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1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14화(714/1105)
714회
77. 공작님의 짧은 휴가 (4)
이제 윈스톤과의 대련도 끝났으니 연무장 중앙에서 격투술 수업을 해도 된다.
하지만 나는 푸로르와 허약 체질 트리오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부르는 대신, 그들이 있는 연무장 구석으로 향했다.
힘이 다 빠진 아니마가 바닥에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차마 일어나서 여기까지 걸어오라는 말을 못 하겠다.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 에드나의 무릎에 머리를 올려두고 있길래, 언뜻 봤을 때는 그냥 힘든 척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척’이라면 감이 뛰어난 푸로르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진짜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지쳤다는 뜻이다.
‘저 세 명 중에서 체력이 가장 약한 건 아니마인가 보네.’
아니마, 에드나, 리에나.
세 사람 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새하얀 입김을 토해내듯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점은 똑같았다.
다른 점은 바로 자세다.
아니마는 바닥에 드러누웠고, 에드나는 앉아 있었으며, 리에나는 다리가 후들거릴지언정 서서 버텼다.
에드나가 아니마보다 체력이 좋은 건, 공작저에서 머무는 동안 틈틈이 계단 운동을 한 덕분일 테다.
그녀는 마법 연구가 잘 안 풀려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커피를 마셨고, 그러고도 막히면 계단을 올랐다.
‘멍하니 앉아서 귀한 시간을 축내느니, 그 시간을 미래의 수명 연장에 투자하겠다나?’
그리고 리에나가 두 마법사들보다 멀쩡할 수 있었던 건, 신성력 보정을 받은 까닭일 테다.
신성력이 체력 자체를 길러주는 건 아니어도 지친 걸 회복해 줄 수는 있으니까.
그런 힘을 몸속에 품고 있으니, 마법사들보다 체력 소모가 더딘 건 당연했다.
‘그래 봐야 도토리 키재기지만.’
내가 윈스톤의 목검에 맞고 나가떨어진 게 무려 십여 회다.
이 얘기는 대련을 한 횟수가 장장 십여 번에 다다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달려들자마자 얻어맞은 거니까 소요 시간 자체는 얼마 안 된다.
“다들 체력이 정말 엉망이지? 이제껏 여행해 왔으니 어느 정도는 버틸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운동을 하니까 바로 밑천이 드러나네.”
푸로르가 쯧쯧 혀를 차면서 가까이 다가온 내게 말을 붙였다.
마치 ‘너는 그동안 체력 단련을 꾸준히 해 왔으니 얘들이랑은 다르겠지? 그렇지?’ 하고 묻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부담스러워서 나는 대답 대신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검술의 기본기를 배웠다니까, 몸의 무게 중심을 잡는 법 같은 기초적인 건 생략해도 될 테고. 주먹 쥐는 법은 알아?”
“이렇게 하면 되죠?”
나는 당당하게 주먹을 쥐어, 정권 지르기를 하듯 팔을 앞으로 곧게 뻗었다.
이래 보여도 내가 어렸을 때 1년가량 태권도 도장을 다니고, 군대에서 태권도를 또 배웠던 사람이다.
그런데 주먹 하나 제대로 못 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푸로르가 내 주먹을 살피며 엄지손가락의 위치와 나머지 손가락의 각도. 그리고 손아귀에 들어간 힘을 점검했다.
그러고는 ‘요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펼쳐 내 주먹 앞에 가져다 대고 살짝 밀었다.
어깨와 주먹을 정확히 일직선상에 두어,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다.
시온의 몸으로는 품새를 펼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주먹을 쥐고 앞으로 뻗는 것쯤은 이론만 알아도 충분하다.
가르칠 것이 줄어든 푸로르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검술의 기본기를 익혔다더니, 격투술도 익히긴 했나 보네. 세르펜스 나리에게 배운 거려나? 아니면 윈스톤 경?”
푸로르가 이런 억측을 내놓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모든 기사는 필수적으로 맨손 격투 기술을 익혀 둔다.
전장에서 무기를 놓치거나 그것이 부러졌을 때. 혹은 연회장처럼 무기 반입이 금지된 곳에서 사건 사고가 터졌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제국 수도의 귀족들에게는 자문회라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지.’
