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8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90화(690/1105)
690회
76. 공작님과 바다 (15)
“부, 부스러지는 건 너무···, 과장된 거 아닙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정도로 그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악마가 죽어가면서 힘이 빠진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니었다면···?”
“···자세히 듣고 싶나?”
세르펜스가 목소리를 내리깔며 은근하게 말했다.
나는 휴마눈새와 달리 눈치라는 게 있는 사람인지라 고개를 도리질 쳤다.
유지스만 해도 내 목뼈를 한 손으로 꺾을 수 있는 악력을 지녔다는데, 중상급 악마의 촉수가 조르는 힘은 오죽하겠는가.
녀석의 말대로 악마가 멀쩡했을 때 붙잡혔다면.
‘상상하지 말자, 상상하지 말자···.’
그렇게 속으로 몇 번을 되새겨도, 안 좋은 상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래서일까?
욱신거리긴 했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했던 고통이 점차 강해지는 것 같다.
“갑자기 더 아파지기라도 한 모양이지?”
“···네.”
“그럼 고집부리지 말고 당장 치료를 받아라. 뼛조각이 제 위치에서 벗어나면 치료하기 힘들어진다. 고통도 더 커질 테고.”
촉촉하게 젖어 든 녹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노라니, 세르펜스의 입에서 나오지도 않은 ‘제발’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웅웅 울리는 듯했다.
녀석은 내 의사를 무시하고 치료를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나를 차근히 설득했다.
동의 없이 멋대로 치료를 강행했다가, 내게 미움이라도 살까 봐 이러나 싶다.
“그, 그럼 휴마누스를 불러주세요.”
“치료할 때 뼈 위치를 잘못 맞추면, 평생 다리를 절거나 뼈를 부수고 다시 치료해야 할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휴마누스의 신성력은 건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비실거리는 두 명보다, 온전한 전력을 갖춘 한 명이 더 든든하죠!”
나는 휴마누스에게 치료받는 것을 빠르게 포기했다.
그가 치료 계통으로도 신성력을 잘 사용할 수 있게끔 열심히 노력한 것은 안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부러진 뼈를 붙이는 연습을 얼마나 해 봤겠어?’
그것도 그냥 똑 하고 부러진 게 아니라, 조각조각 부스러졌을 거라는데.
아까 갑판 위에서, 휴마누스는 자신이 치료할 수 있다는 듯 말하긴 했지만.
그는 세르펜스처럼 내 다리를 자세히 살펴본 것도 아니고 밤이라 어두웠으니. 뼈가 부러졌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괜히 불렀다가 휴마누스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이 나와서, 세르펜스가 치료하게 된다면.
휴마누스는 자신 때문에 세르펜스가 무리하게 된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처음부터 세르펜스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치료하는데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그동안 젖은 옷을 계속 입고 있으면 감기에 걸릴 테니, 옷부터 갈아입는 게 좋겠다.”
세르펜스가 내 상체에 감겨있는 담요를 풀어내며 말했다.
신성력을 불어넣자마자 뿅 하고 바로 낫는 게 아닌가 보다.
“나는 부서진 뼛조각의 위치와 그 주변의 신경을 파악해 두겠다. 바로 치료하는 건 아니니 조금은 뒤척거려도 괜찮지만, 되도록 큰 움직임은 삼가도록 해라.”
내가 느끼는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덜어주고 싶었던 걸까?
나에게는 옷을 갈아입으라고 권했으면서.
정작 자신은 옷 갈아입을 시간도 아깝다는 듯, 녀석은 거치적거리는 망토와 재킷만 벗어서 부서진 가구 위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질끈 동여맸다.
“그럼 손을 올리겠다.”
“윽!!”
예고를 들었다고 해서 고통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아까처럼 비명을 내지르지는 않았지만, 잇새로 소리가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세르펜스가 내 발목에 조심스레 손을 얹은 채, 힐끗 곁눈질로 내 안색을 살폈다.
