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6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68화(668/1105)
668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36)
“동생 놈과 그리 친했던 것도 아니었으니. 내가 혈연 같은 것에 연연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단다. 처음에는···, 말이지.”
이제 와서 침묵해 봐야 오해만 생길 뿐이라 판단한 걸까?
에일리히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사람들은 네게 관심을 보이며 큰 기대를 했단다. 태어난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네 이야기를 했고, 내 귀에도 들려왔지. 그러다 보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네가 친숙하게 느껴졌고. 그럴수록 네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호기심이 커지는 만큼 보고 싶다는 마음도 덩달아 커져 가더구나.”
“그래서···.”
“그래, 그래서란다.”
세르펜스가 망연한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린 말을 용케 놓치지 않고, 에일리히가 착잡하게 긍정했다.
“네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저택 밖으로 나오게 될 테니. 제국의 수도에 머물면, 언젠가 먼발치로나마 너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단다. 그러기 위해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그쪽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었단다.”
에일리히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멀리서나마 조카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노력했던 방향이, 그 조카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힌 방법과 동일한 것이었다니.
“백부님께서는···, 힘들거나 괴롭진 않으셨습니까?”
“처음에는 그러했지만, 결국 익숙해지긴 하더구나. 그리고 ‘그 기술’은 이단 심문관이라면 당연히 익혀둬야 하잖니. 더구나 대륙과 교단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며,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쪽 분야를 파고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단다.”
조카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몰아세운 게 아니었다는 변명 같은 말을 끝으로, 에일리히는 얘기를 마쳤다.
세르펜스가 자책하지 않도록, 녀석을 배려하기 위해 덧붙인 말일 테다.
두 사람은 침묵했으나, 그들 사이에서 흐르는 묘한 기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탓에 누구도 입을 열고자 하지 않았고 응접실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정적을 깨고 입을 연 사람은 알타르였다.
“어찌 되었든 에일리히 님께서 조카분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한 분야의 정상 자리에 올랐다는 얘기인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은 겁니까?”
그렇게 말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안을 둘러보는데,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비록 종교적인 문제로 절연했으나 가족의 곁에 머물고 싶어서.
머나먼 타지로 파견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제국 수도에 머무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했더니 그 직업에서 최고가 되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휴먼 스토리처럼 느껴지긴 했다.
알타르가 에일리히에게 쑥스럽냐고 물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테다.
하지만 언뜻 아름다워 보이는 이 스토리의 이면에는 크나큰 문제점이 하나 있었으니.
“노력한 분야가 분야잖습니까? 자라나는 어린 조카에게 들려줄 만한 얘기는 아니죠.”
“······.”
내 말을 들은 알타르가 ‘에일리히 님의 어린 조카’를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도저히 어린애로 보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타르는 현재의 세르펜스보다 어린 나이에 이단 심문관이 되어, 에일리히에게 고문 기술을 배웠을 터.
그러니 앞에서 말조심해야 할 만큼, 신체 나이 스물여섯의 세르펜스가 어려 보이지는 않겠지.
‘물론 세르펜스는 그런 알타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고문을···. 아니, 이건 됐고.’
나는 불쑥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어쨌든 알타르가 고문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건, 이단 심문관인 그에게는 그것이 업무의 일환에 불과하기 때문일 테다.
이단 심문관이라는 직업에 자부심이 있다면 더더욱,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만도 하다.
“그런데 알타르 님께서는 제가 그런 이유로 그···, 후우─. 아무튼 그 사실을 어떻게 아신 겁니까?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
에일리히가 고문이란 단어를 한숨과 함께 얼버무리며, 알타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르펜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과거사가 밝혀진 탓일까?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그의 안색이 창백해 보였다.
그 모습에 알타르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에일리히 님께서는 ‘그 업무’를 상당히 버거워하셨다면서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력이 나날이 발전하여 교단 제일의 전문가가 되셨다는 건, 이단 심문관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얘깁니다. 신입 이단 심문관이 처음 ‘그’ 실습에 들어가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면, 꼭 듣게 되는 일화니까요. 처음에는 힘들지 몰라도, 익숙해지면. 그리고 노력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아까 알타르가 ‘오히려’ 다음에 말하려던 게 바로 이 얘기였나 보다.
에일리히는 세르펜스가 괜히 스스로를 탓할까 봐 걱정스러운 모양이지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르펜스는 안도하고 있었다.
대놓고 그 감정을 얼굴에 드러낸다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녀석이 안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 때문에 당혹스러워하는 것도.
녀석이 안도한 이유야 뻔하다.
‘제 혈육인 에일리히 님께서 타인을 고문하길 즐기는 잔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어서겠지.’
그리고 당혹스러워 한 건, 그가 힘든 일을 겪었다는 얘기를 듣고 안도한 자기 자신 때문일 테다.
나는 녀석의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들어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머리에 당분을 공급해 주었다.
쉽게 말해 따뜻해진 와플을 녀석의 입에 밀어넣었다는 뜻이다.
