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6화(66/1105)
66회. 공작님의 출장 계획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무실로 출근한 나에게 세르펜스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편지 한 장을 던졌다.
“바로 친구 먹기는 좀 부끄럽고. 우선은 펜팔부터 시작하자는 권유입니까?”
“···내가 쓴 거 아니다.”
그 말에 감귤 색의 편지 봉투를 살펴보니, 가장 먼저 오렌지 3개가 나란히 그려진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 이거 오렌지가 아닌데?’
친절하게도 그림 아래에 ‘유자들’이라고 적혀있었다. 유자 그림이었나보다.
편지 봉투를 앞뒤로 살펴보았지만, 그 밖의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받는 이의 이름에 ‘시온 리벨론’이 적혀 있다는 것과 이미 뜯어본 흔적이 있다는 것 외에는···.
“왜 제 앞으로 온 편지를 뜯어보신 겁니까?”
“그 엘프가 보낸 거잖습니까. 당연히 ‘그쪽’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해서.”
그 엘프라면 유지스를 말하는 건가.
‘보낸 사람 이름 같은 건 적혀있지도 않은데, 겉면만 보고 어떻게 알고?’
일단 뜯어서 읽어본 후, 변명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 것도 당연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세르펜스는 유자들에서 어떻게 유지스를 연상···.
“유자들···. 유자s···, 유자스. 유지스?”
내용을 읽으면 누가 보낸 지 알 테니, 대충 아무 이름이나 써서 보낼 줄 알았는데 꽤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혹시 암흑가에서 만났던 스콜피온처럼, 그쪽 세계에서 쓸 이명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던 건 아니겠지?
“···이런 말장난을 용케 눈치채셨네요.”
“그녀에게서 편지가 도착할 것이라, 미리 언질을 받았으니.”
언질이 아니라 건들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는데. 세르펜스는 도착 예정이니 한스에게 보여주지 말고 혼자 읽으라는 뜻으로 해석했나 보다.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도착한 편지는 읽어 봐야겠지?
“그런데 지시사항이라는 건 뭐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다 말고, 그대로 멈칫했다.
‘거지 같은 편지들, 아주 지긋지긋해!’
편지랑 무슨 원수라도 졌나? 어떻게 편지가 도착했다 하면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첫 번째는 악마 숭배 세력이었고, 바로 전에 시온의 가족도 왔고. 이번에는···.
‘물론 첫 번째 빼고는 내가 원인이긴 한데. 스스로 초래한 재앙이나 다름없어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한탄해봐야 달라질 건 없었다. 일단 편지부터 확인해보자.
[ 지시사항 확인 완료. 자세한 이야기는 보안을 위해 직접 만나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시간과 장소는···. ]간단명료한 보고였다. 정말 아무것도 안 적혀있었다.
그녀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 주었지만, 기왕이면 시간과 장소만 써주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아닌가? 그랬으면 세르펜스가 약속 장소에 따라왔으려나?
“그때 내게 말한 게 전부라 하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기억하는데.”
불만스럽다는 듯 그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다물려졌다.
어쩐지 아까부터 아니꼽다는 표정을 하고 있길래 왜 그러나 했더니, 그게 문제였나 보다.
“···까, 까먹었다고 해도 안 믿으시겠죠.”
“본인이야말로 이렇게 비밀을 만들어놓고. 내게 그딴 식으로 말을 했다, 이건가?”
“아하하···.”
내 어색한 웃음에 세르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이다.
“저 수상한 소리 한 번만 더 할 테니까, 캐묻지 말아 주실 수 있습니까?”
“알았으니, 그 수상한 소리나 어서 해 보십시오.”
걱정과 달리 지나치게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이제는 의심하는 것조차 귀찮은 것인지, 구구절절 얘기하지 말고 어서 본론이나 꺼내라는 듯한 말투다.