손을 막 가져다 댔을 때만, 잠깐 큰 고통이 밀려들었을 뿐.
조금 기다리니 녀석의 손이 닿기 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해주려는데, 세르펜스가 먼저 눈을 꾹 감아버렸다.
찌푸려진 미간과 꽉 다물린 입술이 마치 고통을 억누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만큼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게 힘겹다는 거겠지···.’
녀석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려던 말을 삼켰다.
조심스럽게 망토를 벗어서 바닥에 던지자, 얼마나 물을 많이 머금었는지 ‘철퍼덕!’ 하고 묵직한 소리가 났다.
다리를 움직이다가 뼈 위치가 이상해지면 안 되니까, 벗은 건 상체에 걸치고 있던 옷들뿐이다.
그런데도 그것들을 벗어 던지고 나니 몸이 한결 가뿐해졌다.
젖은 옷이 매우 무겁긴 무거웠나 보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어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냈다.
그러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 데도, 몸에 소금기가 남아 있어서 버석버석 껄끄러운 느낌이 났다.
치료를 받고 나면 수건에 물을 묻혀서 다시 한번 몸을 닦아내고, 또 한 번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다 갈아입은 건가?”
“하의는 못 갈아입으니까, 일단은 그런 셈이죠?”
내 대답에 세르펜스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두툼한 겨울 이불을 꺼내어 내게 둘러주었다.
하의는 여전히 젖어있고 소금기 때문에 찝찝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상의만이라도 마른 옷을 입고 이불로 몸을 감싸니 포근함이 느껴졌다.
“선우.”
녀석이 매트리스 위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있는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평소보다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왜요?”
“최대한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긴 하겠지만···. 완전히 신경을 피해서 뼈를 맞추는 건 불가능하다.”
“···예?”
내가 신성력을 너무 만능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조금 전 녀석은 뼛조각이 제 위치를 크게 벗어나면 치료하기 힘들어진다는 말 뒤에, ‘고통도 더 커질 테고.’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당장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뼛조각이 주변 신경을 눌러서 지금보다 더 아파질 거다.’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 뜻은 ‘뼛조각을 더 많이 움직여야 하니, 그만큼 고통도 커질 거다.’였다.
“···세르펜스가 절 기절 시켜도, 고통 때문에 다시 깨겠죠?”
“아파도 참으라는 말밖에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마취제라도 가지고 다닐 것을···. 내가 미처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렇다고 치료를 미룰 수도 없는 게, 주변 세포가 회복되며 뼛조각과 엉겨 붙게 되면···.”
“됐어요. 지금 없는 거 찾아 봤자 뭐 합니까? 그건 그렇고 휴마누스가 아니라, 세르펜스에게 맡기길 잘했네요. 역시 섬세한 컨트롤 하면 세르펜스죠!”
나는 긴장을 덜어내고자 수다스럽게 떠벌떠벌 떠들었다.
이런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세르펜스가 안타깝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누가 보면 제가 죽을병에라도 걸린 줄 알겠습니다. 다친 것을 치료해 줘야 할 사람이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으면 어떡합니까?”
“미안하다.”
“됐어요, 대체 사과를 몇 번이나 하는 겁니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시간 끌어 봤자 긴장만 되니까 후딱 해치워 버리죠!”
“후우···. 알겠다.”
세르펜스는 한숨을 푹 내쉰 뒤, 내 다리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곧 발목에서 느껴질 고통을 각오하며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여차하면 이불을 입에 물 생각이다.
그러나 녀석의 손이 향한 곳은 엉뚱하게도 내 무릎이었다.
‘아, 내가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해 놓는 거구나.’
세르펜스가 오른손으로 내 무릎을 꾹 누르듯이 억세게 붙들었다.
발목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제법 아프다.
“그럼 시작하겠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었다가 고통 때문에 실수로 혀라도 깨물면, 치료해야 할 곳만 늘어날 뿐이니까.
