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1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11화(711/1105)
711회
77. 공작님의 짧은 휴가 (1)
나는 편지를 편지 봉투에 담아서 아공간 주머니에 던져 넣고, 우느라 부어오른 눈을 비볐다.
“세르펜스, 저 좀 잘게요.”
“그래. 푹 쉬어라.”
한바탕 울고 난 뒤라 무거워진 눈꺼풀이 자꾸 감기기도 했고, 진이 다 빠져서 낮잠을 청하기로 했다.
세르펜스는 그런 내게 수분 보충을 이유로 물을 마시게 하고, 발열석으로 데워진 물이 담긴 유리병은 자다가 깨트리면 위험하다며 치웠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주며 가슴 위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나 내 손보다 커다란 손을 꼭 붙잡고, 눈을 감은 채로 토닥임을 받고 있자니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까마득히 어린 시절.
누나에게 붙들려 무서운 영화를 함께 보고, 겁먹어 부모님과 함께 잠들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까지도, 세르펜스는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로 가슴을 토닥이길 반복하고 있었다.
내가 자는 내내 이러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고마우면서도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놓고 할 거 하시지···.”
“선우가 내 손을 잡고 있는데, 내가 어찌 그 손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내가 손에서 힘을 빼고 나서야 녀석이 손을 놓으며 답했다.
빈말이 아닌 것 같아서 헛웃음이 났다.
“그보다 제가 자는 동안 별일 없었죠? 누가 방에 찾아왔다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 다들 쉬고 있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죠.”
나는 이해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촉수 악마를 해치우고 난 이후로 전투가 없어서 몸은 편히 쉬었을지 몰라도, 마음만은 그렇지 못했을 테다.
세르펜스는 의심할 바 없이 뚜렷한 근거를 가지고 적의 습격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일행들은 2회차에서 마왕이 타락펜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모른다.
따라서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을 테고,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었을 거다.
심지어는 망가진 배에 탄 상태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으니 더더욱 그러했겠지.
“아! 그런데 지금 몇 시죠? 아까 식사를 부실하게 먹어서 그런가, 슬슬 배고픈데.”
“음···, 저녁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참아라.”
내 물음에 세르펜스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그 식사가 아침 겸 점심이 되어버렸다는 서글픈 소식이었다.
그래도 푹 자고 일어나서 몸이 개운해졌으니 후회는 없다.
밥 먹으러 가자고 부르러 온 사람도 없는 걸 보면, 다들 나처럼 잠든 것 같기도 하고.
더군다나 사나흘간 깊은 바닷속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 하게 생긴 일행도 한 명 있다.
그런 사람을 두고 자느라 점심을 못 먹었다는 이유로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뭔가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한 것 같으니까, 그냥 잡담이나 합시다!”
무거운 주제를 논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고, 모든 일을 마친 뒤 즐거운 미래를 그리는 건 불길한 플래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와 세르펜스는 별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때웠다.
뒤돌아서자마자 까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시시한 얘기들이 오갔다.
세르펜스와 노닥거리고 있자니 저녁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이제 나가야 할 때다. 나와 세르펜스는 차림새를 가다듬고 복도로 나와, 일행들의 방에 일일이 노크하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일행들을 모두 모아서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다들 피곤한 주제는 꺼내고 싶지 않았는지, 나와 세르펜스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식사를 하면서 들은 얘기 중, 기억에 남는 건 에드나와 아니마가 펼친 합동 마법에 관한 것 정도다.
“정말 대단한 건 우리 아니마죠. 제가 전개한 마법진을 실시간으로 해석하여, 그것에 맞춰 새로운 마법식을 새로이 만들어 낸 거니까요. 그리고 마력이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섬세히 조절해야 하는데 그것도···.”
합동 마법의 위력이 대단했다 칭찬하는 푸로르의 말에, 에드나는 모든 공을 아니마에게로 돌리며 자연스럽게 자식 자랑을 시도했다.
당당하게 자랑할 만한 성과를 보였으니, 그 누구도 에드나의 자랑질을 저지하지 못했다.
‘나도 오늘 세르펜스가 얼마나 기특했는지 자랑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내가 힘들어서 울었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해도 자랑거리라고 할 수 없는 도입부라서 그만뒀다.
신전에서 준비한 저녁 메뉴는 아침상에 올랐던 진미와 비교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침 식사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만족스러웠다.
“선배. 잠시 할 말이 있소.”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기 전.
윈스톤이 나를 불러세웠다.
“말씀하세요.”
“이곳에서 머무르는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련에 힘쓰는 게 어떨까 하오. 배움을 시작하여 집중력이 최고조일 때 최대한 시간을 들여서 감각을 익히는 게 중요한데, 이동 중에는 불가피하게 흐름이 자꾸 끊길 수밖에 없지 않소? 나는 지금이 검술을 시작하기에 적기라 생각하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검술 수련을 시작하자는 얘기였다.
빠져나갈 구멍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그 내용으로 보아, 어떻게 날 설득해야 할지 미리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온 게 틀림없다.
‘세르펜스에게 기초를 배웠으니, 검을 완전히 처음 배우는 건 아니지만.’
그 부분만 빼면, 지금이 적기라는 윈스톤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바다라는 무대에 최적화된 촉수 악마와 메숭이도 패배한 마당에, 악숭 세력이 이곳까지 찾아와서 공격할 것 같지도 않고.
신전에는 우리에게 호의적인 성직자들만 있어서 눈치도 안 보이고, 성기사들이 쓰는 연무장까지 빌려 쓸 수 있다.
검술을 배우기 위한 모든 조건이 전부 갖춰져 있었다.
