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69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696화(696/1105)
696회
76. 공작님과 바다 (21)
* * *
평소라면 식사를 하는 동안 가벼운 잡담을 주고받으며 친목을 도모했을 거다.
혹은 현재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기탄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논했을 테다.
그러나 오늘은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고 전투적으로 식사에 임했다.
이유는 당연히 빨리 먹고 빨리 쉬러 가기 위해서다.
그렇게 서둘러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선원들이 미리 치워놓은 방으로 흩어졌다.
세르펜스는 삐진 와중에도 나와 같은 방을 고집했다.
만약 녀석이 방을 따로 쓰겠다고 하면 붙잡아야 하나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여느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나와 세르펜스의 뒤에 윈스톤이 조용히 따라붙었다는 점이다.
‘세르펜스의 호위로서. 신성력을 모두 소모해 버린 녀석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윈스톤의 표정에 자책감이 잔뜩 묻어난 거로 보아, 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하고 싶은 게 아닐까 한다.
– 탁···.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내부가 텅 비어있는 탓인지, 문 닫히는 소리가 살짝 울렸다.
그 울림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윈스톤이 충성 서약을 했을 때처럼 세르펜스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세르펜스 님. 내리신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다.
진작 이렇게 세르펜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고 싶었으나, 내 치료와 메숭이 심문. 그리고 일행의 식사가 우선인지라.
미루고 미뤄 자유 시간이 되고 나서야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고한 걸 테다.
“선우에게 정황을 들었습니다. 경의 잘못이 아니니, 일어나십시오.”
“제가 더 강했더라면 선배를 보호하는 결계가 온전히 유지되었을 테고, 그랬다면 악마의 마지막 발악이 통하지 아니하였을 테니. 제 잘못이 맞습니다.”
일어나라는 세르펜스의 말에도 윈스톤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충성심과 책임감이 너무 뛰어나도 탈이다.
“윈스톤 경은 약하지 않습니다. 이번 적은 저와 휴마누스도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그런 적을 상대로 경은 충분히 잘해 주셨습니다.”
“선우 선배가 바다에 끌려 들어간 것은 제가 방심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곁에 있던 저라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어버렸습니다. 끝까지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 탓에 제때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부디 이렇게나 미흡하며 부주의한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저와 선우는 경을 벌하거나 꾸짖을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목소리에서 꾹꾹 억누른 분함이 흘러넘쳤다.
언제나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던 윈스톤의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세르펜스의 짐작대로, 윈스톤은 이번 일을 단순한 사고로 넘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만약 주군인 세르펜스가 자신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을 직접 채찍질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손을 들어 올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윈스톤. 제 과실도 있어서,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 일단 지금은 쉬고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됩니까?”
“내가 쉬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 이러는 거겠지.”
윈스톤에게 말을 걸었는데, 대답은 세르펜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언제 세르펜스가 윈스톤에게 쉬지 않겠다는 소리를 했었나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듣지는 못했지만···.’
휴마누스의 귀에 대고 속닥거리던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 휴마누스가 녀석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 이제야 알겠다.
내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세르펜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선우는 왜 그러고 서 있는 거지? 쉬지 않고.”
그렇게 말하는 세르펜스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녀석도 슬슬 열이 올라오기 시작한 거다.
너무 기가 찬 나머지, ‘허!’ 하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르펜스가 나를 마주 보며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가, 고개를 돌려 윈스톤을 내려다보았다.
“정히 벌을 받아야 경의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알겠습니다, 벌을 내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세르펜스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낯이 없다는 듯, 윈스톤이 고개를 더욱더 깊게 숙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윈스톤은 틈만 나면 나를 훈련시키고, 함부로 적을 도발해선 안 된다며 경고했다.
결계가 깨지는 순간, 내가 잽싸게 몸을 움직여 한 번이라도 촉수를 피했다면 어땠을까?
윈스톤이 반응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악마의 촉수를 피하기는커녕, 세니어로 그것을 잘라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보호받는 것이 익숙해져서 스스로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한 거다.
그리고 도발하지 말라는 건,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끝났다고 방심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해산물이 어쩌고 하는 소리를 큰 소리로 떠들지 않았더라면, 촉수 악마가 나를 길동무로 삼으려 발악하지도 않았겠지.
“그럼 윈스톤 경. 침대를 꺼내십시오.”
“예···?”
“제게 벌 받기 싫으십니까? 아니면 본인이 내키는 벌을 골라서 받고 싶으셨던 겁니까?”
“아, 아닙니다. 어떠한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그렇다면 제 말에 얌전히 따라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세르펜스의 은근한 갈굼에 윈스톤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침대를 꺼내며, 윈스톤은 입을 일(一)자로 꾹 다물었다. 분함을 삭히는 듯한 표정이다.
침대를 꺼내라는 말을 듣고, ‘쉬지 않는 주군 옆에서 편히 쉬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따위의 상냥한 벌을 떠올린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세르펜스가 준비한 벌은 그런 게 아니리라.
상냥하긴 상냥했지만, 윈스톤이 상상한 그런 상냥함은 아닐 거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벌을 세르펜스에게 알려준 게 나니까.’
세르펜스가 윈스톤의 침대로 다가가, 그 위에 놓인 베개를 헤드 보드에 기대어 세웠다.
그러고는 베개 바로 앞을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로 와서 무릎 꿇고 앉으십시오. 신발도 벗으시고.”
싸늘한 표정과 강압적인 말투. 그리고 무릎을 꿇으라는 지시까지.
그 모든 것이 벌을 내리는 사람의 태도와 일치하는데, 정작 무릎을 꿇으라는 장소가 푹신한 침대 위다.
