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9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92화(692/1105)
692회
76. 공작님과 바다 (17)
“성수 효과가 저렇게나 끝내주는 줄 알았으면, 스프레이에 넣어 다닐 걸 그랬습니다. 악숭이를 만날 때마다 칙칙 뿌려주게.”
“그냥 기절한 상태에서 무방비로 성수에 노출되어 그런 걸 거예요. 게다가 메로우는 물에 예민한 종족이기도 하고요. 일반적인 악마 숭배자나 마인은 성수가 닿았다고 저렇게까지 괴로워하지 않아요.”
아쉬움 가득한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유지스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악숭이가 아무리 벌레만도 못한 놈들이라 해도, 벌레 잡듯 스프레이로 잡는 건 안 되는가 보다.
좋다 말았다.
“흐, 흐으으···. 흑흑흑···.”
막 물에서 건져낸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더니, 이제는 힘이 빠진 걸까?
메숭이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야? 선빵을 날릴 땐 언제고, 사로잡히니까 불쌍한 척을 하네?”
어처구니가 없다.
악마 소환 징후가 나타난 후, 놈이 수면에 떠있는 배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렇다는 건 깊은 심해에서 소환 의식이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죽은 법숭이의 실력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도 메로우인 메숭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악마를 소환해서 우리 애의 인생 첫 뱃놀이를 망치고, 저녁밥도 못 먹게 하고, 내 발목까지 아작 냈으면서···.’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 울어 봤자 하나도 안 불쌍하다.
도리어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네놈들이 멋대로 바다에 찾아온 거잖아!! 1년 넘게 커그와 둘이서 차근차근 준비해서, 최근에야 제물을 다 모으고 겨우겨우 마법진을 완성해서 악마를 소환해낸 거란 말이다! 그런데, 그간의 고생이 이리도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다니···.”
메숭이가 악을 쓰며 소리쳤으나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알아서 정보를 떠들어 주겠다는데, 막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야 사건의 전말이 그려지네.’
아무래도 우리의 이동 경로를 예측해서 함정을 판 것은 아닌 모양이다.
법숭이와 메숭이. 이 두 명의 악숭이는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악마를 소환했고.
악마는 소환되자마자 성검의 기운이 느껴지니, 곧장 우리를 공격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성검의 주인]에서 바다가 등장했던 건, 첫 번째 시련을 받았을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도가 없지만.
어쩌면 바다에서 악마가 소환된 건, 이번 회차에 새로 생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네놈들만 안 나타났어도···! 악마의 힘을 이용해 바다의 지배자가 되어, 커그와 둘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어흐흐흐흑···!”
메숭이가 서럽다는 듯 울음소리를 높였다.
중간에 그 커다란 촉수 악마가 끼어있는데, ‘둘이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 몹시 의문스럽다.
심지어는 말하는 꼬락서니가 악마를 숭배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잠깐만···? 법숭이랑 메숭이,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
티격태격하길래 그런 줄 알았건만, 명백한 오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메숭이는 번번이 법숭이를 구해줬다.
유지스가 쏘아낸 화살로부터.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주제에 귀까지 얇은 악마로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제물을 좀 더 천천히 모을 것을···.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흐으윽!”
메숭이가 몸을 웅크리며 한탄했다.
정말 갈수록 가관이다.
“그러니까 지금 그 커그인가 뭐시긴가 하는 법숭이한테 반해서, 악숭 세력에 들어가서 악마 소환을 도왔다는 거 아냐?!”
도대체 왜. 무슨 과정을 거쳐서 그자를 좋아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소설이나 영화 등. 여러 창작물을 보다 보면, 사랑에 눈멀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캐릭터가 종종 등장한다.
그걸 그냥 허구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땐 ‘그런 사연이 있는 악당 캐릭터구나.’ 하고 넘길 수 있었는데.
‘피해자로서 그런 악당을 마주하니까, 어이가 없다 못해 억울하기까지 하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일행들의 표정이 모두 싸늘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으면 뜯어말릴 생각을 해야지, 거기에 왜 동조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바다에서 제물을 모았다는 건···.’
배를 탄 사람들. 혹은 다른 메로우들의 목숨을 노렸다는 뜻이다.
짧은 시일 내로 배가 자주 침몰하면 사람들이 수상함을 느낄 테고, 최근에는 배의 운항 또한 뜸해졌다고 하니.
주로 제물이 된 건 메로우겠지.
“그래, 사랑해서 그랬어!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건 전부 들어주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악마 소환에 성공하면, 정식으로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아아아─, 하필 소환된 게 그런 머저리 같은 놈이라서···! 나와 계약한 아와티니아 님처럼 현명한 악마가 소환되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메숭이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면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할 생각이었는데!’ 같은 뉘앙스로 개소리를 떠들어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기 위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소리다.
‘원래 이 메숭이는 글러 먹은 사람이었는데, 하필 좋아하게 된 게 법숭이어서 이 지경이 된 건가?’
법숭이를 좋아하게 되지 않았어도, 죄책감 하나 없이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다.
아니, 그보다 법숭이를 정말로 좋아하는 게 맞는지. 그것부터가 미심쩍다.
그냥 자기감정에 심취했을 뿐인 찌질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미친, 제정신인가?”
에드나도 기겁하며 메숭이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그러고는 악숭하는 새끼가 시부렁거리는 헛소리 따윈 듣지도 말라는 듯, 양 손바닥으로 아니마의 귀를 막았다.
메숭이의 그릇된 애정관이 아이 교육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올바른 판단이다.
나도 세르펜스에게 경고해 줘야겠다.
