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2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23화(723/1105)
723회
77. 공작님의 짧은 휴가 (13)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휴마누스의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다.
사실 휴마누스의 생일은 오늘이 아닌 그저께였다.
하지만 그땐 휴마누스가 바닷속에 있었던지라, 어쩔 수 없이 오늘 생일을 챙겨주게 된 거다.
세르펜스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바다 젤리 케이크를 노려봤다.
여전히 저 케이크 모양이 마음에 안 드나 보다.
그래봤자 이 케이크의 진정한 주인은 생일인 휴마누스고, 그는 이 섬세한 케이크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와,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감탄하는 그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해졌다.
처음부터 이 케이크를 생일 케이크로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기왕 신기하고 멋진 케이크를 산 거, 특별한 날 꺼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 꺼내게 되었다.
나는 말캉말캉한 젤리 바다의 부슬부슬한 크럼 해변에 휴마누스의 나이만큼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이 케이크를 생일 케이크로 쓴 건 신의 한 수였다.
투명하고 매끈한 젤리 표면에 촛불의 빛이 반사되며 일렁거리니, 한층 더 신기하고 예뻤다.
세르펜스의 생일 때 그러했듯, 우리는 휴마누스에게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이제 휴마누스가 촛불을 불어서 끌 차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휴마누스는 가만히 촛불을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가 초가 짧아질 대로 짧아져 자연적으로 꺼지기 직전에, 훅 입바람을 불어 그것을 꺼트렸다.
“소원 빌 게 많았나 봐요?”
“그런 것도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생일을 챙기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케이크에 떨어진 촛농을 덜어내며 묻자, 휴마누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올해 자신의 생일은 늦게라도 챙겼는데, 다른 일행의 생일은 아예 못 챙겨줄까 봐.
그게 벌써 미안한가 보다.
“거의 불가능하겠죠. 바빠지면 파티를 열 시간 같은 건 당연히 없고, 날짜 개념도 희미해져서 생일 자체를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으니까.”
“역시 그렇겠지?”
“그래도 타이밍이 잘 맞아서, 챙길 수 있는 생일은 최대한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일은 축하받는 사람, 축하하는 사람. 양측 모두에게 즐거운 날이잖아요.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의 생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며 노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미안해하거나 섭섭해질 일은 없지 않을까요?”
“하하! 그것도 그렇네. 대신 즐겁게 노는 날을 빼앗은 악마 숭배자들이 더 미워지겠지만.”
휴마누스가 본래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가볍게 농담까지 입에 담았다.
생일 주인공의 기분이 다시 좋아졌으니, 생일 파티도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간단한 선물 증정식을 마치고 새콤한 레몬 맛이 나는 젤리 케이크를 먹으며, 다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즐거운 파티를 마치고 잘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파티의 주인공은 휴마누스이기도 했고, 용사의 무구 능력으로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볼 예정이었으니.
모두의 배려로, 하나뿐인 공용 욕실을 가장 먼저 사용하는 혜택은 휴마누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휴마누스가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보는 동안 함께 있어 줄, 나와 세르펜스까지 덩달아 앞 순번으로 정해졌다.
세르펜스는 내가 씻는 동안 욕실 문 앞에서 대기를 탔다.
그러다 씻고 나온 내가 휴마누스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욕실로 들어갔다.
“자, 어때?”
내가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휴마누스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용사의 무구인 갑옷을 벗어둔 채 잠옷 바람으로 허리에 성검을 차고 있었다.
잠옷이나 성검을 자랑하는 건 아니고, 성검을 매달아 둔 검대를 뽐내고 있는 거다.
저 검대는 오늘 세르펜스가 휴마누스에게 선물로 준 물건이다.
씻고 방에 오자마자 검대를 교체했나 보다.
“마음에 들었나 봐요?”
“세르펜스가 사적으로 생일 선물을 챙겨준 건 처음이거든.”
공작인 세르펜스가 황태자인 휴마누스의 생일에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동안 받았던 마음 없는 선물은 없던 거로 칠 생각인가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해.’
귀족들은 ‘예의상’ 선물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친하지도 않은 상대가 뭘 좋아할지 고민하며 일일이 선물을 고르는 건 대단한 시간 낭비다.
그렇기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상대가 아니라면, 보좌관이나 집사에게 선물 준비를 시킨다.
그건 혼자서 모든 일을 떠안느라 바빴던 세르펜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껏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에게 받았던 생일 선물은 전부, 전 집사인 한스가 고른 물건이었을 테다.
용돈을 타서 쓰는 친구가 사 준 선물을 친구 부모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지 않듯이.
프라시더스 가문의 돈으로 한스가 고민 끝에 구매한 선물은 그냥 한스의 선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사적인 선물’에 환장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아까 세르펜스가 생일 선물을 건네려 했을 땐, 엄청 떨떠름한 표정을 짓지 않았어요?”
“떨떠름한 게 아니라 긴장했던 거야.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다는 증서를 줄까 봐. 그런 건 받아 봤자 사용하기 뭐하고, 안 쓰자니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잖아.”
아무래도 휴마누스는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타입인가 보다.
다음번 생일 선물을 고를 때 참고해야겠다.
“그보다 세르펜스는 언제 이런 선물을 산 거래?”
“세르펜스 생일날, 휴마누스가 통신을 걸어서 노래 불러 주었잖아요. 그때 통신을 끊고 나서 자신의 검대를 휴마누스가 준 것으로 교체하더니, 그다음 날 샀어요.”
“오, 그래?”
다가올 휴마누스의 생일에 뭘 줘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그냥 받은 것을 똑같이 돌려주자는 결론을 내린 게 틀림없다.
나는 ‘참신함’ 항목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주고 싶었으나, 휴마누스는 도리어 만족한 눈치였다.
