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3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35화(635/1105)
635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3)
“저는 세르펜스가 자신의 곁에 있으면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상기의 이유로 성검펜스에게 차였던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시 숙연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의 의견은 옳았다. 그래서 나는 맞장구쳐 주기로 했다.
“맞아요. 언제까지 자기의 잘못이 아닌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포기하는 삶을 살 겁니까?”
우리 둘의 의견을 들은 세르펜스가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나 보다.
비록 녀석이 에일리히와 어색하게 지내긴 했지만,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애정을 느끼지 못했을 리는 없다.
그렇기에 에일리히가 지금처럼 가족으로 있어 줬으면 하면서도, 그가 위험해지는 건 원치 않아서 고민스러운 모양이다.
“···일단 백부님을 만나서 의견을 물어보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놓은 세르펜스의 의견은 결국, 선택권을 에일리히에게 넘기겠다는 거였다.
그것이 녀석의 최선인가 보다.
에일리히가 가족으로서 공작저에 남아있는 건 그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고, 떠나 달라고 말하는 건 에일리히를 슬프게 할 테니까.
‘그 뜻을 전한다면, 에일리히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라면 떠나 달라는 말을 들은 것만큼이나 슬플 것 같다.
세르펜스가 자신을 걱정해 주었다는 사실에 감동할 새도 없이.
자신이 조카의 앞날에 방해가 된 것만 같아서, 무력함을 절감하며 가슴속 깊이 사무치리라.
공작저를 떠나는 것이 세르펜스를 위한 것이라는 그릇된 판단을 내릴 확률도 높다.
‘그렇게 에일리히가 떠나게 된다면, 세르펜스는 필시 상처를 받겠지.’
아무리 자신이 밀어낸 거라고 하더라도.
녀석은 에일리히가 나처럼 끝까지 자신의 곁에 있어 주겠다고 말하길 원하고 있을 테다.
“가족은 원래 힘들 때 함께하며 서로를 지탱해 주는 건데···.”
휴마누스가 그렇게 혼잣말하며,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때 윈스톤이 슬며시 손을 들어 올렸다.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에일리히 어르신께서 가문으로 돌아오신 건 어째서입니까?”
“그야 세르펜스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공작가의 일을 도맡아 줄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었···. 어? 잠깐···. 하지만 1회차에서는···.”
휴마누스는 윈스톤의 질문을 듣고 나서야, 에일리히가 프라시더스 가로 돌아온 것에 의문을 가졌다.
참 느려터진 눈치가 아닐 수가 없다.
눈치 없는 누군가에 관한 건 신경 끄더라도, 모처럼 윈스톤이 던진 질문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저번에 은퇴한 공작저 사용인들이 납치된 일이 있었잖습니까? 그때 어찌어찌하다 보니 에일리히 님께서도 세르펜스의 어린 시절 일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뒤늦게나마 가문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가족으로서 세르펜스를 돌봐 주고 싶었나 봐요. 조카가 학대받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죄책감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 또한 조카를 향한 애정에 기반한 감정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그러니까 1회차에서···.”
내 설명에 휴마누스가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예? 1회차에서 에일리히 님이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내가 장담하는데, 세르펜스의 삼촌이 세르펜스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일 거야.”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비꼬는 말투로 응수했다.
그래도 휴마누스는 어색하게 하하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얘기해 줄 생각이 없는가 보다.
나는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 캐물어서 좋을 거 하나 없는 일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휴마누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윈스톤을 향해 질문했다.
“아무튼 윈스톤은 갑자기 왜 그런 걸 질문하신 겁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윈스톤이 그냥 궁금해졌다는 이유로, 에일리히가 가문으로 돌아온 이유를 물어봤을 리가 없다.
“어르신께서 어떤 마음으로 돌아오신 것인지 알고 싶었소.”
“그래서 이젠 잘 알겠어요?”
“적어도 어르신께서 세르펜스 님이 안정을 느끼길 바라신다는 건 확실히 알겠소.”
윈스톤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세르펜스에게로 옮겨갔다.
“세르펜스 님께서는 어르신께 죄송해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본디 이단 심문관은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직업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가문으로 복귀하였다고 해서 특별히 더 위험해진 건 아닙니다. 단지 전장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소중한 가족이 돌아올 장소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 어르신께서는 분명 자신이 선택한 전장을 떠나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가문으로 돌아온 것을 두고, 전장을 선택했다고 말하다니.
참으로 기사다운 비유였다. 그리고 기사이기에 할 수 있는 비유이기도 했다.
나는 에일리히를 그저 세르펜스의 가족으로만 보고 있었지만, 윈스톤은 그를 한 명의 전사로 보았던 것이다.
오늘도 조용히 바위처럼 가만히 자리만 지키다가 돌아갈 줄 알았건만.
윈스톤은 할 땐 하는 사람이었다.
‘하긴. 기사의 본분 중에는 주군에게 충언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지?’
그렇다는 건, 뛰어난 언변도 기사의 중요 자질 중 하나라는 뜻이다.
어쩌면 윈스톤이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건, 결정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한 큰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윈스톤이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으음···. 윈스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 치 혀로 사람을 농락하는 재주로는 남부럽지 않은 세르펜스건만.
녀석은 윈스톤의 말에 설득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어차피 위험한 직업을 갖고 있었으니, 다른 위험에 노출되어도 괜찮다는 식의 발언은 조금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점이 기사인 윈스톤과 나의 차이일 테다.
