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7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74화(674/1105)
674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42)
* * *
세르펜스가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건, 이제 공작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제과류 중에는 하루 정도 숙성시켜야 맛있는 품목들이 존재했는데, 그 때문에 부엌 시녀들은 어제부터 디저트 제작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응접실 테이블로는 감당이 안 되는 양의 디저트가 준비되었고, 생일 파티 장소는 소연회장으로 변경되었다.
내가 응접실에 가져다 둬 달라고 부탁했던 카네이션 또한 그곳으로 옮겨졌다.
그 소식을 들은 세르펜스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모습으로 보아, 입맛이 없는 건 아니고 위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여 디저트를 잔뜩 먹기 위함일 테다.
평소라면 혼내고도 남을 행동이나 오늘 하루는 특별히 눈감아주기로 했다.
“아···.”
소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세르펜스가 탄성을 흘렸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호화로운 디저트 상차림 때문이다.
커다란 테이블 중앙에는 3단 케이크가 떡하니 놓여 있었고, 카네이션이 든 화병이 위풍당당하게 그 옆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테이블의 양 사이드로 슈크림을 쌓아 올린 크로캉부슈와 마카롱 탑이 자리했다.
그 외에도 자잘한 디저트들이 테이블의 빈자리를 가득 채웠다.
높이 쌓아 올린 슈크림과 마카롱 때문일까?
어쩐지 떡을 쌓아 올려 장식하는 돌 상차림이 연상되었다.
‘테이블 위에 아기펜스만 앉아 있으면 딱인데···!’
안타깝게도 테이블 위에 앉기에는 세르펜스가 너무 건장했으며, 각종 디저트 때문에 빈자리도 없었다.
“이 카네이션, 오늘 아침에 세르펜스가 시온에게 선물한 거죠? 가까이에서 보니 더 예쁘네요.”
유지스가 자리에 앉으며 꽃에 관심을 보였다.
그 말을 들은 에일리히의 시선이 내 앞가슴. 정확히는 그곳에 달린 카네이션 모양의 부토니에로 향했다.
“오늘 있을 생일 파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멋을 내신 건 줄 알았는데···. 혹시 그 장신구도 세르펜스가 선물한 겁니까?”
“부러워하실까 봐 물어보지 않으면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는데, 이것 참 어쩔 수 없네요!”
나는 에일리히에게 내가 살던 세상에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설명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아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설명이 끝났을 때.
에일리히는 ‘저것이 내 것이어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듯, 탐욕스러운 눈으로 내 가슴팍에 달린 카네이션 부토니에를 쳐다보았고.
알타르는 그런 에일리히를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세르펜스와 닮은 얼굴로 갖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도, 절대 드릴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저···. 언젠가는 저도 세르펜스에게 카네이션을 받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에일리히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단단히 각오를 다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째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세르펜스가 에일리히 님께 카네이션을 드리는 건 나도 찬성이지만, 에일리히 님과 내가 똑같은 장신구를 하는 건 좀···.’
먼 훗날.
세르펜스가 에일리히의 가슴에도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싶다고 말해 오면, 부토니에 말고 다른 장신구를 준비하거나 생화를 달아 주라고 해야겠다.
“초에 불붙여도 돼요?”
“잠깐!! 그 전에 여러분께 알려 드릴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질문을 한 에드나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이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하나 같이 의문 가득한 표정이다.
“제가 살던 곳에서는 다 함께 노래를 불러서 생일을 맞이한 사람을 축하해 줬거든요. 아주 짧고 간단한 노래니까, 한 번만 들어도 금방 따라 부르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세르펜스의 생일을 맞이했을 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지 못한다는 현실에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하지만 이제는 내가 다른 세상 출신이란 게 밝혀졌으니, 더는 거리낄 게 없다.
“그런 노래가 있다면 어째서 당신의 생일에 알려주시지 않은 겁니까?”
막 노래를 부르려고 입을 떼는 찰나.
세르펜스가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불퉁하게 말했다.
저번 달에 내 생일 파티를 했을 때도, 내가 다른 세상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과 나무 한 그루만 모였었는데.
그땐 왜 노래를 가르쳐주지 않았느냐는 물음이다.
“깜박했어요. 그리고 제 생일 축하 노래를 제가 선창하는 것도 좀 이상하잖습니까?”
“······.”
“오늘 세르펜스가 노래를 잘 배워 놨다가, 내년 제 생일에 불러주세요. 그리고 내후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앞으로 기회는 많으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미래를 기약하는 내 말에도 녀석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아니, 그렇기에 표정이 더 어두워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녀석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서운함 때문이어야 한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남들 눈에 그렇게 보여야 한다.
“아이고, 내가 우리 공작님 마음도 모르고 실수했네! 앞으로는 비슷한 일도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그러니 얼굴 펴요. 오늘의 주인공이 이렇게 시무룩해져 있으면 쓰나?”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그리 말하자, 세르펜스가 이제야 서운함이 풀렸다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쩐지 녀석에게 억지로 연기를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나는 손을 거두고 노래를 부르기 전에 목청을 가다듬는 척 공연히 헛기침을 했다.
“흠, 흠! 그럼 불러보겠습니다! 다들 잘 듣고 기억해 주세요!”
“와~!”
나를 제외하고도 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 중, 유일하게 유지스만이 손뼉을 치며 호응해 주었다.
나머지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들이 매우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제 와서 부끄럽다고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를 시작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세르펜스의~ 생일 축하 합니다~♬ 와아아아─!”
