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2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21화(721/1105)
721회
77. 공작님의 짧은 휴가 (11)
열심히 문을 열고 돌아다닌 결과, 비어있는 창고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스메른 섬 신전의 연무장에 비하면 반의반도 안 되는 넓이였지만. 애초에 그곳은 성기사 십수 명이 훈련하는 공간이다.
이 창고 넓이 정도면 나를 비롯한 네 사람이 굴려지기에 충분하다 못해 남아돌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창고를 제외한 방의 크기는 전부 고만고만했다.
심지어 개별 욕실조차 없었다.
대충 둘러본 바에 의하면 짐을 옮기는 용도로 제작된 선박을 신전 측에서 대여, 혹은 구매한 듯했다.
나는 동선을 고려하여 공용 욕실과 가장 가까운 방을 찜했다.
처음에는 창고 근처로 할까 했지만, 씻고 나서 다시 침실로 돌아와야 하는 걸 생각하면 역시 욕실과 가까운 게 최고다.
“그러고 보니 나는 리에나에게 결계와 치료 계통의 신성력 운용법을 배웠으면서, 리에나에게 적과 싸우는 방법을 가르칠 생각은 왜 못 했을까?”
방이 정해지고 난 후.
휴마누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리에나에게 신성력을 공격 용도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어차피 악숭이들이다.
몸에 흑마력의 기운을 담고 있으니 치료용 신성력에도 피해를 볼 테지만, 그래서야 효율이 떨어진다.
신체 단련이 아니기 때문일까?
리에나는 소중한 휴식 시간이 날아가게 생겼음에도 기꺼이 휴마누스의 가르침에 응했다.
‘과연 휴마누스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이제껏 휴마누스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못 봐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리에나는 우수한 학생이기에 걱정은 안 된다.
신성력 운용에 능통한 사람이니, 모르긴 몰라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숙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창고로 들어간 리에나와 휴마누스에게서 신경을 끊고, 세르펜스와 함께 내가 찜해둔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침대 세 개는 절대 못 놓을 것 같죠?”
“이제 잠버릇도 많이 얌전해졌으니, 그냥 나와 같이 자면 되는 것 아닌가?”
“어차피 휴마누스가 자는 동안 옆에서 지켜봐야 해서 못 자니까 상관없으려나?”
“내가 깨워줄 테니, 선우는 자라.”
“······.”
나는 조용히 세르펜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녀석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고 묻는 듯,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나는 하루 정도 안 자도 괜찮다. 하지만 선우는 가뜩이나 약한 체력으로 격투술을 배우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으니, 밤을 새우면 바로 몸에 이상이 생길 거다.”
“그건 그렇긴 한데···. 혼자 밤을 새우는 건 너무 심심하지 않겠어요?”
“나도 자기는 잘 거다. 다만 깊게 잠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게 조절이 돼요?”
“잊었는가? 원래 나는 혼자서···.”
“거기까지.”
세르펜스의 입에서 학대당하던 시절 얘기가 나오는 게 싫어서, 손바닥으로 녀석의 입을 덮어버렸다.
녀석이 하려던 말이야 뻔하다.
원래 혼자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악숭 세력과 싸울 예정이었다.
불침번을 서 줄 동료도 없는데 깊이 잠들면 암살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자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훈련을 해 왔다.
대충 그런 얘기가 이어졌을 거다.
‘그리고 그 훈련에는 분명 비윤리적인 방법이 동원되었겠지.’
나는 세르펜스가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지 않길 바란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세르펜스는 얌전히 입을 닫았다.
“그래도 밤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지금 미리 자 둘까요?”
“그러는 게 좋겠군.”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르펜스가 방 안의 가구를 아공간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침대를 떡하니 꺼내 놓았다.
작은 방에 큼직한 녀석의 침대가 들어서자 방이 거의 꽉 찼다. 내 침대를 꺼내기엔 자리가 아슬아슬하게 부족하다.
‘원래 이곳에 있던 침대는 매트리스가 영 별로일 것 같은데···.’
일단 지금은 세르펜스의 침대에서 자고, 이따 밤에는 내 거랑 휴마누스의 침대만 꺼내 놔야겠다.
