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4화(64/1105)
64회. 공작저에 찾아온 손님 (3)
물론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고, 실제로도 그렇지는 않겠지.
‘분명 그럴 거야. 아마도···.’
그보다 아까부터 은근히 제온이 나를 혼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은근히가 아니라 정말 혼나고 있는 거다.
나의 평소와 다른 행동 탓도 아니다.
‘오히려 의심을 안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가?’
시온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온에 대해서 ‘동생 주제에 나에게 잔소리함.’ 따위로 평가하고 있었다.
조금 더 기억을 타고 올라가니, 카론도 혼나고 있었던 것 같다.
‘막내 온 탑인가···. 아니, 이젠 막내가 아니게 되나?’
아무튼 선물에 관한 것은 나중에 세르펜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일단은 제온에게 공작저를 안내해줘야겠다.
“그, 그럼 일단···. 어디 먼저 보고 싶은 데라도 있···어?”
복도를 걸으며 제온에게 물었다.
“응? 글쎄. 그렇게 막연히 말하면 떠오르는 곳은 없는데. 그냥 전반적으로 다 보는 건 안 되나?”
“병영 쪽은 외부인에게 공개하기 조금 그런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아, 그래. 이따 작은 형이 지내는 방에도 좀 들리자.”
“내, 내 방은 왜?!”
“왜냐니? 어떻게 지내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지.”
혼자 친한 척 들러붙는 휴마누스를 바라보는 세르펜스의 기분이 이런 걸까?
무지막지하게 부담스러운데 어떻게 밀어낼 수도 없다. 불편하다는 티도 못 내고, 아주 답답해 미치겠네.
“그렇지. 확인해야지···.”
“반응이 왜 그래? 혹시 얹혀사는 주제에,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지내는 거야? 안 되겠다, 작은 형 방부터 들려야겠어.”
“아냐, 나 정말 잘 치우고 살아. 진짜···.”
어쩐지 울고 싶어진다.
‘나 얘 너무 불편해···!’
왜 내가 처음 본. 그것도 네 살이나 어린애한테 혼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세르펜스에게 혼날 때는 나름 납득할 사유도 있고, 워낙 말랑한 녀석이라 금방 풀어져서 쉽게 넘어가 주는데.
‘우리 누나도 나한테 이렇게까진 잔소리 안 했어!’
이 녀석은 얄짤없다. 절로 기가 죽어 몸이 움츠러든다.
“내가 진짜 못살아···!”
“으! 아으···.”
말로만 혼내는 거로는 모자랐는지, 제온이 갑자기 내 등을 ‘짝-!’ 소리가 나게 내려쳤다. 이번에는 아까 옆구리의 교훈을 얻어 최대한 소리를 억누를 수 있었다.
“왜 때리고 그래···?”
“아니, 작은 형은 공작가의 보좌관이 되어 놓고도 아직도 그러고 다녀?”
“으, 응?”
“허리 쭉 펴고! 당당하게! 하여간, 작은 형 소심한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청소도구를 들고 우리 옆을 지나가던 시녀의 걸음이 멈춰 섰다.
사다리에 올라 천장의 먼지를 털어내던 시종의 손도 멈칫했다.
저택 내부에 경비를 서던 기사의 고개가 우리 쪽으로 돌려졌으며.
마침 세르펜스에게 보고할 것이 있었는지, 서류를 들고 집무실로 향하던 행정관이 서류를 떨어뜨렸다.
어디서 헛바람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기둥 뒤에서 한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분위기가 겁나 싸해졌다.
“그래!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안 그래도 심약한 작은 형이 연락도 하지 않으니. 다들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공작저 식구들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형이 혼자 수도로 올라가고 나서, 우리끼리 그 소심한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 내기도 했었는데. 모두가 못한다는 쪽에 걸어서 성립이 안 됐지 뭐야?”
장난스럽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따뜻한 정을 느끼기보다, 더욱 차게 식어가는 쪽을 택한 듯했다.
거리를 두고 경계를 서던 기사들이, 손을 바삐 움직이며 수신호를 주고받았다.
사다리에 올라가 있던 시종이 슬그머니 내려왔다. 청소 도구를 옮기던 시녀가 그에게 다가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희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니,
“들었어? 보좌관님이 소심하시대.”
