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0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08화(708/1105)
708회
76. 공작님과 바다 (33)
“일단 감사부터 전할게. 일족의 배반자와 바다에 소환된 악마를 처치해 줬다지? 고마워.”
메로우 사도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일행 전원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배를 옮겨줬던 메로우가 우리 얘기를 잘 전달한 모양이다.
“더 빨리 찾아오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됐어, 그런 틀에 박힌 말은. 굳이 잘못을 찾자면 우리끼리 해결해 보려다가 도움을 요청할 기회를 날린 탓이지.”
메로우 사도는 예의를 차리는 휴마누스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일축하며,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냉정하게 시인했다.
식당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저조했던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전 회차에서도 외부에 알리지 않고 메숭이 일을 해결해 보려다가, 바닷길이 틀어막혀서 쥐도 새도 모르게 고립되어 무너졌으려나?’
메로우들은 폐쇄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극단적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남에게 잘못과 책임을 떠넘길 줄만 아는 인간들보다야 낫다.
“아 참. 오랜만이야, 성검의 주인.”
“네,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가워해야 하는 건 우리 메로우들지.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으니까.”
뒤늦게 휴마누스와 메로우 사도가 서로 알은척했다.
세계수를 찾아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시련 장소로 안내했던 사도가 대표로 우리를 맞이한 거다.
아마도 일종의 배려일 테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보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나와주는 게 우리로선 마음이 편하니까.
‘성검 일행 말고, 우리 쪽 일행은 처음 보는 거지만···. 아! 세르펜스라면 성검펜스의 기억을 통해 봤으려나?’
나는 세르펜스의 얼굴을 살폈다. 반가운 기색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했다.
성검펜스는 시련을 마치지 못하여 동굴 너머에서 기다리는 메로우 사도를 뒤로한 채, 몰래 이곳을 빠져나갔으니까.
불편하면 불편했지, 좋은 감정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악마의 시체 말이야, 여기까지 끌고 왔다는 건 그 처리를 우리에게 넘길 생각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네, 맡기겠습니다.”
“잘됐네. 사실 다른 사도들이 소식을 듣자마자, 악마의 시체를 태워버리겠다고 벌써 가버려서 거절하면 어쩌나 했거든. 나는 못 가서 아쉽긴 하지만···.”
메로우 사도와 휴마누스가 악마의 시체 처리에 관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세르펜스가 걱정되어 대화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괜히 여기까지 따라왔나?’
대충 핑계를 대고 세르펜스와 밖에서 기다릴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녀석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나 보다.
세르펜스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가 싶더니,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뜬금없이 안심하라는 듯한 눈짓을 보내며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절대로 당신이 물에 빠지게 두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가 무서워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줄 아나?
내가 지금 누구를 걱정하는지도 모르고, 세르펜스가 귓속말로 소곤소곤 헛소리를 해댔다.
이렇게 남 걱정이나 할 여유가 있는 걸 보면 그럭저럭 괜찮은가 보다.
나는 손을 뿌리칠까 하다가, 그랬다간 녀석이 상심할 게 뻔하여 그냥 내버려 뒀다.
“······?”
세르펜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메로우 사도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관심을 껐다.
“아무튼 어떻게 알고 찾아와 준 건지는 몰라도, 먼 길 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악마와 싸울 때 거들지 못해서 미안해.”
“아! 저희가 이곳에 오게 된 건 악마가 소환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용건이 있어서 오던 중에 악마와 마주치게 된 것뿐입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야 어찌 됐건, 너희가 우리 스메른의 은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그런 의미에서 알려줄게, 내 이름.”
휴마누스의 겸손한 말에 메로우 사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고작 이름을 알려주는 게 뭐라고 저렇게 생색을 내나 싶지만, 깊이 파고들면 그렇지만도 않다.
사도들이 지닌 이름은 오직 세례명뿐이며 메로우는 폐쇄적인 종족이다.
그러니 이름을 알려주겠다는 건, 우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으며 마음을 활짝 열었다는 증거다.
