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9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95화(695/1105)
695회
76. 공작님과 바다 (20)
나는 말을 마치고 돌아올 대답을 기다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도 여덟 명이나 된다. 그러나 입을 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다들 하나 같이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설마 운 게 티 났나? 그럴 리가 없는데? 눈물을 찔끔 흘렸을 뿐인데, 이 정도로는 울었다고 하기도 뭐하지 않나?’
설령 티가 났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둘러싸고 한 마디씩 던지면, 위로가 되기는커녕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다.
만약 얘기하더라도 나중에 따로 불러내서, 1:1로 하는 게 예의다.
나는 속으로 궁시렁궁시렁 투정의 말을 삼키며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눈치가 있다면 일단은 넘어가 주겠지. 휴마눈새가 조금 걱정되기는 하나, 다른 일행들이 알아서 잘 제지해 줄 테다.
“뭐 그렇게 빤히 쳐다보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선우, 괜찮아요?”
눈치 없는 짓을 할만한 사람은 당연히 휴마누스뿐일 거라고 예상했건만.
의외로 유지스가 그 눈치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
“안 괜찮을 건 뭡니까?”
내가 짐짓 천연덕스럽게 되묻자, 옆에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주인은 세르펜스였다.
녀석은 마치 내가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 내게 뒤통수를 보이고 있었다.
몹시 당황스럽다 못해 충격적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르펜스가 내게서 고개를 돌리다니.
“선우, 지금 얼굴 엄청 빨개요.”
유지스가 눈썹을 팔(八)자로 오므리며 말했다.
눈가도 아니고 얼굴이 빨갛다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이 든 것도 잠시. 잘 생각해 보니 짚이는 구석이 있다.
“아, 이거! 그냥 더워서 그럽니다, 더워서. 사실 아까부터 더웠는데, 세르펜스가 덮어 준 이불을 거절하기 뭐해서 계속 뒤집어쓰고 있었더니···.”
“더운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열이 나는 것 같은데요···?”
유지스의 말에, 나는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보았다.
시원함을 느낀 건 잠시뿐. 여전히 몸에서 열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눈물이 쉽게 나더니, 그게 다 아파서 그런 거였나 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지는 법이니까.
“아프면 바로 얘기하기로 약속한 지 얼마나 됐다고···.”
세르펜스가 여전히 내게서 고개를 돌린 채 울적하게 중얼거렸다.
배신감이 뚝뚝 흘러넘치는 그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며 모골이 송연하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세르펜스의 얼굴을 확인한 유지스가 입을 벙긋거리며 내게 무언가 전달하려 애썼다.
가늘게 떨리는 세르펜스의 어깨와 유지스의 입 모양으로 보아, ‘울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큰일 났다.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나는 다시 이불을 잘 덮은 후, 세르펜스에게 사과와 변명을 했다.
“죄송합니다, 진짜 몰라서 그랬어요. 그냥 좀 더운가 보다 했죠.”
“추위도 많이 타면서, 그럴 리가 없잖은가.”
“그건 그렇긴 한데···. 일단 얼굴 좀 보고 얘기합시다. 네?”
“······.”
묵묵부답이다.
아픈 걸 몰랐다는 말은 변명 취급도 안 해주려나 보다.
직접 얼굴이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았지만, 녀석은 가볍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해버렸다.
세르펜스의 어깨를 잡고 내 쪽을 보도록 몸을 돌리려 해 봤으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내가 살짝만 잡아끌어도 쉽게 움직여 줬으면서.
“나랑 대화하기 싫어요?”
“···대화할 의사가 없는 건 선우, 당신이겠지.”
삐져도 아주 단단히 삐진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녀석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막막한 마음에 세르펜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그때, 휴마누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야, 타박하려는 건 아닌데···. 네가 잘못했어.”
“저도 압니다. 그런데 진짜로 일부러 숨긴 게 아닙니다. 아픈 걸 말하지 않고 넘겼을 때, 얘가 얼마나 속상해하고 서운해했는지 봤는데. 그런 걸 제가 왜 숨기겠습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야.”
갑자기 휴마누스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평상시의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아니라,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세르펜스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떼고 휴마누스를 돌아보자, 미간을 찡그리고 있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함께 다니는 동료잖아. 다른 건 몰라도 몸 상태는 모두와 공유해야지. 그래야 일정을 조율해나가며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어?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일정에 지장을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거나. 그런 이유로 몸 상태가 나쁜 걸 계속 숨기다 보면, 나중에는 일정을 조율해 볼 기회조차 없이 계획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어. 매번 몸 상태가 어떤지 숨기면, 등 뒤를 맡기기도 불안해지고.”
“저는 전투원도 아닌데···. 마지막 그게 상관있는 겁니까?”
“전투원이 아니니까 더 불안하지! 안 그래도 자기 몸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이 아프기까지 하면, 비명 한 번 못 질러보고 쥐도 새도 모르게 적에게 당해버릴지도 모르잖아.”
괜히 반론을 제기해 봤다가 큰소리만 들었다.
휴마누스의 말은 정말 구구절절 옳았다. 성검빨로 성검 일행의 리더를 맡은 게 아니었다.
리더다운 그 모습에, 나는 휴마누스에게 ‘리더누스’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로 했다.
“저, 휴마누스 님···.”
고개를 푹 숙이고 반성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방향에는 이불을 뒤집어쓴 리에나가 서 있었다.
“왜 그래, 리에나? 뭔가 할 말이라도 있어?”
우물쭈물하는 리에나의 모습에 리더누스가 굳은 표정을 풀고, 다시 친근한 얼굴과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하지만 리더누스의 표정과 목소리가 도로 굳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계속 오한이 드는 걸 보니, 저도 몸살 기운이 있는 거 맞나 봐요···.”
