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2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25화(725/1105)
725회
77. 공작님의 짧은 휴가 (15)
‘그러고 보니, 교황의 죽음과 볼타 산맥의 결계가 깨진 것도 그즈음이었지?’
정확히 따지자면 교황이 죽은 건 휴마누스가 제국으로 돌아오기 전이다.
결계가 깨진 건 휴마누스가 수도에 발을 디뎠을 무렵이고.
황제가 죽고 제국이 멸망하던 그날.
어서 도망가야 한다는 성직자들의 부추김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피난을 가지 아니했다.
성검이 내려오는 신성한 장소를 지켜야 하므로.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을 탈출시키고 홀로 남아 대신전을 지켰다.
아무리 교황이 강한 신성력의 소유자라고 한들.
현 교황 아스페라 V. 슈테판은 일반 신관 출신으로 전투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저 대신전을 보호하는 결계에 자신의 힘을 더하여 버티고 또 버틸 뿐.
결국 교황은 휴마누스가 돌아오기 전에 신성력이 다하여, 악숭이들의 손에 살해당했다.
대신전의 바닥은 악숭이들의 흙발에 더럽혀지고, 제단은 박살이 났으며, 기둥은 부러지고, 천장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타락펜스는 끝까지 지켜보았다.
‘근데 세르펜스 이 녀석, 신성 결계를 제멋대로 드나드는 능력이 있지 않았나?’
나를 암흑가에 데려갔을 때, 세르펜스는 성벽에 설치된 신성 결계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다.
그 정도는 추기경급 이상의 실력이면 가능한 기교라 치자.
하지만 녀석은 대신전의 비밀 서고에도 숨어들었다.
그 짓은 아무나 못 한다.
‘결계에 교황의 힘이 더해졌어도, 은밀함을 포기하고 억지로 결계를 뚫으려 한다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눈가에 얹어진 세르펜스의 손을 치우고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내 행동에 세르펜스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가 싶더니, 무언가 깨달았는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흘렸다.
“휴마누스라면 아직 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고 자라.”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옵니까?”
“조금 전에 선우가 물었잖은가? 그가 슬슬 깨어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한참 전에 한 질문의 답을 왜 이제야 하는 겁니까?”
“내게 질문을 던져 놓고 딴생각에 깊이 빠진 것 같기에,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있었다.”
“그런 이유라면, 뭐···.”
나는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말을 얼버무렸다.
질문을 던져 놓고 딴생각에 잠긴 사람이 잘못이지, 그런 나를 방해하지 않고자 침묵한 세르펜스에게 무슨 잘못이 있을까.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서 기분이 상한 게 아니라면, 어째서 그런 불만 가득한 눈빛을 내게 보낸 거지?”
“딱히 불만을 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해명을 요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세르펜스에게 묻고 싶은 건, 교황의 죽음에 관한 사안이다.
그건 휴마누스가 2회차의 기억을 보고 와도 알 수 없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누운 상태로 고개만 돌려서 옆 침대를 살폈다.
휴마누스는 검집을 꽉 움켜쥐고 미간을 팍 찡그린 채 잠들어 있었다.
고통스러워 보이긴 해도 뒤척임은 전혀 없었다. 이를 악문 모양새가 마치 괴로움을 꾹 참고 있는 듯 보였다.
“깰 기미가 안 보인다고 하지 않았어요?”
“선우는 눈을 감아서 못 봤겠지만, 휴마누스는 줄곧 저런 표정이었다.”
“제가 눈을 감은 게 아니라, 세르펜스가 눈을 가려서 못 본 겁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아뇨, 완전 다른데요? 자의와 타의라는 아주아주 큰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습니까?”
“음···.”
세르펜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딴청을 부렸다.
녀석도 이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알긴 아는가 보다.
“아무튼 제가 세르펜스를 쳐다본 건. 세르펜스가 성벽에 설치된 결계 말고도, 사람이 직접 펼친 결계도 통과할 수 있는지 궁금해져서. 그걸 물어보려고 쳐다본 겁니다.”
“이전에 나누던 대화와 맥락이 통하지 않는 질문은 되도록 눈빛이 아닌 말로 해라.”
내가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휴마누스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했으면서.
세르펜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평했다.
나는 팔을 위로 뻗어 손가락등으로 세르펜스의 입술을 툭 쳤다. 그러자 녀석의 입술이 쏙 들어갔다.
“선우의 질문에 대답하자면. 결계를 펼친 사람 몰래 드나드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냥 드나드는 것 정도라면 아마 할 수 있을 거다.”
“교황이 펼친 결계라 해도?”
“으음···. 그건 확신하지 못하겠군. 그래도 결계의 구조를 살펴볼 시간이 충분하고, 시도 횟수에 제약이 없으며, 약간의 무력을 동원해도 된다면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앞서 결계를 펼친 사람을 특정하지 않았을 때는 붙이지 않았던 조건이 주렁주렁 달렸다.
내 눈에는 그저 광신도 할아버지로 보였으나 교황은 교황인가 보다.
그리고 그런 교황의 결계를 억지로 뚫을 수 있다고 말하는 세르펜스도 대단했다.
‘그렇다는 건 타락펜스가 일부러 나서지 않았다는 뜻이 되나?’
추측건대 악숭 세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보기 위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한다.
아니면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숨기기 위해서든가.
“선우는 이전 회차의 나에게도 관심이 많군.”
“그도 어쨌거나 세르펜스니까요. 그래서 싫어요? 관심 끌까?”
“싫을 리가. 오히려 더 분석하고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내가 자신의 본모습을 알면 두려워할 거라며 잔뜩 겁에 질렸던 주제에.