“나는 셀라피엘이라고 해. 내가 너희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
메로우 사도, 셀라피엘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우리에게 이름을 물어왔다.
휴마누스가 대표로 우리를 한 명씩 가리키며 이름을 알려주었다.
“잘 기억해 둘게. 그래서 성검의 주인···. 아니, 휴마누스는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다시 오게 된 거야?”
이제까지는 이름 따위는 기억하지 않았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셀라피엘이 휴마누스를 부르는 호칭을 수정했다.
어이가 없어서 ‘헐!’ 하는 소리가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삼켰다.
“첫 번째 용사의 무구가 지닌 능력을 개선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세계수 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곳에 오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드디어 휴마누스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예상치 못한 얘기였는지, 셀라피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가늘어졌다.
“흐음···. 개선이라고는 해도 기존의 능력이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 살짝 변형되는 것이며, 완전히 판이하게 바꾸는 건 안 된다는 것쯤은 설명 들었겠지?”
행여나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며 찾아왔을까, 셀라피엘이 떠보듯 질문했다.
우리가 바라는 능력은 세계수가 정해줬기에 괜한 걱정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무구의 기능을 수정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신 게 세계수 님이라면, 매개체는 잘 챙겨왔겠지?”
“물론입니다.”
휴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니마를 향해 손을 뻗자, 아니마가 아공간 주머니에서 투명한 유리병을 꺼내어 휴마누스에게 건넸다.
병 안에는 세계수 가지를 태우고 나온 잿가루로 추정되는 것이 담겨 있었다.
일반적인 재는 회색인 반면.
병 안에 든 내용물은 은과 에메랄드를 곱게 갈아 섞어놓기라도 한 듯, 고운 빛으로 반짝거렸다.
휴마누스가 유리병을 셀라피엘에게 건네려 했으나, 셀라피엘은 그것을 받아드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안내역. 휴마누스가 직접 가서 의지를 전달해야 해.”
“시련을 받았던 그 동굴로 말입니까?”
“아니, 무궁의 심해까지.”
“······.”
무궁의 심해는 말 그대로 심해다.
벌써부터 휴마누스의 고난이 예상되었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잠시 손을 놔 달라고 부탁한 뒤, 아공간 주머니에서 꾸덕꾸덕한 고열량의 버터바를 두 개 꺼냈다.
그중 하나를 까서 세르펜스의 입에 물려주고 남은 하나는 휴마누스에게 건넸다.
“갑자기 이건 왜 주는 거야?”
“지금 바로 갈 거죠?”
“응, 한시라도 빨리 가는 게 좋으니까.”
“그래서 드리는 겁니다. 아까 식사 제대로 못 했잖아요. 속이 든든해야 헤엄도 잘 치죠.”
“그런 이유라면 세르펜스에겐 왜 준 건데?”
“간식을 꺼낼 땐 무조건 세르펜스에게도 하나 줘야 합니다. 그게 기본 룰입니다.”
“···어, 그래. 잘 먹을게.”
휴마누스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포장을 까서 버터바를 베어 물었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코앞에서 달콤한 버터 스카치 향이 훅 풍겼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버터바를 반으로 쪼개어 내 입 언저리에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아까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잖습니까? 조금이라도 드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어서 입 열고 먹으라는 듯 세르펜스가 버터바로 내 입술을 꾹꾹 눌렀다.
가만히 있다가는 버터바가 짓뭉개질 것 같아서 잠자코 입을 열었다.
버터바는 마냥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고소하기도 했고, 비강을 가득 채운 버터 향은 고급스러웠으며, 씹는 순간 치아에서 느껴지는 차진 식감이 아주 훌륭했다.
이렇게나 맛있는 간식을 나눠주다니.
녀석의 마음씨가 무척이나 갸륵했지만, 꼭 이런 강제적인 방식을 택했어야 했나 의문스럽다.
지난날, 호두 피낭시에와 얽힌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입안에 든 버터바를 열심히 씹으며 세르펜스를 가만히 흘겨봤다.
내 불만을 모르는 건지 세르펜스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원래 아기들은 보호자에게 자신의 간식을 나눠줄 때 그냥 곱게 주는 법이 없지.’
