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3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40화(740/1105)
740회
78. 공작님과 아스페르 연방 (12)
“그보다 아래에서 기다리는 분들도 계시니,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합니다.”
세르펜스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안면을 몰수하며 운을 뗐다.
그런 녀석의 말에 휴마누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아까 그 귀족들? 진짜로 그 사람들에게 뭔가 시키려고?”
“아무리 마인을 처단하고 사람들까지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들. 저희가 고용한 용병들을 멋대로 남의 나라에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응. 일일이 찾아가서 동의를 구할 시간은 없지만, 최소한 미리 통보 정도는 해야겠지?”
“네. 마침 베스티 용병단을 고용하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경쟁 중이라길래, 그들이 돌아가는 김에 소속 국가에 얘기를 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세르펜스가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쉬며 말끝을 흐렸다.
그 한숨이 어째 귀족들을 오래 붙들어 놓지 못한 용병왕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이 뛰어난 푸로르의 아버지답게 용병왕도 그걸 느꼈는지,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용병왕은 우리의 계획은커녕, 우리가 오늘 이곳에 올 줄도 몰랐다.
그래서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를 텐데 눈치를 주다니. 너무한 감이 없잖아 있다.
“고작 두 명뿐이라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쟁이 치열한 베스티 용병단 고용을 위해 이곳에 보내진 귀족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어느 정도 이상의 협상력은 갖췄을 터. 그들에게 연방 소속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협조 요청을 대신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세르펜스의 대답에 휴마누스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까 1층에서는 아직 생각해 둔 바가 없으니 같이 고민하자고 해 놓고.
처음부터 시킬 일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붙잡아 뒀다는 듯, 태연하게 설명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에 어처구니를 잃었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중요한 건 휴마눈새의 심정 따위가 아니다.
나는 몹시 감격했다.
유지스도 북받쳐 오르는 감동에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인간 불신에 시달리던 세르펜스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 그런 중책을 맡기다니!’
비록 그 이유가 인력 부족 때문이라지만.
이름 모를 두 귀족은 이제 궁둥이에 피멍이 들도록, 쉴 새 없이 말을 달려 아스페르 연방 곳곳을 누벼야겠지만.
나에게 관심을 좀 보였다고, 동료의 아버지에게 괜한 트집을 잡아 눈치를 주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르펜스의 성장에 순수히 기뻐하고 싶다.
이 자리에 용병왕만 없었어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 텐데. 그러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베스티 용병단뿐 아니라 다른 용병들도 고용한다고 시온이 얘기했으니. 긴급 상황 시 용병들을 소집할 수 있는 ‘용병왕’의 권한을 빌려 쓰고자, 저를 찾아오셨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계획하고 있는 바가 구체적으로 뭡니까?”
용병왕이 우리의 계획을 물었다.
세르펜스는 휴마누스에게 설명을 떠넘기고 다시 쿠키에 손을 뻗었다.
쿠키를 더 먹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없잖아 있었을 테지만, 진짜 목적은 휴마누스에게 공을 돌리기 위해서일 테다.
그러나.
“···그래서 마인이 식량을 노리고 지상에 내려올 거라는 게 세르펜스의 추측입니다.”
“······.”
세르펜스가 입안에 든 쿠키를 꿀꺽 삼키며,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인 휴마누스를 흘겨봤다.
그냥 자신이 알아낸 척. 하다못해 그냥 어물쩍 넘기기만 했어도 공을 가로챌 수 있었을 텐데, 그걸 왜 못 하는 거냐고 눈빛으로 타박했다.
휴마누스는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이어나갔고, 세르펜스는 목이 탄다는 듯 차를 들이켰다.
“용병들은 식량 창고에 숨겨둘 겁니다. 그렇게 하면 마인 러스티의 병사들이 식량 창고에 들어선 순간 기습하는 게 가능해질 거라고 세르펜스가 얘기했습니다.”
“좀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공작 나리의 생각을 어째서 황태자 나리가 설명하는 겁니까?”
“세르펜스는 제게 공을 넘기고 싶어서 설명을 양보한 걸 겁니다. 저와 세르펜스를 비교하는 소문들, 많이 들어보셨잖습니까?”
휴마누스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용병왕의 물음에 답했다.
찻잔을 내려놓던 세르펜스의 손이 미끄러졌는지, 잔 받침과 찻잔이 부딪치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리고 일행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 세르펜스가 아닌 휴마누스의 얼굴로.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놀란 눈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건데?”
“···눈치채셨습니까?”
“눈치채고 말고 할 게 있나? 네가 나에게 공을 몰아주려고 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잖아.”
“그런데, 어째서···.”
세르펜스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휴마누스는 자신이야말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멀뚱멀뚱 눈을 끔벅였다.
“이 얘기, 네가 주교 앞에서 했던 거잖아?”
“교단 측에서는 절대로 발설하지 않았을 겁니다.”
“응, 그렇겠지. 교단도 성검의 주인인 내가 더 돋보이길 바라니까. 아르케 왕국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마주쳤던 악마들을 처치한 과정에 대해, 교단에서 퍼트리는 소문이 실제와 너무 달라서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지금 왜 그런 말씀을···.”
“시온이랑 합심해서 툭하면 눈치 없다고 내게 눈치 줄 땐 언제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용병왕의 눈치를 살피는 세르펜스를 보며, 휴마누스가 기막히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휴마누스는 이내 진지한 낯으로 돌아와, 세르펜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나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싶지 않아. 그게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우의 것이라면 더더욱.”
“······.”
“굳이 너의 것을 빼앗지 않아도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니까, 믿고 기다려 줄래?”
