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4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45화(745/1105)
745회
78. 공작님과 아스페르 연방 (17)
대련이 이어지고 윈스톤의 목검에 맞아 나가떨어지길 반복한 끝에,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을 무렵.
“엑스트 왕국의 자큰 지방에 마인 러스티가 나타났어요!”
유지스가 하늘에서 똑 떨어지며 외쳤다.
숙소 건물 3층에서 비상 알림용 반 쪼가리 마력석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력석이 깨진 것을 확인하고 우리에게 알리러 창문에서 뛰어내린 걸 테다.
대련은 바로 중단되었다.
우리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서둘러 숙소로 들어갔다.
“자큰 지방이 어디 있는 겁니까? 여기서 멀어요?”
“말을 타고 가면 한 여섯 시간쯤 걸릴걸?”
내가 문에서 제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으며 질문하자, 아스페르 연방 출신인 푸로르가 곧장 대답해 주었다.
여섯 시간이라. 그 정도면 마인 러스티가 튀고도 남을 시간이다.
“세르펜스는 어떻게···, 아. 걔 지금 정찰 나갔죠?”
반사적으로 세르펜스에게 의견을 물어보려다가, 녀석이 현재 이곳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항상 붙어 다니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녀석을 찾는 게 버릇이 되었나 보다.
살짝 민망해졌다.
“세르펜스가 가져간 마력석과 짝이 되는 것을 부쉈으니, 알아챈다면 바로 이곳으로 올 거예요.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휴마누스랑 에드나 씨랑 아니마한테는 말 안 했어요? 부르러 가야 하나?”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까 창문으로 뛰어내릴 때, 에드나와 아니마에게 아이레를 보내서 마인이 나타났다는 말을 전했거든요. 뒤뜰에서 훈련 중인 일행들에게는 제가 말할 테니, 자고 있는 휴마누스를 깨워서 소식을 전해 달라는 얘기도 함께요.”
유지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대련을 반복했던지라 힘들어서 계단을 오르기 싫었는데, 굳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니 다행이다.
때마침 탁, 탁, 탁. 계단에서 누군가가 뛰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겹쳐 들리지 않는 거로 보아 내려오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꼬맹아, 휴마누스랑 네 언니는 어디 가고 너 혼자 내려와?”
“언니는 혹시 모르니까 마력석을 계속 지켜볼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마력석을 모아둔 방에 갔어. 그래서 내가 휴마누스를 깨웠는데, 소식을 듣자마자 무장하고 창밖으로 날아가더라.”
아니마가 푸로르의 물음에 대답하며 의자에 삐딱한 자세로 앉았다. 그 모습이 매우 불량해 보였다.
에드나가 없으니 눈치를 보며 착한 아이 행세할 필요가 없어진 탓이다.
내 앞에서만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세르펜스와는 정반대였다.
‘그나저나 휴마누스, 바로 날아갔구나···.’
휴마누스는 태평하게 낮잠을 즐기던 게 아니라, 정찰을 다녀오고 나서 쉬는 중이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긴급 출동을 하게 된 그가 안쓰럽긴 하나 적절한 판단이다.
“푸로르, 자큰 지방까지 날아가면 얼마나 걸려요?”
“글쎄? 날아서 가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네. 휴마누스의 최고 비행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측정해 본 적도 없고.”
“···그것도 그렇네요.”
“그래도 장애물 없이 일직선으로 갈 수 있으니까 시간이 많이 단축되기야 하겠지.”
아무튼 여섯 시간씩이나 걸리지는 않는다는 얘기였다.
휴마누스가 도착할 때까지 용병들이 마인 러스티를 잘 붙잡고 있어 주면 좋을 텐데. 과연 내 바람처럼 될는지 모르겠다.
자고로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했다.
나는 슬그머니 부풀어 오르려는 기대감을 꾹꾹 억눌렀다.
“그런데 있잖아.”
“네, 푸로르. 얘기하세요.”
“우리 이제 뭐해?”
“······.”
나는 푸로르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휴마누스를 따라가 봤자 늦을 게 뻔하고 우리끼리 무언가 토의할 거리도 없다.
혹시 유지스라면 무언가 생각이 있지 않을까 싶어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원래 지금 시각에는 제가 마력석을 지켜보는 담당이니, 저는 다시 올라가 볼게요.”
돌연 유지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 말만을 남기고 위층으로 달아나듯 올라가 버렸다.
유지스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나 보다.
