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3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39화(639/1105)
639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7)
“시온 경 덕분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무슨 마음이요?”
“저는 이곳에 남을 겁니다.”
“꼭 떠나려다가 마음을 바꾼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
내 물음에 에일리히가 침묵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릴레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명이 울음을 그치니까, 다른 한 명이 울려고 하네.’
조카를 울릴 위기에 처한 에일리히가 크게 당황하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생각이 너무 짧아, 네게 상처를 주고 말았구나. 잠깐이나마 그런 못된 생각을 해서 미안하단다. 다시는 안 그럴 테니, 용서해다오. 응?”
에일리히가 비굴해 보일 정도로 절절하게 사죄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세르펜스는 울음을 꾹 참아내고 의젓하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 떠나려 하신 건지, 그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아까 응접실에서···, 악마 숭배자들이 공작저를 공격해 온 목적에 관해 물었었지?”
에일리히가 머뭇거리면서도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세르펜스가 악숭이들의 목적을 묻기 전까지, 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길래 내 억측인 줄로만 알았는데.
“놈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단다. 보나 마나 나를 인질로 써서 너를 협박하려던 거겠지. 알타르 님께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저택 주변에 잠복해 계셨기에 망정이지, 그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일찍이 내가 짐작했던 대로다.
에일리히는 자신이 세르펜스의 약점이 될까 봐 자책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내 바람으로 가문에 돌아왔는데, 그 때문에 네게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더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서, 거부당해도 좋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사랑하는 조카를 안아보고 가자는 이기적인 욕심이 들었단다.”
“······.”
세르펜스가 입을 꽉 닫고 에일리히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돌아온 자신을 꽉 안아주었던 게 그런 이유였냐고 따지는 듯했다.
에일리히는 그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며 고해성사와도 같은 말을 이어나갔다.
“피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오히려 내게 다정한 말을 건넸지. 게다가···. 품을 채우는 온기가 너무 따뜻하더구나. 그래서 그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고민을 잊어버리고 말았지 뭐니?”
그렇게 말하며 에일리히는 손수건을 내려놓고, 세르펜스의 손을 다시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다정함이 담긴 눈동자와 설움으로 흔들리는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 속에 담긴 감정은 조금 달랐지만, 두 쌍의 눈동자는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너는 진정으로 나를 가족이라 여기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겁쟁이라서, 네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럴 만한 이유를 머릿속으로 수십 개나 늘어놓았지. 그러다 보니···. 내가 떠났을 때, 네가 상처받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백부님께서는 저를 위해 진심으로 화를 내주시고, 제 일희일비에도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셨잖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보았는데···. 제가 어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당신을 밀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세르펜스의 말에 에일리히가 찡한 감동에 사로잡힌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 또한 진한 감동을 느꼈다. 에일리히가 뒷말을 잇기 전까지.
“정말 고맙고, 미안하단다. 이렇게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다니···. 이래서야 시온 경 말대로, 개쓰레기라 불려도 할 말이 없구나.”
목표 없이 던져진 돌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들어 박치기를 해도 유분수지.
나는 그저 세르펜스를 끝까지 잘 키우겠다는 내 결심을 강조했을 뿐이거늘. 어째서 에일리히가 그 말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단 말인가?
졸지에 에일리히를 겨냥하여, 그를 비난한 꼴이 되어버렸다.
“아니, 에일리히 님은 세르펜스를 버리려던 게 아니었잖아요?! 그냥 자신이 세르펜스의 약점이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떠나려던 거였지! 아, 그렇다고 떠나려 한 게 잘하셨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개쓰레기까진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화들짝 놀라서 해명을 쏟아내자, 에일리히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대로 위로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말로 에일리히가 세르펜스를 위한답시고 훌쩍 떠나버렸다면, 녀석은 필시 상처받았을 테니까.
그 이유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다.
아이가 가족에게 가장 바라는 건, 그저 곁에 함께 있어 주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뿐이니까.
고작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행복해한다.
“아무튼···. 걱정하지 말아라, 얘야. 지금은 이곳을 떠나야 하나 고민한 것이 우스울 정도로,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예전처럼 소문으로만 네 얘기를 접하고, 가끔가다 멀찍이서 일방적으로 훔쳐보는 건 이젠 싫단다. 이렇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이 거리를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구나.”
그렇게 말하며 에일리히는 세게 잡으면 부서질세라, 조심스레 감싸 쥐고 있던 세르펜스의 손을 힘있게 붙잡았다.
겨우 잡은 그 손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나 자신과 네가 돌아올 장소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내가 계속 이곳에 남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겠니?”
“제가 마음 놓고 저택을 비울 수 있는 건, 백부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반겨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기뻤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도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한 손에는 에일리히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내 손을 꼭 붙잡은 녀석의 표정은 심리적으로 무척이나 안정되어 있었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에일리히의 표정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실은···. 내가 신성석을 만들어 낸다면 공작저에 고정 결계를 펼칠 수 있도록, 교단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동안 만들려고 시도는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었는데···. 지금이라면 이 저택을 지킬 신성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구나.”