이만큼 검술을 배우기 좋은 환경이 갖춰지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원래라면 내가 먼저 부탁해야 하는 건데···.’
배움을 청한 건 난데, 가르쳐 주기로 한 사람이 찾아와서 나를 설득하게 만들다니.
공연히 부끄러워졌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할까요?”
“시간 여유가 있으니 식후에 급히 움직일 필요는 없소. 연무장을 써도 되는지 신전 측에 물어보고 올 터이니, 잠깐만 쉬고 있으시오.”
윈스톤은 그 말을 남기고는 뒤돌아 어디론가 향했다.
어째 내 수련에 나보다 더 의욕이 넘치는 것 같다.
본인의 실력을 갈고닦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시간을 내주는 정도를 넘어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게 고마웠다.
나는 윈스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세르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됐는데, 세르펜스는 어떻게 하실래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겠다.”
“제가 위험해 보인다고 함부로 끼어들지나 마세요.”
“···노력해보겠다.”
대답은 했으나 영 자신이 없는지 세르펜스는 유지스를 불렀다.
자신이 튀어 나가려 하면 막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나 뭐라나?
그러다 내가 윈스톤에게 검술 교습을 받는다는 소식이 일행들에게 알려졌다.
재밌을 것 같다며 푸로르가 가장 먼저 관전을 신청했다.
호기심이 당겼는지 에드나도 찬동했고, 바늘 가는 데 실 간다고 아니마가 세트로 딸려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리에나 혼자 방에 있는 것도 이상해졌다.
그렇게 심해에 처박힌 휴마누스를 제외한 모든 일행이, 내가 윈스톤에게 두들겨 맞는 걸 구경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검술은 왜 배우겠다는 거야?”
“오러는 익힐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만이라도 최대한 노력하고 싶어져서요. 제가 일분일초라도 시간을 끌었다면 누군가 구해주러 왔을 텐데.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바다에 끌려 들어간 게 분하더라고요.”
“오올~! 제법 기특한걸?”
내 대답을 들은 푸로르가 감탄하며, 맨손으로도 써먹을 수 있는 격투술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졸지에 배워야 할 게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불만스럽지는 않았다.
“아, 그래. 너희 셋도 같이 배우는 게 어때?”
왜냐하면 동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셋이나.
“···네?”
“예?!”
“내가 왜?!”
푸로르에게 지목당한 리에나와 에드나, 아니마가 갑자기 튄 불똥에 앗 뜨거워라 하며 반응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푸로르는 여유롭게 그들의 반발을 일축했다.
“본격적으로 배우라는 건 아니니까 걱정 마. 그냥 가끔 시간 내서 체력 단련이라도 해 두라는 거지. 너희는 체력이 약해도 너무 약하잖아. 지금까지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상황이 나빠져서 강행군이 이어지면 따라오기 힘들어질걸?”
뼈를 때리는 지적에 허약 체질 트리오는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푸로르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 그래도 리에나, 너는 역시 제대로 배워보는 게 좋겠다.”
“네, 네?! 저만요?”
“너는 휴마누스나 세르펜스 나리와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쓰잖아. 근접 공격 수단을 익혀두면, 적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허를 찌를 수 있지 않겠어?”
“그, 그렇지만 제가 몸을 쓰는 데에는 재능이 없어서···.”
“너는 그냥 재능이 없을 뿐이지만, 시온은 능력 자체가 없잖아. 그런데도 노력하겠다는 거고. 게다가 휴마누스는 뭐 치료랑 결계 생성에 재능이 있어서 노력하고 있나?”
졸지에 나는 무능력자가 되었고 휴마누스는 재능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반박해 봤자 꼴이 우습게 될 뿐이다.
그래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자, 리에나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아···.’ 하고 작은 탄성을 흘렸다.
기분이 아주 많이 이상해졌다.
그렇게 팩트 폭력을 넘어선 무차별 팩트 폭격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엄숙함뿐이었다.
휴마누스가 자리를 비운 사흘간, 휴가가 주어질 줄 알았건만.
그게 지옥 훈련의 서막이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
잠시 후.
연무장 사용을 허가 받고 돌아온 윈스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복도에 빙 둘러서서 묵념하는 우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정도로 궁금했던 건 아닌지, 그는 연무장 위치를 알아 왔다며 앞장서 걸어 나갔다.
“그럼 우선 준비 운동부터 시작하겠···소.”
연무장에 도착하여, 그 한복판에서 나와 마주 보고 선 윈스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고개를 돌려 자신과 나란히 선 푸로르를 한 번 쳐다보고, 내 옆에 주르륵 일렬로 선 트리오에게 눈길을 준 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을 내게 보냈다.
“어쩌다 보니 저 세 사람도 단련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 셋의 교육은 푸로르가 담당할 거니까 윈스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 참! 그리고 저, 푸로르에게 맨손 격투도 배우기로 했어요.”
“···좋은 생각이오. 맨손으로 싸우는 법을 익혀 두면 무기를 놓쳤을 때 도움이 될 테니, 잘 배워 두시오.”
윈스톤이 앞의 두 문장을 깡그리 무시하고 마지막 말에 대한 대답만 내놓았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는 했지만, 그 말을 이렇게나 빨리 반영하다니. 습득력이 장난 아니다.
어쨌든 다 같이 가벼운 스트레칭을 마치고 워밍업으로 연무장을 돌았다.
나는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해 왔다는 이유로, 허약 체질 트리오보다 두 바퀴나 더 뛰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세르펜스는 바닥에 피크닉 매트를 깔아 놓고 유지스와 나란히 앉아, 그녀가 건네준 ‘유자 애플 티’를 홀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