.”
{네. 이전 회차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휴마누스, 그대뿐이랍니다.}
세계수의 대답에 휴마누스가 뜻밖의 선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얼굴 가득 기쁨이 번졌다.
이전 회차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마음먹긴 했지만, 세르펜스에게도 그 영향이 미칠까 내심 걱정했었나 보다.
‘세르펜스가 좋은 친구를 사귀었구나.’
나는 휴마누스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세르펜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두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르펜스의 기분이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슬슬 팔이 아파져 왔으니까.
“날 쓰다듬을 생각이라면 그만둬 줘.”
그때 갑자기 휴마누스가 진지하게 헛소리를 해댔다. 팔을 올려서 제 머리를 보호하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을 쓰다듬어 주려고, 세르펜스의 머리에서 손을 뗐다고 착각했나 보다.
다시는 휴마누스가 그런 터무니없는 착각을 하지 않도록, 그의 눈높이에 맞춰 잘 얘기해 줘야겠다.
“저는 휴마누스가 아닙니다. 싫다는 사람을 함부로 쓰다듬거나 만지지 않아요.”
“나도 그런 짓은 안 하거든?!”
“세르펜스가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치대놓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휴마누스가 머리를 보호하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러자 마치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드러났다.
내 비유가 너무 적절했던 나머지, 귓속을 파고들어 뇌에 쏙쏙 박힌 모양이다.
휴마누스가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며 세르펜스에게 사과했다.
“너는 싫어도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내가 알아서 조심했어야 했는데···. 세르펜스, 진짜로 미안해.”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에 세르펜스는 소심하게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녀석 딴에는 나름 용기를 내어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스킨십. 즉, 신체 접촉을 통한 애정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하자면 하루가 모자란다.
세르펜스가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어 늘 애정 결핍에 시달린다는 걸 생각하면, 녀석이 친한 사람과의 신체 접촉을 싫어할 리가 없다.
오히려 반기는 쪽일 테다.
그 증거로 녀석은 나에게 쓰다듬을 받는 것을 즐기고 있으며, 방금 유지스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도 가만히 있었다.
즉, 세르펜스의 괜찮다는 저 말은 더 이상 휴마누스가 꺼려지지 않으니, 예전처럼 어깨동무나 반가움의 포옹 등. 친밀한 접촉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휴마누스는 그러한 세르펜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용서해 줘서 고마워! 진짜 다시는 안 그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세르펜스는 무척이나 소심한 아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먼저 어깨동무를 하며 ‘이제부터 우리는 진짜 짱친!’을 외칠 성격이 못 된다는 얘기다.
녀석은 휴마누스를 향해 영혼 없이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다음 목적지는 테라룸 왕국으로 결정된 건가? 세르펜스, 너는 어쩔 생각이야?”
“아직 고민 중입니다. 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악마와 계약한 다크 엘프가 나타날 때까지 이곳에 더 머물러야 할지···.”
“네가 이곳에 버티고 있는데, 과연 악마 숭배자들이 수작을 걸어올까?”
“제국으로 돌아가는 척, 사도들의 마을에 숨어있는 방법도 고려해 보긴 했습니다.”
하이 엘프들에게 허락도 받은 적 없으면서, 세르펜스가 그리 말했다.
누가 들으면 하이 엘프들이 집이라도 한 채 내어주며, 자신들의 마을에 숨어있다가 닼숭이가 오면 혼내 달라고 부탁한 줄 알겠네.
“숨어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네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결국 알아챌 거야.”
“그래서 기각했습니다.”
“기각한 얘기는 왜 하는 거야?”
“······.”
세르펜스가 말없이 휴마누스를 흘겨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 나서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결국 그 다크 엘프에 관한 일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고, 제가 이곳에 머물러 봤자 그 날짜만 뒤로 미루는 꼴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곳에 있어도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그럼에도 걱정되어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그러지 말고, 나랑 같이 다니자. 실전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대련을 자주 하다 보면 너나 나나 얻는 게 많을 거야.”
“으음···.”
휴마누스의 제안에 세르펜스가 침음을 흘리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득이 될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는 걸 테다.
{이곳은 저와 엘프들에게 맡겨 주세요. 2회차에서는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두 분 덕에 이렇게나 건강해졌잖아요. 성검을 통해 전달받은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인지라. 당시 아르케 숲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건 아니지만, 엘프들이 쉽게 동요하고 이간질에 휘둘린 건 저의 부재도 한몫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고민하는 세르펜스를 향해 세계수가 말했다.
어쩐지 ‘이곳은 나에게 맡기고, 너희는 어서 나아가!’라고 말하는 조연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이런 경우 태반이 ‘그게 ○○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같은 해설이 깔리던데.
거의 죽어가다 살아나자마자, 사망 플래그를 세우다니.