– 짝짝짝짝짝!
노래가 너무 빨리 끝난 탓일까, 아니면 혼자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과 함께 열렬하게 박수까지 쳐댄 탓일까?
다들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노래는 이게 끝이고요, 박수와 환호성도 포함하여 한 곡입니다. 참 쉽죠? 세르펜스는 저희가 환호할 때 촛불을 불어서 끄면 됩니다. 소원 비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이해하셨으면 고개 끄덕끄덕!”
어려운 얘기는 하나도 없었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이해했음을 알렸다.
비록 얼떨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그럼 에드나 씨, 불붙여 주세요!”
내가 신호를 주자 에드나가 표정을 추스르고 마법진 두 개를 동시에 그렸다.
그중 하나는 빛을 차단하는 마법이었는지, 마력이 돔 형태로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더니 빛을 완벽하게 차단해 주었다.
캄캄함이 우리를 덮치려는 순간, 화르륵 초에 불이 붙었다.
연출이 매우 훌륭하다. 아무리 봐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매년 아니마의 생일을 축하해 줄 때마다 이 마법들을 사용한 거려나?’
잠시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다.
다들 부끄러운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누구 하나 선뜻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박수를 치며 노래를 시작하자, 그제야 다들 목소리를 냈다.
립싱크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일에 한하여, 요주의 인물인 윈스톤도 특유의 낮은 저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하긴. 부끄럽다는 이유로 주군의 생일을 축하하지 못하면, 더는 충성스러운 기사라 할 수 없지!’
노래가 끝나고, ‘와아아-!’ 하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세르펜스가 후우, 바람을 불어 촛불을 꺼트렸다.
그로 인해 잠깐 찾아온 어둠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막이 걷히며 함께 사라지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과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불빛이 쏟아지듯 우리를 감쌌다.
문득 세르펜스가 나를 바라보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갑자기 나를 보며 저런 미소를 짓는 걸까?
궁금증이 일었으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미신도 있으니까.
“자, 이제 선물 증정 시간입니다! 다들 가져온 선물을 꺼내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모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실 문을 열었다.
바로 앞에 제온이 꽃 화분을 들고 서 있었다. 그리고 옆구리에는 웬 서류뭉치처럼 생긴 것을 끼고 있었다.
어디 일하러 가는 도중이었던 걸까? 어쩌면 세르펜스에게 보고해야 할 사안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생일 파티 도중에 일거리가 생기지 않길 기원하며, 나는 양손으로 화분을 받아 들었다.
“가져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사님. 그런 의미에서 다음 번에는 집사님도 파티에 참석하실래요?”
“그런 의미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주인님께서 친하신 분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시는 데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
“안 친한 게 문제면 그냥 친해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리벨론 가에서 가장 소심하고 내성적인 저도 공작님과 친해졌으니, 집사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작님과 친해지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온이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짚었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시녀 하나가 제온을 힐끔거리며, 걸음 속도를 높여 잽싸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보다 주인님께 이것을 전달해 주셨으면 합니다. 공작저의 모든 인원에게 받아온 생일 축하 편지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읽으실 시간이 되실지 모르겠지만, 받아만 주셔도 모두 기뻐할 겁니다.”
아무래도 공작저 사람들끼리 합심해서 롤링 페이퍼를 쓴 모양이다.
제온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서류뭉치의 탈을 쓴 롤링 페이퍼를 건네려다가, 내 팔과 옆구리 사이에 그것을 끼워 넣었다.
내가 화분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던 까닭이다.
받아야 할 것도 다 받았겠다, 기다리는 사람도 많으니 빨리 돌아가야겠다.
나는 제온에게 잘 전해주겠노라 대답하고 뒤돌아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제온이 문을 닫아준 건지 등 뒤에서 쿵 하고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집사분께서는 현재 신의 사자께서 쓰시는 몸 주인의 동생인 거로 아는데···.”
“쟤도 제 정체를 압니다. 그래도 이 몸을 쓰고 있는 이상, 서로 데면데면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형제처럼 지내기로 협의했어요.”
“부럽···. 아, 아니···. 신앙심이 대단한 친구로군요.”
알타르가 본심을 살짝 내비쳤다가 급하게 수습했다.
교황은 내게 쓰다듬어지는 세르펜스를 부러워하더니, 이단 심문관은 나와 강제 의형제가 된 제온을 부러워했다.
‘대체 이들에게 신앙심은 뭘까···?’
의문은 들었지만 알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알타르에게서 관심을 끄고, 세르펜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제가 준비한 생일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건 공작저 식구들이 쓴 롤링 페이퍼고요.”
세르펜스에게 화분을 떠안기듯 넘긴 뒤, 녀석의 무릎 위에 롤링 페이퍼를 올려놓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테이블 위에 놓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 식물은 블루 데이즈라는 꽃입니다. 직접 사 온 건 아니고 제온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한 거지만, 제가 2주 넘게 애지중지 돌본 거거든요? 나름대로 정성이 담긴 선물이니까, 세르펜스도 많이 아껴주세요.”
“당신이, 2주씩이나···?”
“왜요? 내가 그런 거 못 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였나?”
“아닙니다. 그저···, 당신이 제 생일 선물에 그렇게나 많은 관심과 정성을 쏟았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세르펜스가 꽃이 활짝 핀 화분을 소중히 안아 든 채로, 그 꽃만큼이나 활짝 웃었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행복을 입에 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표정에도 그것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변화가 기뻐서 나도 녀석을 마주 보고 환히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