세르펜스가 주먹질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윈스톤이 주먹을 휘두르는 건 본 적 없지만, 당연히 잘하겠지.
아무튼 두 사람 다 격투술을 익혔고 내 훈련에 이바지했으니까.
내가 격투술을 배웠다고 하면, 그 두 사람에게 배웠겠거니 생각하는 건 당연한 사고의 흐름이다.
“······.”
내게 격투술을 가르쳐 준 적이 없고, 내가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 또한 본 적 없는 윈스톤이 말없이 내 주먹을 살폈다.
대체 주먹 하나 쥔 게 뭐 이리 대단한 거라고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누나랑 같이 태권도라는 무술과 웅변을 함께 가르치는 학원에 다녔다고, 이력서의 성장 과정에 써서 세르펜스에게 제출해 두길 잘했네.’
참고로 그 두 가지를 함께 배운 이유는 간단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체육관이 그곳이었고, 두 가지 다 등록하면 할인을 해 주겠다는 관장의 말에 엄마가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력서에 그 얘기를 적어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세르펜스는 대체 누구에게 그런 걸 배운 거냐고 집요하게 캐물었을 테다.
“본래 세상에서 어릴 때 1년 정도 잠깐 배웠습니다. 그리고···, 음···.”
그동안 나는 군필이라는 사실을 세르펜스 포함, 모두에게 숨겨왔다.
윈스톤의 체력 단련이 더 고단해질까 봐서.
‘그래도 앞으로는 빡세게 배우기로 했으니, 이제는 말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군대에서 대단한 걸 배워온 건 아닌지라 또 망설여진다.
만약 내가 지금 ‘제가 사실 군필인데요, 군대에서 무술을 좀 배워왔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치자.
푸로르의 기대치는 하늘을 뚫을 테고, 윈스톤은 군인이었다던 사람이 왜 이 모양이냐고 물을 테고.
세르펜스는 왜 그 사실을 자신에게까지 숨긴 거냐며 토라질 게 분명하다.
나중에 흘리듯이 슬쩍 얘기하거나 말거나 하자. 그게 좋겠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딱 잘라 말하자, 윈스톤은 더 이상 그 부분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많이 궁금했던 건 아닌가 보다.
반면에 푸로르는 관심이 많아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고작 1년만 배우고 관둔 거야?”
“원래 제가 배우고 싶어서 배운 게 아니라, 부모님이 보내서 배우게 된 거거든요? 무술을 배우면 지쳐서 밤에 일찍 잘 거라는 계산을 깔고 체육관에 등록시킨 건데, 체력이 붙는 바람에 오히려 더 날뛰게 되었다나 봐요.”
덤으로 웅변까지 배워서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가 커져서, 너무 시끄러워졌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이건 너무 TMI라서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나마도 1년을 채운 건 기왕 시작한 거 품띠는 따야 폼이 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잠깐 배운 거치고는 자세를 잘 기억하고 있네?”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배울 기회가 잠깐 있었거든요.”
“또 잠깐이야? 제대로 배워뒀으면 좋았을 텐데···.”
내 얘기에 푸로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다른 세상의 격투 기술이 궁금했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살짝 보여주고 싶기는 한데, 안타깝게도 내가 누구를 가르쳐 줄 실력은 아닌지라.
더욱이 시온의 몸으로는 발차기 한 번 안 해봐서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괜히 시범을 보인다고 나대다가, 혼자 고꾸라지면 무슨 개쪽이야?’
그렇게 되면 부끄러워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할 테다.
“아무튼 알겠어, 참고할게. 그나저나 기본기를 다지고 나면 리에나랑 대련을 시킬 예정이었는데, 경험자였을 줄이야···. 리에나의 수련 시간을 더 늘려야 하나?”
푸로르가 아쉬움을 접어두고, 앞으로의 교육 커리큘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혼잣말과 함께.
수련 시간이 늘어난다는 말에 리에나가 눈을 크게 떴고, 나는 나대로 대련 얘기에 당황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우리 둘 말고도 식겁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으니.
바로 세르펜스였다.