게다가 등이 닿을 부분에는 베개로 편안한 등받이까지 만들어 줬다.
모순적인 세르펜스의 모습에 윈스톤이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녀석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손을 들어 올리십시오.”
세르펜스의 지시에 윈스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한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세르펜스가 손수 윈스톤의 양 손목을 잡고 자세를 고쳐주었다.
“제가 됐다고 할 때까지, 이 상태로 버티십시오.”
“···예.”
윈스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세르펜스에게 이런 벌 같지도 않은 벌을 가르친 게 나라는 걸 벌써 눈치챘나 보다.
“선우는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건가? 어서 침대를 꺼내서 누워라.”
“세르펜스가 어째서 쉬지 않겠다는 건지 설명하면요.”
“자신을 인질로 잡고 나를 협박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누워서 들어라.”
마음 같아서는 세르펜스야말로 본인을 인질로 잡고 시위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다.
그러나 녀석의 표정이 너무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아픈 애를 상대로 실랑이하며 시간 끌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내가 녀석에게 잘못한 게 많으니. 녀석이 하라는 대로 맞춰주기로 했다.
“자, 됐어요! 누웠습니다! 이제 말해 보시죠!”
내가 침대에 눕자, 세르펜스는 내 아공간 주머니를 가로채 의자를 하나 꺼내어 앉았다.
그러고는 의자를 하나 더 꺼내서 그 위에 물병과 대야와 수건을 올렸다. 전부 내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온 물품들이다.
“설마, 안 쉬고 저를 간호하겠다는 겁니까? 아픈 거 재깍재깍 말 안 했다고 지금 벌주는 거죠? 벌을 줄 거면 차라리 개처럼 짖으라고 시키세요!”
“이미 짖고 있는데, 뭘 더 어떻게 짖으라고 시키겠는가.”
세르펜스가 개 같은 헛소리는 그만두라는 얘기를 고상한 말투로 입에 담았다.
물론 말투만 고상할 뿐,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내용에 귀족적인 말본새가 더해지자 묘하게 서스펜스했다.
“······.”
벌서던 윈스톤이 조용히 내게 타박하는 시선을 보냈다.
억울하다. 내가 가르친 건 야옹하는 것뿐이거늘.
이건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세르펜스가 잘못 독학해 온 결과물이다.
“신성력이 고갈되었을 때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모여야 할 신성력이 병을 완화하거나 회복하는 데 우선으로 쓰이게 된다. 덧붙여 신성력이 고갈되지 않았어도 신체의 회복을 우선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신성력 보유자는 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지.”
세르펜스가 대야에 물을 콸콸 쏟아부으며 말했다.
수동으로 신성력을 움직이지 않아도, 자동으로 몸을 치료해 준다니. 그 편리한 기능에 혀가 절로 내둘러진다.
리에나가 감기 몸살 정도는 하루면 나을 수 있다고 말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보다.
‘신성력 보유자는 어지간히 다친 것이 아닌 이상, 혼자 길거리에 쓰러져도 객사하지는 않겠네.’
원래도 신성력이 사기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기야. 신성력은 신과 밀접하게 관련된 힘이니까.
여러모로 평범한 능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직접 신성력을 사용해 치료하는 것보다 효율이 월등히 떨어진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한 번에 짠하고 낫는 게 아닌 만큼, 찔끔찔끔 회복해 둔 병이 악화하기라도 하면 신성력이 추가로 들어갈 테니까.”
“그런 이유도 있지만, 말 그대로 효율이 떨어진다. 신성력 제어 능력에 따른 개인차가 존재하긴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신성력을 직접 운용하면 더 적은 양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
자동 회복은 신성력 로스율이 많은가 보다.
세르펜스는 수건을 물에 푹 담갔다 짜내며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났다.
세미타 사건에 관해 진술하고 공작저로 돌아오던 중. 녀석은 며칠 밤을 새운 탓에 피곤함에 찌들었으면서, 잠들지 않으려고 마차 안에서 이런저런 설명을 두서없이 떠들어 댔다.
“신성력이 부족할 때는 더더욱 비효율적이다. 신성력은 완전히 고갈되면 회복하는 데 더 오래 걸리니까. 알기 쉽게 수치로 표현하자면, 0에서 1로 회복되는 속도와 10에서 20으로 회복되는 속도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결론은요?”
“나는 현재 몸을 회복하려는 신성력을 강제로 붙잡아두어 모으는 중이다. 그래서 의식을 잃으면 안 된다.”
세르펜스가 내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놓으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댔다.
방에 들어오고 나서야 녀석의 얼굴이 슬금슬금 붉어지기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선원들에게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신성력이 증세를 완화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신성력을 제어하기 시작한 게 분명하다.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와 목구멍에 걸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벌떡 상체를 일으키자 이마에 올려졌던 물수건이 무릎 위로 떨어졌다.
하마터면 홧김에 그것을 집어던질 뻔했으나 가까스로 멈추고, 세르펜스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는 데 썼다.
“제어고 나발이고, 할 거면 한숨 자고 나서 해요.”
“보고 있기 괴로운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나도 보고 있기 괴로웠다. 선우가 발목이 부러진 상태로 아프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했을 때도, 열로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더워서 그런 거라며 우겼을 때도. 그러니 벌이라고 생각해라.”
내 죄가 크긴 큰가 보다. 이런 벌을 받는 걸 보면 말이다.
나중에 결혼해서 저 같은 자식을 낳아보면, 그때야 비로소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게 된다던데.
정말로 그러했다.
‘나는 자업자득이라지만···.’
윈스톤은 대체 왜 벌을 자처해서, 아픈 주군이 쉬지도 못하고 남을 간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것도 저런 웃기지도 않는 자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