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6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66화(666/1105)
666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34)
* * *
내가 그 찜찜함의 정체를 깨달은 건, 오늘의 모든 일정을 끝마친 이후였다.
‘아, 알타르 님께 에일리히 님의 이단 심문관 시절에 관해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다!’
세르펜스는 대련을 마치고 저녁을 먹은 뒤.
에일리히와 알타르에게 신성력 날개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두 사람은 전현직 이단 심문관답게 신성력 제어 능력이 우수했기에, 배우는 데 문제 될 건 없었다.
다만, 시간이 말썽이었다.
성검펜스가 휴마누스와 리에나를 가르칠 때처럼, 온종일 신성력 날개 만들기 하나에 매달릴 수만은 없다.
대련 시간도 확보해야 하고, 그만큼 휴식도 취해야 하니까.
‘두 사람이 자유자재로 날 수 있게 되는 것보다, 우리가 저택을 떠나는 게 먼저겠지?’
그러니 공중전 연습은 못 하겠지만.
언젠가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니,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연이 닿았을 때 익혀 둬서 나쁠 건 없다.
알타르를 통해 그 기술이 교단에 퍼질 수도 있으나 그건 그거대로 좋다.
전력이 강화된다는 뜻이니까.
악숭 세력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유용한 기술을 공유하지 않는 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다.
아무튼 신성력 날개 만들기 강의까지 끝나고 나니, 밖은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하여 알타르는 세르펜스의 수련을 돕는다는 설정과 진실이 반반 섞인 이유로.
동쪽 별관이었던 창고의 비밀방이 아닌, 서쪽 별관에서 당당히 거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시각에 찾아갈 수도 없고···.”
“찾아가다니, 누구를?”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명상에 잠겨있던 세르펜스가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오후에 한 대련 내용을 복기한다고 했었는데.
“혹시 제가 방해한 겁니까?”
“아니다. 그보다 이 시간에 누구를 만나러 갈 셈이지?”
“무심코 중얼거린 혼잣말이라고 날조하지 마세요, 제대로 기억하니까. 전 분명 늦은 시간이니까 못 간다는 뉘앙스로 말했습니다.”
“아무튼.”
세르펜스가 ‘뉘앙스 같은 건 됐고, 그래서 대체 누굴 만나고 싶길래 안타깝다는 듯 혼잣말까지 중얼거린 거지?’라는 말을 단 세 글자로 줄여서 말했다.
“알타르 님이요.”
“선우가 그자에겐 무슨 용건으로?”
“에일리히 님의 이단 심문관 시절에 관해 물어보고 싶어서요.”
“그런 거라면 내일 물어봐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알타르가 묵는 방을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에일리히가 없는 자리에서, 그에 관해 캐묻는 것 또한 무례하다면 무례한 일이었다.
그래서 에일리히와 알타르가 함께 있는 간식 시간을 노려 질문할 생각이었던 건데.
달고나를 만들며 소원 들어주기 놀이를 하다 보니, 그만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일은 정말 까먹지 말고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어째서 백부님에 관한 걸 그 이단 심문관에게 묻는 거지?”
세르펜스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대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객관적이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타인이 보는 모습이 더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아! 물론 그 타인에게 악의가 없고, 친근한 사이라는 가정 하에요. 가장 좋은 건 직접 보고 판단하는 건데, 저희는 그 시절의 에일리히 님을 직접 볼 수가 없잖아요?”
“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군.”
내 말을 이해했다며, 세르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녀석의 오만이었다.
녀석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 증거로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가끔 선우가 자기 자신을 소심한 사람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지?”
“누구나 마음 속에 소심함을 갖고 살아가거든요? 단지 그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듣고 보니 선우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공기 중에도 항상 먼지가 떠다니고 있지. 다만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을 뿐.”
세르펜스가 내 마음 속 소심함을 미세 먼지에 비유했다.
그 말에 상처 입은 소심함이 토라져서 몸을 웅크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그때.
– 똑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세르펜스가 자신이 열어주겠다고 나섰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미안하구나.”