“게다가 아직 못 고친 거라는데?”
“대체 보좌관님 가문 사람들은···.”
···따위의 대화가 조금씩 들렸다.
그들이 보는 내가 어떤 이미지길래, 소심하다는 얘기에 저렇게까지 심각해질 수 있지?
‘다들 마음속에 어느 정도의 소심함은 품고 살아가지 않나?’
아무튼 제온은 내가 자신의 눈치를 보며, 불편해서 쭈굴거리는 것을 그냥 소심한 평소의 작은 형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아, 아니야···! 나 이제 달라졌어! 완전 활달해!”
“···그래, 그렇게라도 생각하면서 행동하면 점차 나아질 거야. 그래도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처음 본 남의 동생을 이렇게 표현하기 조금 미안하지만.
‘얘 눈치가 너무 없는데?!’
둔해도 정도가 있지, 이 분위기가 안 보이나?
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주변 분위기를 살펴 가며 해주면 훨씬 더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작은 형 걱정으로, 엄마가 불안해서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는 거 알아?”
“어머니 임신하셨다며.”
“······.”
이대로는 안끝날 것 같아, 내 걱정이 아니라 다른 일로 못 주무신게 아니냐는 식의 딴지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입을 막는 데 성공했으나, 그 대신 주변에서 쑥덕거리며 입을 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 리벨론 가문에 대해 어떤 소문이 퍼져나갈는지···.
‘다른 건 몰라도 세르펜스의 기대는 충족시키겠네.’
반대로 리벨론 백작 가문의 명예는 완전 바닥에 떨어져 버렸지만. 그래도 계기가 된 것은 제온이다.
나쁜 건 전부 쟤가 그랬어요!
“일단 빨리 가자! 내 방 보고 싶다며?”
“응? 아, 그래.”
본의는 아니나 몸을 빌려 쓰고 있는 처지에서, 티끌만 한 명예라도 지켜주기 위해 제온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겨우겨우 제온을 방 안에 밀어 넣는 것으로, 주변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잘 치워놨네. 나는 또, 뭔가 켕기는 구석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그가 내게 잡혀있던 손목을 매만지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이젠 과거의 소심했던 내가 아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어머니에게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그래서 호칭도 바꿔서 부르는 거야? 엄마 알면 서운해하실걸?”
“나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잖아.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행동할 수는 없지.”
편지에서 쓰인 것과 제온이 부르는 거로, 시온이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 불렀다는 건 알았지만···.
시온의 부모님에게도, 내 진짜 부모님에게도 못 할 짓 같아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작은 형, 힘이 좀 세진 것 같다? 요즘 운동해?”
“그냥 취미로···. 공작님께서 봐주고 계셔.”
안전상의 문제를 거론하면 더 걱정하려나. 하지만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었다.
시작은 세르펜스의 취미였지만 이제는 나도 꽤 즐기고 있었으니.
‘유흥이라고 해봐야 도박 아니면 체스 같은 머리 쓰는 것뿐이니···.’
이런 세계에서 VR 게임 유사한 것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일종의 축복이다.
수련을 놀이처럼 가르쳐주는 걸 봐서, 세르펜스는 유치원 선생님을 해도 잘 하지 않았을까?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분명 그 유치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평화로운 유치원이 될 거야···.’
대신 밖에서 아이들을 맡기기 위한 부모님들의 전쟁이 벌어지겠지.
“고, 공작님께서?! 작은 형, 공작님께 너무 민폐 끼치는 거 아냐?”
“그런 거 아니야. 공작님께서도 누구 가르치는 거 좋아한다고 하셨어.”
“예의상 하신 말씀이겠지!”
일단 세르펜스는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예를 차린다.’라는 설정인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해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정도는 민폐 축에도 못 낀다.
내가 아무리 그에게 폐를 끼친다 해도, [성검의 주인]에서 세르펜스가 일으킨 대륙 스케일의 민폐를 따라갈 수 있을까?
“···작은 형. 형이 원래 귀가 많이 얇고, 남의 말을 잘 믿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 예의는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잖아?”
“조금 오해가 있나 본 데, 공작님과는···.”