“으음···,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아, 휴마누스에게 큰 결례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니야. 전부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건데, 뭘. 그래도 앞으로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사실 진작 얘기했어야 하는데···.”
휴마누스가 말끝을 흐지부지 얼버무렸다.
본인의 능력이 부족하여, 진작 했어야 할 말을 속으로 삼켜왔던 지난날이 부끄러운 걸까?
“커흠! 어쨌든 계획은 잘 알겠습니다.”
용병왕이 헛기침을 하여 우정 놀음 중이던 두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나야 두 사람이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 과정을 보는 게 마냥 흐뭇했으나.
일 얘기를 하던 도중,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전락한 용병왕은 뻘쭘함을 느낄 만했다.
세르펜스와 휴마누스의 시선이 나란히 용병왕을 향했고, 그제야 용병왕은 본론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들 어딘가에 고용되어, 리베타르에 남아있는 용병의 수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곳으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다들 의뢰로 묶여있다 보니 최소 한 달은 지나야 용병들이 모이기 시작할 겁니다.”
“의뢰 취소로 발생한 위약금은 제가···, 아니라 휴마누스가···. 으음···.”
어차피 공적 밀어주기는 무산되었으니, 세르펜스가 직접 협상에 나서고자 입을 열었다가 돈 문제로 입을 도로 다물었다.
그리고 휴마누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봐?”
“이번 건은 고용이 아닌 위약금에 관한 사안인데···.”
“위약금이든 고용 비용이든 뭐든. 필요한 자금은 전부 제국 황실에서 부담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얘기해. 시온의 말대로 내가 이 자리에 있는데도 네 돈을 쓰면 그게 더 문제가 되니까, 아바마마께서도 별말 없으실 거야.”
휴마누스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떠오른 건데, 잘 생각해 보니 제국 황실의 돈은 온전한 휴마누스의 개인 자산이 아니었다.
황제의 돈이자, 신성 루멘 제국의 재산이었다.
벽면에 처바른 황금과 보석을 생각하면, 용병 좀 고용했다고 제국이 휘청할 일은 없겠지만.
올해 예산을 다시 짜게 될 황제와 자문회의 귀족들은 고생깨나 할 거다.
‘특히 황제와 재상 겸 자문회 수장인 아르젠토 공작이 뼈 빠지게 일해야겠지.’
둘 다 나이가 있어서 건강이 우려되기는 하나, 일단은 신성력 보유자이니만큼 나보다는 튼튼할 거다. 그러니까 신경 끄자.
현재 휴직 중인 자문회 상임 위원은 나보다도 국가 예산에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위약금은 전부 지급할 터이니, 당장 의뢰를 중단하고 오라는 소집령을 내려 주십시오. 더불어 일찍 도착할수록 계약 기간이 길어지고, 그에 따라 임금 또한 높아진다는 내용도 함께 명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일주일 내에 용병 대부분이 이곳에 모이게 될 겁니다.”
용병왕이 예사롭게 대답했지만, 그 내용은 예사롭지 않았다.
최소 한 달은 지나야 모이기 시작한다던 게 일주일 내에 대부분 모인다로 바뀌다니, 기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이것이 바로 돈의 위력인가 보다.
“으음, 일주일이라···. 알겠습니다. 오늘 당장 끝내둬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으니, 계약서는 내일 작성해서 드리겠습니다.”
머릿속으로 시간 계산이라도 한 건지, 세르펜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뒤늦게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 남은 한 모금 분량의 차를 마셨다.
어서 일어나자는 의사 표현이다.
아직 쿠키 통이 완전히 비워지지 않았는데도, 녀석이 대화를 마무리 지은 이유는 하나뿐이다.
용병들이 모이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면, 아래층에서 기다리는 귀족들은 더 서둘러야 하니까.
그러려면 한시바삐 그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
‘그래도 이 와중에 코코아가 들어간 샤블레는 전부 다 먹었네?’
이제는 세르펜스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간식을 곧잘 먹는구나 싶어서,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그저 용병왕이 푸로르의 아버지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프레이 신관을 연기하면서, 남들 앞에서 당당히 간식 먹는 연습을 해 온 덕분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귀족들한테 일 시키러 갈 건데, 푸로르는 어떻게 할래요?”
“구경하러 가고 싶기는 한데···. 오늘은 오랜만에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싶으니까, 나는 그냥 여기 남을래.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결과만 얘기해 줘.”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하니, 얘기를 나눌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다.
그런데도 푸로르는 구경 대신 아버지와의 대화를 택했다.
이해한다. 내가 푸로르였어도 그렇게 했을 거다.
세르펜스가 천사 같은 얼굴로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며 구워삶는 게, 얼마나 재밌는 구경거리든.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대화만큼 즐거울 수 있을까?
그동안 가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는 것보다 흥미로울 수 있을까?
특히 푸로르와 용병왕은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가족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더 애틋할 수밖에 없다.
“결과는 지금 말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아래층에 있는 두 귀족은 오늘 당장 말을 타고 이 자유 도시를 떠나, 비밀리에 연방 소속 국가의 지도층들을 만나러 돌아다니게 될 겁니다.”
나는 예언 아닌 예언을 남기고, 테이블과 의자 등을 아공간 주머니 속으로 챙긴 뒤.
푸로르를 제외한 일행들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두 귀족은 사이좋게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베스티 용병단 고용 문제로 언쟁을 벌이다가 미운 정이라도 쌓였나 보다.
‘어? 그런데 저 두 사람···. 잠깐 사이에 얼굴이 왜 저렇게 핼쑥해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