나는 아이가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그 아이의 가족들도 함께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반면에 윈스톤은 소중한 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저택에 돌아가면 죄송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네요.”
“네, 그래야겠습니다.”
내가 세르펜스의 등을 툭 치며 말을 건네자, 녀석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죄책감에서 벗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세르펜스, 제국에 들렀다가 우리 쪽에 다시 합류하는 거 말이야. 괜찮겠어?”
어느 정도 세르펜스의 감정이 정리된 듯하자, 휴마누스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안 괜찮다고 하면 제국에서 푹 쉬라고 권하기라도 할 기세다.
“네. 일정에 변함은 없습니다. 제가 악마 숭배 세력이 두려워 몸을 사린다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이런 일로 제가 위축되면 위축될수록, 악마 숭배 세력은 더욱 집요하게 제 주변인을 노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안타깝지만 녀석의 말대로였다.
“어휴! 하루빨리 테네브리오 그 새끼랑 악숭이 놈들을 족쳐야, 우리 애가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을 텐데···.”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한탄했다.
* * *
성검 일행과 헤어진 후, 우리는 밤낮없이 마차를 몰아 서둘러 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도착한 프라시더스 공작저는 우리가 떠나기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공작저 안까지 악숭이들이 들이닥쳤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이다.
마차는 정원을 지나쳐 본관 앞에서 멈춰 섰다.
땅에 발을 디디자, 마중 나온 에일리히와 제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에일리히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발견하기 무섭게 뛰어와서 녀석을 꽉 안아주었다.
“그동안 잘 지냈니? 고생 많았단다, 얘야.”
“아, 아닙니다.”
당황했는지 세르펜스가 몸을 뻣뻣하게 굳히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러면서도 녀석은 에일리히를 밀쳐내지 않았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보좌관님?”
가족이라는 대외적 신분 때문에라도 반가운 척을 해야겠다 싶었는지, 제온이 슬그머니 다가와 내 안무를 물었다.
프라시더스 가문의 가족 상봉에 비하면 무척이나 건조했다.
하지만 나는 제온과 끌어안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므로, 이 인사가 마음에 들었다.
“당연하죠! 그보다 집사님, 다친 데는 없어요? 저택이 악숭이에게 공격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 많았습니다.”
“네. 저는 사용인들과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어서 괜찮았습니다.”
“잘하셨어요. 어차피 집사님은 너무 허약해서 천하의 명검을 들어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니까, 무슨 일이 생기거든 가장 먼저 도망가는 게 모두를 돕는 길입니다.”
“···왜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시비를 거시는 겁니까?”
“그저 조언해 드린 것뿐인데 시비라고 생각하시니, 이 소심한 형은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흑흑흑.”
나는 장난스레 우는소리를 하며,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닦아내는 척했다.
제온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 소식을 들었나 보구나. 많이 놀라지는 않았니?”
나와 제온의 대화를 들었는지, 에일리히가 세르펜스를 놓아주며 말했다.
걱정 가득한 에일리히의 눈동자가 세르펜스의 얼굴을 살폈다.
“그게···. 네,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내상을 입으셨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무탈하신 모습을 뵈니 기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택의 사람들을 지켜주셔서. 그리고 이렇게 무사해 주셔서···.”
제국까지 오는 동안, 에일리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머릿속으로 정리해 두었던 걸까?
세르펜스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 에일리히에게 더듬더듬 제 진심을 전했다.
그러자 에일리히의 얼굴에 감동이 번져나가며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다.
조카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에일리히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손이 눈가로 올라가는 것은 숨기지 못했다.
그렇게 에일리히는 눈물을 훔쳐내고 나서야 다시 세르펜스를 마주 보았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그럼 저희는 방으로 돌아가서 쉬고 있을게요.”
에일리히가 세르펜스에게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자, 유지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빠져 줄 생각인가 보다.
유지스는 눈치가 뛰어난 사람답게 끼고 빠지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에일리히와 세르펜스가 둘이서 대화를 잘 나눌까 걱정이긴 한데···.’
방금 눈앞에서 펼쳐진 두 사람의 재회 장면을 떠올려 보면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에일리히나 세르펜스가 나를 붙잡기 전에 재빨리 별관으로 향하는 것.
나와 유지스는 빠르게 눈빛을 교환한 뒤, 윈스톤과 에드나의 등을 떠밀며 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제온이 이런 말만 하지 않았다면.
“지난번 테러로 인해 창고 하나가 무너진 탓에, 여러분께서 쓰시던 동쪽 별관은 현재 개조하여 창고로 쓰고 있습니다.”
공작저가 변하지 않았다는 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내 방은 창고가 되어 있었다. 심히 당황스럽다.
혹시 세르펜스가 저택을 떠나기 전에 무슨 지시라도 내린 걸까 싶었지만, 녀석 또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럼 저희는 이제 서쪽 별관을 쓰면 되는 겁니까?”
“여러분의 방은, 그게···. 어르신께서 안내해 드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제온은 이래도 되나 싶은 표정으로 세르펜스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가 쓸 새로운 방을 왜 제온이 아닌 에일리히가 안내해 주는지. 그리고 어째서 제온이 세르펜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지.
여러모로 미심쩍은 것 천지다.
‘설마···,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