누군가 했더니 에일리히였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는 내 방이 아닌 세르펜스의 방이었는데, 용케도 알고 찾아왔다.
기척으로 알아챈 거려나?
“괜찮습니다. 들어 오시겠습니까?”
“아니···. 흠, 흠! 네가 불편하지만 않다면야···.”
분명 아니라고 말하려던 것 같았는데, 에일리히는 도중에 말을 바꿨다.
나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모처럼 조카 방에 초대를 받았으니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겠지.
에일리히는 방 안으로 들어오며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세르펜스가 저택을 비운 동안에도 방에 몰래 들어온 적은 없는가 보다.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방 구경은 끝났는지 에일리히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바로 몇 분 전에 세르펜스와 이런 늦은 시각에 누군가를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대화를 나눴었는데.
‘그래도 에일리히는 세르펜스의 가족이니까 괜찮나?’
같은 집에 사는 삼촌이 밤늦게 조카 방에 좀 들어왔다고,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심지어 에일리히는 노크까지 해가며 정중하게 방문했다.
그러니 아무 문제도 없다.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여긴 에일리히 님의 조카 방이잖아요?”
“그렇긴 해도, 시온···. 아니, 선우 경과 함께 쓰는 방이기도 하잖습니까.”
“그냥 잠만 여기서 자는 겁니다. 씻고 옷 갈아입는 건 제 방에서 해요.”
“지금 주무시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에일리히가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종이들과 찻잔을 힐끔거리며, 여기서 잠만 잔다는 내 말을 부정했다.
“잠만 자는 게 아니라, 놀고먹고 자는 거로 정정하겠습니다.”
“아, 네···. 그러시군요.”
내가 말을 정정했음에도 에일리히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마치 놀고먹고 자는 것과 생활하는 게 뭐가 다른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룻밤밖에 지내지 않은 내 방이 욕실 딸린 드레스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선우 경께서는 뭘 하고 계시는 겁니까?”
“세르펜스가 달고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요. 전용 도구를 주문 제작하려고 도안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래요.”
“······.”
그다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는지,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그렇게 대화가 끊기고.
에일리히는 안절부절못하며 어색하다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나라면 오늘 만든 달고나를 주제로 세르펜스에게 말을 붙이려 시도했을 텐데.
‘아니, 그 전에. 세르펜스에게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거 아니었나? 그렇다면 세르펜스와 대화를 나누다 갈 것이지···.’
조카의 방에 룸메이트가 있으면, 조용히 얘기하다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계속하라고 말하는 게 보통이거늘.
괜스레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는 척, 어떻게든 나를 대화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계산이 훤히 읽혔다.
한 번도 아이를 돌보아 본 적 없는 어른이 어느 날 갑자기 아이와 단둘이 있게 된다면, 불안해지는 건 안다.
아이란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라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다치고는 하니까.
옆에 숙련자가 있어 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래도 내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건, 에일리히와 세르펜스 둘 모두에게 좋지 않다.
“아무튼 전 바쁘니까, 두 분이 오붓하게 대화하세요. 아! 혹시 제가 신경 쓰이세요? 그렇다면 잠깐 옆방에 가 있을 테니 편하게···.”
“아닙니다, 선우 경이 이곳에 있어 주시는 게 더 편합니다.”
“나도 선우가 함께 있어 주는 게 편하니, 계속 앉아 있어라.”
에일리히가 다급히 내 말을 싹둑 잘랐다.
세르펜스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에일리히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내가 어디 가지 못하게 팔을 붙들기까지 했다.
“그럼 전 여기서 하던 거마저 할 테니까, 두 분이서 대화 나누세요.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르펜스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에일리히는 머쓱하게 웃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아이 어르는 말투 때문에 무안해졌나 보다.
에일리히의 세례명을 걸고 맹세코, 나는 50대 남성인 그를 애 취급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안 그래도 세르펜스와 닮은 얼굴로 자꾸 세르펜스 같은 행동을 해대니, 어쩔 수가 없더라.
