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7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75화(675/1105)
675회
75. 공작님과 백부님 (43)
세르펜스는 내게 화분을 잠시 맡긴 후, 무릎에 놓인 롤링 페이퍼를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조심스레 넣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화분을 받아 든 채 일어나서 우왕좌왕했다.
마땅히 둘 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거다.
“블루 데이즈는 햇빛을 많이 봐야 좋다니까, 저기 창가 쪽에 두고 오세요.”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세르펜스는 화분을 내려놓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을 수 있었다.
다시 선물 증정식이 시작되었고, 유지스는 유자가 그려진 포장지로 감싼 상자를 세르펜스에게 건넸다.
저런 포장지는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르겠다.
“지금 열어봐도 됩니까?”
“물론이죠!”
유지스의 허락을 받은 세르펜스가 선물 포장을 조심조심 뜯어냈다.
그리고 상자를 열자, 강아지 모양 나무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꼬리를 흔들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저번에 개를 좋아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강아지 조각상을 만들어 봤는데, 마음에 드시나요?”
“네, 마음에 듭니다. 저번에 주신 조각상과 함께 장식해 두겠습니다.”
세르펜스가 기쁘게 웃으며 조각상을 이리저리 살펴본 후.
조각상뿐만이 아니라, 상자와 포장지까지 소중히 갈무리해서 아공간 주머니 안에 넣었다.
‘어차피 가지고 다닐 거면서, 장식은 무슨···.’
유지스도 그 사실을 눈치챈 듯했으나 티 내지 않았다.
어쨌거나 세르펜스가 자신이 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넘어간 걸 테지.
그다음으로 선물을 건넨 사람은 에일리히였다.
에일리히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르펜스의 앞까지 다가와서 선물을 건넸다.
세르펜스가 포장지를 벗겨내자 고급스러운 가죽 케이스가 드러났고, 그 안에는 만년필이 한 자루 들어있었다.
내가 바스툴 왕국에서 뇌물로 받았던 것과는 달리, 보석이 덕지덕지 붙어있지는 않았다.
디자인만 보면 그냥 단순하고 매끈한 평범한 만년필처럼 보였다.
다만, 만년필의 캡과 배럴 부분의 색이 조금 독특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물감을 살짝 떨어트려 마블링하고, 금빛 펄 가루를 은은하게 뿌려 놓은 듯 오묘한 색상이다.
‘저거 혹시 라피스라줄리인가?’
시온도 나름 귀족인지라, 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은 없어도 보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익혀 뒀다.
라피스라줄리처럼 특색 있는 보석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에일리히가 세르펜스에게 가짜를 선물할 리는 없으니.
저건 진짜 라피스라줄리를 깎아 만든 만년필이라는 소리다.
“한번 뚜껑을 열어보려무나.”
에일리히가 시키는 대로 세르펜스가 만년필 뚜껑을 열자, 백금으로 만든 그립 부분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세르펜스의 풀네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이름 부분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었다.
마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물건은 처음 가져 본다는 듯, 녀석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아니···. 그런 듯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런 거려나?’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은 세르펜스가 그 무엇도 애착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물건에 이름을 적는 흔하디흔한 행위조차 녀석에게는 낯선 경험일 테다.
‘진작에 눈치챘어야 했는데···.’
에일리히가 그 사실을 알고서 펜에 세르펜스의 이름을 새긴 건지, 그냥 우연인 건지.
거기까지는 모르겠으나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공작저를 떠나고 나서도 편지를 써 줄 수 있겠니? 가끔 생각날 때만이라도 좋단다. 너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할 테니, 내가 답장을 보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다면···.”
어째서 에일리히가 세르펜스에게 만년필을 선물로 줬는지 알 것 같다.
글을 쓸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을 떠올리며, 편지를 써 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 선물한 걸 테다.
세르펜스도 그런 에일리히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싱그레 미소 지었다.
“제가 바로 답장을 받아볼 수는 없겠지만. 공작저로 돌아와서 읽을 수 있도록, 백부님께서 답장을 써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정말 고맙구나, 얘야. 네가 언제 돌아와도 읽을 수 있게끔, 편지를 받는 대로 바로 답장을 쓰겠다. 약속하마.”
에일리히가 감격한 얼굴로 세르펜스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가 제자리로 돌아간 후, 세르펜스는 만년필과 케이스를 아공간 주머니에 고이 넣었다.
“여기, 생일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하셨던 마법 시약이에요.”
이번에는 에드나가 세르펜스에게 선물을 건넸다. 포장지로 감싸는 대신, 간단히 리본만 맨 상자였다.
‘세르펜스가 직접 선물 받고 싶은 물품을 정했다고?!’
남다른 멘트에 모두의 시선이 에드나에게 집중되었다.
에일리히는 그 선물이 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부럽다는 시선을 보냈고, 유지스는 호기심을 보였으며, 알타르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윈스톤은 어째서인가 허망한 얼굴을 했다.
‘선물 고르느라 엄청 고민했나 보네···.’
그렇게 어렵사리 선물을 정했는데, 누구는 아무런 고민 없이 줄 물건이 정해졌다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도 했다.
세르펜스는 그런 윈스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데 바빴다.
상자 안에는 스프레이 형태의 유리병과 스타핑이라고 불리는 종이 완충재로 가득했다.
마법 시약이라는 말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향수로 착각할 뻔했다.
“한쪽 면에만 고루 살포하면 돼요.”
“감사합니다, 에드나 씨.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당최 저 시약의 정체는 무엇이며, 대관절 어떤 물건의 한쪽 면에 뿌리라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에드나의 설명을 바로 이해하고 흡족해하며, 받은 선물을 상자째로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그게 뭔데요?”
