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8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82화(682/1105)
682회
76. 공작님과 바다 (7)
“그럼 다녀올 테니, 조심하십시오.”
세르펜스가 악마와 싸우러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말하며, 내게 조심하라는 말을 건넸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랑 같이 가!”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휴마누스와 윈스톤이 동시에 나섰다.
세르펜스의 시선이 빠르게 두 사람을 훑었다.
윈스톤은 갑옷을 입지 않았고, 휴마누스는 갑옷을 입고 방패까지 들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녀석의 눈길이 향한 곳은 윈스톤이 있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같이 갈 사람을 고른 건 아니었다.
“경께서는 배에 남아 모두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예, 명을 받들겠습니다.”
따라오지 말라는 소리에도 윈스톤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세르펜스가 자신을 믿지 못하여 데려가지 않겠다고 한 게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랑 세르펜스가 바닷속에 들어가서 악마를 끌어낼게. 나머지는 놈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둘 수단을 강구해 줘.”
자연스럽게 세르펜스와 함께 갈 멤버로 뽑힌 휴마누스가 바다에 뛰어들기 전, 일행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 내용이 적절하다고 여겨졌는지, 세르펜스는 별다른 말 없이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 봤자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안경을 벗는 것뿐이었지만.
“당신이 맡아주십시오.”
세르펜스가 안경을 손에 들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얼굴에 냅다 씌워버렸다.
그러고는 바로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내가 무슨 안경 거치대냐···?’
어이가 없었지만, 화분 거치대보다는 안경 거치대가 낫다.
양손이 자유롭고 무겁지도 않다는 점에서. 만약 화분을 맡겼으면, 지금처럼 난간도 붙잡지 못했으리라.
“그럼 나도 다녀올게!”
휴마누스가 갑옷을 착용한 채로 난간을 넘어 바다에 뛰어들었다.
일견 위험해 보였으나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은 아닐 테다.
갑옷이 용사의 무구가 되면서, 입고 자도 될 정도로 가볍고 편해졌다는 내용을 [성검의 주인]에서 읽었으니.
적어도 갑옷 때문에 가라앉는 일은 없겠지.
두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에나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악마가 배를 공격하지 못하게 잘 막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흔들림은 여전했다.
물 밑에서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고 있을 테니, 아마도 그 충격파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울렁거리는 속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바다를 노려보았다.
이제야 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보다 바다는 더 빨리 밤을 맞이했다. 새까매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뜻이다.
짙푸르다 못해 검정색으로 보이는 바닷물 속에서 금빛과 은빛 신성력이 일렁거렸다.
그 빛마저 내 시야에 닿는 곳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닌지라,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심지어는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숨을 쉬러 물 위로 틈틈이 올라오긴 하는지,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윽···.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까, 더 토할 것 같아···.’
뱃멀미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겠지만, 정말 죽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바닷속에 세르펜스가 있는 만큼 웬만하면 속을 게워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꾹 참고 있기는 한데 얼마나 더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온 씨도 띄워 드릴까요?”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마력 아끼셔야죠.”
보다 못한 에드나가 마법으로 몸을 띄워 주겠다고 제안해 왔지만, 거절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안정감 있는 바닥이지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이 아니다.
또한.
‘악마가 바다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붙잡아 두려면, 역시 마법을 써야겠지?’
그러나 악마가 얌전히 붙잡혀 줄 리는 만무했다.
놈이 거세게 저항하면, 마법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풀려버릴 터.
그럼 에드나와 아니마는 몇 번이고 마법을 중첩해서 걸어야 하겠지.
“정 못 버티겠다 싶으면, 나중에라도 말씀해 주세요.”
에드나가 걱정된다는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아니마와 함께 악마를 묶어두기 위한 마법진 구축에 몰두했다.
나도 에드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신성력의 빛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내가 보지 못하는 방향에서 싸우고 있는 거겠지···?’
머리로는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못내 불안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건, 세르펜스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24시간 끼고 살던 아이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고 치자.
얼마간은 홀가분하고 편할지 몰라도, 아이의 빈자리를 느끼는 순간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특히나 아이가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면 더더욱 그러할 테다.