“세르펜스, 저런 건 사랑 같은 게 아니니까 귀담아듣지 마세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못하도록 막고, 함께 바른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군. 그런데 당신은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론은 빠삭합니다! 제가 친구들 연애 상담을 얼마나 많이 해 줬는지 알아요?”
“그런 얘기는 안 해줘서 모른다.”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척이나 서운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금 녀석을 붙잡고 내가 친구들과 어디서 어떻게 놀았으며, 주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그런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아무튼! 만약 아무리 상대를 붙잡아도 계속 나쁜 길로 가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세르펜스에게 상처만 줄 뿐이니까 바로 관계를 끊어내시고···. 아니다, 애초에 세르펜스가 왜 그딴 되먹지 못한 사람을 붙잡고 설득하며 감정과 시간을 낭비해야 합니까?! 그런 못된 사람이랑은 처음부터 상종도 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거든, 저한테 데려와서 확인받고 만나요.”
얘기를 하다 보니 상상이 되고, 그러다 보니 감정이 격해져 목소리에 분노가 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리며, 꼭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했다.
“감히 내 사랑을 모욕해?!”
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메숭이가 버럭 화를 내며 나를 향해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다시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제자리에서 뛰는 것이 아닌, 내 쪽으로 다가오려는 움직임이다.
세르펜스가 팔을 뻗어 내 앞을 가로막았고, 휴마누스는 서둘러 메숭이의 꼬리를 발로 밟았다.
당연하게도 메숭이는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휴마누스가 성검을 뽑아 들었다.
– 콰직!
성검이 메숭이의 꼬리를 관통하여 이불을 뚫고 바닥에 박혔다.
악마와 계약한 자의 검붉은 피가 이불에 번져나갔다.
신성한 검이 몸에 틀어박히자, 메숭이가 ‘키에에-!’ 하고 쇳소리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장난은 그만하고, 빨리 심문을 마치고 쉬러 가자.”
지친 일행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라는 책임감 때문일까?
휴마누스가 정색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장난 같은 건 친 적이 없지만,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크흐윽···. 나의 커그를 죽인 자들에게, 내가 협조할 것 같으냐?”
악마와 계약한 자가 성검에 꿰뚫렸으니.
성수를 부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 느껴질 텐데도, 메숭이는 이죽거리며 휴마누스를 노려보았다.
참 낯짝도 두껍다.
자신은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죽였으면서, 어떻게 저런 소리를 당당하게 지껄일 수 있는 걸까.
‘것보다 아직 고백하기 전이라며?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소유격을 붙이는 건 너무 스토커 같지 않아?’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왠지 휴마누스에게 혼날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빨리 쉬러 가고 싶으니, 심문과 상관없는 말은 참아야겠다.
오늘도 바위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윈스톤을 본받아,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야지.
“그자를 죽인 건 저희가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며 발언했다.
그런 녀석을 향해, 메숭이가 뻔뻔한 놈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온갖 욕설을 쏟아부었다.
나와 유지스가 화들짝 놀라 독순술을 할 줄 아는 세르펜스의 눈과 귀를 가렸다.
“거, 아이 교육에 더럽게 안 좋네! 휴마누스, 세르펜스 대신 설명 좀 해 줘요.”
“응?”
휴마누스가 멀뚱멀뚱 눈을 끔벅거렸다.
뭘 설명해야 하는지 눈치를 못 챈 모양이다.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법숭이를 죽인 건 우리가 아니라는 운을 떼 놓았는데도 모를 수가 있나? 눈새눈새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다고?’
싹을 틔우려고 노력했던 휴마누스의 눈치가 다시 퇴화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부정하고 부정한 끝에, 새로운 가설을 하나 떠올렸다.
‘휴마누스 쟤 설마. 전기에 살짝 지져진 후 기절해서 익사한 시체랑, 감전사 후 물에 잠겨 피부가 불은 시체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구분 못 하겠다. 그걸 알아챈 세르펜스가 대단한 거다.
내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무작정 법숭이가 익사했다고 주장해 봤자 믿지 못할 게 뻔하다.
역시 세르펜스에게 설명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나 보다.
나는 세르펜스의 눈을 가렸던 손을 치웠고, 유지스도 녀석의 귀에서 손을 뗐다.
“죽은 악마 숭배자의 호흡기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익사한 시체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인 포말괴가 보일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던 윈스톤이 자리에서 일어나 법숭이의 시체를 뒤집었다.
법숭이의 입과 코 주변에 끈적끈적한 흰 거품이 묻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 확실히 하고 싶으시다면, 목을 절개하여 식도에도 포말괴가 형성되었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아니면 폐를 열어 물이 차 있는 것을 확인한다거나.”
“정···말로···, 익사라고?”
“예. 그쪽은 의식이 없어도 물속에서 호흡이 가능하여 살았지만, 인간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시잖습니까.”
“······.”
“아···! 그러고 보니 메로우에게는 다른 종족도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놓고 ‘네가 기절하는 바람에 그 능력을 유지하지 못해서 법숭이가 죽은 거다.’라는 의미를 가득 담아낸 세르펜스의 말에, 메숭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애, 애초에 저 마법사들이 번개 마법만 쓰지 않았더라면, 내가 기절할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전부 너희 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자신이 의식을 잃으면 사랑하는 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계셨습니까? 그런 상황이라면 저는 어떤 고통이 닥쳐와도, 기절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버텼을 겁니다. 하지만 그쪽은 어땠습니까?”
세르펜스가 자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진지하게 억지를 부렸다.
참는다고 참아질 수 있으면 그건 기절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런데도 녀석이 그런 억지 주장을 펼치는 건, 메숭이가 자책감을 느끼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마음을 꺾어놔야 심문을 하기 편하다고 판단한 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