나는 에일리히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평생 가도 하나 만들기도 어려운 신성석을 두 개째 만들어 내겠다고 장담하다니, 대단한 패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그런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신성석을 이용한 고정 결계라면, 각 영지의 성벽에 부여된 보호 결계를 말하는 거죠? 그 왜, 침입자를 차단하는···.”
“네. 영지가 아닌 저택 단위로 범위가 줄어드는 만큼, 상공에서 떨어지는 공격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심을 담아 물었는데, 진짜 그게 맞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알기로 고작 건물 단위에 그러한 결계가 형성된 건 대신전과 황성뿐이다.
왜냐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요.
개인이 만들어 낼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성수가 소모된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요.
면적에 따라 다르지만, 신성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이가 최소 십수 명 이상 필요하다는 게 마지막 이유다.
‘뭐, 보통은 신성석 단계에서 막히지만···.’
위의 두세 번째 이유로, 교단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게 가장 결정적인 문제다.
룩스메아 교단은 공익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따라서 일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영지의 결계 생성에는 협조적이나, 귀족가의 저택에 결계를 만드는 데에는 협조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프라시더스 공작저에 고정 결계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겠노라 약속한 건···.
‘뛰어난 무력과 지력을 갖춘 세르펜스가 적으로 돌아서면 곤란하기도 하거니와, 녀석이 신의 사자인 나를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려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녀석이 악숭이들에게 협박당해서 내게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대륙의 평화를 지키며 신의 사자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데, 고작 저택 하나에 결계 하나 설치해 주는 것쯤이야.
거기까지 사고가 뻗어 나가자 놀라움은 사라지고 당연하다는 생각만 남았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신성석을 만드는 동안에는 신성력의 일부가 동결되잖습니까.”
세르펜스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뜩이나 악숭이들이 에일리히를 노리는데, 그가 신성석을 만드느라 약해진 틈에 공격을 받을까 봐 불안해졌나 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알타르 님도 와 계시고, 당분간은 너도 저택에 머무를 것 아니니?”
“그건···, 으음···.”
세르펜스는 에일리히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테러 사건의 정황만 파악한 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곧장 성검 일행과 다시 합류하기로 약속한 까닭이다.
“곧 네 생일이기도 하니, 그때까지는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떠나야 하는 거니?”
에일리히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작년 생일은 함께하긴 했지만, 못 챙겨준 생일이 훨씬 많았던 만큼. 앞으로 다가오는 생일은 꼬박꼬박 챙겨주고 싶었나 보다.
눈치를 못 챘다면 모를까. 그 마음을 알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세르펜스. 그러지 말고 우리는 여기에서 좀 더 머물다가, 스메른 왕국으로 향하는 해안에서 합류하는 게 어때요?”
“음···. 그 편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약속을 어기는 건 좀···.”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는 무척이나 솔깃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나서서 약속을 어기는 건 미안하니, 내가 변명거리를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조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껏 친해진 휴마누스와의 관계가 소원해질까 봐 그러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오늘 하루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우리가 내일 당장 성검 일행과 합류하러 이동한다면, 테라룸 왕국에서 만나게 될 텐데. 기차도 끊긴 마당에 가 봤자 산밖에 더 타겠습니까? 괜히 중간에서 만나려다가 길이 엇갈릴 수도 있고···. 휴마누스와 빨리 만나서 대련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만,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도 있잖아요.”
이것저것 변명을 늘어놓다 보니 꽤 그럴듯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세계수는 휴마누스에게 일주일 이상의 기간을 두고, 조금씩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마누스의 자아에 부담을 덜 주려면, 중간중간 쉬어주는 텀을 최대한 길게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무궁의 심해로 향하는 게 좋겠지.
“확실히···. 기동력을 높이려면 머릿수가 적은 편이 유리할 테니 그렇게 하는 게 낫겠군. 그럼 내일 바로 연락을 보내 놓겠다.”
세르펜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에일리히가 얼굴 가득 고마움을 담아낸 채, 내게 감사의 눈인사를 건넸다.
눈으로 얘기하는 건 이 집안 내력인가 보다.
“그래도 제 생일까지 머무를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일 파티를 조금 일찍 당겨서 해야겠구나.”
함께 보낼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것에 만족한다는 듯. 에일리히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집안 내력을 떠올린 순간, 생일 파티를 운운하는 에일리히를 보니 괜히 불안해졌다.
생일 케이크는 최대 두 개까지만 준비하라고 꼭 말해 둬야겠다.
“아 참. 그리고 대련 상대가 필요하다면, 나와 알타르 님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구나.”
혹여 저택에서 머무는 기간을 세르펜스가 시간 낭비라고 여길까 걱정되었는지, 에일리히가 2:1 대련을 제안해왔다.
마침 잘 됐다. 그러지 않아도 세르펜스의 전투 능력 향상에 신경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두 사람은 이단 심문관으로서 경력도 길고 실전 경험도 풍부할 테니, 분명 도움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