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0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05화(705/1105)
705회
76. 공작님과 바다 (30)
‘에휴···.’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고작 쿠키 쪼가리에 애착을 보이는 녀석이 안쓰러운 한편, 나조차도 거의 잊고 지내는 내 본모습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 퍽 고마웠다.
내가 진짜 나를 잊지 않도록 계속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아서.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싶다는 욕심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르지만···.’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어쨌거나 내가 고마움을 느꼈으니까, 그걸로 된 거다.
“세르펜스. 진짜 저는요, 시온처럼 곱슬머리가 아니라 세르펜스와 같은 생머리입니다. 그래서 처음 시온의 몸에 빙의했을 때, 익숙하지 않아서 머리 손질만 한참이 걸렸습니다.”
“······!”
세르펜스가 움찔 놀라며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이런 식으로 묘사해 줄 것을 바라며 대놓고 쿠키 쪼가리에 연연한 거 아니냐?’라는 시선을 보냈다.
내 눈빛을 읽은 녀석이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들키지 않을 줄 알았나 보다.
“뭐, 헤어 스타일 같은 건 그때그때 변하는 거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다니던 머리는 그냥 깔끔한 커트였어요. 그게 관리하기 제일 편해서.”
“그렇군.”
“또 시온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쌍꺼풀의 유무? 무쌍인 시온이랑 다르게 저는 쌍꺼풀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음···. 체형은 지금 시온의 몸보다는 살짝 마른 편인가?”
“선우가···, 마른 편이라고?”
본래의 내가 말랐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세르펜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심지어는 그 ‘마름’의 기준이 현재의 체형 기준인데도 말이다.
그 반응이 몹시 당혹스럽다.
“어디까지나 지금 이 몸에 비하면요. 빼빼 마른 게 아니라, 살짝 날씬한 정도? 그래도 어디까지나 적정 체중 범위 내입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옆에서 운동을 시키는 사람도 없었을 것 아닌가?”
“그 대신 지금처럼 설탕이 잔뜩 들어간 간식을 매일 먹지 않았으니까요. 원래 살이 찌는 건 활동량보다 식이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법입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긴 하나, 여전히 녀석의 표정에서 떨떠름한 기색이 묻어났다.
“원래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연히 살이 찌기 마련입니다. 옆에서 같이 간식을 주워 먹거나 아이가 먹다 남긴 것을 먹게 되니까. 물론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눈앞에 먹을 게 있는데 어떻게 안 먹고 배겨요?”
“선우의 말을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다.”
“아니면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선우의 본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차이가 크구나 싶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르다는 걸 깨달아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보고 있는 선우의 모습과 점점 멀어져서···. 그래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거다.”
세르펜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녀석이 내 모습을 상상하기 쉽도록 차이점만 줄줄이 늘어놓은 게 화근이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녀석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맞췄다.
“세르펜스, 제 본모습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 특징이라고 말했잖아요? 하지만 완전히 새까만 건 아닙니다. 검은색이라고 퉁치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살짝 갈색빛이 돌거든요. 시온의 눈동자처럼요. 그러니까 눈동자 색만 보면, 미선이보다 시온의 눈이 제 본래 눈동자 색에 가깝습니다.”
“그런···건가?”
“예. 그리고 키도 시온과 엇비슷하니까, 눈높이는 그대로겠네요.”
“아···.”
세르펜스가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어둡게 가라앉았던 녀석의 눈빛이 밝게 빛나고,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는 안도하며 씨익 웃어 보인 후 세르펜스의 얼굴을 놓아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웃음도···, 똑같겠지?”
“당연하죠!”
“그렇군, 당연한 거였어···.”
현재의 모습에서 본래의 나와 비슷한 점을 찾고 나서야, 안심한 세르펜스가 부드럽게 풀어진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럼 본래의 저와 하나도 안 닮은 미선이는 이제 그만 보내 줍시다.”
“으음···.”
“정을 붙여서 먹기 힘들어요? 그런 거라면 대신 먹어드릴 수도 있는데.”
“아, 아니다. 꼭 먹어 없애야 한다면, 내가 먹는 게 낫다.”
세르펜스가 뺏기지 않겠다는 듯 쿠키를 든 손을 제 몸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미련 없이 바로 먹어치우는 건 역시 힘들었던 걸까?
녀석은 머뭇머뭇 망설이며 쿠키와 아이 컨택을 시도했다.
“미선이는 쿠키잖아요. 먹히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어서 먹어주세요.”
“······.”
내가 한마디 거들고 나서야, 세르펜스는 결심한 표정으로 쿠키를 입에 가져갔다.
눈을 질끈 감고 오독오독 쿠키를 먹는 꼴이 왠지 모르게 웃겨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자, 다 드셨으면 양치하고 잡시다!”
나는 세르펜스의 아공간 주머니 속에서 양치 도구를 꺼내어 녀석의 손에 들려주었다.
기왕 오늘 하루 녀석을 한껏 우쭈쭈해 준 김에 마무리로 양치질까지 시켜줄까 하다가, 세르펜스가 직접 한 것만큼 깨끗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 대신 세르펜스와 함께 양치 도구를 챙겨 들고 방에 딸린 욕실로 향했다.
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양치질 정도야 가지고 있는 물을 컵에 따라 쓰면 되니까 상관없다.
욕실 벽면의 거울은 걸이형이 아니라 부착식이었고, 무언가에 부딪혔는지 금이 가긴 했으나 모습을 비추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세르펜스와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며 무심코 거울을 쳐다보았다.
거울 속 시온의 눈동자에 시선이 간다.
