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3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38화(738/1105)
738회
78. 공작님과 아스페르 연방 (10)
푸로르는 성검 일행의 초기 멤버가 아니다.
출정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따라서 황궁에 가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푸로르는 내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황궁의 인테리어를 들먹거린 게, 돈이 많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란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진짜로 벽에 황금을 발랐는지 아닌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던 거다.
“잠깐, ‘휴마누스’라면···? 성검의 주인이자 신성 루멘 제국의 황태자 전하의 성함 아닌가?”
뒤늦게 우리의 정체를 깨달은 다다이크 왕국의 귀족이 혼잣말을 흘렸다.
후드를 눌러쓴 휴마누스의 고개가 그쪽 방향을 향했다.
그제야 자신이 황태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걸 자각했는지, 귀족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자비 넘치는 황태자님은 그자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런데 우리가 용병들 고용하는 거, 알려져도 되는 거야?”
정체를 들킨 김에 휴마누스가 답답한 후드를 벗으며 질문했다.
파노페 왕국에 도착한 배에서 내린, 아홉 명이 신전을 방문했다는 소문은 악숭 세력도 들었을 거다.
항상 우리의 행적을 주시하고 있는 악숭 세력이라면, 그 아홉 명이 우리라는 것쯤은 진작 눈치챘을 터.
자유 도시에 온 것 자체만으로, 우리가 용병들을 고용하여 무언가를 꾸미려 한다고 예고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저 귀족들이 알든 말든, 별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질문을 받고 나니까 마음이 바뀌었다.
비록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숨기려 노력해서 나쁠 건 없다.
‘세르펜스의 추측대로 악숭 세력이 마인 러스티를 버렸다면, 우리가 연방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마인 러스티에게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잖아?’
결론이 나왔다. 저들의 입을 막아 두기로.
나는 후드를 벗으며 두 귀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런! 우리 정체를 알아채셨다니 어쩔 수 없네요. 우리의 일이 다 끝날 때까지, 두 분께서는 계속 이곳에 머물러 주셔야겠습니다.”
“예, 예?! 그게 무슨···?”
“저희가 알고 싶어서 안 것도 아닌데···.”
졸지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두 귀족이 당황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게 누가 아는 척하랬나?
“시온, 그렇게 겁주지 마십시오. 저들이 악마 숭배자라면 모를까, 소중한 자국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용병을 고용하고자 먼 길을 오신 훌륭한 분들이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살기를 날렸던 세르펜스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병 주고 약 주느냐는 반발심이 들었을 텐데, 녀석은 한 손으로 후드를 젖혀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간단히 불만을 잠재웠다.
자고로 천사님이 살기를 보냈다면, 그것을 받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도 두 귀족은 나를 노려보지 않았던가. 세르펜스의 경계를 사는 것도 당연하다.
악숭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출몰하는 시기에 먼저 적의를 드러낸 게 잘못이다.
두 귀족들도 분명 그렇게 납득했을 테다.
“마, 맞습니다! 저희가 어찌 대륙에 해가 되는 일을 하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이곳에 오셨다는 사실은 절대 함구하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네! 저희는 입이 아주 무거운 사람들입니다!”
귀족들이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세르펜스의 말에 동조했다.
앙숙처럼 언성을 높여가며 말다툼을 벌일 땐 언제고. ‘저희’라는 말을 써가며 한마음 한뜻으로 입을 모으는 게 사이가 아주 좋아 보인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던데, 과연 정치하는 사람들답다.
그리고 정치가라면 우리 일행 중에도 있다.
“많은 이들을 지키기 위해 이 위험한 시기에 머나먼 타지로 떠나는 용기를 지니고, 말의 무게를 아는 분들이라니···. 어쩌면 이런 곳에서 두 분을 마주한 건, 신께서 인도하신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세르펜스가 두 귀족들을 띄워 주며 룩스메아를 들먹거렸다.
그들이 민망해하는 한편, 서로 불안한 시선을 교환했다. 세르펜스가 자기들에게 무언가 시키려 한다는 걸 눈치챈 거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기는 한데···. 다다이크 왕국은 용병을 고용해야 할 정도로 자국을 지키는 데에도 병력이 부족한지라, 도움이 될지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병력이 부족한 거로 따지면, 저희 지그트 왕국이 더합니다! 힘이 없다는 건 이렇게나 통탄스러운 일이로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용병을 고용하러 이곳에 왔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기에 세르펜스가 병사들을 내놓으라고 할 줄 알았는지 두 귀족이 선수를 쳤다.
하지만 그들의 얘기를 들은 세르펜스는 아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렇게나 정의감과 애국심이 넘치는 분들이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고민해 보면, 두 분께서 저희를 도울 방법이 분명 있을 겁니다.”
“예?”
“네?”
“저도 함께 고민해 드리겠습니다.”
대외펜스가 감동했다는 표정을 꾸며내며 말했다.
우리가 저들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게 아니라, 저들이 끼워달라고 부탁하는 걸 선심 써서 허락해 주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허리춤에 검을 차고 다니고 호위 기사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둘 다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실력자 같기는 한데···.’
자원해서 온 건지, 왕이 시켜서 마지못해 온 건지. 거기까지는 모르겠지만.
마인이 깽판을 치는 이 시기에 용병을 고용하러 이곳까지 왔다는 건, 제 한 몸 건사할 실력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게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울 수준이 된다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마물이 공격해 왔을 때,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겠지.’
두 귀족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세르펜스는 도망치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눈치챘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무구한 웃음을 가장했다.