좀 더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는 그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아직 기억해요. 그 아이가 제 영역 안으로 들어와 목소리를 낸다면 알아챌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세계수가 말한 ‘그 아이’란, 닼숭이를 지칭하는 것일 테다.
사고를 치기 전에 닼숭이를 잡아내고, 엘프들의 동요를 막을 수만 있다면. 아르케 왕국은 지난 회차의 전철을 밟지 않고 무사할 수 있으리라.
‘이간질 말고 조심해야 하는 거라면 악숭이들이 무력으로 밀어붙이는 것뿐인데···.’
지금 상황을 보면 그 또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악숭 세력은 2회차에 비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공왕이 부리는 사병과 마물들이 있긴 하지만, 아르케 왕국의 엘프들은 전원 뛰어난 정령사다.
그러니 기왕 무력을 동원할 거라면 인간들로 구성된 약소국을 치는 편이 낫다.
그래야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많은 양의 제물을 모을 수 있을 테니까.
“세계수 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세르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와 엘프들을 믿기로 한 것이다.
성검을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전달받았으니. 세계수는 세르펜스가 얼마나 남들을 못 미더워하는지 알고 있을 거다.
그런 그가 믿고 맡기겠다고 말해 준 것에 감동했는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흔들며 기쁨을 표현했다.
“그럼 휴마누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내가 해야지!”
“그 전에 저와 한 가지 약속해 주십시오. 다음부터는 오늘처럼 무리하지는 않겠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실전과 같은 대련이라지만, 결국은 그저 대련일 뿐입니다. 그 상태로 기습이라도 당하면 큰일이잖습니까.”
“그래, 그럴게. 걱정해 줘서 고마워.”
휴마누스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며 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갑자기 나를 돌아보았다.
“아 참! 선우야, 이 검 내가 계속 빌려 써도 되지?”
그렇게 말하며 휴마누스는 내게 빌린 검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아 참은 개뿔! 처음부터 세르펜스와 자주 대련을 할 것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검을 돌려주지 않은 거면서.’
그럴 작정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검을 돌려주지 않은 게 말이 안 된다.
그 속이 유리알처럼 투명했지만, 그냥 모르는 척해 주기로 했다.
“그거 프라시더스 가문의 무기고에서 나온 물건이라, 제가 아니라 세르펜스에게 허락받아야 할걸요?”
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휴마누스의 시선이 곧장 세르펜스를 향했다.
세르펜스는 내 허리춤에 매인 세니어에 한 번 눈길을 준 뒤. 휴마누스를 향해 그냥 가지라고 말했다.
“공적인 사유도 없는데 세르펜스가 선물을 주다니! 비록 첫 번째 사적인 선물인 아공간 주머니는 여러 이유로 아니마에게 맡겨두고 있지만···. 이 검은 소중히 여기며, 성검을 반납하고 나면 내 주무기로 삼을게!”
대체 사람을 얼마나 공적으로 대했으면, 이런 사소한 것에 이렇게까지 감동할 수 있는 걸까?
더군다나 휴마누스는 이제 아공간 주머니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부득부득 선물이라 우기는 모양새가 자못 안쓰럽기까지 하다.
“휴마누스도 드워프 장인에게 맞춤 제작한 검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제국을 떠나올 때만 해도 아공간 주머니 같은 건 없었잖아. 그래서 짐만 되니까 두고 왔지. 어차피 성검이 있는데 다른 검을 쓸 일도 없을 것 같았고.”
“나중에 제국에 들를 일이 생기거든 챙겨두십시오.”
“응···.”
휴마누스가 기운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못내 마음이 쓰였는지,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또 한 번 용기를 내었다.
“그런 거 말고···. 나중에 제대로 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정말?! 뭐 줄 건데?”
“그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장 말씀드리기는···.”
반색하며 눈을 반짝거리는 휴마누스의 모습에 압박감을 느낀 걸까?
세르펜스가 끙끙거리며 머리를 쥐어짜 냈다.
“으음, 당장 생각나는 건···. 아! 시키는 거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약속이 담긴 증서 정도?”
“그런 거 함부로 주지 마!”
“선우가 작년 생일에 달라고 해서 받아간 것인데···. 휴마누스는 별로입니까?”
“···나는 됐어.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는데, 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이라 해도 그런 거 함부로 주는 거 아니야.”
휴마누스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며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말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세르펜스는 너무 순진해서 탈이다.
“네가 왜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말에 동의하고 있어?! 대체 세르펜스에게 뭘 시키려고 그런 걸 받아간 거야?”
“효도요.”
“···선우야. 나는 평생 가도 너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본인 눈치가 부족한 걸 제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내 대답에 휴마누스가 이마를 짚으며 두통을 호소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두통을 악화시킬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다.
“저는 갖고 싶어요!”
“유지스가 원한다면···.”
“그러니까 그런 거 함부로 주지 말라고!”
휴마누스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려는 세르펜스를 만류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