침대에 눕자 이불에서 묘하게 뻣뻣한 감촉이 느껴졌다.
에드나에게 부탁해서 마법으로 이불을 빨았는데, 그 과정에서 고급 실크로 된 이불 커버가 조금 상한 모양이다.
그래도 버석거리는 소금기가 남아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불은 나중에 새로 사는 거로 하고, 지금은 세르펜스와 낮잠을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한숨 자고 일어나서 일행들과 점심을 먹은 뒤. 임시 수련실로 명명한 창고로 자리를 옮겼다.
창고에 모인 인원은 교육을 맡은 푸로르와 윈스톤. 훈련생인 나와 리에나. 그리고 관전자인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뿐이었다.
두 마법사는 마법 연구를 하러 빠졌고 유지스는 답답하다며 갑판으로 나가버렸다.
유지스의 능력을 믿기 때문인지, 세르펜스는 그녀가 나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신경을 완전히 끈 건 아니었다.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같이 가 주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게 웬 떡이냐며 신이 나서 녀석의 제안을 수락할 줄 알았건만.
어째서인가 유지스는 혼자 바람을 쐬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게 충격이었던 걸까?
현재 세르펜스는 시무룩해져서 창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중이다.
나는 훈련을 시작했으니 녀석을 달랠 수 없었고, 눈치 없는 휴마누스는 그런 녀석을 달랠 생각도 못 하고 있다.
“배가 그리 크지 않아서 흔들림이 심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흔들리네요?”
나는 준비 운동을 하다가 떠오른 바를 말했다.
여러 동작을 연습하다가 흔들림 때문에 균형을 잘못 잡아 넘어지면 어쩌나 했건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지금 물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흔들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을 다루는 메로우의 힘으로 배를 움직이고 있어서 그런가?’
그래도 여객선은 좀 흔들렸었는데.
배의 크기가 작아서 안정적으로 옮기기 수월한가 보다.
‘섬의 뒤쪽으로 안내해 준 신관의 말에 의하면 배는 신전 측에서 준비한 거지만, 우리를 육지까지 데려다주는 건 메로우 측에서 먼저 제안한 거라던데···.’
촉수 악마와 싸울 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이자, 바다의 평화를 되찾아 준 것에 대한 보답일 테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하지만 푸로르의 생각은 나와 많이 다른 듯했다.
“그러게, 아깝다. 균형 감각을 기르는 좋은 훈련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쩝, 입맛을 다시며 말하는 모습으로 보아 여간 아쉬운 게 아닌가 보다.
윈스톤도 푸로르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못 본 거로 하자.
오후 훈련이 시작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와 리에나가 팔을 들어 올리거나 한 발짝 다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지칠 대로 지쳤을 때 꿀 같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 두 사람은 곧바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다가와 마실 물을 건네고, 수건으로 땀을 톡톡 두드려 닦아주었다.
휴마누스는 멀뚱멀뚱 세르펜스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뒤늦게 세르펜스에게 수건과 물을 받아다가 리에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세르펜스의 케어를 받으며 쉬는 동안.
푸로르와 윈스톤은 우리의 교육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훈련을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리에나가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얼추 감을 잡은 것 같더라? 역시 체계적으로 배운 기사라서 그런가, 기본기 하나는 확실히 다져주네! 이제 본격적으로 근력을 키워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슬슬 그래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소.”
현재 리에나는 26년 평생 쓴 적도 없고, 있는지도 몰랐던 근육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을 거다.
전신이 근육통을 호소할 만큼 근력 운동을 빡세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제대로 된 근력 운동은 아직 시작조차 안 했다는 듯한 푸로르와 윈스톤의 대화에, 리에나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제 중량을 치려나 보네.’
맨몸 운동으로도 근력을 키울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아령 등 도구의 도움을 받는 것에 비하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나 속성으로 근력을 키우려면 중량을 늘리는 게 최고다.
“그보다 오늘 선우 선배의 움직임을 보니, 팔동작의 비중이 높은 것 같던데. 기왕이면 발동작 위주로 가르쳐 주었으면 하오.”
“응? 발 위주로? 아아! 검을 든 상태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으니까?”
“그렇소.”
