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화(7/1105)
7회
2. 공작님의 보좌관 (4)
궁에서 돌아온 후 나는 어제 갔던 식당으로, 세르펜스는 프라시더스 가문의 가족들을 위해 따로 갖춰진 식사실로 향했다.
현재 공작저에서 프라시더스 성씨를 쓰는 자는 세르펜스 뿐이니, 그는 혼자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시중을 드는 사용인들이 있을 테니, 정확히는 혼자가 아니라 남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홀로 식사를 하는 셈인가?’
···생각만 해도 체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혼밥 중이지만.
“어휴···.”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세요?”
갑자기 누군가가 내 맞은편 자리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묻는다. 고개를 들어보니 메리였다.
“가우디움양도 혼잡니까?”
“그냥 편하게 메리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메리가 너스레를 떨며, 먼발치에 서 있던 시녀 무리를 보며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응, 그래. 나만 혼자였구나.’
그래도 덕분에 혼밥을 면했으니 다행이다. 나는 밥을 여럿이 먹어야 맛있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인지라, 그녀가 몹시나 고마웠다.
“아, 이분이 새로 오셨다는 보좌관님···?”
그 시녀들 중 한 명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메리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작게 소곤거렸다.
그래 봤자 다 들린다.
“예, 어제부터 프라시더스 공작님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시온 리벨론이라고 합니다.”
너무 경계하는 게 아닌가 싶어, 일부러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걸 신호로,
“오늘 황궁 다녀오셨죠? 어떠셨어요?”
“앞으로 공작님과 함께 다니시는 거죠? 좋겠다~!”
“이전 보좌관님은 뭔가 되~게 깐깐해 보이셨었는데!”
···등의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의 조심스러워 보이던 태도는 온데간데없다. 저들끼리 ‘까르륵-‘ 웃으며 내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보다 마지막 말의 저의는 뭘까···?’
조금 편해진 정도가 아니라, 만만해져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뭐 어떤가. 딱딱하고 불편한 것보다는 낫겠지.
“황궁은 정말 대단하더군요.”
내 말에, 그녀들이 어떻게 대단하냐고 보채듯 물었다.
거기다 대고 ‘돈 지랄이 아주 그냥 굉장했습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고. 대신 살을 조금 덧붙이기로 마음먹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문을 지나고 나면, 기다란 복도가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 복도는 마치 금색 물결이 파도치는 것처럼 반짝이고, 위엄 있는 장식물과 위압감이 느껴지는 조각상들이 죽 늘어서 있더군요. 정말 그런 모습은···”
눈을 빛내며 경청하는 이들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절주절 말이 많아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허세를 부리나 보다.
“있죠, 있죠? 회의실도 들어가 봤어요?”
“지루하진 않았나요?”
“거기 계시는 분들은 다 높으신 분들이죠?”
“어떠셨나요?”
자문회에 관한 질문에, 내가 최대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표현력을 동원하여 황궁의 묘사를 쏟아내던 입이 시동을 멈췄다.
“굉장···했죠. 감명 깊었습니다. 오고 간 대화는 차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생각을 정리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린 것은 아니나, 본의 아닌 말의 완급 조절에 주위 시녀들뿐 아니라 식사를 하던 다른 이들도 은근슬쩍 귀를 기울여 왔다.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고, 막아내고. 또 반격하는 와중에도.”
여기서 말하는 의견은 ‘너를 때릴 건데, 맞아주겠니?’를 말한다.
“마치 비상하는 새와 같이 우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점프해서 테이블을 넘나드니, 서류들이 흩어져 팔랑거리며 우아하게 떨어졌다.
“치열함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으나, 회의가 끝나고 나니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며 모든 결과를 깔끔하게 받아들였죠. 실로 감동적이라 아니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다.
