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7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80화(680/1105)
680회
76. 공작님과 바다 (5)
세르펜스가 큼직한 조각을 받아 갔음에도, 남은 케이크는 여전히 커서 8명이 나눠 먹기에 충분했다.
내 몫으로 배분된 케이크 조각도 어지간한 조각 케이크보다 컸다.
그래도 기념품점과 음식점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닌 덕분에 살짝 허기가 져서,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때, 맛있어?”
모두에게 케이크를 나눠준 휴마누스가 기대에 찬 눈으로 세르펜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휴마누스의 물음에 바로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르펜스는 무척이나 예의 바른 아이라서, 모두가 케이크를 받을 때까지 침만 꼴깍 삼키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르펜스가 서둘러 포크를 집어 들고, 옆 날로 케이크를 한입 크기로 잘라냈다.
그리고 잘라낸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서 자신의 입으로 옮겼다.
맛을 음미하는 건지, 녀석은 턱을 느릿하게 움직이며 입안으로 들어온 케이크를 꼭꼭 씹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횟수가 더해질수록 씹는 속도가 빨라지고 눈이 크게 뜨였다. 누가 봐도 맛있어하는 표정이다.
마침내 꿀꺽하고 녀석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상큼하면서도 달콤해서···. 무척이나 맛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휴마누스.”
입안의 음식물을 삼킨 후에야, 세르펜스가 빙그레 웃으며 휴마누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녀석의 웃음을 마주한 휴마누스도 기분 좋게 웃었다.
나는 훈훈한 그 장면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휴마누스와 마주 보고 웃다니! 정말 친한 친구가 되었구나?!’
세례명까지 주고받았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마는.
데면데면 지내던 기간이 길었던 탓인가, 괜스레 감동이 밀려들었다.
“선우도 어서 드셔 보십시오.”
내가 감동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멀뚱히 앉아만 있자, 세르펜스가 빨리 자두 업사이드 케이크를 먹어보라며 권유했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휴마누스의 얼굴에 뿌듯함이 떠올랐다.
일순, 세르펜스의 시선이 휴마누스를 향했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검대를 오래 방치한 것 때문에 미안해서, 일부러 이번 선물이 마음에 든다는 티를 팍팍 내는 건가?’
그래도 맛있다는 말은 진심이었을 테다.
케이크를 먹으며 눈을 빛내던 그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도 포크를 들어 케이크를 한입 맛봤다.
식사 전에 단것을 많이 먹으면 밥맛이 떨어질까 걱정했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새콤달콤한 게 오히려 입맛을 돋웠다.
“이야~! 이런 곳에서 티타임을 갖는 것도 제법 운치 있고 좋네요! 바닷바람도···. 어? 왜 바람이 하나도 안 느껴지지?”
“방음 마법을 칠 때, 바람을 막는 기능도 넣었어요. 너무 추운 것 같아서···. 혹시 별론가요?”
내 혼잣말에 가까운 질문에 에드나가 대답했다.
어쩐지 배가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고 있는데도 안 춥더라니.
나는 바다를 보면서 티타임을 즐기고 싶은 거지, 추위에 덜덜 떨면서 생존을 위한 열량 섭취 느낌으로 케이크를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런 고로 에드나의 센스를 칭찬해주기로 했다.
“당연히 별로가 아니죠! 최곱니다!”
“우리 언니야가 최고긴 하지!”
어째서인가 에드나를 칭찬하는 말에, 아니마가 콧대를 세우며 으스댔다.
에드나만 아니마 자랑에 열을 올리는 줄 알았건만. 아니마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하긴, 부모만 자식을 자랑하는 게 아니지.’
자식도 부모를 자랑한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부모가 세상 그 누구보다 대단해 보이기에, 그들의 부모 자랑은 부모의 자식 자랑보다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세르펜스만 해도 은연중에 내 자랑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얼굴에 너무 금칠해대서 부담스러울 정도였지···?’