“나는 무기도 안 드는 데다가 손을 주로 써서 그 생각을 못 했네···. 알았어, 지금부터 그렇게 할게.”
그렇게 말하며 푸로르가 내 쪽을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한다는 말인즉, 휴식 시간은 이제 끝이란 소리였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떨어지라는 손짓을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 들었지? 연속으로 발차기를 하는 건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더 어렵겠지만, 한 번 열심히 해보자.”
“아, 뭐. 괜찮아요. 어차피 제가 전에 배웠던 무술이 발차기 위주여서.”
“그래? 좀 보여줄 수 있어? 기억나는 거라도 대충.”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법인데. 이놈의 입이 방정이다.
결국 푸로르의 입에서 시범을 보여달라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내가 싸우는 걸 봐 왔으니까 알 거 아니야? 나는 여러 동물의 힘을 끌어다 쓰며 신체를 변형해 가며 싸우잖아. 그래서 내가 쓰는 격투술은 일반적인 격투술이랑 많이 달라.”
내키지 않아 하는 게 티가 났는지 푸로르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잘 가르쳐 줘 놓고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다.
드루이드 능력을 쓰지 않더라도 그녀는 동물적인 감각을 타고난 훌륭한 격투가다.
본능에 의존해서 싸우는데 신체 구조 같은 건 상관없다.
인간의 신체를 이용해서 싸우는 법도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다.
‘하지만 그건 푸로르의 스타일이 아니긴 하지···.’
기실, 푸로르의 싸움법은 평범한 인간의 신체로는 따라 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만일 푸로르가 팔을 곰의 앞발로 바꾸어 휘두른다고 치자.
평범한 사람이 맞으면 목이 꺾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찢겨 나가리라.
하지만 내가 팔을 휘두른다?
그냥 하이파이브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
그리고 푸로르는 종종 네 발로 땅을 박차, 단숨에 상대방의 품에 파고들어 할퀴기 공격과 연계하곤 했다.
심장을 잘만 노리면 일격에 상대를 죽일 수도 있는 위협적인 동작이다.
하지만 내가 적과 싸우다 말고 네 발로 뛰면 미친 짓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사족 보행을 하는 동물의 다리는 그 구조부터 인간의 것과 다르다.
그 때문인지 푸로르가 내게 알려준 발차기 동작은 매우 기본적인 것뿐이었다.
‘가만 보면 맨손으로 싸우는 격투술 자체가 덜 발달한 것 같기도 하고···?’
생사가 오가는 싸움이 많은 동네라서, 무기를 쓰는 게 당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나마 푸로르가 자체적으로 발전시켜온 게 있어서, 이것저것 가르쳐줄 수 있었던 거겠지.
“그리고 너도 기왕이면 네게 익숙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게 낫지 않겠어?”
시온의 몸으로 써 본 적도 없는 기술에 익숙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냐마는.
푸로르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자신은 잘 쓰지 않는 발동작 위주의 무술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저 진짜 어설픈데···.”
“괜찮아, 이해해. 그 몸으로는 한 번도 안 해 본 동작이잖아?”
“···원래도 좀 어설퍼요.”
“걱정 마. 대충 느낌만 알면, 원래 어떤 동작인지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니까.”
처음부터 완벽한 동작 같은 건 기대도 안 했다는 듯한 말투다.
어렸을 때와 성인이 되고 나서, 잠깐 배운 게 전부라고 내 입으로 말한 적 있으니 당연한가?
“아, 알았어요. 해 볼게요.”
일단 그렇게 대답하며 준비 자세를 취하긴 했는데 과연 이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자칫 잘못하면 고향의 무술을 욕 먹이는 짓이 될지도 모른다.
부담이 가슴에 무겁게 얹혔다.
“···제가 이상하게 해도 진짜 꼭 원형을 복구해 주깁니다?”
“걱정하지 마. 여기 몸 쓰는 데 도가 튼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내가 계속 긴장하자, 푸로르가 세르펜스와 휴마누스, 윈스톤을 쭉 눈짓하며 말했다.
눈치 없는 휴마누스는 열외로 치고, 윈스톤이 무기 없이 싸우는 건 못 봐서 일단 보류해 놓더라도.
격투술 전문 푸로르와 만능펜스는 좀 믿을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