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7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77화(677/1105)
677회
76. 공작님과 바다 (2)
* * *
“설마 휴마누스가 음치였을 줄이야···”
“만나자마자 얼굴 보고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음치누스가 너무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진짜로 너무한 건 본인의 노래 실력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내 입에서 음치 소리가 튀어나왔겠는가.
“그보다 배는 구했습니까?”
“지금 말 돌리는 거야?”
“휴마누스가 음치 얘기를 싫어하는 것 같아서 화제를 바꿔 봤는데, 다시 할까요?”
“···됐어.”
휴마누스가 불퉁한 표정으로 단답을 내놓았다.
평소라면 이정도 장난은 가볍게 넘어갔을 텐데. 아무래도 휴마누스 또한 본인의 노래 실력에 내심 큰 충격을 받았나 보다.
다행히도 나는 휴마누스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방법을 하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저는 기뻤습니다. 휴마누스가 저를 위해,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노래를 열심히 불러 주셔서···.”
“그, 그래?”
내게 옆구리를 찔린 세르펜스가 감동했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휴마누스가 금세 기분을 풀고 희희낙락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세르펜스가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스메른 왕국으로 향하는 배편은 확인해 보셨습니까?”
“응, 어제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확인했어. 예약도 해 놨으니까, 내일 오후에 항구로 가서 타면 돼.”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마르가리타 해안 근처의 한 여관이다.
우리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성검 일행이 어제 연락하여, 이곳으로 와 달라고 주소를 알려줬다.
마르가리타 해안이 있는 레리아노 령은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큰 항구로 유명한, 대륙에서 한 손안에 꼽히는 유명 관광지이자 상업 지구다.
돈 많은 귀족도 자주 방문하는 만큼, 제국 수도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고급 여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래 봤자 악숭이들 때문에, 대부분 파리만 날리고 있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속 편하게 관광 올 여행객들이 있을 턱이 없다.
만약 스메른 왕국과 무역을 하기 위해 찾아온 상인들까지 없었다면, 대부분이 아니라 모든 여관이 텅텅 비었을 테다.
여관 주인에게는 안된 일이나, 그 덕분에 우리는 여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지금 우리가 있는 방은 이 여관의 특실로, 방 안에 응접실까지 딸려 있었다.
“휴마누스, 질문 있습니다! 여기에도 신전이 있는데, 어째서 저희에게 여관으로 오라고 하신 겁니까?”
“이 앞을 지나는데, 여관 주인이 제발 여기서 묵어달라고 하도 사정하길래···. 차마 거절할 수가 없더라.”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질문하자, 휴마누스가 머쓱하게 웃으며 답했다.
쉽게 말해 호객 행위에 당했다는 소리다.
우리도 이곳으로 오면서, 이 추운 날씨에 건물 밖에 나와서 덜덜 떨고 있는 여관 주인들을 몇몇 목격했다.
외지에서 온 우리를 발견하고는 어떻게든 자신의 여관에 묵게 하려고 영업하는데, 거절하느라 혼났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미리 숙소를 잡아놨다고 하니까, 다들 얼마나 실망하던지···.’
악숭이들 때문에 온 대륙이 난리다.
다른 차원에서 온 나도 대륙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건만. 놈들은 대체 뭐가 문제길래 나고 자란 대륙을 망치는 데 솔선수범하는 걸까?
–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서 식사를 가져왔다는 말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높여 들어오라고 말하자 여관 직원이 서빙 카트를 밀면서 들어왔다.
대략 10대 후반쯤 되었을까? 들어오면서 봤던 여관 주인과 얼굴이 닮은 것으로 보아, 그자의 아들인 듯하다.
카트 위에는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가득했고, 그것을 테이블 위로 옮기는 직원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만발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돈 많은 단체 손님이 무척이나 반가운가 보다.
“저쪽에 있는 호출용 줄을 잡아당기시면, 제가 잽싸게 올라올 테니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직원이 싹싹하게 말하고는 빈 서빙 카트를 끌고 방 밖으로 나갔다.