나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차며 펜을 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달고나 도구의 도안 작업은 모두 끝났다. 간단하디간단한 물건들뿐이니 오래 걸릴 것도 없다.
그래도 뭔가 하지 않으면 나를 대화에 끼워 넣을 테니, 뽑기용 모양틀이라도 몇 가지 더 그려야겠다.
“으음···. 그래서 어쩐 일로 오신 건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세르펜스가 저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싶은 질문을 꺼냈다.
하지만 에일리히는 그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침에 네가 준 편지에 대한 답장을 써 왔단다. 원래는 내일 아침에 주려고 했는데, 이대로라면 긴장이 되어 잠을 설칠 것 같아서···.”
“벌써 말입니까?”
에일리히가 품속에서 편지 봉투를 꺼내자, 세르펜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그러했듯 에일리히 또한 편지를 쓰는 데 몇 시간씩 걸릴 줄 알았나 보다.
놀라워하는 조카를 보며 에일리히가 멋쩍은 표정으로 편지를 내밀었다.
“지금 읽어 봐도 됩니까?”
“그러려무나.”
세르펜스가 편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하자 방 안에 적막이 가라앉았다.
에일리히는 긴장했는지 기도하듯 양손을 꽉 맞잡은 채, 편지를 읽는 세르펜스의 반응을 살폈다.
내가 딴짓을 하든 말든.
결국 대화는 하지 않는 거구나 싶어, 낙서하던 것을 멈추고 세르펜스 관찰에 동참했다.
“백부님께서는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조용히 편지를 읽던 세르펜스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에일리히가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 어쩌고저쩌고, 그런 내용을 편지에 써 놓았나 보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하지만 어른으로서 내가 먼저 모범을 보였어야 했는데, 네가 먼저 용기를 내서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게 미안하고 마음에 걸려서···.”
“편지 쓰기는 선우가 낸 의견입니다.”
갑자기 화제가 내 쪽으로 튀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억을 더듬어 달고나 뽑기 할 때 자주 본 모양들을 그렸다.
자동차, 비행기, 별, 나무, 열쇠 구멍, 십자가···.
이것 저것 그리는 김에 고양이, 강아지, 토끼, 곰 등 동물 머리 모양도 그려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끄적끄적하고 있으니, 세르펜스와 에일리히의 시선이 금세 떨어져 나갔다.
“···답장 감사합니다. 덕분에 백부님에 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편지를 다 읽은 세르펜스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녀석의 편지를 받은 에일리히처럼 감동하며 울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기뻐 보이는 얼굴이다.
“답장 기다려도 되겠니···?”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래도 괜찮단다.”
아무래도 이 두 사람은 직접 말로 대화를 나누는 대신,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을 생각인가 보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대하기가 조심스러워서, 말 한마디 꺼내는 게 힘들어 대화가 끊기는 거니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한 문장씩 글을 적어내는 게 더 쉬울 테다.
‘그렇다고는 해도, 편지만으로는 진솔한 에일리히 님의 모습을 알기는 힘들겠지?’
에일리히가 편지에 거짓말을 써 놓을 거라는 뜻은 아니다.
아까 세르펜스에게는 객관적이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하긴 했지만.
내가 에일리히에 관한 것을 알타르에게 묻기로 마음먹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르펜스 앞에서라는 한정 조건이 붙긴 하지만, 에일리히 님도 은근히 내숭이 심하단 말이야?’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보면, 재미없는 얘기만 하겠지.
이유는 알고 있다. 조카 앞에서 항상 친절하고 다정한 삼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걸 테다.
그러니 당연히 편지에도 그런 내용만 적을 게 분명하다.
내숭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아끼는 사람에겐 되도록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은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이니까.
적당한 내숭은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고.
‘하지만 에일리히 님은···. 뭐라고 해야 하지? 겁먹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너무 과하게 조심스럽다.
그가 한스를 때렸을 때, 세르펜스가 지었던 두려움 가득한 표정이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