세르펜스가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나도 세르펜스를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녀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더라도, 싫어하거나 미워하게 될 일은 없다는 걸.
이제 정말로 믿어주는 것 같아서.
그게 다행이었다.
“그보다 선우는 안 잘 생각인가?”
“그게···. 자고는 싶은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이 안 와요. 옆에서 휴마누스가 저러고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성검의 주인] 내용을 복기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달까요?”
“으음, 그럴 수도 있겠군.”
내가 멋쩍게 웃으며 말하니 세르펜스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반응을 보니 눈을 가리면서 자라고 강요하는 건 이제 포기했나 보다.
“그러는 세르펜스는 안 자요?”
“나도 자려고 노력은 해 봤다. 하지만 휴마누스가 깨어난 후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 걱정이 되어서···. 도무지 잠들 수가 없더군.”
“그럼 오늘은 그냥 안 자고 기다릴까요? 제가 [성검의 주인] 내용을 쭉 되짚어 보니까, 어차피 금방 깨어날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휴마누스의 상태를 살폈다.
여전히 그는 괴롭다는 표정으로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대체 무슨 장면을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성검의 주인]에서 휴마누스가 가장 기뻐한 건, 암흑가에서 소환된 첫 번째 악마를 처치한 순간이다.혹시 패배하면 어쩌나 잔뜩 긴장하면서도 반드시 이기겠다는 결의를 품고, 승리를 쟁취했을 때.
휴마누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을 못 미더워하며 세르펜스와 비교하던 사람들이 틀렸다고.
자신은 성검의 주인으로서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게 휴마누스가 아무런 고민 없이 순수하게 기뻐한 마지막 순간이지.’
암흑가에 숨어든 악숭이들을 잡아내고자 시작한 조사에서, 보지 말아야 할 서류를 발견하게 되었다.
실은 악숭 세력이 조작했던 거지만.
그런 냉철한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로 서류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그 뒤로는 뭐···.’
제국을 떠나며, 휴마누스는 일행들 앞에서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것처럼 행동했다.
떠나온 제국을 걱정하며 속이 썩어들어가면서도.
자신의 아버지라면 능히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고, 악마를 처치했으니 사람들도 자신을 다시 볼 거라며 긍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타락펜스를 이겼다는 말은 하지 않았던 걸 보면, 걔도 참···.’
3인칭이긴 해도 눈치 없는 휴마누스가 서술의 중심이었으니, 작중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성검 일행은 모두 눈치채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가 불안감을 티 내고 싶어 하지 않아 했기에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을 테다.
아무튼 그때 이후로 휴마누스는 쭉 괴로워하고 있었던지라.
표정만 보고 꿈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짐작하는 건 불가능했다.
‘타락펜스와 재회했을 때를 기준으로 삼아도 반년짜리 꿈이니까, 지금쯤이면 뭔가 반응이 와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전에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기절한 후, 얼마나 있다가 깨어났는지 확인해둘 걸 그랬다.
체감 시간이 어긋난 걸까?
아니면 정말로 휴마누스가 일어나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안 일어나고 있는 걸까?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구분을 못 하겠다.
이번에는 이미 글러 먹었고.
다음부터 휴마누스가 이전 회차 기억을 보려고 할 때마다, 시계를 꺼내 보며 시간을 체크해야지 안 되겠다.
덤으로 꿈속에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함께 적어두면 더 좋겠지.
“으음···. 저기, 선우?”
“뭘 그렇게 조심스럽게 불러요?”
머릿속으로 다음 주 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있던 그때.
세르펜스가 머뭇거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안 잘 거라면 일어나서 앉아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혹시 다리 저려요?”
“그런 건 아니지만, 으음···. 그, 선우가 처음 세웠던 계획에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
잠깐 얘가 뭔 소리를 하나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세르펜스어 마스터를 넘어서, 이제는 그냥 세르펜스 마스터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다.
“잘 거 아니면 앉아서 무릎을 내어놓으란 소리죠? 베고 눕게. 덤으로 과자도 먹고.”
“그···, 그러면 안 되나?”
세르펜스가 어깨를 살짝 움츠리면서도 애써 뻔뻔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말했다.
아직 당당하게 어리광을 부리며 무언가를 요구하기에는 경험치가 부족한가 보다.
“아니마가 에드나 씨의 무릎을 베고 눕는 걸 좋아해서 착각하시나 본데, 무릎 베개는 하나도 편하지 않아요.”
“지금도 내 무릎을 베고 누워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러니까 더 정확한 정보죠. 불편하다는 걸 실시간으로 체험하며, 세르펜스에게 이렇게 알려드리는 거잖아요?”
“······.”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불만스럽게 입술을 내밀고 있는 게 아니라, 아랫입술만 툭 불거진 모습이 보통 상심한 게 아닌 듯하다.
‘너무 놀렸나?’
세르펜스는 옆에서 친구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은 편히 눕고 싶다며 떼쓰는 녀석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불안하니까.
‘원래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면 어리광이 느는 법이지.’
이럴 때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보호자에 대한 신뢰를 잃고 만다.
절대 그렇게 둘 수는 없다.
“장난이었습니다.”
나는 씩 웃으며 일어나 앉아서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세르펜스의 얼굴이 화악 밝아지는가 싶더니 냉큼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분명 불편할 텐데도 녀석은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도 세르펜스만 한 나이 때는 아빠 팔을 베고 자는 걸 좋아했었지···?’
일곱 살의 나는 그냥 베개보다 딱딱하고, 자세까지 덩달아 불편해지는 팔베개를 굉장히 좋아했다.
작은 불편함 정도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참고로 엄마는 잠버릇이 심해서 불편함이 두 배라, 엄마의 팔베개는 조금 덜 좋아했던 거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