“아! 하지만 당장은 용병왕님을 만나서 할 얘기가 있는지라···. 두 분께서 어떻게 하면 저희를 도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고찰하는 건 조금 미뤄야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대화를 마치고 돌아올 터이니 어디 가지 마시고 꼭!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행여나 두 귀족이 이따가 다시 오겠다는 변명을 하며 도망치기라도 할세라.
세르펜스는 그들이 한 발짝도 못 나가도록 미리 당부했다.
의견을 나누며 함께 고민해 보는 그 시간이 기대된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두 귀족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네에···.’ 하고 대답했다.
“아버지 방에 계시지?”
“응, 올라가 봐.”
접수대에 앉은 용병이 푸로르의 물음에 대답했다.
험상궂은 얼굴이지만, 푸로르를 바라보는 표정이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보듯 푸근했다.
그 용병만 그런 게 아니라, 테이블에 앉아 있는 중년의 용병들 전원이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남자 용병도 한 명 보였는데, 그는 푸로르를 향해 얼굴을 붉히고 헤벌레 웃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중년 용병이 ‘꿈 깨!’ 하고 호통을 치며, 젊은 용병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익숙한 일인지 푸로르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계단까지 가는 도중 테이블 옆을 지날 때마다, 푸로르는 용병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주먹을 가볍게 맞댔다.
2층에 올라 ‘사무실’이라고 적힌 문을 열자, 용병왕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기다렸다는 듯 푸로르에게 달려들었다.
수염 때문에 이목구비가 푸로르와 닮았는지 어쨌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적갈색의 머리칼과 붉은 눈은 누가 봐도 푸로르와 혈연지간이었다.
“우리 딸 왔구나! 오랜만에 안아보자!”
“됐어, 징그럽게!”
푸로르는 포옹 대신 아버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용병왕은 껄껄 웃으며 그 주먹을 맞았다.
막은 게 아니라 진짜로 맞았다.
“으하하하! 여전히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어휴, 손님들 앞에서 주책이야!”
말로는 툴툴거렸지만, 아버지의 애정 표현이 싫은 건 아닌지 푸로르가 피식 웃었다.
익숙하다는 저 반응으로 보아 일상적인 일인가 보다.
자식 건강을 독특한 방법으로 확인하는 용병왕이 푸로르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리에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어디 보자···, 그쪽이 우리 딸을 치료해 주셨다던 리에나 신관님입니까?”
“신 룩스메아 님의 은총이 푸로르 님과 함께한 덕분입니다.”
“신의 은총이 우리 딸과 함께한다니,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그래도 신관님이 우리 딸을 치료해 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방금까지 팔불출 같은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던 용병왕이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리에나를 향해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 용병왕의 태도에 리에나는 어쩔 줄 몰라 했고, 푸로르는 아버지의 애정을 느끼며 간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성검 일행은 너까지 총 네 명이라고 들었는데, 뭔가 사람이 많구나?”
“우리 편이 많으면 좋지.”
“으하하, 그것도 그렇구나. 그래서 소개는 안 해 줄 거냐?”
용병왕이 다시 팔불출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딸을 만나니 아주 그냥 좋아 죽겠나 보다.
“원래 일행은 대충 알지? 전에 편지 보냈으니까. 쟤가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고, 저 꼬맹이가 아니마. 그리고 리에나는 일반 신관이 아니라 주교야.”
“주교는 신관 아니냐?”
“왜, 교황님도 신관님이라 부르게?”
“아무튼 그래서, 다른 사람들 소개는?”
푸로르의 놀림에 용병왕이 민망하다는 듯 허허 웃으며 말을 돌렸다.
“저쪽에 반짝거리는 귀족 나리는 유명하니까 소개 안 해도 알 테고. 그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은 시온, 왼쪽에 서 있는 엘프는 유지스. 뒤에 서 있는 덩치는 윈스톤 경. 그리고 꼬맹이랑 팔짱 끼고 있는 사람은 에드나라고 해.”
“다들 반갑습니다, 푸로르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용병왕이 딸 친구들을 보듯 흐뭇한 미소를 만면에 띠며, 리에나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일단 우리의 대표는 성검의 주인인 휴마누스가 맡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딸의 생명의 은인인 리에나에게 가장 호감이 가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다 같이 술잔이나 기울이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를 듣고 싶지만···. 그러려고 온 건 아니겠지?”
“응.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
두 부녀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공과 사가 확실한 집안인가 보다.
“일단 앉으라고 하고 싶지만, 사람이 많아서 준비된 테이블과 의자만으로는 부족하겠네. 밑에 있는 애들 불러서 추가로 가져오라고 할 테니까, 다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아! 괜찮아요, 제 것을 쓰면 됩니다!”
“음?”
내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하자 용병왕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설명하고자 입을 여는 대신에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원래 사무실에 있던 의자와 테이블은 내가 말을 꺼낸 순간, 세르펜스가 의자 하나만 남겨놓고 구석으로 치웠다.
그렇게 생겨난 공간에, 우리가 모두 둘러앉을 만한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 9개를 두었다.
답답할 정도로 방이 꽉 찼다.
‘그냥 대화만 하기 뭐하니까, 간식도 좀 꺼낼까?’
나는 무슨 간식을 꺼낼까 고민하다가 샤블레 쿠키 세트를 꺼내기로 했다.
플레인 맛이나 견과류를 넣은 건 고소해서 어른들도 좋아할 만하고, 코코아가 들어간 건 세르펜스가 좋아하겠지.
그리고 에담 치즈가 들어간 샤블레는 짭짤하니까 윈스톤도 잘 먹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