– 똑똑똑
가벼운 노크 후 세르펜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휴마누스가 다시 검대를 뽐냈고, 그에 세르펜스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는 오늘처럼 마음 편히 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둘 다 아직도 생일 파티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럼 이제 슬슬···, 잘까?”
휴마누스가 검대에 걸린 검집을 꽉 잡으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 한마디에 세르펜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볼타 산맥에서 휴마누스가 본 2회차의 기억은 [성검의 주인]으로 따지자면, 1부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타락펜스가 암흑가를 쥐락펴락하며 제국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와 대치하게 되었다.
그때 느낀 배신감과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휴마누스를 잠에서 깨게 했다.
이제 휴마누스는 그 이후의 일들을 보게 될 거다.
제국이 망한다는 건 내가 미리 알려주긴 했지만. 직접 그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면 분명 크나큰 충격을 받게 될 테다.
또한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어물쩍 넘겼던, 타락펜스의 악행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겠지.
그래도.
“네, 자야죠.”
나는 세르펜스의 등을 떠밀어 침대로 데려갔다.
그렇게 녀석을 침대에 눕혀놓고 나도 막 누우려는 찰나.
“오늘은 침낭 안 써?”
“네.”
“···세르펜스와 합의된 사항이야?”
“물론이죠!”
내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도 휴마누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세르펜스에게 정말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애초에 세르펜스는 내가 침대 위에 침낭을 놓고 자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러니 녀석이 고개를 끄덕거린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세르펜스 네가 감내하겠다면야.”
휴마누스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의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러고는 나와 세르펜스를 힐끔거렸다.
내 잠버릇이 걱정되어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자려는데 우리가 빤히 쳐다봐서 부담스러워 눈치를 보는 건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긴장되어서 그러는 건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으나, 휴마누스가 눈을 감아버린 까닭에 물어볼 수 없었다.
휴마누스는 그 상태로 검집을.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성검을 품은 첫 번째 용사의 무구’를 손에 꼭 쥔 채로 신성력을 흘려 넣었다.
황금빛 신성력이 검집을 통해 성검에 스며들자, 성검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거 눈부셔서 어디 자겠나 싶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빛이 점차 흐릿해지며 휴마누스에게로 흡수되었다.
처음 보는 현상이다.
“그럼 우리도 슬슬 자···기 전에!”
“음?”
“휴마누스가 깼을 때 당황할 만한 상황을 미리 구상해 놓읍시다!”
“눈을 떴을 때 선우가 나를 발베개로 쓰고 있다면, 바로 제정신을 찾지 않을까?”
“세르펜스는 제 발베개가 되고 싶어요?”
“그럴 리가.”
장난으로 말한 줄 알고 장난으로 맞받아쳤는데, 세르펜스가 표정을 굳히며 미간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장난이 아니라 무언가를 비꼬아서 말한 거였나 보다.
“그런 게 아니면요?”
“지금 선우의 정신이 조금 불안정해 보여서···. 손을 잡고 자더라도 다시 험한 잠버릇이 나올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정신이 불안정한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 뒤숭숭한 겁니다.”
“어쨌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똑같잖은가.”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어지는데···.”
나는 뻘쭘함을 느끼며 볼을 긁적였다.
이러다 매일 밤 세르펜스에게 내 기분이 어떠한지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침낭 꺼낼까요?”
“어차피 나는 앉아서 잘 거라서, 선우의 잠버릇이 험해도 상관없다.”
“왜 그런 자세로 자요?!”
“앉아서 자는 것이 얕게 잠드는 데 가장 효율적이었다.”
세르펜스가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
어차피 그럴 거면서 발베개 얘기는 왜 했냐고 따지려다가 말았다.
그냥 내가 깊이 잠들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럼 무릎이나 빌려주세요.”
“무릎? 원한다면 얼마든지 빌려 가도 상관없지만, 그건 왜 빌려 가려는 거지?”
“사실 세르펜스가 제 무릎을 베고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나태하게 늘어져 있고, 저는 그런 세르펜스의 머리를 땋는 장면을 구상해 놨었거든요. 그런데 세르펜스가 눕지 않겠다니 어쩌겠습니까? 제가 무릎을 벨 수밖에요.”
휴마누스가 눈을 떴을 때.
지금이 2회차가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면, 타락펜스라면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을 세르펜스에게 시키는 게 최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르펜스가 내 무릎을 베고 눕나, 내게 무릎을 내어 주나. 그게 그거다.
세르펜스도 그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더 이상 무릎 얘기는 하지 않았다.
“선우의 머리는 짧아서 땋을 수가 없다.”
“그럼 그냥 쓰다듬으시던가.”
“과자는?”
“없어요.”
“······.”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녀석의 무릎에 머리를 올린 순간, 나는 이 계획의 크나큰 결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높이가 너무 높아서 목이 아팠다. 이 정도면 베개를 아예 안 베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세르펜스를 양반다리로 앉혔다.
그러고 나서 다시 녀석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니, 진짜 베개만 못하지만 높이가 나쁘지 않았다.
“이러고 자면 자다 깨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포즈를 잡는다고 우왕좌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그럼 깨우지 않을 테니 계속 자겠는가?”
“에이, 그건 아니죠. 2회차의 일은 현재의 세르펜스와 무관하며, 휴마누스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마음 가는 방향과 머리로 생각한 방향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둘 사이에서 중재해 줄 제삼자가 필요할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
나한테 불안정해 보인다 어쩐다 하더니.
세르펜스야말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더 안돼 보였다.
“그건 그렇고, 결국 세르펜스가 제 베개가 되긴 했네요?”
“어서 잠이나 자라.”
세르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피식 실소를 흘리며 내 눈을 손바닥으로 덮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