세르펜스가 다시 발목에 손을 얹었고, 이번에도 고통과 함께 ‘윽!’ 하는 신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 아픔은 시작에 불과했다.
* * *
“흐으, 흐으···.”
이불을 문 입에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세르펜스의 세심한 신성력 컨트롤 덕분인지, 우려했던 것만큼 고통이 심하지는 않았다.
치과에서 신경 치료를 하다가 중간에 마취가 풀렸을 때. 딱 그 정도만큼 아팠다.
문제는 그 통증이 너무 빈번하고 길게 찾아왔다는 거다.
그리고 몸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게 느껴져서 소름이 끼쳤다.
‘이럴 거면 그냥 현대 외과 수술처럼 발목을 째는 게···. 아니다, 마취가 없다면 그게 더 아플 것 같아. 피도 엄청 나올 거고···.’
기껏 갈아입었던 옷이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다른 건 몰라도 뼈가 부러지는 경험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마취제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많이 아팠는가?”
창백한 얼굴의 세르펜스가 내 입에서 이불을 빼내며 물었다.
신성력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치료를 진행한 탓인지, 녀석 또한 땀투성이였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이거, 내일 치료했으면 얼마나 더 아팠을까요?”
“최소 두 배 이상?”
“절 설득해서 오늘 치료받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농담하는 걸 보니, 이제는 괜찮은가 보군.”
녀석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틀린 부분은 ‘농담’이라는 말이다. 내 감사 인사는 순도 100% 진심이었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은 맞았다.
신성력 치료의 최대 장점은 치료 후 회복 시간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후유증도 당연히 없고.
언제 그렇게 온몸을 뒤틀 정도로 아팠냐는 듯 지금은 멀쩡했다.
다쳤던 발목을 자세히 살폈다.
붓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멍은 아주 옅게 남았다.
“멍까지 완전히 치료하기에는 신성력이 부족했다.”
내심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었는지 세르펜스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료가 잘 된 모양인지, 쾅쾅 발을 굴러보아도 하나도 안 아프다. 불편한 점도 없고.
“세르펜스는 괜찮아요?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으음···. 조금 피곤한 거 말고는 괜찮다. 그보다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가는 게 좋겠군.”
“이대로 그냥 쉬었으면 좋겠는데···.”
“아까 잡아들인 메로우를 심문해야 한다. 그리고 선우가 좋아하는 식사도 해야지.”
후자는 좋은데 전자가 너무 싫다.
“심문 그거 지금 당장 해야 해요? 그냥 돌아가며 감시하다가, 깨어나면 기절시키는 식으로 미루면 안 되나?”
“그냥 악마 숭배자도 아닌 악마와 계약한 존재다. 마력 구속구를 채워두긴 했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다들 회복된 후에 심문하면 좋겠는데···.”
“다른 건 몰라도 당장 우리를 공격해 올 만한 적이 주변에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파악해 둬야 한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세르펜스의 말대로다.
바다에서 악숭이가 또 튀어나오지 않을 거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최대한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신성력을 아끼길 바랐던 거고.
미리 안다고 안 싸우고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미리 대비하는 것과 기습을 당하는 건 승패를 좌우할 만큼 그 차이가 크다. 적의 구성을 알 수 있다면 승기를 잡기 더 쉬워질 테고.
더불어 주변에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마음 편히 쉴 수도 있다.
“어? 그런데 심문은 메숭이만 해요? 법숭이는요?”
“흑마법사라면 죽었다.”
“마법에 직격당한 것도 아니고, 악마를 소환할 수 있는 수준의 흑마법사라서 마력 저항이 있어서 안 죽을 줄 알았는데···.”
“기절한 사이 익사한 듯하다.”
“······.”
세르펜스가 구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그렇게 죽을 뻔했던 걸 알기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빨리 옷이나 갈아입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