와플을 입에 문 녀석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예전에는 막연히 에일리히 님께서 투철한 직업정신과 사명감으로, 열심히 노력하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만 그러한 게 아니라, 아마도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에일리히 님께서 가문에 연연하시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하였고, 조카분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에일리히 님께서 ‘그 기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게, 조카분이 태어났을 즈음이라는 정보도 있었고···.”
알타르의 말을 가만히 듣다 보니 깨달은 사실인데, 그는 아까부터 ‘고문’이라는 단어의 언급을 피하고 있었다.
아까 에일리히에게 목울대를 맞았던 게 아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에일리히가 그 단어에 과민하게 반응하니 맞춰주고 있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둘 다인 건지는 알타르 본인만 알겠지.
“···제게 실망하셨겠습니다. 노력의 이유가 순수한 사명감 같은 게 아니라, 미처 끊어내지 못한 미련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별로 신경 안 씁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에일리히 님께서 세우신 업적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에일리히가 소심하게 꺼낸 말에 알타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그건 그렇고 고문으로 세운 업적이라니. 그게 뭔지 자세히 물어보기도 겁난다.
“그런 걸 업적이라고 얘기하는 건 좀 삼가셨으면 합니다. 적어도 제 조카 앞에서는···. 무서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조카분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변하시네요?”
“그래서 불만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불만 있느냐는 에일리히의 한마디에, 그에게 순한 양처럼 변한다고 말했던 알타르가 순한 양처럼 굴었다.
세르펜스의 삼촌 에일리히는 한없이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이단 심문관 에일리히는 다소 엄격한 선배였나 보다.
‘그나저나 이거 괜히 캐물은 건지, 잘 풀린 건지. 도통 분간을 못 하겠네···.’
에일리히가 타고난 고문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까지는 좋은데, 분위기가 너무 이상해졌다.
눈앞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다들 어색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커피만 홀짝거렸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부님. 덕분에 백부님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적절한 타이밍에 세르펜스가 나서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솔직하게 말했다고 표현하기에는 변명이 많았던 것 같기는 하지만. 에일리히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 그렇다고 치자.
“그, 그랬니?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동안 백부님께서 다정하고 자상한 모습만 보여주셔서···. 저를 아끼신다는 게 느껴져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얇은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표정과 말투, 분위기가 첫 만남 때와 너무 달라지시기도 했고···.”
첫 만남 때와 달라졌다는 조카의 말에, 내숭으로 똘똘 뭉친 에일리히가 뜨끔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댔다.
세르펜스는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에일리히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모습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금만 더 편해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편하단다.”
“방금 하신 말씀은 거짓말입니다. 백부님께서 지금도 긴장하고 계시잖습니까?”
“······.”
아무리 대범하게 행동하려 애쓰더라도 긴장한 사람은 겉으로 티가 나는 법이거늘.
소심한 표정으로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긴장감을 숨긴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러 좋은 사람인 척 행동하지 않아도, 백부님은 여전히 좋은 분이실 겁니다. 소문으로만 접한 조카가 보고 싶어서, 괴로운 일도 마다하지 않으실 정도로 정이 많으시고. 누군가의 존경을 받을 만큼 훌륭한 분이시잖습니까?”
“아아···, 너는 어쩜 이렇게 매번 착하고 사랑스러운 말만 할 수가 있니?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 이렇게 잘 자라줘서···.”
“아닙니다. 시온의 말에 의하자면, 저는 아직 덜 자랐습니다.”
“······.”
에일리히가 한바탕 감동의 눈물을 쏟으려다가, 벌써 기뻐하긴 이르다는 듯한 세르펜스의 ‘덜 자람 선언’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눈물이 쏙 들어간 것은 덤이다.
“잘 되셨네요! 조카의 성장에 기여할 여지가 남아 있어서.”
“···네.”
일부러 밝고 쾌활하게 말해 봤는데.
에일리히는 기뻐하지 않고 떨떠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어린애는 ‘나 다 컸으니까, 이제 애 취급하지 마!’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
반면에 ‘저는 덜 컸으니 앞으로도 모쪼록 많은 보살핌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다면 엄청난 이질감이 느껴지겠지.
“세르펜스는 그러니까···. 또래에 비해 조숙한 아이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한다는 건, 그만큼 주변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려 있었다는 뜻이죠. 그러니 이 아이가 제 나이대에 맞는 천진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으로 보듬어주세요.”
나는 와플을 우물거리는 세르펜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째서인가 다들 내 말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이 가나안 대륙은 어린아이의 정서 발달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구나!”
한숨이 절로 나오는 참담한 현실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탄식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라도 하듯.
한 입 베어 문 와플을 반으로 갈라, 자신이 입 대지 않은 쪽을 내게 건넸다.
세르펜스의 우유도, 내 커피도.
거의 다 식은 터라 와플 속 시럽이 덜 녹았지만, 따뜻한 정이 담겨서 그런지 와플은 여전히 달고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