내가 혼나는 모습을 보고 지레 찔렸는지, 리에나가 뒤늦게 자진 신고했다.
그에 리더누스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
“···먼저 말해 줘서 고마워. 그래서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몸살은 하루면 다 나을 것 같고, 신성력까지 전부 회복되려면 사흘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세르펜스는 ‘일반적으로’ 신성력이 전부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이틀을 잡았다.
그런데 리에나는 거기서 하루를 더한 사흘이 걸릴 거라 말하였다.
‘아프면 신성력 충전이 안 되나?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감기 몸살이 하루 만에 나을 수가 있어?’
나는 그런 의문을 담아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여전히 고개를 돌려 딴 곳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보며 아차 했다.
“진짜 죄송합니다. 화 풀어요. 네?”
“······.”
“그런데 세르펜스. 아까 신성력 회복하는 시간 어쩌고 하면서, ‘일반적으로’라는 부분에 묘하게 강세를 넣는 것 같던데. 세르펜스는 멀쩡한 거 맞아요?”
내가 세르펜스의 어깨를 검지로 콕콕 찌르며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입술을 삐죽 내민 뚱한 표정이다.
“멀쩡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무슨 대답이 그래요? 세르펜스가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입니까?”
“나는 그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고양이가 된 적 없다.”
고양이라는 건 부정할 생각이 없는가 보다.
잠깐 어처구니를 잃었으나, 지금 중요한 건 세르펜스가 인간인지 고양이인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제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방금 리더누스가 일행끼리는 몸 상태에 관해 솔직하게 얘기해야 한다고 말한 거, 못 들었습니까?”
“응? 나는 휴마누스인데? 설마 내 이름을 잊어버린 거야?”
휴마누스가 제 별명도 못 알아듣고 헛소리를 해댔지만, 나는 못 들은 척하며 세르펜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세르펜스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 지나쳐 휴마누스에게 다가갔다.
“리더누스라는 건 그냥 휴마누스가 리더답다는 뜻에서 지은 별명일 겁니다. 그리고 제 몸 상태에 관한 건···.”
소곤소곤, 치사펜스가 제 몸 상태를 귓속말로 리더누스에게 전달했다.
내가 리더누스의 표정을 보고 내용을 짐작할 수 없도록, 미리 그의 몸을 돌려 세워놓고서 말이다.
그런다고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유지스와 윈스톤의 표정을 살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저희 심문 다 끝났으니까, 선원분들께 식사 준비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올게요!”
유지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복도로 나가버렸다.
윈스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두 악숭이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쪼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상체에 천 한 장 걸친 게 전부인 메숭이의 시체를 대충 이불로 덮어놓고, 로브다 뭐다 겹겹이 껴입은 법숭이의 옷을 뒤져 소지품을 확인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내 시선을 피해 딴청을 부리다니.
효율적이어도 이렇게 효율적일 수가 없다.
‘둘 다 내가 아닌 세르펜스의 편을 들겠다, 이거지?’
같은 보호자 동지인 에드나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했지만, 그녀의 청각도 나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의 수준이었으니.
아무것도 못 들었을 거다.
‘푸로르는 아픈 리에나를 챙기느라 바빠 보이고···.’
나는 다시 휴마누스와 세르펜스가 서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세르펜스와 눈이 마주쳤다.
이제 화가 좀 풀린 건가 싶었으나, 그건 내 착각이고 바람일 뿐이었다.
녀석은 이내 시선을 피하며 휴마누스의 귀에다 또다시 무언가를 속삭였다.
‘휴마누스에게 몰래 할 말이 있었다면, 내가 안 보는 사이에 해도 됐을 텐데···.’
나더러 보라고 저러는 게 틀림없다.
그렇게 행동하면 내가 서운하기라도 할 줄 아는가 본데, 정말로 그러했다.
“응···, 응. ···으응? 그런 게 가능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세르펜스의 말에 집중하던 휴마누스가 깜짝 놀라 녀석을 쳐다봤다.
세르펜스가 힐끔 내게 시선을 보내놓고 아닌 척하며 보통의 목소리 크기로 대답했다.
“예. 됩니다.”
“잠깐만. 리에나,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 이리로···. 아니다, 내가 갈게.”
휴마누스가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리에나에게로 다가갔고, 세르펜스도 그 뒤를 졸졸 쫓아갔다.
이번에는 휴마누스가 리에나의 귀에 대고 무어라 쑥덕쑥덕 이야기했다.
리에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듣다가 작은 탄성을 흘렸다.
“···아! 될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치고, 쉬면서 한 번 시도해 봐야겠네요.”
“그게 무슨 쉬는 거야?”
“그래도 가능하다면 회복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휴마누스 님도 신성력이 있으니, 굳이 제게 물어보러 오지 않으셨어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닌가요?”
“나는 안 될 것 같아서 물어보러 온 건데?”
리에나의 물음에 휴마누스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듣지 못했더라면 신경을 꺼버렸을 텐데, 단편적인 대화를 듣고 났더니 서운함에 호기심까지 더해졌다.
이런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세르펜스가 또 휴마누스에게 속닥였다.
그 얘기를 들은 휴마누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나는 모르겠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대신에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감사합니다.”
세르펜스가 감사 인사를 하는 거로 보아, 녀석이 휴마누스에게 무언가 양해를 구했나 보다.
그렇게 세르펜스와의 대화를 끝내고, 휴마누스가 이번에는 리에나를 지목하여 말했다.
“리에나, 너도.”
“네, 그럴게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겠다.
열나는 것 좀 늦게 알아챘다고 이렇게 대화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건가 싶어, 슬슬 억울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