잠시 말을 끊고 욕실 문을 열어봤다.
‘좋아, 한스는 없군.’
아무래도 아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따라오지 않은 모양이다.
“작은 형, 뭐 하는 거야?”
“아냐, 아무것도. 아무튼, 공작님과는 조금 친구 같은 관계라고 해야 하나?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 안 나고, 진짜 편하게 지내기로 했어.”
“저, 정말로?!”
“그렇다니까! 이 형 못 믿어?”
“···작은 형이 조금 못 미더운 사람이긴 하지.”
나도 나지만, 오리지널 시온도 문제가 많은데···?
“공작님께서 선물 보내신 거 보면 알잖아.”
“하긴. 정말 작은 형 하는 행동을 무례하다 느꼈으면 안 그러셨겠지.”
“당연하지! 오히려 내가 너무 예의를 차리면 불편해하신다니까?”
이것은 절대 나의 뇌피셜이 아니다.
실제로 세르펜스가 너무 처 웃어서, 호흡하는 게 불편해진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정말 다행이다. 난 기껏 잡은 직장인데, 잘리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 뭐야.”
“그러는 너는 앞으로 어쩔 건데?”
“나도 내년에는 수도로 올라와야지. 바로는 안되고, 동생이 태어나고 나면?”
“어, 어째서?! 고향에서 형을 돕는다거나···.”
“일이 얼마나 된다고 그걸 도와?”
그건 그랬다. 리벨론 영지는 정말 쥐뿔도 없는 곳이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어렸을 때, 큰 형은 영주님. 작은 형은 보좌관. 나는 집사. 이렇게 해서 셋이 같이 리벨론 가를 수도에 진출할 정도로 잘 키워 보자고 약속했었는데···. 기억나?”
“으, 으응···. 그랬지.”
차근히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족경영 회사라니, 어린놈들이 참 꿈도 컸구나.
그럼 시온이 먼저 배신한 건가?
“지금 생각해보면 턱도 없는 소리지만. 뭐라도 있어야 키우던지 말던지 하지.”
“그땐 어렸으니까.”
“그렇지.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 얘기하니까 참 좋네.”
하지 마, 그런 얘기.
처음 만난 사람과 함께 추억할 과거 같은 거 없으니까. 자꾸 죄책감 자극하지 마···.
나를 이 몸에 집어넣은 건 아마도 신 룩스메아일텐데, 어째서 내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까.
‘···나도 모르게 연대 보증을 선 정도가 아니라, 완전 독박 쓴 기분인데?’
이렇게 사람을 불러놓고 코빼기도 안 비치면 안 되지!
적어도 꿈에라도 찾아와서 뭐라도 얘기해주는 게 기본 도리 아닌가?
‘적어도 내가 돌아갈 수 있는지 여부와 시온의 영혼 행방. 뭐 그런 건 알려 줘야 내가 맘 편히 뭔가 해도 할 거 아냐!!’
언젠가 만나기만 하면 신이고 뭐고 멱살부터 잡고 짤짤 흔들어 줄 테다.
내 몫에 세르펜스의 몫까지 얹으면, 신이라도 양심은 있을 테니 얌전히 잡혀 주겠지.
“나중에 휴가라도 받으면 언제 한 번···. 아니다, 동생 태어날 때 내려올 거지?”
“아, 그땐 한창 바쁠 때라서 조금 힘들 것 같은데.”
“그게 언젠지 알고?”
순간 아차 했으나, 이미 늦었다.
편지에도 지금이 몇 주차인지 안 적혀있었고, 제온 역시 말하지 않았다.
“내년 4월 예정이야.”
“그, 그렇구나. 한창 바쁠 때네?”
제온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정말 작은 형 왜 그래? 갑자기 연락도 끊고, 이유 없이 피하고!”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랬어. 답장을 쓴다 쓴다 하고 깜박했지 뭐야? 앞으로는 잘할 테니···.”
“하!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참나···. 그래, 생각해보니 갑자기도 아니구나? 정확히는 공작가에 들어가고서부터인가.”
잠깐. 그런 식으로 말하면 뭔가···.
“왜? 이제 우리 리벨론 가가 하찮아 보여?”
···내가 성공한 뒤 가족을 버린 쓰레기가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