이래저래 쓸데없는 말을 붙이지 않아서 좋다.
“아, 참. 세르펜스, 네 생일 선물 말인데. 취향에 안 맞는 물건을 줘 봐야 안 쓸 것 같아서 그냥 무난하게 케이크로 샀어. 이따 다 같이 먹자.”
휴마누스가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나눠 쥐고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고기를 썰었다.
서운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다.
“벽난로에 장작을 많이 넣어서 그런가, 따뜻하다 못해 좀 덥네? 먹는 데 방해되기도 하고, 이제 망토를 좀 벗어야겠다. 세르펜스도 벗을래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혼잣말을 과장되게 떠들어대면서 망토를 벗었다.
내 의도를 파악한 세르펜스도 자리에서 일어나 망토를 벗어 나에게 건넸다.
그러자 망토에 가려졌던, 녀석의 가는 허리에 두른 하얀 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택의 날 이전,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생일에 선물했던 물건이다.
당시 휴마누스는 세르펜스가 성검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검대를 선물했고, 성검의 선택을 받지 않은 세르펜스는 그것을 방치했다.
그러다가 휴마누스가 끔찍한 노래 실력을 선보이고 난 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세르펜스는 착용하고 있던 검대를 풀고 휴마누스가 선물했던 검대로 교체했다.
‘줄곧 까먹고 있다가 휴마누스에게 생일을 축하받고 나서야 떠올린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그것이 나왔다는 건, 세르펜스가 직접 챙겨 넣었다는 뜻이다.
언제 넣은 건지 정확히는 몰라도 휴마누스와 진짜 친구가 되기 이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였다면 아공간 주머니에 넣는 대신 착용하고 다녔을 테니까.
“어···? 너, 그거···!”
자신이 선물한 검대를 알아본 휴마누스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세르펜스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 어어···?!’ 하는 소리만 냈다.
세르펜스가 그것을 착용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머리가 먹통이 되었나 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실웃음을 머금고 다른 일행들에게도 망토를 받았다.
내가 방 한구석에 있는 옷걸이에 망토를 걸어놓고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휴마누스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휴마누스가 선물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성검이 아닌 다른 검을 걸어두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름 어울리지 않습니까?”
세르펜스가 검대에 매인 검을 흘깃 눈짓하고는 시선을 옮겨, 휴마누스를 향해 싱긋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 으응! 굉장히 잘 어울리네!”
휴마누스의 말대로, 세르펜스의 은백색 세검과 하얀 검대는 처음부터 한 세트였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세르펜스는 휴마누스에게 고맙다고 대답해준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선우, 그 장신구는 못 보던 거다?”
푸로르가 빵을 입으로 뜯어 먹으며, 내 옷에 달린 카네이션 부토니에에 관심을 보였다.
아니, 사실 관심이랄 것도 없다.
가림막이 되어주었던 망토를 벗은 지금,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무진장 눈에 띄었으니까.
“제가 살던 곳에서는 부모님이나 스승님께 감사의 의미를 담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는 풍습이 있거든요. 세르펜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이 시들 수 없는 꽃이 시들 때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나 뭐라나? 그런 말을 하면서 선물해 줬습니다. 그냥 생화 한 송이었어도 충분히 기뻤을 텐데, 얘가 이렇게 생각이 깊고 효심이 지극한 아이입니다.”
설명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튀어나왔다.
푸로르가 대단하다며 혀를 내둘렀고, 리에나는 온화한 미소를 지었으며, 아니마는 수첩을 꺼내 들고 무언가를 메모했다.
세르펜스 말고도 효심이 깊은 아이가 이 자리에 한 명 더 있었다.
“그나저나 배가 내일 출발하는 거면 오늘 하루는 그냥 붕 뜬 거죠?”
나는 스테이크의 가니쉬로 나온 완두콩을 조심스레 포크로 떠 올리며, 화제를 바꿔 질문했다.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질문을 했는지 눈치챈 유지스가 조용히 눈을 반짝였다.