나는 무심코 옆에 앉은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먹던 것을 잠시 멈추고 입을 열었다.
“선우는 에드나 씨처럼 물리적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마음에 스며든 추위는 물리칠 수 있습니다. 육체가 느끼는 추위는 옷을 껴입고 불을 때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으나, 마음이 느끼는 추위는 그리할 수 없으니. 선우가 더 최고입니다.”
정정한다.
녀석은 내 시선을 느끼고 입을 연 게 아니라, 아니마에게 나의 대단함을 알리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이 자식은 아직도 성검 일행 앞에서 내숭을 떨고 있었을 터.
그런데 보호자 자랑에 경쟁심을 느끼고 배틀을 신청하다니.
굉장히 당황스럽다.
“갑자기 그런 소리는 왜 하시는 겁니까?”
“저자···. 아니, 아니마 씨께서 선우의 대단함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세르펜스가 우물쭈물 내 눈치를 살폈다. 지금 자신이 혼나고 있는 줄 아나 보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잘도 했다.
피보호자 위치에 있는 아니마가 자꾸만 자신의 보호자인 나와 맞먹으려 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 우리 언니도 마찬가진걸? 그러니까 우리 언니가 더 대단해!”
잠시 내가 이마를 짚으며 두통을 호소하는 사이, 아니마가 배틀 신청을 수락해버렸다.
에드나의 얼굴에도 당황이 번졌다.
“물론 나도 대단하지만, 선우 씨도 정말 훌륭한 분이셔.”
“세르펜스는 알고 있죠? 에드나 씨가 멋진 보호자라는 거.”
우리 둘은 각자의 피보호자를 잘 달랬다.
이 피보호자들은 자신의 보호자를 무척이나 따랐으므로, 자랑 배틀을 중단하고 금세 얌전해졌다.
그렇게 찾아온 침묵 사이로, 푸로르가 목소리를 냈다.
“에···, 그러니까. 선우는 세르펜스 나리에게 있어, 우리 꼬맹이네 언니야랑 비슷한 위치에 있는 거야?”
“대충 그런 느낌이죠?”
“어쩐지, 좀 그런 것 같기는 했어. 저번에 세르펜스 나리께서 ‘백부님의 조카’ 어쩌고 했던 것 하며, 성직자 연기할 때도 묘하게 진심이 담긴 듯한 게···. 그래도 설마설마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마음을 다해 정성스럽게 키웠어요.”
“응, 그냥 물어보지 않은 거로 할게.”
푸로르가 쌈박하게 질문을 철회했다. 내게 제대로 설명할 의사가 없다는 걸 바로 알아챈 걸 테다.
나는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세계수 잎 차를 홀짝였다.
“아 참. 세르펜스, 저택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 대련하며 지낸 거지? 성과는 있었어?”
이 말을 꺼낸 사람이 휴마누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위기 전환을 하려고 일부러 새로운 화제를 꺼낸 건가 싶어 고마워했을 텐데.
하필이면 그가 휴마누스라서, 눈치 없이 떠오른 말을 그냥 내뱉은 것처럼 느껴졌다.
“예, 어느 정도는···. 마지막 대련에서는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끝내긴 했는데, 이게 제 실력이 상승한 증거인지. 아니면 두 분의 움직임이 익숙해진 탓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자랑은 당당하게 했으면서.
정작 자신의 성취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세르펜스는 굉장히 멋쩍어했다.
두 명을 상대로 완승을 거둬 놓고 왜 저리도 자신 없어 하는 건지 의문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지, 휴마누스도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듯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분명 나아졌을 거야.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제까지 네 검술을 볼 때마다, ‘저기서 더 발전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이상의 가능성이 네게 있더라고. 너는 ‘그 세르펜스’를 못 봐서 모르겠지만···.”
에드나표 방음 마법을 믿고, 휴마누스가 ‘성검펜스’에 관한 얘기를 입에 올렸다.
그에 성검펜스가 몸을 차지했을 당시의 기억이 있는 세르펜스가 얕은 침음을 흘렸다.
