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3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33화(733/1105)
733회
78. 공작님과 아스페르 연방 (5)
“그리고 걱정되는 건, 선우. 당신도 마찬가지다.”
“엥? 갑자기 저는 왜요?”
“······.”
세르펜스가 조용히 눈을 흘겼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고 질책하는 시선이다.
나는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눈을 끔벅이며, 녀석이 무엇을 걱정하는 건가 고민해 보았다.
대련하다가 자꾸 다치는 게 걱정되어서 저러는 건 아닐거다.
그런 이유라면 처음부터 대련 자체를 못 하게 막았을 테니까.
더군다나 윈스톤과의 대련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내가 걱정되었으면 진작 얘기하고도 남았을 터.
그렇다는 건 오늘 일어난 일 중 하나가 문제라는 뜻이다.
“대련이 막 끝났을 때 제 상태가 좀···, 그래 보였죠?”
“살기에 노출된 탓이라는 변명은 하지 마라.”
“안 합니다. 그냥, 그땐 좀 지쳤어요.”
“지금은 괜찮은 건가?”
“뭐, 그럭저럭?”
나는 정말 그럭저럭 괜찮아져서 그대로 말했을 뿐이건만.
내가 대충 얼버무린다고 생각했는지, 세르펜스가 새초롬히 눈을 흘겼다.
“살다 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요. 무언가를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안 보이고, 다들 성장하는 것 같은데 혼자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오늘의 제가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졌다는 건, 윈스톤 경의 위로 덕분인가?”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씻으면서 신성력으로 청력을 키워서 다 듣고 있었구나?”
“알고 있었다니 잘 됐군. 아, 내가 들을 수 있게 일부러 복도에서 대화한 건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뻔뻔펜스가 태연하게도 말했다.
천연덕스러운 그 낯짝이 얄미워 무심코 녀석의 뺨을 꼬집었을 때.
“나 들어간다?”
휴마누스가 똑똑 노크를 하며 자신의 도착을 알리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세르펜스의 뺨을 꼬집고 있는 나를 목격했다.
“···세르펜스가 뭔가 잘못했어?”
“잘못한 것까지는 아닌데, 그냥 꼬집고 싶은 표정을 지어서요.”
내 대답을 들은 휴마누스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머쓱해져서 세르펜스의 뺨을 살그머니 놔 주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손바닥으로 꼬집혔던 뺨을 문질렀다. 장난식으로 살살 꼬집었는데 조금 얼얼했나 보다.
“세르펜스 너도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
“싫지 않으니 가만히 있는 겁니다.”
“···그럼 나도 꼬집어 봐도 돼?”
“싫습니다.”
나를 보며 질색할 땐 언제고.
휴마누스가 세르펜스의 뺨을 탐내며 눈을 빛냈다가, 거절당하고 기운이 쭉 빠진 표정으로 터덜터덜 자신의 침대로 걸어갔다.
그도 내심 세르펜스의 보들보들한 뺨을 보며 꼬집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오늘 또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볼 생각인데, 그 전에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
“무슨 얘기요?”
“내가 깨어났을 때 놀라게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상한 짓 안 해도 돼.”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하려나 싶었건만. 별거 아닌 얘기였다.
용사의 무구 효과로, 이제는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보는 동안에도 현재의 의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니.
깨어난 직후 나타나던 착란 증세가 자연히 사라진 모양이다.
“어째서입니까?”
“저번 주에 한번 해 보고 안 건데, 이제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보다가 깨어나도 착란 증세가 없더라고. 너희는 내가 깨어날 때 장난치며 놀고 있었으니 몰랐겠지만.”
“···어째서입니까?”
“응? 방금 설명했잖아? 그러니까 착란 증세가 없어져서···.”
세르펜스가 똑같은 질문을 두 번이나 하자, 휴마누스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똑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휴마눈새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여 벌어진 일이다.
두 번째로 질문을 던졌을 때.
세르펜스의 표정이 처음 질문했을 때보다 시무룩해졌다는 걸 눈치챘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텐데.
어쩔 수 없으니 세르펜스 마스터인 내가 나서서 해석해 줘야겠다.
“세르펜스는 지금 어째서 그런 말을 해서, 자신이 새로운 패턴의 우쭈쭈를 받을 기회를 없앤 거냐고 항의하고 있는 겁니다.”
“···세르펜스는 대체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관심을 못 받았으니까, 지금이라도 받고 싶다는 보상 심리가 발동한 거겠죠.”
“네가 뭔가 한 게 아니고?”
“제가 뭘 해요?”
“···아냐, 됐어.”
휴마누스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집째로 성검을 쥔 채 침대에 몸을 눕혔다.
성검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와 휴마누스에게 흡수되는 것을 확인한 후.
나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반면에 세르펜스는 이불을 덮긴 했으나 눕지는 않고 베개에 기대어 앉았다.
아무리 착란 증세가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깼을 때 말 걸어 줄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클 테니까.
그리고 휴마누스 성격에 깊이 잠든 우리를 일부러 깨울 리 없으니까.
휴마누스가 깨어났을 때 자신도 바로 깰 수 있도록 얕은 잠을 청하거나, 아예 안 잘 생각인 거겠지.
그가 혼자서 괴로움을 삼키지 않을 수 있게.
‘그냥 저번처럼 자지 말고 깨어 있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세르펜스가 내 가슴께를 토닥토닥 두드리기 시작했다.
자기가 재워줄 테니 어서 자라는 뜻이다.
“검술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해서 침울할 거 없다. 윈스톤 경과 실력 격차가 너무 커서 티가 잘 나지 않을 뿐이지, 착실히 늘고 있으니까. 선우는 오늘 성공한 공격이 얼결에 이루어진 거라고 여길지 몰라도, 진짜 실력은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다.”