애가 잘 지내고 있는지. 내가 보고 싶어서 엉엉 울다가 탈진이라도 하는 건 아닐지.
행여나 선생님이 다른 아이를 챙기는 사이,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닐까.
그렇게 온갖 걱정으로 불안해하다가.
하원 할 시간이 되어, 아무 일 없이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이를 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으리라.
안전한 어린이집에 보내도 이러할진대, 세르펜스는 위험한 바닷속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악마와 싸우고 있다.
그리고 녀석은 얼마 전, 쌍둥이 악마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번에 소환된 악마는 하나뿐이라지만, 전장은 숨을 쉬는 것조차 불가능한 바닷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을 편히 먹을 수 있겠어?!’
배의 흔들림을 통해 전투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만큼.
녀석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 그 어느 때보다 와닿았다.
‘만약 내가 아까 세르펜스의 제의를 받아들여 선실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곳을 박차고 나오지 않았을까?’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행여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닐지 걱정되어서.
가만히 있지 못했을 테다.
‘세르펜스가 바다에 들어간 지 얼마나 지났지?’
멀미가 심하면 빨리 탑승물에서 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져, 1분이 10분처럼 느껴지게 된다.
거기에 더해 불안감까지 가슴에 얹혔으니.
내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못 믿겠다.
– 촤악─!
갑자기 바닷속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튀어나왔고, 뒤이어 거대한 형체가 솟구치는가 싶더니 쾅 하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거대한 형체가 솟구쳤을 때.
바닷물이 딸려 올라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배를 덮친 까닭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바닥이 출렁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난간에 매달렸다.
그리고 1초, 2초, 3초.
아무리 기다려도 머리 위로 바닷물이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신성 결계 위로 물방울이 미끄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갑판에는 물이 흥건했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비 올 때 신성 결계를 우산 대용으로 쓰면, 신성 모독으로 잡혀가려나?’
이런 한가로운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물이 맺힌 결계 너머, 바다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형체를 자세히 살폈다.
작년에 보았던 거대 지렁이를 연상케 하는 미끈하고 길쭉한 형태에, 동그랗고 납작한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것은 어딜 어떻게 봐도 빨판이 달린 두족류의 다리 같았다.
“언니, 저거 아무리 봐도 신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 같은데 잡아두는 의미가 있을까?”
지금이 전투 중이기 때문일까?
아니마가 혀 짧은 소리를 포기하고 알아듣기 편한 발음을 구사했다.
“일단 잡아서 끌어 올리자!”
촉수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려 하자 에드나가 다급히 외쳤다.
두 마법사가 준비해뒀던 마법진을 동시에 발동시키자, 촉수의 움직임이 덜컥 멈췄다.
바다에서 촉수가 뽑혀 나오듯 끌려 올라왔다.
이대로 순조롭게 악마를 바닷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건가 기대해 보았으나.
– 첨벙!
갑자기 촉수가 중간에서 뚝 끊기더니 몸체와 연결된 부분이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마뱀이 위급 상황에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다면, 문어는 다리를 자르고 도망친다던데.
생긴 것만 두족류의 다리 같은 게 아니라 기능도 비슷한가 보다.
‘설마하니 악마가 아니라 문어 마물이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전체 모습을 다 봐야 저게 악마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텐데.
촉수 하나만 보고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굉장히 징그럽다는 거다.
“시온 씨, 이거 어떡하죠?!”
마법에 붙잡혀 허공에 고정된 잘린 촉수가 꿈틀거리며 몸부림쳤다.
나도 모르겠다. 저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악마의 것이든 마물의 것이든.
신체 일부이니 정화를 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리에나는 배를 보호하느라 다른 데 기운을 뺄 여유가 없다.
“그냥 버려, 어차피 마기는 전부 본체 쪽으로 흘러 들어가서, 빈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대답이 들린 것은 하늘 위였다.
어째서인가 바닷속에 들어갔던 휴마누스가 날개를 펼친 채, 하늘 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 아까 그 쾅 하는 소리는 휴마누스가 휘둘러진 촉수에 맞아서 날아가는 소리였구나?!’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한 걸 보면 방패로 잘 막았나 보다.