“선우는 신성력을 지닌 아기에게도 패배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과의 대련이라니···. 하물며 리에나 님은 이제 막 격투술을 배우기 시작한 초심자이지 않습니까? 힘 조절이 안 되어서 너무 위험합니다.”
정말 너무하다. 너무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기와 싸워서 패배한 거냐는 성검 일행과 에드나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진짜 정식으로 결투를 벌여서 진 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냥 머리끄덩이만 잡혔을 뿐이거늘.
하나 내가 비비의 무자비한 손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사실이고, 정식으로 결투를 벌였어도 졌을 것 같긴 했다.
그래서 반박 대신 변명을 입에 올렸다.
“리벨론 가의 막내이자, 시온의 환생인 비비 얘깁니다! 시온의 새 육체요! 겉모습은 작고 어려도 정신은 성인이니까, 일반적인 아기가 아닙니다. 체급 같은 건 신성력 버프 하나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거 아시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내가 리에나와 선우 널 대련 붙일 생각을 했던 거고.”
푸로르가 안쓰러우니까 인정해 주겠다는 듯, 동정하는 표정으로 내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고마운데 안 고맙다.
“어쨌든 그 점도 참고해서 밸런스 조절을 해 볼게.”
내가 무술을 배웠다는 것보다, 비비에게 패배한 전적이 있다는 것에 더 많은 무게가 쏠린 듯한 느낌이다.
신성력 없는 사람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나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시선에 담아 푸로르를 노려보았다.
“자, 자! 다들 다 쉬었지? 어서 일어나!”
내 시선을 느낀 푸로르가 바닥에 눕거나 앉은 두 마법사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하며, 딴청을 부렸다.
아니마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에드나는 다리에 쥐가 난 탓에 리에나의 신성력 신세를 지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우의 정확한 실력은 어느 정도야?”
“맨손 격투 얘기라면 그냥 리에나를 가르치는 김에 처음부터 가르쳐 주세요. 어차피 이 몸으로는 격투술을 써 본 적이 없으니까.”
“알겠어.”
내 대답에 푸로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시선을 옮겨 윈스톤을 쳐다보며 입을 뗐다.
“윈스톤 경, 할 일 없으면 저 두 사람 체력 단련 좀 시켜 줄래?”
“알겠소.”
윈스톤이 푸로르의 부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를 따라 연무장 구석으로 온 것도, 푸로르의 일을 거들어주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우선 오늘은 주먹을 뻗는 방법과 휘두르는 방법을 알려줄게. 가장 기초적인 거니까, 오늘 내로 완전히 몸에 익히도록 해.”
푸로르가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시키겠다.’라는 뜻이 담긴 무시무시한 말을 하며, 주먹을 뻗는 것과 휘두르는 것의 차이를 몸소 보여줬다.
“뻗는 건 이렇게, 휘두르는 건 이렇게.”
기마 자세를 취한 푸로르가 팔을 뒤로 당겼다가 빠르고 절도 있게 주먹을 내뻗었다.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슉!’ 하는 소리가 났다.
그다음에는 일직선으로 곧게 펴진 팔을 도로 접고, 이번에는 허리를 돌려 상체까지 회전시켰다.
그러고는 주먹에 회전력을 실어 힘껏 휘둘렀다.
이번에는 풍선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팡!’ 하는 소리가 울렸다.
‘상체의 움직임만 보자면, 복싱의 잽과 스트레이트를 살짝 변형한 느낌···인가?’
어쩌면 복싱보다 더 비슷한 동작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다양한 격투기를 섭렵하고 있는 것도 아닌지라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쪽 관련으로는 까막눈에 가까워서, 복싱과 비슷해 보인다는 것도 그냥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거나 중요한 건 동작에 대한 이해도다.
나와 리에나는 나란히 기마 자세를 취하고, 푸로르를 따라서 두 번의 주먹질을 했다.
“뭐라도 배워놔서 그런가, 선우는 곧잘 따라 하네. 조금만 고치면 되겠어.”
푸로르는 우선 내 동작을 다듬어 주고 양쪽 서른 번씩 반복하게 시킨 뒤.
이따금 내 모습을 확인하며, 리에나의 동작을 계속 고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