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7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71화(671/1105)
671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39)
“전달 사항은 이게 끝이에요?”
대화를 마친 세르펜스가 플로랑탱 한 조각을 집어 든 순간, 에드나가 손을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고작 이거 말하려고 간식 시간을 앞당긴 거냐고 따지는 건 아닐 테고.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가 보다.
“예, 끝입니다.”
세르펜스는 그렇게 대답한 후 집어 든 플로랑탱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파삭, 그것이 부서지는 소리가 신호라도 된 양. 에드나가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척 올려놓았다.
뜬금없는 그 행동에 모두의 관심이 테이블 위로 모여들었다.
“어, 그러니까···. 예쁜 브로치네요?”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행동해 놓고 기껏 꺼낸 것이 브로치라니.
내 입에서 얼떨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 큰맘 먹고 구매한 장신구를 자랑하는 건가?’
실수했다. 그런 거라면 좀 더 호들갑 떨며 칭찬해 줬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반응해 주기에는 너무 늦었다. 자칫 잘못하면 놀리는 거라고 오해할지도 모르니까.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조용히 침묵하던 그때.
“희미하게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이건 무슨 마법 도구인가요?”
유지스의 그 한마디에, 나는 모든 고민을 꾸깃꾸깃 접어서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괜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오버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후후후후···.”
갑자기 에드나가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음산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웃음에서 묘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저 브로치가 뭔지는 몰라도 엄청 대단한 기능이 부여된 물건인가 보다.
“이 작은 브로치에 부여된 마법은 무려! 장거리 통신 마법이에요!”
에드나가 통신 판매 하는 사람처럼 과장된 말투로 제품을 소개했다.
저번에 바스툴 왕국에서 통신구를 보여주면서, 장거리 통신 마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느닷없이 통신 마법이 부여된 물건이라며 브로치를 자랑하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거 못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아니마, 그 아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아냈거든요! 지난번 성검 일행과 동행하게 되었을 때, 그 아이와 함께 연구하던 게 바로 이 장거리 통신 마법이에요. 사실 저는 그저 거들기만 했을 뿐이니, 그 아이 혼자 만든 거나 다름없어요!”
모든 공은 아니마에게 있다며 겸손을 떠는 듯한 말의 내용과 달리. 에드나는 가슴을 활짝 펴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세상에 자신은 거들기만 했다는 말을 저렇게 거들먹거리며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에드나어 번역기 같은 건 구비해 둔 적 없건마는.
어째서인가 그녀의 말이 ‘우리 애는 비싼 과외는커녕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다니는데, 집에서 혼자 공부해서 전교 1등을 했지 뭐예요?’라고 번역되어 들려왔다.
“아공간 주머니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공간 계열 쪽 마법 지식을 파고들다가 불현듯 ‘마력 신호 자체를 공간 이동시키면, 누군가가 그 신호를 감지하여 끼어드는 일은 없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대요. 그 발상도 대단하지만, 곧바로 그걸 마법에 도입하여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낸 거야말로 아니마가 천재라는 증거겠죠.”
[성검의 주인]에서 아니마는 통신 마법 같은 생산적인 마법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살상력 높은 공격 마법만 연구했다.그러니 이는 분명 에드나의 생존으로 인한 변화다.
당장 악숭 세력과의 싸움을 염두에 둔다면, 좋은 변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좋지 않은 변화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다.
‘성검 일행과 장거리 통신이 가능하다면,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유리해지니까. 전략적 이용 가치도 무궁무진하고.’
그뿐만이 아니다.
아니마가 마법에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며 발전해 나간다면.
아공간 주머니를 연구하다가 장거리 통신 마법의 실마리를 잡은 것처럼, 언제든지 적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되는 마법을 개발해 낼 수도 있다.
‘게다가 악숭이들을 처리한다고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 이후를 생각하면, 지금의 아니마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다.
아니마 본인을 위해서든 대륙의 발전을 위해서든.
“이동 시 신호를 받을 좌푯값이 변화하는 것 또한, 수많은 마법사가 통신 마법의 연구를 포기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에요. 하지만 아니마는 일정 주기로 고정된 위치에 설치한 마력석에 신호를 보내어, 그 좌푯값을 전달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죠. 마력 신호로 변환된 음성 또한 그곳을 거쳐서 전달하는데···.”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에드나의 마법 원리 설명을 가장한 아니마 자랑은 계속됐다.
조금 전까지는 자식 자랑하는 부모처럼 보였는데.
슬슬 세르펜스를 찬양하는 공작저 사람들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에드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라고는 세르펜스 뿐이었다.
그조차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마주하면 일단 섭렵하고 보는 녀석의 성격 탓이다.
유지스는 처음에는 조금 듣는 듯했지만, 에드나의 말이 길어지자 태도를 바꿨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듣는 척만 하며 따뜻한 차를 홀짝거리며 음미했다.
평소 간식에는 거의 손대지 않던 윈스톤이 오늘만은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플로랑탱을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저작 운동에 집중하는 행위를 통해, 귀로 들려오는 머리 아픈 얘기를 흘려보내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에일리히의 시선은 에드나가 아닌. 그녀의 말에 집중하면서도, 간식을 먹느라 연신 입을 오물거리는 세르펜스에게 가 있었고.
알타르는 드문드문 ‘오···.’, ‘이야···.’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호응해 줬으나, 진심이 담긴 것 같지는 않았다.
“···통신에 필요한 여러 연산도 설치된 마력석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한 덕분에, 커다란 통신구 대신 이런 작은 브로치를 통해 통신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실용성과 휴대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거죠. 아, 이게 말로는 쉽게 느껴질지 몰라도 실제로 적용된 마법 수식을 봐야···.”