“그렇게 깔끔하게 수긍하고 넘어가시면 숨긴 저는 뭐가 됩니까?”
“뭐가 되긴, 평소대로 수상한 사람이지. 그렇다고 당신을 고문할 수는 없잖습니까.”
“암요,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어디 시도만 해보십시오? 도망가 버릴 테니!”
“도망칠 능력은 되고?”
절대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는 엄포를 늘어놓으니, 세르펜스가 같잖다는 듯 심드렁한 태도를 취한다.
‘어, 뭐야···. 장난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심드렁한 정도가 아니라, 아까부터 계속 틱틱거리는 말투였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저···, 무슨 일 있습니까?”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니군.”
“공작님, 혹시 지금 삐지신 겁니까?”
“어딘가 답답하고 허한 것이···. 이런 걸 서운하다고 표현하는 건가?”
평소의 나라면 분명, ‘지금 삐진 게 아니라 조금 서운한 것뿐이다!-라고 변명하고 계신 겁니까?’라며 깝죽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르펜스의 상태는 절대 그런 장난이 통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제가 몇 번이나 당신을 믿는다고 말씀드렸는데, 당신은 저의 그 말조차 의심하고 계셨을 줄이야.”
오랜만에 소심펜스가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게 문제였군.’
그의 말대로였다. 나는 그에게 믿고 기다려달라 강요한 주제에, 정작 내가 그를 믿지 못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나를 믿고 기다려준다 했음에도, 나는 그가 기다려주지 않을 경우를 경계해 왔다.
세르펜스는 그것을 눈치챈 것이다.
“당신이 굳이 선택의 날 이후로 답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제가 준비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이 맞습니까?”
“어, 어어···. 네.”
이 녀석은 내가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나 행동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런 핵심만큼은 정확하게 찔러 들어온다.
“그러니 자세히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알려도 되는 정도라면 제게도 괜찮은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다음이 아니라, 이제부터.”
“이, 이제부터! 고치겠습니다.”
그제야 세르펜스가 어슴푸레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당신을 믿는 만큼, 당신도 저를 믿어주십시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면 무조건 공작님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번 일도 혼자 그 장소에 나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을 일부러 당신에게 알린 겁니다.”
내가 의기소침해져서 기죽어있으니 그가 일부러 생색내듯 말했다.
본인 기분도 우울할 텐데, 나까지 신경 써 줄 정도의 여유가 생긴 걸까.
“이제 남의 기분도 챙겨줄 줄 알고, 많이 크셨네요.”
“···당신이 그렇게 쳐져 있으면 제가 적응이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정녕 당신에겐 중간이란 게 없는 겁니까?”
“그럼 오늘은 반성의 의미로 중간을 지향해 보도록 할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한심하다는 말투지만 걱정이 가득 담겨있는 그의 목소리에, 기운을 차려 슬쩍 장난투로 대답하니 피식거리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제 얘기해 보십시오.”
“악마 숭배자 집단이 기사 출신의 어느 검투사 노예를 포섭하려 하니, 위리디아님께 그를 찾아달라 부탁하였습니다. 우선 펠로 왕국 쪽을 찾아보고, 여건이 된다면 외국의 불법 투기장 쪽도 조사해줬으면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왜 숨긴 건지 모르겠군. 정보의 출처가 미심쩍긴 하나, 그게 어디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하지만 미래의 악마 숭배 세력 간부를 알고 있는 건 역시 좀 이상하···.”
세르펜스에게 더는 비밀을 늘리면 안 된다는 묘한 강박감이 생겨있는 상태라,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버렸다.
이번만은 세르펜스도 유도한 바는 아니었는지, 살짝 주춤하더니 급작스레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는 건, 그때 당신이 했던 그 얘기는···. 그런 건가? 흐음, 음. 그렇군. 대충···.”
무언가 그의 머릿속에서 열심히 짜 맞춰지고 있었다. 대체 내가 했던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거지?
