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5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58화(658/1105)
658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26)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커다란 샹들리에였다.
투명한 크리스탈이 주렁주렁 장식되어 몹시 화려했지만, 그것이 언뜻 얼음처럼 보여 차가운 느낌도 들었다.
“잘 잤는가?”
비몽사몽간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책을 펼쳐놓고 의자에 앉아있는 세르펜스가 보였다.
참으로 지적이며 우아한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펼쳐 놓은 책이 동화책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녀석의 얼굴은 그것조차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승화시켰다.
“네, 뭐. 세르펜스는 잘 잤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설쳤다.”
“예?! 왜요?”
“백부님께 편지를 건넬 생각에 긴장되기도 하고, 선우가 말한 ‘달고나’라는 것이 기대되어서···.”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는 멋쩍게 웃었다.
듣고 보니 확실히 잠을 설칠 만도 했다.
“그러고 보니 공작저에서 지낼 땐,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사라지고 없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방에 남아 계세요?”
“씻으러 내 방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잖은가.”
“아, 맞다. 여기 세르펜스 방이었죠?”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나는 부스스 상체를 일으켜 앉아 방 내부를 둘러보았다.
어제는 방에 와서 바로 자느라 몰랐는데. 공작가의 가주가 쓰는 방답게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돋보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이 사는 방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잘 꾸며진 호텔 같네.’
심지어는 동화책을 덮어놓고 멀뚱멀뚱 나를 구경하는 방 주인. 세르펜스조차도 묘하게 겉도는 듯했다.
어째서일까. 곰곰이 고민하며 다시 한번 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방에는 세르펜스의 개인 물품으로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서재에는 유지스가 만든 고양이 조각상이라도 있었는데···.’
이곳에 둘 만한 물건이 뭐가 있을까?
마침 녀석의 생일이 다가오니, 겸사겸사 선물해 주면 좋을 것 같다.
세르펜스가 좋아하고, 방에 두고 다닐 만한 것.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주는 거라면 뭐든 좋아할 것 같기는 한데···.’
과장 조금 보태어,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를 선물로 줘도 애완돌로 삼아 애지중지하지 않을까 한다.
“선우?”
자다 일어나서 방안을 둘러보다가 돌연 끙끙거리는 내 행동이 이상해 보였던 걸까?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러는 거냐는 질문이 담겨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이유를 솔직하게 말해줄 생각은 없다.
에일리히가 녀석의 생일 파티를 열겠다고 벼르고 있었으니, 깜짝 파티는 열 수 없겠지만.
적어도 생일 선물 정도는 몰래 준비해 주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세르펜스 몰래 무언가를 사러 가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벌써 회의감이 찾아왔다.
“선우,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건가?”
“씻으러 제 방까지 가기 귀찮아요.”
“···빨리 씻으러 가라.”
내 대답에 세르펜스가 괜히 걱정했다는 듯, 눈을 흘기며 뚱하게 말했다.
나는 성의 없이 ‘예이, 예이~.’ 하고 대답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돌아가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복도로 나오자, 세르펜스가 유지스와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녀와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은 뒤 식사실로 향했다.
셋이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우리보다 먼저 식사실로 향하던 에드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걸음이 우리보다 느린 탓이다.
뒤에서 부르자 에드나는 멈춰서서 우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넷이 함께 식사실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와 반대 방향에서 걸어온 윈스톤과 마주쳤다.
짧아서 금방 마를 것 같은 머리카락이 아직 촉촉했다.
온 방향과 젖은 머리카락으로 미루어 보아 새벽 일찍 일어나 연무장에서 훈련한 뒤, 병영의 샤워 시설에서 씻고 온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 다섯은 사이좋게 식사실로 함께 들어갔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에일리히가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들 잘 주무셨습니까?”
에일리히는 인자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나와 유지스, 에드나도 웃으면서. 그리고 윈스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답하지 못한 건 세르펜스뿐이다.
우물쭈물하는 녀석을 보며 에일리히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니?”
에일리히의 물음에 세르펜스가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모습에 에일리히의 얼굴에 떠오른 걱정은 더 짙어졌다.
반대로 나는 세르펜스가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지금 편지를 줄 생각이구나?’
식사를 마치고 나서 전달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이 더 가중될까 봐, 빨리 건네고 편해지고 싶었나 보다.
나는 잘해 보라는 뜻에서 녀석의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려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내 행동을 보고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유지스도 잽싸게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눈으로 세르펜스를 지켜보았다.
윈스톤과 에드나도 조용히 착석했다.
“저···, 백부님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내게 말이니?”
이윽고 세르펜스의 입이 열렸고, 에일리히가 검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르펜스는 대답 대신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워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입가에 걸렸다.
에일리히가 슬쩍 눈동자를 굴려 나를 곁눈질했다.
내 표정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세르펜스, 네가 나를 위해 준비한 것이라니. 매우 기대가 되는구나.”
“으, 으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네가 주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나는 무척이나 기쁠 거란다.”
부끄럼쟁이 세르펜스가 준비한 선물을 좀처럼 줄 생각을 안 하자, 에일리히가 안달을 냈다.
그러나 아무리 선물을 빨리 받고 싶다고 한들, 그것을 강탈할 수는 없는 노릇.
에일리히가 할 수 있는 건,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간절한 눈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제야 세르펜스의 손이 웃옷 안주머니로 향했다.
드디어 결심이 섰나 보다.
“어제 저녁···, 백부님께 편지를 써 보았습니다.”
기름칠이 안 된 기계처럼. 세르펜스가 뚝뚝 끊기는 동작으로 에일리히의 손바닥 위에 편지 봉투를 내려놓았다.