내 이야기에 어린 시녀들은 꺅꺅대며 멋있다고 소리쳤고, 시종들은 동경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 밖의 연륜이 있거나 행정관 정도로 보이는 이들은, ‘역시 내 상상과 조금도 다를 바 없구나!’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공작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대로 대답만 하다간 기껏 받아 온 음식에 손도 못 대고 점심시간이 끝날 것 같았다.
그렇기에 화제를 돌려 질문했다.
‘물론 궁금하기도 했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잖아?’
내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시녀들이 앞다퉈 세르펜스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내용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을 물은 거였는데···.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지금은 음식에 집중하고 나중에 한 명씩 따로 만나서 슬쩍 물어봐야겠다.
여기저기서 말하니 아주 정신이 없네!
그릇을 비우면서 ‘오오!’, ‘과연!’ 하고 추임새를 넣거나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으로, 다들 신나서 떠들어댄다.
옆 테이블에 있던 시종들까지 넘어와, 세르펜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나에게 알려주려 애썼다.
뒷 테이블에서는 행정관들이 세르펜스의 업적에 대해 논쟁을 시작했다.
참고로, 기사나 병사는 병영 건물 안에 있는 식당을 이용하기에 이 자리에 없다.
‘세르펜스 녀석, 공작가의 아이돌이구나?’
이 순간 식당에 있는 모든 이들이 세르펜스로 단결되었다. 모두 즐겁게 웃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동조할 수 없었다.
어딘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 있는 이들 중 세르펜스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알고 있다면 대체 어째서 아무도 그를 돕지 않은 거지?
세르펜스는 이들이 자신을 이다지도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있으려나?
그리고 세르펜스가 인류로부터 등을 돌렸을 때,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현실을 외면했을까, 세상을 원망했을까, 그를 저주했을까.
수없이 많은 의문이 꼬여, 머릿속에서 헝클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밝게 웃기로 했다.
* * *
식사를 끝마치고 집무실에 올라가니, 세르펜스는 먼저 도착해있었다.
“제가 좀 늦은 겁니까?”
“아닙니다, 식사 정도는 느긋하게 하셔도 됩니다.”
그럼 다른 건 서둘러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왜 세르펜스가 무슨 말만 하면 다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지 모르겠다. 이게 바로 색안경 효과라는 거려나.
“아, 예···.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쪽 책상 위에 있는 서류만 처리해주시면 됩니다.”
세르펜스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책상을 가리켰다.
방이 아무리 넓다지만 저렇게까지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당연히 있겠지.
나 몰래 숨겨서 처리해야 할 서류라도 잔뜩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후후후···.”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고운 음색의 웃음소리라 울렸다. 의자를 빼다 말고 세르펜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창가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성스럽단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나도 모르게 ‘으음···.’하고 침음을 삼켰다.
‘책상 배치 미쳤다!’
안그래도 반짝거리는 녀석이 후광까지 비치니까, 진짜 장난 아니네.
저건 분명 세르펜스 녀석이 일부러 노리고 배치한 것일 터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완벽한 각도를 잡아낼 수 없다.
내가 만약 룩스메아 교단의 신도였다면 지금 광경을 보고, 신께서 강림하셨다며 기도를 올렸을 거다.
“왜 웃으시는지···?”
“아, 방금 재밌는 이야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아, 그러세요? 전 아까 재밌는 격투기 경기를 봤는데.
“모두와 벌써 친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친화력이 좋으시네요.”
방금 밥을 먹자마자 바로 올라왔는데, 언제 그런 얘기가 세르펜스의 귀까지 들어갔지?
이 저택은 세르펜스의 손바닥 위구나! 무섭다, 무서워.
“집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감시하거나 한 건 아니니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경계한 게 아니라, 그냥 전달이 빠르구나~하고 생각한 겁니다!”
재빨리 손사래를 쳤지만, 세르펜스는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예리한 자식.
“그게, 안그래도 괜찮다 말씀드려봤지만 워낙에 충성심이 강하신 분이시다 보니.”
“그렇군요···.”
세르펜스가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저거, 저거! 한스에게 뒤집어씌우는 거 보소? 아주 고단수 납셨다.