대체 그 반응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돌연 휴마누스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양손을 크게 내저었다.
“아! 그렇다고 네게 그 시기의 기억을 보고, 그때의 경험을 흡수하라는 뜻에서 한 말은 절대 아닌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 짓을 하기 위해, 지금 스메른 왕국으로 향하고 있는 거면서.
자신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휴마누스를 보며 세르펜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르펜스는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다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으음···. 그건 그렇고, 비행 실력은 많이 느셨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이제는 비행 중에도 전력의 90% 정도는 끌어낼 수 있어.”
“그럼 앞으로는 비행의 이점을 살려, 120%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을 목표로 합시다.”
“너는 그게 돼?!”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살도록 태어났는데, 공중에서 평소 실력 이상을 끌어내라니.
태생의 한계를 무시하는 세르펜스의 말에 휴마누스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저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래서 휴마누스와 함께 노력해 나가고자 하는데···. 안 됩니까?”
“안 될 리가! 그래, 같이 열심히 노력해 보자!”
휴마누스가 서운해하는 세르펜스의 연기에 넘어가, 태생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케이크를 먹으며 대화를 주고받기를 삼십여 분.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기울어져, 하늘을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다 먹었으면 모두 일어나세요! 해 떨어지는 거 금방입니다!”
바다에서 보는 석양이라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내가 부산을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세르펜스가 한 입 남은 케이크 조각을 얼른 먹고 따라서 일어났다.
나는 녀석을 데리고 배 난간에 붙었고, 다른 일행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왔다.
바람 차단 기능이 붙은 방음 마법 범위를 벗어나자마자, 소금기 어린 습한 바람이 전신을 쓸고 지나갔다.
한순간에 덮쳐온 추위에 부르르 떠는 것도 잠시뿐.
“와···!”
난간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 바다에 놀러 갔을 때, 일출이나 일몰을 한 번도 안 봤던 건 아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보는 것과 바다에서 보는 건 달랐다.
시야 가득 들어찬 황홀한 장관에, 나는 추위를 잊고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붉은색과 하늘색이 뒤섞여 일렁일렁 시시각각 변화했다.
석양빛이 물결마다 스며들어, 보랏빛으로 물든 바다 위를 조각조각 떠다녔다.
실로 화려하고도 장엄했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세르펜스가 이 아름다운 광경을 잘 보고 있는지 확인했다.
시야에 들어온 건 녀석의 옆얼굴이다.
본디 초록색이나, 붉은빛이 반사되어 묘한 색을 띤 눈동자가 저 먼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하나로 묶은 긴 머리칼이 바람을 타고 공중에서 물결쳤다.
‘아까는 바다를 본체만체하며 내 기분을 살피느라 바쁘더니···.’
다행이다.
내가 온전히 바다를 즐기는 듯 보이자, 이제야 안심하며 석양이 드리워진 바다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나 보다.
하지만 너무 빤히 쳐다본 탓인가, 녀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세르펜스가 입을 열기 전. 나는 재빨리 선수를 쳤다.
“어때요, 예쁘죠?”
“네. 당신이 말했던 바다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 녀석의 얼굴은 석양빛 덕분인지, 평소 이상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유지스가 보면 좋아할 텐데.
애석하게도 그녀는 석양으로 물든 바다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도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천천히 바다에 잠기어 갔다.
그렇게 태양이 반쯤 가라앉았을 때.
“어?!”
어둠이 세상의 모든 빛을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가슴 가득 벅차올랐던 감동이 불쾌한 메스꺼움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당황하여 눈을 몇 번 깜박이자, 태양이 윗부분까지 바다에 잠기는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한껏 들떴던 기분이 한순간에 고꾸라져 버리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방금 그거···.”
“네, 악마가 소환된 징후입니다.”
휴마누스와 세르펜스의 짧은 대화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를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해서는 안 되겠지.
나는 바짝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난간을 붙잡은 손에 의식적으로 힘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