‘···정말 고향에서 많이 본 색이네.’
이곳에서나 고동색 눈이라고 하지 내가 살던 곳에 가면 검은 눈이라 불렀을, 바로 그 색이다.
멍하니 거울을 보며 칫솔질을 하고 있자니, 먼저 양치를 끝낸 세르펜스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선우?”
“아, 에으애오.”
“죄송할 거 없다. 천천히 해라.”
칫솔을 물고 웅얼대는 소리를 잘도 알아듣고 세르펜스가 적절한 대답을 내놓았다.
녀석은 천천히 하라고 했으니, 나는 눈치 볼 거 없이 혀까지 꼼꼼히 닦고 입안을 헹궜다.
그렇게 양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후.
의자들을 치우고 다시 침대를 꺼내어 세르펜스의 침대와 바짝 붙였다.
세르펜스가 아까처럼 손을 잡고서 자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넓으면 내가 굴러서 깔아뭉개려 해도, 세르펜스가 피할 공간은 충분하겠지!’
내가 침대를 안 넘어가는 게 최선이긴 한데, 그 정도로 내 잠버릇이 얌전했으면 애초에 세르펜스를 깔아뭉갤 걱정도 안 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선우도 잘 자라.”
나는 내 침대에, 세르펜스는 세르펜스의 침대에 누워서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자니 배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멀미가 날 정도로 심한 흔들림은 아니어서,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요람 속 아기가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침대를 바짝 붙여놓고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가, 평소보다 세르펜스의 기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귀로 들리는 숨소리가 묘한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아까는 아예 한 침대에서 자기는 했지만, 그땐 아파서 인기척 같은 걸 느낄 새가 없었지.’
그런 이유 말고도, 어쩌면 심경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르펜스를 달랠 목적이었으나 ‘시온 리벨론’ 속에서 ‘나’를 찾은 게 기뻤다.
앞으로 거울을 볼 때면 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세르펜스도 나와 눈을 마주칠 때면 그 너머의 진짜 나를 찾아 주겠지.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평소보다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놀랍게도 제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천장을 본 자세에서 옆으로 누운 자세로 바뀌긴 했지만, 이 정도면 자다가 살짝 뒤척거린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는 세르펜스의 몸에 다리도 안 올려놓았다.
그것을 뿌듯해하기에 앞서, 나는 세르펜스의 건강 상태부터 확인했다.
“자는 동안 자가 회복을 하느라 신성력이 조금씩 소모되긴 했어도, 그 전에 모아둔 신성력이 꽤 되니까 소모되는 것보다 쌓인 양이 더 많죠?”
“그렇지 않아도 눈 뜨자마자 치료부터 했다.”
내 질문의 의도를 눈치챈 세르펜스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몰라 녀석의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다 나았나 보다.
“잘됐네요! 그건 그렇고 저 오늘 완전 얌전하게 잤죠? 그쵸?”
“정말 그렇더군. 어쩌면 선우가 내 위로 굴러서 반대편으로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세르펜스가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휴마누스와 같이 잤을 때를 떠올리면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선우는 원래부터 잠버릇이 험했던 건가? 아니면 몸이 바뀐 이후로 생긴 버릇인가?”
“원래 험했어요. 그냥 가족 내력이죠, 뭐. 예전에 엄마가 어린 저랑 함께 자다가 깔아뭉갠 적이 있다고 얘기했잖아요?”
“···잠깐, 그건 조금 이상한데?”
돌연 세르펜스가 얼굴을 굳히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녀석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도 계속 누워있을 수는 없어서, 나도 따라서 일어났다.
“왜 그래요?”
“···’시온 리벨론’의 잠버릇은 어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억을 더듬어 시온의 잠버릇을 떠올려보았다.
그의 소심한 성격만큼이나 잠버릇 또한 얌전했다.
그 사실을 말하자, 세르펜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째서 유전적 요인이 신체가 바뀐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거지?”
“그야, 버릇이니까···?”
“그래도 가족 내력이 원인이라면 신체 반응에 가깝지 않나?”
듣고 보니 녀석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빙의 후, 험한 잠버릇의 원인은 무엇일까.
“넘치는 에너지에 비해 활동량이 부족한 아기들이 험하게 굴러다니며 잔다던데···. 성인도 해당하는 거겠죠?”
“그건 선우의 본래 육체에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까 한다.”
“엥? 그걸 세르펜스가 어떻게 알아요?”
“선우는 활력 넘치는 성격과 반대로, 은근히 게으르게 퍼져있는 것을 좋아하잖는가. 타고난 활력에 비해 활동량이 월등히 부족해서 그런 잠버릇이 나타난 게 분명하다.”
세르펜스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추론을 내놓았다.
그게 정답인지는 사실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내가 게으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따라서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현재 선우의 활동량은 절대 부족할 리가 없다. 시간이 나면 윈스톤과 틈틈이 체력 단련도 하고, 그게 아니어도 이동하면서 쓰는 체력이 상당할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선우는 어제 온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리기만 했잖은가. 평소보다 활동량이 월등히 적은데 잠버릇은 얌전했으니. 활동량 때문은 절대 아닐 거다.”
이건 그냥 사실이다.
그렇게 잠버릇의 진실은 미궁 속에 빠지는 듯했다.
“혹시···, 스트레스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세르펜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짚이는 구석이 있어서 아니라는 말이 안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처음 시온의 몸에 들어왔을 때 나는 잠을 심하게 설쳤다.
그러다가 세르펜스에게 이름과 정체를 밝힌 뒤로는 그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녀석과 같이 자게 된 뒤로는 훨씬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