너무 많이 떠들어놔서 오히려 더 모르겠다.
“고, 공작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기는 개뿔! 당신 지금 생각이 엄청나게 많아 보이거든?
어차피 고양이 취급하는 얘기도 했겠다, 말실수할 거라면 차라리 예전에 속으로 그를 뒤집기 하는 아기와 동일시했던 걸 들키는 편이 나았을 정도의 찜찜함이다.
그도 그러할 게 아기는 적어도 인간이잖아?
무척이나 찝찝해졌지만···.
‘그래, 믿어달라니 믿어야지. 믿자!’
적어도 나 몰래 사고 치는 일은 없을 테고. 뭘 눈치챘는지는 모르나, 버겁다 싶으면 알아서 의지하러 오겠지.
“어쨌든 직접 만나야겠다고 쓰여있는 거로 보아, 아무래도 좀 복잡한 얘기가 될 것 같으니. 나도 함께 가도록 하지.”
“공작님이요, 호위 도련님이요?”
“일단 도련님 쪽. 외국 관련이면 대외적 입장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불법적인 문제가 거론될 수 있으니. 프라시더스 공작에게는 상황을 봐서 부분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형식으로 가도 괜찮을 거다.”
누가 들으면 프라시더스 공작이 세르펜스 말고 한 명 더 있는 줄 알겠다.
* * *
유지스가 지정한 장소는 교외에 있는 여관의 2층에 위치한 객실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실 줄은 몰랐는데···.”
“저도 2층에 있는 방을 창문으로 드나들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도 얼굴을 꽁꽁 싸맨 세르펜스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함께 오셨네요?”
“내용에 따라 방침을 새로 정해야 할지도 모르잖습니까. 기왕이면 한 번에 얘기하는 편이 낫겠죠.”
이해했다는 듯 유지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세르펜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우리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그녀의 정령이 소리를 차단해주고 있었기에, 유지스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팔로 왕국에서 해방된 노예 중에는 말씀하셨던 조건에 충족되는 자는 없더군요.”
“역시 일이 쉽게 풀릴 리 없나···.”
“대신 바스툴 왕국에서 최근 불법 투기장이 성행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외국이네요?”
“외국이죠.”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유지스가 답했다.
‘하필 거기냐···. 도움받긴 글렀네.’
바스툴 왕국의 현 왕은 겁이 많은 주제에, 욕심까지 많은 인물이다.
[성검의 주인]에 따르면, 그는 신성 루멘 제국이 망한 이후 가장 먼저 등을 돌려버린 국왕이었다.‘그리고 세르펜스는 그 상황을 휴마누스를 고립시키는 데 이용했지.’
대륙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면서, 바스툴 왕국은 터럭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성검의 주인을 돕지 않는다면 피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바스툴 왕국을 시작으로,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손을 놓았다.
‘그래놓고 내부로는 사람을 심어, 성검의 주인을 돕는 문제로 대립시켰고···.’
유일하게 휴마누스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을 낸, 제 2 왕자에게 일부러 힘을 보탰다.
그는 대륙을 위해 패륜을 감내하였다.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비와 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해내었다.
제 2 왕자에서 패륜 왕이 되어버린 그는 곧장 휴마누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저리 배척당하던 휴마누스에게는 구원과도 같은, 동아줄 처럼 느껴졌지만.
‘갈수록 일은 더 꼬여가고, 정보는 새어나가고···.’
애초에 그가 왕이 되는 것을 뒤에서 도운 것이 세르펜스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바스툴 왕국의 젊은 왕은 자신의 뒤를 지지해준 이들을 철석같이 믿고, 곁에 두었다.
그들이 악마 숭배 세력의 끄나풀인 줄은 까맣게 모른 채.
‘결국 휴마누스는 자신을 돕는 몇 안 되는 자들마저 의심해야만 했지.’
나도 모르게 세르펜스를 타박하는 눈길로 쏘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은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