휴마누스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아직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세르펜스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세르펜스는요?”
“방금 저쪽에서 숨 쉬고 다시 들어갔어.”
휴마누스가 손가락으로 바다 어딘가를 가리켰다.
바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지만, 녀석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생각보다 놈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게 힘드네···.”
“휴마누스, 뭐 해요?”
“잠시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야.”
휴마누스가 날개를 퍼덕거려 제자리 비행을 하며, 끙끙 골머리를 앓았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나는 초조해졌다.
“세르펜스가 혼자서 촉수와 싸우고 있는데 도우러 가지 않아도 돼요?!”
“응, 그렇게까지 무력이 강한 놈은 아니라서.”
“그런데 왜 아직도 결판이 안 납니까?”
“촉수가 너무 많아. 그리고 재생 속도가 너무 빨라. 촉수는 아무리 잘라도 계속 다시 자라나고, 그것을 피해 어렵사리 몸통을 공격해도 바로 회복해 버리더라.”
그냥 많은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거라면, 팔각목이나 십각목 레벨이 아닌가 보다.
악숭이들이 두족류 마물을 여럿 구해다가, 모든 다리를 한 마리에 몰빵 이식해버린 게 아닌 이상.
아니, 애초에 신성력이 담긴 공격을 바로 회복하는 건 마물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금 바닷속에서 세르펜스가 상대하고 있는 놈은 악마가 분명하다.
‘그것도 중상급 수준의···.’
악마의 등급은 그 외형을 보면 알 수 있다.
최하급의 악마는 인간의 형태도 제대로 못 갖춘 얼간이들이라고 보면 된다.
대표적인 예시가 암흑가의 연기 악마다.
하급은 인간형에 가깝지만, 약간 다른 부분이 존재한다.
볼타 산맥에 나타났던 박쥐 날개가 달린 인간 형태의 악마처럼.
같은 날 소환되었으나 한 번도 목격되지 않고, 지금 이 시각까지 행방이 묘연한 세 번째 악마.
그리고 휴마누스가 공국 전쟁 도중 해치운 악마도 소환된 시기상 이 부류에 속할 테다.
중급의 경우, 다시 인간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등에는 박쥐 날개를 달고 팔에는 맹금류의 다리 같은 게 붙은 쌍둥이 악마처럼.
인간 형태의 비중이 확 줄어들고 이것저것 섞인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하급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지닌 힘의 차이가 극명해서 중급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중상급의 경우, 다른 등급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인 특징이 두 가지 있었으니.
첫째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둘째는 인간과 100억 광년쯤 동떨어진 것 같은 괴이한 모습이라는 점이다.
내가 살던 세상의 신화 속 가상의 존재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악마보다는 크툴루나 크리처 쪽에 가까운 외형이다.
그러다가 상급 이후부터는 다시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악마의 생김새가 등급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것에 관하여.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통념은 악마가 실은 ‘인류’였다가 타락하여, 마왕의 힘에 의해 오염되고 뒤섞인 존재들이라는 설이다.
여기서 ‘인류’는 그냥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과 엘프, 드워프, 메로우.
그리고 머나먼 과거, 대륙에 존재했었다는 기록만 남아있는 제삼의 이종족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타락하는 과정에서 마기를 다루지 못하여 자신의 형체를 잃어버린 최하급. 유지하는 데 성공한 하급.
더 많은 양의 마기를 받아들여 이것저것 혼재한 상태가 되어버린 중급.
거기서 더 나아가,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중상급.
그리고 폭주하는 기운을 다스리는 데 성공한 상급과 완벽하게 마기와 일체화된 최상급.
이는 어디까지나 악마들이 ‘악마’라는 하나의 종족으로 존재한 것이 아닌.
여러 인류가 다른 것들과 뒤섞인 존재라는 설에 기반한 가설이지만, 제법 신빙성이 있다.
‘마왕과 악마는 원래 가나안 대륙이 있는 이곳, 중심계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룩스메아에 의해 마계로 쫓겨난 것이기도 하고. 세상의 균형을 위해 천계로 자진 이주한 드래곤도 이곳에서는 천사로 분류되니까···.’
악마와 천사는 애초에 ‘종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