“그 배편도 운 좋게 겨우 구한 거야. 스메른 왕국에 수출하는 품목은 거의 생필품인 반면. 수입해오는 건 사치품이 대부분인데, 요즘 대륙 내 생필품의 수요가 부쩍 높아졌거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사재기해 놓고 보는 거지. 안 그래도 관광객이 없어서 여객선도 못 띄우는데, 교역까지 뜸해져서 스메른 왕국으로 향하는 배가 거의 없대.”
휴마눈새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악숭이들 때문에 사람들이 배를 띄우려 하지 않는다는 말을 길게도 늘어놓았다.
이런 시기에도 보석이 덕지덕지 달린 장신구를 주문 제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몰랐는데.
대륙 경제도 꽤 위태위태한가 보다.
‘그냥 오늘 하루는 바다 구경이나 하면서 놀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다.
나는 완두콩을 우물우물 씹으며, 악숭이의 유해함에 진저리쳤다.
유지스도 눈을 빛내길 멈추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스파라거스를 질겅질겅 씹었다.
“항구에서 놀고 있는 배들이 많으니까, 주인을 찾아서 웃돈을 주고 당장 배를 띄워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그렇게 하는 게 나으려나?”
배 하나를 전세 내서 띄우자는 소리다.
세르펜스만 그런 줄 알았는데, 휴마누스도 돈을 펑펑 써대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과연 황태자다운 씀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다까지 왔으니까 좀 놀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역시 그러는 게 낫겠네요.”
세계수가 내준 미션은 되도록 빨리 해치울수록 좋았다.
노는 건 그다음에 해도 된다.
휴마누스라면 첫 번째 용사의 무구에 이전 회차의 기억을 엿보는 기능이 생기자마자, 바로 시도할 게 뻔하다.
그러고 나면 이래저래 머리가 아프겠지.
그때 정신 건강을 위해 휴식을 제안하며 놀면 될 것 같다.
‘좋아, 완벽한 계획이야!’
게다가 바닷가는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서 스메른 왕국의 섬에 도착하면 사방이 바닷가다.
용사의 무구에 기능을 추가하는 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오래 걸린다면 우리는 그동안 섬의 바닷가에서 놀면 된다.
‘육지에 딸린 해변도 좋지만, 역시 섬이 더 예쁘겠지?’
생각을 거듭할수록, 오늘 당장 배를 타고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때.
“그럼 큰 여객선을 빌릴까? 가는 동안 갑판 위에서 놀면 되잖아.”
휴마누스가 끝내주는 의견을 제시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다.
그냥 배도 아니고 큰 여객선을 통째로 빌리자는 그 발언에, 에드나가 아찔하다는 듯 창백해진 얼굴로 헛숨을 들이켰다.
“에드나 씨, 놀라지 마세요! 저 사람 저래 봬도 제국의 황태자입니다! 돈이 넘쳐요!”
“그, 그렇겠죠. 알고는 있었는데···. 정말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네요.”
“다른 세상 사람은 휴마누스가 아니라 접니다.”
나와 에드나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휴마누스가 하하하 웃었다.
우리가 콩트라도 나누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저번에 왔을 땐 항구의 배가 모두 망가져 버린 터라, 급하게 근처 호수에 떠 있던 작은 배를 구해다 타서 엄청 아쉬웠거든.”
“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해했어요!”
휴마누스는 제국의 황태자로 귀하게 자랐다.
악숭이들이 본격적으로 판을 치는 건 선택의 날 이후겠지만, 그 이전에도 자잘한 수작질은 계속해 왔다.
그렇기에 그가 제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없었다.
‘성검의 선택을 받아서, 그것의 주인이 되기 전까지는···.’
[성검의 주인]에서 그가 난생처음 배에 올라타고 얼마나 신기해하며 즐거워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그런데 이번에는 마왕 때문에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남의 인생 첫 뱃놀이 추억을 망쳐 놓다니, 아주 못돼먹은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