“종이의 보존성을 높여주는 시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전 세르펜스가 에드나 씨에게 그런 부탁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당신이 씻으러 방에 갔을 때, 잠시 찾아가서 부탁드렸습니다.”
롤링 페이퍼와 필담을 나눈 종이와 편지 등.
소중한 기록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손을 타서 종이가 해질 테니.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마법 시약을 만들어 달라고 한 모양이다.
“윈스톤 경.”
세르펜스가 기대에 찬 눈으로 윈스톤을 바라보며 그를 호명했다.
다음 타자로 지목된 윈스톤이 굳은 표정으로 선물을 건넸다.
앞서 등장한 선물들은 하나같이 직사각 형태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윈스톤의 선물은 특이하게도 높이가 낮은 원기둥 형태였다.
“···너무 별거 아닌 선물이라, 마음에 드실지 어떠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굳건하던 윈스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이 건넨 선물에 비해 자신의 선물이 볼품없다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선물은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중요한 건데···.’
포장지가 벗겨지고, 윈스톤이 건넨 선물의 정체가 밝혀졌다.
틴 케이스 안에 다양한 맛의 쿠키가 한가득 채워진 종합 쿠키 세트였다.
온갖 간식이 가득한 테이블을 앞에 둔 탓인지, 윈스톤이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지원 사격을 해 줘야겠다.
“이야~! 드디어 세르펜스에게 개인 간식이 생겼네요! 이건 오직 세르펜스만을 위한 거니까, 잘 보관했다가 언제든지 먹고 싶을 때 알아서 꺼내 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되묻는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리고 기대와 걱정, 불안이 한데 뒤섞인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알아서 과자를 챙겨 먹으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마치 계란도 제대로 못 깨는 요리 똥손이 ‘내일부터는 네가 알아서 밥 해 먹고 살아.’라는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세르펜스가 막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언제든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식사 직전이나 밤늦게 먹는 건 안 되겠지만. 뭐어···,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만 질 수 있다면야.”
“그 말씀은 이걸···, 제가 직접 관리하라는 뜻입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윈스톤이 세르펜스에게 선물로 준 걸, 제가 먹으라 마라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내 말을 들은 세르펜스의 시선이 윈스톤에게로 향했다.
윈스톤의 표정이 난감함에 물들었다.
“그냥 세르펜스 님께서 원하실 때 드십시오. 그런 의미로 준비한 선물입니다.”
“으음···. 오늘은 준비된 간식들이 많으니, 나중에 천천히 아껴 먹겠습니다.”
“예, 세르펜스 님께서 그러길 원하신다면···.”
짧은 고민 끝에 세르펜스는 선물 받은 쿠키를 나중에 먹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작 쿠키를 아껴 먹겠다는 그 말에도 윈스톤은 충성스러운 기사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윈스톤은 세르펜스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한없이 진지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그리 뜻깊지 않은 순간이다.
세르펜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틴 케이스 뚜껑을 닫았다.
당장의 아쉬움은 짧았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길고도 커다랬다.
녀석은 이내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종합 쿠키 세트를 아공간 주머니에 보관했다.
“제가 준비한 선물은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알타르가 세르펜스에게 선물을 건넸다.
세르펜스는 예의상 바로 포장을 뜯었다. 책의 정체는 최근에 발간된 신학 관련 서적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교회 다니는 부모님의 친구가 줄 법한 선물이다. 아니면 교회 다니는 부장님이라던가.
물론 교회를 다닌다고 다 이런 선물을 주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런 선물을 주지 않는다.
‘알타르 님은 공작저와 에일리히 님을 지켜주실 분이니까, 선물 센스를 두고 뭐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
더군다나 교단은 공작저에 신성 결계를 펼쳐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저 책은 없는 셈 치더라도.
룩스메아 교단이 세르펜스에게 큰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감사합니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이 책을 읽으며,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겠습니다.”
센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선물에.
세르펜스는 대외 버전 미소를 머금어 알타르의 시선을 제 얼굴 쪽으로 유도한 뒤, 재빨리 책을 아공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알타르는 녀석의 그 성의 없는 손놀림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선물 증정식도 끝났으니, 이제 먹읍시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리고 빵칼을 들고 케이크를 막 자르려고 하자, 알타르가 자신이 하겠다며 나섰다.
내게 이런 걸 시킬 수 없다나 뭐라나?
케이크를 자르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오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대신 일을 해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 같은 건 없다.
알타르가 케이크를 잘라서 접시에 옮겨 담는 동안.
유지스는 오랜만에 화려한 칵테일 제조 기술을 선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구경하며 대충 손을 뻗어 잡히는 쿠키를 입에 넣었다. 아무거나 집었는데도 맛이 훌륭하다.
‘어째 세르펜스가 자라는 속도보다, 주방 시녀들의 제과 실력이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
케이크와 칵테일이 모두에게 돌아갔다.
우리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케이크를 비롯한 디저트들과 칵테일을 즐겼다.
당분과 알코올이 함께 들어오자, 슈거하이와 취기가 동시에 밀려드는 느낌이다.
그런 고양감을 느끼는 게 나뿐만이 아닌지, 에드나가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전에는 정말 당황했어요. 자신의 생일날 보호자에게 선물을 주는 건, 보통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시온 씨는 세르펜스 님의 친부모도 아니고···. 잘 생각해보니 파티 일정을 앞당겼을 뿐. 오늘은 세르펜스 님의 생일도 아닌 거예요. 진짜 이게 뭔가 싶었죠.”
“시온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분입니다. 그러니 제게 있어 그는 친부모 그 이상의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다시 태어난 날도 제2의 생일로 지정해서 챙기시겠어요.”
“······!”
농담으로 던진 에드나의 말을 세르펜스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며,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