손으로 하도 주물럭거려서 형체를 알 수 없게 되거나, 입에 넣었다가 뱉은 것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에 비하면 세르펜스처럼 입에 억지로 집어넣는 건 가벼운 애교 수준이다.
“그럼 다녀올게.”
버터바 한 개를 홀로 해치운 휴마누스가 샘에 몸을 담그기 전, 우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에게 잘 갔다 오라는 말을 건네거나, 손을 흔들어 주거나, 가볍게 묵례를 하거나 하며 배웅해 주었다.
셀라피엘은 우리의 인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가 폭탄 발언을 던졌다.
“사나흘 정도 걸릴 테니까, 남은 일행들은 관광이라도 하고 있어.”
“예?!”
놀란 휴마누스가 반문했으나 셀라피엘은 이미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어쩔 수 없이 휴마누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셀라피엘을 따라 물속에 풍덩 뛰어들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줄 알았으면, 버터바를 더 먹여주는 건데···.”
셀라피엘이 생선회라도 떠서 휴마누스를 잘 먹이면 좋으련만.
그 전에 무언가를 먹으며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는 할까 걱정이다.
“계속 여기에서 기다린다고 휴마누스가 빨리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일단 나가죠.”
내 의견에 따라, 우리는 샘이 있는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신관의 안내를 받아 숙소를 배정받았다.
아까 식당에서의 일도 있었던 터라 관광 같은 것을 할 기분이 아닌 데다가, 무엇보다 따뜻하고 깨끗한 물로 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만 그러한 게 아니라 다들 같은 의견이었다.
“그런데 세르펜스.”
“말해라.”
“찝찝할 텐데, 옆방 가서 씻고 오는 게 어때요?”
내가 욕조에 물을 받으며 질문하자 세르펜스의 눈동자가 큰 폭으로 흔들렸다.
어째서 녀석이 시장바닥에서 보호자를 잃어버린 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건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아예 방을 따로 쓰자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까?”
“선우가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은가. 내가 곁에서 지켜야 한다.”
“···그냥 욕조일 뿐인데요?”
“하지만 선우는 욕조에서 잠들었던 전적이 있지.”
“······.”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이런 게 바로 업보라는 건가 보다.
어차피 같은 남자끼리니 함께 씻어도 문제가 없긴 하지만, 그러기엔 욕조가 너무 좁았다.
방은 2인실이면서 어째서 욕조는 1인용인 건지 의문이다.
평소 세르펜스가 (스물)일곱 살인 것에 아무런 유감도 없었으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녀석이 진짜 일곱 살짜리 꼬마였으면 좋겠다.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고뇌하기는커녕, 진작 욕조에 넣고 꼼꼼히 씻겨줬을 텐데. 고무 오리도 사서 물에 동동 띄워놓고···.’
불가능한 꿈은 그만 꾸고, 다른 쪽으로 생각을 전환해야겠다.
가령 예를 들자면 공동 목욕 시설이라던가.
신전의 모든 방에 욕실이 딸린 건 아닐 테니 충분히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과연 낯가림 심한 세르펜스가 낯선 신관들과 함께 벌거벗고 씻는 걸 찬성할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문득 같이 사우나에 가면 등 밀어주는 아들이 있어서 좋다며, 엄청 즐거워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움에 젖어들려는 찰나.
사우나에서 딸만 둘인 친구와 우연히 마주치고, 얄밉게 으스대시던 모습까지 떠올려 버리고 말았다.
내가 놀림 받은 듯한 기분이다.
분명 아들이 있는데, 아들 가진 아빠들의 로망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에 비통해졌다.
“선우···?”
세르펜스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조용해지자 걱정스러워졌나 보다.
“그냥 갑자기 가족 생각이 나서요.”
“······.”
“저 먼저 씻을게요. 문 살짝 열어두고, 계속 대화하면 괜찮죠?”
“···그래.”
세르펜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욕실 밖으로 나가, 1cm가량의 틈만 남겨두고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