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2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22화(722/1105)
722회
77. 공작님의 짧은 휴가 (12)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번 해 보자!’
기왕 하는 거 태극 1장부터 품새를 쭉 보여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 없었다.
제대한 지가 언젠데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대로 이렇게 차 봤다가, 저렇게 차 봤다가.
내가 가능한 선에서 여러 발차기 동작을 선보였다.
고난도 동작을 펼칠 때 살짝 비틀거리긴 했지만.
최근 푸로르에게 격투술을 배우느라 몸이 좀 풀려서 그런가, 다행히도 꼴사납게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 음···. 이상입니다?”
아는 동작을 다 했는데 끝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 뒤 후다닥 창고 구석으로 도망쳤다.
어째 나 홀로 재롱잔치를 한 기분이라 괜히 부끄러워진 까닭이다.
“멋진 시범이었다. 잘했으니 부끄러워하지 마라.”
혼자 벽을 보고 서 있자니, 세르펜스가 다가와서 등을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녀석의 칭찬은 못 믿겠다.
내가 혼자 허우적거리다 엉덩방아를 찧었어도, 세르펜스라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졌다며 박수를 치고도 남았다.
“맞아, 정말 멋진 발차기였어! 발끝과 뒤꿈치, 발등과 옆면 등. 발의 다양한 부위를 전부 활용하는 게 인상적이더라.”
이번 칭찬의 목소리는 푸로르의 것이었다.
나는 벽에서 시선을 떼고 슬쩍 고개를 돌려 푸로르를 바라보며, ‘정말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푸로르가 정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태권도의 특징 중 하나를 제대로 짚은 걸 보면, 내 시범이 아예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니었나 보다.
살짝 안도감이 들었다.
“딱딱 끊어서 움직이는데, 묘하게 흐느적거리는 게 신기했어!”
“태권도는 원래 절도 있는 무술인데요?”
“······.”
휴마눈새가 시류에 편승하여 칭찬해 보려다가 내 반박을 듣고 조용히 닥쳤다.
그의 눈치 없는 행동에 세르펜스가 눈을 흘겼고, 푸로르는 이마를 짚었다.
윈스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오늘도 배경처럼 잠자코 있었다.
이래서 가만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간다고 하나 보다.
참고로 리에나는 모든 이들의 관심이 내게 쏠린 상황을 틈타, 계속 휴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무척이나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리에나를 못 본 척해 주기로 했다.
“대충 이 네 가지 동작을 바탕으로 응용해 나가는 것 같은데, 맞아?”
푸로르가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몸 돌려차기 순으로 발동작을 해 보이며 말했다.
기본적인 동작이지만 어디 한 군데 트집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무슨 대답이 그래? 네가 선보인 기술이잖아?”
확신 없는 내 대답에 푸로르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태권도 전문가가 아니다.
배울 때도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하기만 했지, 이론적으로 자세히 파고든 적은 없다.
“나머지 동작도 해 볼게, 맞는지 확인해 줘. 그 정도는 가능하지?”
대충 느낌만 알면 원형을 알아볼 수 있다더니.
푸로르는 내가 펼쳤던 모든 동작을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지게 해냈다.
“이거 실전에서 잘 써먹을 수 있겠는데? 회전력을 제대로 실으면 위력이 상당하겠어!”
직접 동작을 펼치고 나서야, 내 어설픈 시범을 봤을 땐 몰랐던 위력을 알게 되었다는 듯.
푸로르가 뒤늦게 감탄했다.
‘아아, 이게 바로 K-무술의 정수인 태권도라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국뽕을 치사량까지 들이켜야 하는 타이밍이다.
하지만 막상 그 대사를 입에 담으려니 너무 오글거렸다.
게다가 내 개떡 같은 동작을 찰떡같이 알아본 푸로르의 뛰어난 재능을 앞에 두고, 내가 개발한 것도 아닌 무술로 잘난 척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올림픽에서 태권도 부문 금메달을 전부 외국인 선수에게 뺏긴 기분입니다!”
“올림픽? 금메달? 그게 대체 무슨 기분이야?”
“우리 태권도가 세계인의 태권도가 되었구나 싶어 자랑스러운데, 묘하게 분해요!”
“내가 너보다 더 잘해서 분한 거면, 네가 열심히 수련해서 나보다 더 잘하게 되면 되잖아?”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미안, 부정해 주고 싶은데 거짓말은 좀···.”
푸로르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기분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준답시고 거짓을 말했다면 진짜로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는 할 생각입니다.”
“좋은 자세야. 그럼 방금 네가 보여준 그 동작들을 한 번 다듬어 줄게. 아! 그런데 몸을 바깥쪽으로 돌려서 뒤로 차는 동작 말인데.”
“몸 돌려차기요?”
“그런 명칭이구나? 어쨌든 그 동작은 실전에서 안 쓰는 게 좋겠어. 나는 쓸 거지만.”
그냥 쓰지 말라고 하면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푸로르가 마지막에 덧붙인 한마디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벙찐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자, 푸로르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세한 이유를 설명했다.
“네가 회전력을 실으려고 몸을 돌리는 것보다, 적이 칼을 휘두르는 게 훨씬 빠를 거야.”
내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내가 하면 그냥 등에 칼을 꽂아 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소리였다.
오러를 쓰는 초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느껴질 만도 하다.
“애초에 네가 맨몸으로 적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하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까 발동작은 견제와 방어 위주로 쓰는 게 좋겠어. 공격은 검으로 하고.”
“만약 검을 놓치면요?”
“적당히 견제하다가 틈을 봐서 재빨리 바닥을 굴러. 그리고 검을 주워.”