어지간히도 긴장했나 보다.
하지만 긴장한 건 세르펜스뿐만이 아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갑자기 조카에게 편지를 받은 에일리히가 편지를 들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지, 지금 열어봐도 괜찮겠니?”
“백부님께서 원하신다면···.”
세르펜스가 말끝을 흐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의 표정에서 비장함이 넘쳤다.
비장함이 언제부터 옮는 성질을 지니게 된 것인지, 에일리히도 덩달아 비장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들린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아직도 서 있는 세르펜스에게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세르펜스가 자리에 앉는 걸 보고 나서야 긴장이 좀 풀렸는지, 에일리히가 조심스럽게 편지 봉투를 열었다.
“······.”
에일리히가 편지를 읽다 말고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감사를 담은 눈인사를 건네고 다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아무래도 초반에 쓰여있는 ‘인용문’을 읽었나 보다.
한 글자 한 글자.
가슴에 새기기라도 하는 건지, 에일리히가 편지를 읽는 속도는 무척이나 더뎠다.
그래도 음식을 차려놓고 뭐 하는 거냐며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에일리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눈물을 쏟아낸 탓이다.
옆에서 툭툭 치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세르펜스가 내게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녀석이 내게 손수건을 내미는 이유야 뻔했다.
녀석은 나와 유지스 사이에 앉느라 상석에 앉은 에일리히와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 내게 대신 전달해 달라는 거다.
‘나 좀 빼고 소통해 주면 안 될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키며.
나는 세르펜스의 손수건을 에일리히에게 건네주었다.
“아아···. 세르펜스, 너는 어쩜 이리도 다정하고 상냥한 거니?”
에일리히가 중간에서 손수건을 전달한 내 노고는 건너뛰고, 세르펜스의 상냥함을 칭송했다.
그래도 유감 같은 건 없다.
앞으로도 쭉 둘이 직통으로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미안합니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샘이 약해져서···.”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낸 에일리히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택도없는 소리다.
‘신성력 덕분에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고 건강한 육체를 지녔으면서, 저런 말을 하다니···.’
그냥 핑계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을 앞에서 운 게 민망해서 괜히 나이 탓을 한 거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지적하면 에일리히는 더 민망해할 테니까, 그냥 모르는 척해야겠다.
“아, 이런. 저 때문에 다들 식사도 못 하고 계셨군요. 저는 잠시···, 흡. 화장실에 좀 다녀올 테니, 먼저 들고 계십시오.”
결국 에일리히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식사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와중에도 세르펜스가 쓴 편지는 소중하게 챙겨 들고 갔다.
“···혹시 편지 내용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세르펜스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질문했다.
편지를 읽어 봤으니, 에일리히가 왜 저러는 건지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그냥 세르펜스가 너무 기특하고 고마워서 감동해서 저러시는 겁니다.”
“그런 건가?”
“네,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식사하세요. 음식 다 식겠습니다.”
세르펜스는 에일리히가 걱정스러운 눈치였으나, 그를 따라 나가는 대신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는 아이의 본분에 충실해지기로 한 걸 테다.
에일리히가 다시 돌아온 건 식사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즈음이다.
“크흠, 죄송합니다.”
나는 멋쩍어하며 사과하는 에일리히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세수도 하고 눈가도 신성력으로 치료했는지, 울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끔한 모습이다.
그래 봤자 복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에게 목격당했을 테니.
소 잃고 동네방네 소문낸 후 외양간을 고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식사실에서 조용히 울고 끝냈으면, 우리 말고는 아무도 몰랐을 텐데···.’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에일리히를 짠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기 위해, 식사에 열중했다.
우리의 식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에일리히는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에일리히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답장···, 해도 괜찮겠니?”
소심하게 던져진 그 말에 세르펜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지만, 답장하겠다는 말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물론입니다.”
“정말 고맙구나, 얘야.”
“아닙···, 음···. 저도 백부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르펜스가 습관처럼 ‘아닙니다.’라고 부정을 하려다가 중간에 말을 바꿨다.
수줍게 웃으며 감사를 전하는 녀석의 모습에 에일리히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또다시 벅차오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무슨 얘기든 꺼내서 화제를 돌리지 않으면 에일리히가 또 울면서 뛰쳐나가게 생겼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화젯거리를 찾았다.
“아, 참! 세르펜스, 어제 윈스톤이 그러는데요. 세르펜스가 무슨 짓을 하든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테니까, 자신의 충심이 변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래요.”
“쿨럭, 쿨럭!”
어제 세르펜스에게 윈스톤 칭찬을 해주기로 한 게 떠올라,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랬더니 윈스톤이 갑자기 기침하며 커다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려댔다.
사레라도 들렸나 보다. 조심 좀 하지.
그의 기침이 완전히 멎자, 에일리히가 감격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뗐다.
“세르펜스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 칭찬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그러는 걸까?
윈스톤은 공연히 헛기침하더니 물을 들이켜며 딴청을 부렸다. 아직 사레가 덜 내려간 척 연기하는 거다.
그래도 주군인 세르펜스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그런 대화가 오가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윈스톤 경.”
“···기사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윈스톤이 물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를 흘깃 곁눈질로 쳐다본 후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은 내가 쉬고 싶다. 자기 PR이 얼마나 중요데, 그 기회를 이렇게 대충 흘려보내다니.
참 요령 없는 사람이다. 선배인 내가 챙겨줘야지 안 되겠다.
아무튼 그렇게 다소 소란스러운 아침 식사가 끝나고.
알타르가 정문을 통해 공작저에 방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