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4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43화(743/1105)
743회
78. 공작님과 아스페르 연방 (15)
“끝까지 숨길 수 있다면 좋지만, 들킨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용병을 아무리 끌어모은다 하더라도, 모든 지역에 퍼트리기에는 그 수가 부족하니까.”
“마인 러스티가 계획을 알게 되더라도, 공격하려는 지역에 용병이 숨어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 도박하는 심정으로 공격을 감행할 거라는 얘기죠?”
“그래. 어차피 식량은 구해야 할 테니. 그렇다면 적과 마주치지 않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존재하고, 설령 마주친다 하더라도 성직자들이 없는 게 확실한 곳을 공격하겠지.”
세르펜스의 말대로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마인 러스티는 경계할지언정 도망칠 수는 없다.
“악마 숭배 세력에게 들키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마인은 몸을 사리느라 제대로 제물을 모으고 있지 않으니, 오히려 더 반길지도 모르지. 힘없는 일반인들보다 용병이나 마인의 병사들이 제물로써 가치가 더 높으니까. 악마 숭배 세력은 그자들이 우리의 손에 죽는 대신, 용병들과 싸우며 서로 죽고 죽이길 바랄 거다.”
같은 편인 마인의 병사들까지 제물로 쓴다니.
악숭 세력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마인 러스티와 병사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착잡하긴 하지만 그들의 처지를 동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 용병들이 걱정되는데···.’
마인 러스티의 병사들은 말이 좋아 병사지, 실력은 기사 수준이다. 마물들도 상당히 강하고.
사상자가 없을 수는 없다.
알고는 있었는데. 세르펜스의 입을 통해 용병들도 죽을 거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지만 용병들이 싸워주지 않으면 인명 피해는 계속 누적되어 갈 테다.
마인이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제물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결국 악마가 소환될 테다.
“···어쨌든. 들키더라도 계획에 지장은 없다는 거죠?”
“마인이 성직자들을 납치하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생각을 긍정적으로 마무리 지으려는데, 세르펜스가 불안해지는 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성직자들이 납치됐다는 얘기를 못 들어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그것도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 불안하게 만들어 놓고,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고요?”
“불안했다면 미안하다. 여러 변수를 염두에 두다 보니···.”
“···세르펜스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
“그것도 미안하다.”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풍성한 속눈썹이 처연히 가라앉으며 눈가에 그늘이 졌다.
아무리 심란하기로서니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공연히 녀석에게 면박을 준 것 같아서 죄스런 기분이 들었다.
“사과하지 마세요.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요? 당연히 이것저것 따져 봐야죠. 세르펜스는 잘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에게 다가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언제 기운이 없었느냐는 듯, 세르펜스가 얌전히 머리를 내어주며 햇볕을 만끽하는 고양이처럼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참 단순한 녀석이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나아진 걸 보면, 나도 만만찮게 단순한가 보다.
“그래서 이유는요?”
“성직자들을 납치할 생각이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거다. 구석에 몰린다면 붙잡을 수 있는 끈은 악마 숭배 세력뿐이니, 공을 세우고자 큰 피해를 감수하며 성직자 납치를 시도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운이 좋다면 용병들을 마주치지 않고 식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는 이상, 그런 돌발 행동은 하지 않을 거다.”
“그것도 그렇네요.”
세르펜스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우리의 계획이 탄로 나더라도 마인 러스티가 다시 종적을 감추는 일은 없을 듯하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더라도, 마인 러스티는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리는 존재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 요소는 빨리 제거하는 게 속 편하다.
“더 묻고 싶은 게 남았는가?”
“아뇨, 왜요?”
“없다면 서류를 마저 확인하고 싶어서···.”
“아! 이제 일하세요.”
나는 세르펜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거둬들였다.
머리에 얹혀졌던 무게가 사라지자 허전했는지, 녀석이 ‘손을 치우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하며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착실하게 서류를 뒤적이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일하는 데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음료가 좋을 것 같다.
‘그냥 평범하게 핫초코를 타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오늘은 그걸 꺼내볼까?’
내가 발열석으로 우유를 데우기 시작하자, 툭 튀어나왔던 세르펜스의 입이 쏙 들어갔다.
자신에게 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거다.
우유가 따끈따끈해질 즈음, 아공간 주머니에서 ‘핫 코코아밤’을 꺼냈다.
동글동글한 밀크 초콜릿 구체에 가느다란 흰색 선이 지그재그로 그어졌다. 그 흰색 선은 당연히 화이트 초콜릿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 귀여운 스프링클스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나는 핫 코코아밤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머그잔에 담아서, 세르펜스가 서류를 보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탁, 하는 소리에 반응하듯 세르펜스의 시선이 바로 머그잔으로 향했다.
음료를 마시는 잔에 초콜릿 구체가 들어있는 게 생뚱맞다고 여겨졌는지,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제 우유를 부을 거니까 잘 보세요.”
나는 세르펜스가 보고 있는지 확인한 후, 핫 코코아밤 위로 뜨거워진 우유를 천천히 부었다.
초콜릿이 녹고 우유가 차오르자 손톱만 한 크기의 마시멜로 여러 개가 퐁퐁 떠올랐다.
슬쩍 곁눈질로 세르펜스의 표정을 살폈다. 크게 뜬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 모습이 정말 순진한 어린아이 그 자체인지라, 나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새어나왔다.