세르펜스가 느닷없는 얘기를 꺼냈다.
자라고 토닥거리면서 하는 말이니, 대답을 바라고 꺼낸 말은 아닐 테다.
내가 윈스톤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니까, 녀석도 위로의 말을 한마디라도 얹어보고 싶었나 보다.
‘위로에 경쟁심을 갖는 순간, 그건 상대방을 위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 될 뿐인데···.’
그 점을 지적하려다가, 잔잔한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관뒀다.
마음을 안정시켜 수면을 유도하는 ASMR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야겠다.
“나는 선우가 검술을 배우는 것을 의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우가 검술을 익히는 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는 게, 나를 비롯하여 전방에서 싸우는 이들의 역할이다.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문제 될 일은 없다. 그러니 초조해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조곤조곤, 세르펜스의 속삭임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듣다 보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도 같다.
* * *
어쩌면 오늘. 아니, 어제는 잠을 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르펜스표 보이스 테라피의 효과인지 푹 잠들어 버렸고, 그 결과 자고 일어나니 아침이 되었다.
나는 상황 파악이 끝나자마자 세르펜스에게 따졌다.
“왜 저 안 깨웠어요?”
“오랜만에 곤히 잠들었길래 깨우고 싶지 않았다. 휴마누스도 그냥 두자고 했고.”
“······.”
그러고 보니 오늘은 여기저기 굴러다니지 않고, 잠들었던 곳에서 그대로 눈을 떴다.
이제 곧 아스페르 연방에 도착할 텐데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 게, 내 생각 이상으로 심한 스트레스였나 보다.
그래서 실력이 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완전히 안심해 버렸다.
역시 세르펜스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녀석을 다그칠 수 없어서, 나는 휴마누스를 노려보았다.
“이번에 본 건, 저번만큼 버거운 기억은 아니었어. 그래서 세르펜스랑도 별 얘기 안 하고 바로 잤어.”
“버거운 기억이 아니긴요? 꿈에서 깰 만한 충격적인 기억을 보긴 했으니까 일어난 거잖아요.”
“아닌데? 그냥 내 의지로 깼어.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면, 내가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으니까.”
휴마누스가 평소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충격을 받지 않고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이전 회차의 기억을 보면서도 현재의 의식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휴마누스가 정말로 괜찮아 보인다는 건 의외였다.
[성검의 주인]에서 제국의 멸망은 휴마누스 개인에게도 크나큰 비극이었지만, 대륙 전체를 기준으로 놓고 보아도 불안을 고조시키는 대사건이었다.그리고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제국의 멸망은 막장의 시작이었다.
바스툴 왕국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가 성검의 주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것을 제지할 만한 힘을 지닌 제국은 멸망하고 없었으니, 더는 눈치 보며 대의를 위해 나설 이유가 없게 된 거다.
사람들이 희망을 잃어버렸고, 양심을 팔아 악숭 세력에 붙는 자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룩스메아 교단은 여러 갈래로 종파가 나뉘어, 이전만큼 확고한 신앙을 제시할 수 없게 되었다.
볼타 산맥의 결계가 깨져서 대륙 전역으로 온갖 마물들이 퍼져나갔으며.
죽은 제국인들의 시체는 혈옥으로 뭉쳐져 대륙 이곳저곳에 은밀히 운반되어, 잇따라 곳곳에서 악마 소환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타락펜스는 사람들의 원망이 멸망해버린 제국으로 향하도록 여론을 조작했다.
청렴해야 할 ‘신성’ 제국의 권력자들이 부패한 까닭에 자멸하였고, 악숭 세력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득을 취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제국이 자진하여 악마 소환을 위한 제물을 바친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현재 대륙의 모든 혼란은 어리석은 제국의 지도층 탓이다.
‘제국의 권력자들을 부패하게 만든 것도. 제국을 멸망시킨 것도. 전부 자신이 한 행동이면서···.’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악마 소환의 제물이 되어버린 제국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나쁜 건 악마를 소환한 악숭 세력이지만.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악숭 세력은 두려웠고, 제국은 이미 멸망하여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으니까.
그렇게 시작된 제국을 향한 비난은 제국의 황태자, 휴마누스에게로 고스란히 연결되었다.
아직 소중한 이들을 잃은 슬픔을 채 추스르지 못한 그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내가 떠올려도 괴로운 기억인데, 뭐가 괜찮다고···.’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수도 없이 되뇌며 버틴 게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 봤어요?”
“하급 악마 다섯을 처리했을 때까지.”
“꽤 많이 봤네요.”
“기간으로 따져도 고작 2, 3개월 정도의 분량인데 많기는···. ”
휴마누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처치한 건 다섯이지만, 그 시기에 소환된 악마를 모두 처치한 건 아니다.
실제 소환된 악마의 수는 그보다 많았다.
당시의 악숭 세력은 질보다 양을 추구했다.
몸이 하나뿐인 휴마누스가 대륙 전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소환되는 악마들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었으므로.
양이 곧 질이 되던 시기였다.
“지금 우리가 처치한 악마들에 비하면 약하지만. 지금 내 수준으로는 하급 악마와의 전투 경험도 상당히 도움이 되더라. 사실상 쌍둥이처럼 생긴 악마 둘은 1회차의 세르펜스가 처치했고, 바다에서 소환된 중상급 악마는 아니마와 에드나의 합동 마법이 결정적이었잖아? 애초에 내 실력이 아니었어.”
휴마누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쫄몹 생산을 중단하여 마왕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테네 뭐시기가 더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놈은 레벨 밸런스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소환되는 악마의 수가 적은 건 환영할 만하나, 그렇다고 단계를 건너뛰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