진정한 우문현답이다.
검을 놓치면 다시 주워야 하는 게 당연한데, 내가 너무 어리석은 질문을 해버렸다.
“자, 이제 그만 놀고 다시 시작하자.”
마치 슬레이트라도 치듯 푸로르가 짝짝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나를 위로하느라 가까이 왔던 세르펜스가 가볍게 내 어깨를 주무르며, 잘하라고 속삭인 뒤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휴식이 끝났음을 직감한 리에나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윈스톤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아령을 꺼냈고, 그 묵직한 쇳덩이를 목격한 리에나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그렇게 리에나가 첫 중량 운동에 도전하는 동안.
나는 내가 알려줬던 동작들을 푸로르에게 다시 배우는 희한한 수업을 들었다.
우선 어설픈 동작을 고치고 난 다음에는, 푸로르가 내민 손바닥을 발로 차는 연습을 했다.
원래는 미트를 때려야 하는 건데.
맨손바닥을 발로 차는 게 미안해서 내가 쿠션이라도 꺼내주려고 했으나 거절당했다.
정확한 위치를 타격하는 데 익숙해지려면, 연습할 때도 표적의 크기가 작은 게 좋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맨손으로 공격을 받아야 발차기에 힘이 얼마나 실리는지 알기 쉽다나?
푸로르는 손바닥의 위치를 계속 바꿨는데, 이마에 가져다 댔다가 명치까지 낮추는 등. 손 위치를 계속 바꾸며 다양한 발차기를 유도했다.
그렇게 발차기만 죽어라 하다 보니, 저녁 시간이 될 즈음에는 골반까지 뻐근해져서 세르펜스에게 치료를 받아야 했다.
“두 분 모두 열심히 하고 계셨네요!”
밥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가자, 갑판에 나갔던 유지스가 창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쪽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세르펜스가 일어나 유지스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돌연 유지스의 손을 잡더니 신성력을 사용했다.
“안 그래도 치료를 부탁할 생각이었는데···. 고마워요.”
유지스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휴마눈새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다.
“유지스가 갑판으로 나간 후, 계속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더군. 분명 홀로 수련을 하고 있던 거겠지. 그래서 유지스가 왔을 때 손가락 살피니,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게 보여서 바로 치료한 거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세르펜스가 유지스에게 신성력을 사용한 이유를 알려줬다.
그에 유지스가 녀석의 말대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는 실력이 정체된 지 상당히 오래됐거든요. 아무리 노력해도 화살에 담아낼 수 있는 정령의 힘이 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재능의 한계에 도달한 거겠죠. 하지만 단순히 활을 빨리 쏘는 것 정도라면,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세르펜스가 유지스의 손을 치료해 준 게 오늘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은퇴한 사용인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유지스는 흑마법사를 견제하느라 끊임없이 화살을 쏘았고,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기느라 손가락 마디에 피멍이 들었다.
‘고작 몇십 분가량 활을 쐈을 때도 손이 그렇게 됐는데···.’
유지스는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갑판에 나가서 몇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돌아왔다.
세르펜스에게 따라 나오지 말라고 했던 건, 녀석이 옆에 있으면 집중이 안 될까 봐 그랬던 거였나 보다.
정령의 힘을 끌어내는 것에 한계를 맞이했고, 마법보다 빠른 것이 활의 장점이다.
그러니 방향 자체는 제대로 잡은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아무리 세르펜스가 치료해 준다고 한들. 저래서야 손가락이 어디 남아나겠나 싶다.
“연사 속도를 높이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손목에 모래주머니 같은 거라도 다는 게 어때요?”
“그렇지 않아도 윈스톤 경에게 빌렸어요. 모래가 아니라 쇳덩이가 들어있는 거로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걸, 유지스가 떠올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윈스톤이 쇳덩이가 든 중량 밴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건 별로 놀랍지도 않다.
아령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인데 중량 밴드쯤이야.
“가능성은 좀 어때?”
나와 세르펜스가 유지스를 걱정하면서도, 차마 말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할 때.
휴마누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시와 다름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계속해 보려고요.”
“그래, 열심히 해 봐.”
“응원해줘서 고마워요.”
유지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녀가 바랐던 건 걱정이 아니라 저런 응원이었겠지.
친구로서 바로 응원해 주지 못한 게 미안해졌다.
“유지스라면 잘할 수 있을 겁니다.”
“선우가 그렇게 말해주니, 자신감이 생기네요.”
내 말이 기뻤는지 유지스가 싱글벙글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세르펜스가 쭈뼛거리며 유지스의 손을 꼭 붙잡았다.
녀석도 유지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얼굴에 드러난 걱정의 빛을 채 숨기지 못했다.
세르펜스가 할 말을 찾느라 유지스의 손가락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유지스의 귀가 까딱거리는가 싶더니 점점 큰 폭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수련이 끝나면 꼭 제게 치료를 받기로 약속해 주십시오.”
“네, 꼭 그럴게요!”
결국 세르펜스는 적당한 멘트를 찾지 못했고, 걱정 또한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유지스는 휴마누스와 내게서 응원을 받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없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어떤 응원의 말보다 세르펜스의 미인계가 효과적이라는 게 판명 난 순간이다.
‘그나저나 에드나랑 아니마는 왜 안 오는 거야? 연구에 심취해서 식사 시간이 다 된 줄도 모르는 건가? 얼른 불러서 밥이나 먹어야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고를 나와서 두 마법사의 방으로 향했다.
세르펜스가 유지스의 손을 놓고 내 뒤를 졸졸 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