“자, 여기 숟가락 드릴 테니까, 잘 저어 드세요.”
바로 섞기 아까웠는지, 세르펜스는 숟가락을 받아 들고도 한동안 가만히 머그잔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하트 모양의 마시멜로가 완전히 형태를 잃고 퍼진 후에야, 티스푼을 우유에 담갔다.
비로소 바닥에 가라앉았던 핫초코 가루가 우유에 섞여들었다.
흰 우유가 부드러운 갈색 빛으로 물들며 달콤한 냄새를 풍겼다.
세르펜스가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상기된 얼굴로, 평소보다 아주 약간 특별한 핫초코를 한 모금 마셨다.
‘사실 맛과 내용물만 보면 평소 먹던 핫초코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역시 시각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단 말이지?’
녀석이 좋아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좋아하는 걸 보니 더 뿌듯해졌다.
나는 녀석이 핫초코를 홀짝거리며 일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육아 일기를 꺼내어 오늘 날짜와 함께, ‘핫 코코아밤을 우유에 녹여 주니, 세르펜스가 눈을 반짝이며 좋아했다.’라고 적었다.
성장과 관련된 건 아니지만, 이것도 다 추억이다.
– 똑똑똑
누가 찾아왔는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육아 일기를 얼른 덮어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목소리를 높여 들어와도 된다고 말했다.
“아, 에드나 씨였어요? 괜히 급하게 치웠네···.”
“무얼 하고 계셨길래요?”
“세르펜스의 성장을 기록하는 육아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도 쓰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묻지 않을게요. 돌아올 대답이 무서워서.”
대체 뭐가 무섭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쪽이 묻지 않는다니 이쪽도 구태여 묻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말없이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다른 걸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니마로부터 연락을 받았거든요. 용병들에게 계약서 서명을 다 받았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에드나가 그렇게 말하며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은 세르펜스가 서류를 보면서 틈틈이 작성해둔 명단을 집어들고, 에드나더러 받으라는 듯 내밀었다.
“현재까지 협조 요청을 받아들인 나라 중에서도, 마인이 공격할 만한 지역과 그곳에 파견할 용병단을 정리해 둔 겁니다. 각 용병단의 규모와 성향. 그리고 소속 용병의 무력 수준에 따라 분류해 두었습니다. 이 정도면 마인과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고, 근처 영지에서 병력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얘기를 전하면 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에 적힌 용병들은 바로 출전하는 건가요?”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순차적이 아니라 동시에 이동해야 합니다. 반드시.”
용병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세르펜스가 저런 말을 한 건, 마물을 조종할 수 있는 건 마인 러스티뿐이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자신이 탄 마물을 직접 조종하여 용병단을 하나하나 뒤쫓을 수는 없으므로.
동시에 흩어지는 편이 용병들이 매복할 장소를 숨기는 데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미 계약서에도 명시해 둔 사항이지만. 용병들에게 서로의 목적지를 물어보거나 대답하는 행위를 금하며, 발각 즉시 계약을 파기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용병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합니다.”
그 중요성 때문인지, 세르펜스가 이미 계약서에 적어두었던 조항을 굳이 되짚었다.
사실 계약 파기에 관련된 조항은 저거 말고도 하나 더 있다.
녀석이 방금 말한 내용이 출발 전에 주의해야 할 사항이라면, 다른 하나는 목적지에 도착 후 지켜야 할 수칙이다.
얌전히 숨어있지 않고 멋대로 돌아다니거나 긴장을 풀고 경계를 소홀히 하면, 계약 불이행으로 보고 위약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용병들을 그냥 보내놓고 나면 그들이 제대로 숨어있는지는커녕,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감시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역할은 베스티 용병단의 단원들이 맡아주기로 했다.
유용한 전력을 뿔뿔이 흩어놔야 한다는 게 아깝긴 했으나 어쩔 수 없다.
‘적이 올 거라는 보장도 없는데 감시마저 없다면 해이해지기 딱 좋으니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비록 용병들이 우리의 계획에 동참하긴 했지만, 까놓고 보면 돕는 게 아니라 그냥 돈을 받고 일하는 것뿐이다.
용병들이 선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무장한 단체는 통제가 사라지는 순간 강도로 돌변하기 십상이다.
매복해 있는 동안 그곳에 사는 민간인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오죽하면 각국에서 날아온 편지마다,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탁한다는 내용이 빠짐없이 적혀 있겠어?’
대놓고 감시가 붙었다는 사실에 용병들이 불만을 표하긴 했으나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계약 내용을 잘 이행한다면 보너스를 얹어주기로 했고, 그 금액이 상당히 쏠쏠했기 때문이다.
일을 잘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감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
용병들은 얌전히 감시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 명단과 주의 사항 말인데요. 어차피 통신으로 불러줘야 하는 건데, 그냥 세르펜스 님이 전달하시면 되는 거 아니에요?”
에드나가 방금 세르펜스가 말한 주의 사항들을 명단이 적힌 종이 뒷면에 메모하다가, 퍼뜩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하다.
하지만 세르펜스의 생각은 다른지, 녀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아직 확인해야 할 서류가 많이 남아있는지라. 에드나 씨에게 맡기겠습니다.”
세르펜스가 자신은 굉장히 바빠서 명단을 일일이 읽을 시간 따윈 없다고 말하며, 여유롭게 핫초코를 홀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