“혹, 불쾌하셨다면 그러지 말라고 전해두겠습니다.”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보나 마나 말로만 그러겠다 하고, 결국 얘기는 죄다 세르펜스의 귀에 들어갈 게 뻔하다.
그럴 거면 오히려 어떤 얘기가 들어갔는지 파악할 수 있는 편이 더 낫겠지.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서류를 대충 뒤적이며 훑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대강 감이 잡혔다.
내심 세르펜스에게 물어봐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시온이 가진 지식으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한 내용뿐이었다.
‘첫날이라고 배려해 준 건가, 아니면 예민한 내용을 다 빼고 남은 걸 준건가?’
내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쌓여있는 세르펜스의 서류 산은 이렇지 않겠지.
이러는 와중에도 그의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열심히 해서 내 서류들까지 몽땅 가져가라!’
한참을 서류를 팔락거리고 있으니,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세르펜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이어 찻주전자와 찻잔이 두 개 올려진 쟁반을 든 시녀가 들어왔다.
무거울 텐데도 한 손으로 받쳐 들고 문을 열고 들어와, 다시 문을 닫고 양손으로 고쳐잡는 모습이 유려하게 이어졌다.
시녀가 세르펜스와 내게 차를 따라준 후,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찻잔에 살짝 입을 댔다.
색이 붉은 걸 보니 홍차인 것 같은데 정확한 건 모르겠다.
‘제대로 탄 차는 일반인이 탄 것과 비교도 안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대체 어떤 차이가 있다는 거지?’
내가 차를 잘 모르는 탓일까? 누나가 마시던 홍차 티백을 몰래 타 마셔 봤던 맛이랑 다른 점을 하나도 모르겠다.
“어떤 차를 좋아하시는지 몰라, 일단 제가 마시는 것과 같은 것으로 준비했는데. 어떠십니까?”
저 말은 다른 차를 달라 하면 따로 준비해주겠다는 소린가? 아니면 내 입맛에 맞추겠다는 소리려나.
전에 업무 중 필요한 게 생기면 직접 얘기해 달라는 것도 그렇고···.
‘보통 이렇게까지 하나?’
그냥 집사에게 말해 둘 테니, 둘이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나?
이 세계의 귀족 예절은 잘 모르겠지만, 시온의 몸뚱이에 남아있는 정보를 더듬어봤을 때 상당히 유별난 것 같긴 하다.
‘차 같은 건 그냥 주는 대로 마시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차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친절이 너무 과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 아닙니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특별히 가리는 거 없이 잘 마시고, 잘 먹고, 잘 싸고··· 아차!”
“후후후···. 차 말고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십시오.”
내 말실수에도 재밌다는 듯 상냥하게 웃어주며 답한다. 그 웃음소리가 부드럽고 맑게 울린다.
저런 사람이 나중에 ‘크크큭’하고 웃으며,
『 “많이 괴로운가? 그쪽이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제가 다 기쁩니다. 그러니 더욱더. 훨씬 괴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
···같은 말을 한다고?
그 괴리감에 나는 괴로워했다.
“그런데 왜 제게 이렇게 친절히 대해주십니까?”
“보통입니다. 리벨론 경을 특별히 더 챙기는 건 아닙···”
“그러니까. 그게 왜 보통이죠?”
완전히 서류에서 손을 떼고 있던 나와 달리, 대화하면서도 계속해서 펜을 놀리던 그의 손이 멈췄다.
서류를 내려다보던 세르펜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찬찬히.
“그러니까 보통은, 이렇게까지 아랫사람을 챙기는 경우는 없지 않으냐는 질문입니다.”
내 말에 세르펜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어제와 오늘을 통틀어 가장 진지한 얼굴이다. 세르펜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맞붙는다.
그렇게 한동안 말을 고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 그가. 드디어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리벨론 경의 취향은, 으음···. 존중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다만, 그것에 응해드리는 것은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