“알겠습니다! 아무튼 아니마 씨가 엄청, 매우, 무진장! 뛰어나다는 얘기죠?”
나는 에드나의 설명이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서둘러 그녀의 말을 끊었다.
통신 마법의 원리보다는 아니마의 천재성 자랑이 더 중요했던 걸까?
에드나는 바로 설명을 멈추고,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며 나를 칭찬했다.
하나도 안 고맙고, 안 기뻤다.
“그건 그렇고, 지금 당장 성검 일행과 연락할 수 있는 겁니까?”
“네. 공작저에 돌아오자마자 중간에서 신호를 전달해주는 마력석을 연구실에 설치하고, 그 좌표를 편지에 써서 아니마에게 보냈거든요. 그리고 조금 전, 통신기에 좌표를 등록했으니 이제 언제든 통화할 수 있다고 연락을 받고 온 참이에요.”
에드나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가 기사들에게 걸려 혼났던 날, 그녀는 아니마에게 보낼 편지를 제온에게 맡겼었다.
그 편지가 무사히 도착한 모양이다.
“바로 연결할까요?”
“네!”
내 우렁찬 대답에 에드나가 뿌듯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던 브로치를 손에 쥐었다.
에드나가 마력을 흘려 넣자, 언뜻 푸른 보석처럼 보이는 마력석이 깜박깜박 명멸했다. 수신음 대신인가 보다.
그 깜박임이 멈추고 브로치가 일정한 빛을 발했을 때.
{ 언니!! }
브로치를 통해 아니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에 연락했다더니.
10년 만에 겨우 연락이 닿은 양, 아니마의 목소리에서 반가움과 애틋함이 흘러넘쳤다.
“그래, 언니야. 아니마, 언니 없이 잘 지내고 있지?”
{ 히잉, 몰라. 내가 언니 업시 어떠케 잘 지내겟써···. }
{ 응? 아니마, 너 조금 전에 테스트 삼아 에드나와 먼저 연락해 봤다고 말하지 않았어? }
아니마의 목소리에 이어 휴마누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휴대전화의 한 뼘 통화 기능을 켠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도 전부 전달되나 보다.
“오, 진짜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이렇게 실제로 경험해보니, 정말 놀랍습니다!”
알타르가 에드나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작은 브로치를 보며 뒤늦게 감탄했다.
나는 ‘이거 영상 통화 기능은 언제쯤 지원하려나?’ 같은 감상만 떠올랐지만, 이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지금 이 상황이 무척이나 신기한가 보다.
{ 방금 누구야? 처음 듣는 목소린데? }
{ 이단 심문관 아냐? }
{ 세르펜스의 삼촌? }
{ 아니, 그 왜 있잖아. 악마 숭배자들이 세르펜스 나리의 집에 침입했을 때, 도와주셨다던. 이름이 그···. 아, 알타리? }
이쪽이 대화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휴마누스와 푸로르가 대화를 나눴다.
{ 알타리가 아니고, 알타르 님이에요. }
{ 아, 그래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
{ 지금 저희가 얘기하는 내용도 저쪽에 전달된다는 거, 잊지 않으셨죠? }
{ 아 참, 꼬맹이가 그렇다고 말했었지? 깜박했네. }
리에나의 지적에 푸로르가 멋쩍어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살짝 목소리가 울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통화 품질이 매우 준수한 편이다.
{ 하하···! 죄송합니다, 알타르 님! 음, 이렇게 말하면 전달되는 거 맞지? 브로치에다 대고 말을 거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하네···? }
난생처음 하는 전화 통화가 어색했던 걸까?
주절주절, 푸로르가 혼잣말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덧붙였다.
“말씀하신 대로 저는 그 이단 심문관이 맞고, 이름 틀린 건 괜찮습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데, 비슷하게나마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타르가 푸로르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도리어 감사를 표했다.
최근 에일리히에게 은근슬쩍 깐족거리던 모습만 보다가, 성직자답게 따사로이 말하는 모습을 보니 적응이 안 된다.
‘어쨌든 알타르 님이 함께 있다는 걸 저쪽에서도 인지했으니, 대뜸 내 본명을 부를 일은 없겠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알릴까 고민했었는데.
알타르가 먼저 말을 꺼낸 덕분에 그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 세르펜스, 거기 있어? }
“네, 있습니다.”
{ 근데 이거 목소리 말고 상대방 모습은 못 봐? 안 보이니까, 말을 안 하면 사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분간이 안 가서 불편해.}
{ 아, 아직 테스트 단계라서 그래···! }
휴마누스가 세르펜스를 불러놓고, 갑자기 아니마에게 추가 기능을 요구했다.
그에 아니마가 울컥해하는 목소리가 브로치에서 흘러나왔다.
{ 이렇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건데, 왜 꼬맹이 기를 죽여? }
{ 얼굴 보는 기능도 만들어서 우리 언니 얼굴 볼 거야! }
{ 그래, 그래. 우리 꼬맹이 화이팅! }
이제는 또 푸로르와 아니마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쪽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들의 대화를 통해 전해졌다.
“아니마···, 잘 지내고 있구나···!”
에드나가 격양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브로치를 들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도, 아니마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나 보다.
통화의 목적이라 하면 모름지기, 이쪽과 건너편 사람끼리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거늘.
여기저기 지방방송을 켜 놔서 장난 아니게 정신없다.
누가 이 세계에서 첫 통화를 한 감상이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난장판이었다고 대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