그렇다고 다시 대련을 시작하자니 신경 쓰여서 집중이 안 될 것 같다.
마인 러스티와 우리가 배치해 둔 용병들이 마주친 건 처음이다.
그래서일까?
궁금해 한다고 당장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건만.
용병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휴마누스는 제때 도착했는지. 자꾸만 상황이 궁금해지고 불안과 기대와 걱정이 뒤섞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래서 오늘 훈련은 이만하고, 흙먼지를 씻어내고 쉬기로 만장일치 합의를 봤다.
리에나에게 훈련 중 생긴 멍과 생채기를 치료받고, 용병단 숙소 내 공용 샤워 시설에서 간단히 씻은 뒤.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려는데 윈스톤의 발이 문틈 사이로 쑥 들어왔다.
“저한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세르펜스 님께서 자신이 없는 동안, 선배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말고 붙어 있으라 명하셨소.”
“그래서 들어와 계시려고요?”
“되도록 선배와 같은 공간에서 대기하라는 말씀도 있으셨소.”
윈스톤이 마치 인풋 된 데이터를 띄우는 기계 같은 태도로 대답을 내놓았다.
문 앞에 사람이 서 있는 것보다 안에 들어와 앉아 있는 게 심적으로 덜 부담스럽긴 했다.
하지만 덜어진 부담만큼 불편함이 더해졌다.
‘갑자기 침입자가 들이닥칠지도 모르니, 그런 걸 생각하면 윈스톤이 옆에 있는 게 안전하기는 한데···.’
아무리 열심히 훈련해도 결국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에 약간 서글퍼졌다.
나는 쓴웃음을 짓지 않도록 입꼬리를 단속하며, 윈스톤의 발 폭만큼 틈을 남겨두고 거의 닫혔던 문을 열었다.
마음 편히 낮잠을 즐길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족들에게 편지라도 쓸까 했건만.
윈스톤이 보는 앞에서 그러기에는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마침 미리 우려놓은 세계수 잎 차가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발열석으로 물을 데우고 의자에 앉아서 차가 우러나길 가만히 기다렸다.
이래서야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럴 거면 그냥 몸이라도 편하게 누워 있는 게 낫겠다 싶어서, 멀뚱멀뚱 서 있던 윈스톤에게 차 거름망을 넘겨주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윈스톤이 심심해 보여서 할 일을 준 겁니다?”
“그냥 귀찮아서 떠넘긴 거라고 솔직하게 말하시오.”
“눈치가 빠르시네요. 반만 떼다가 휴마누스에게 양보하는 게 어때요?”
“헛소리할 거면 잠이나 자시오.”
“싫은데요? 전 안 자고 윈스톤이랑 놀 건데요?”
“······.”
윈스톤이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손에 든 것이 검이 아니라 차 거름망이라서 그런가, 그 꼴이 어딘지 모르게 우스워 보였다.
대련 중 얻어맞은 것에 복수할 겸. 나는 윈스톤에게 말장난을 걸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장난 거리가 슬슬 바닥나려 할 때 즈음 세르펜스가 돌아왔다.
“윈스톤 경, 무슨 일 있었습니까?”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세르펜스가 피곤 가득한 윈스톤의 낯빛을 보더니, 흠칫 놀라며 얼굴을 굳혔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한바탕 전투가 벌어진 건 아닐까 걱정한 걸 테다.
더군다나 세르펜스가 정찰 도중 돌아오게 된 건, 비상 알림용 마력석이 깨져서다.
여러모로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죠! 엑스트 왕국의 자큰 지방으로 간 용병이 마력석을 깨서 알림을 보내왔잖아요.”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윈스톤이 잠시간 나를 쳐다보다가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오늘은 더 이상 나와 말을 섞고 싶지 않다고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너무 많이 놀렸나 보다. 살짝 미안해졌다.
“휴마누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는 그곳으로 향한 겁니까?”
“예.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바로 출발하셨습니다.”
“으음, 자큰 지방이라면 최대 속력으로 날아가도 대략 세 시간가량은 걸릴 텐데···.”
세르펜스가 윈스톤의 답을 듣더니,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곳까지 날아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해 냈다.
푸로르는 말을 타고 가면 여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세 시간이라니 무려 반으로 단축됐다.
“그 정도면 휴마누스가 마인과 마주칠 수 있을까요?”
“만약 마인이 용병들을 모두 해치우고 식량을 확보하려 든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저께 공격받은 지역 중 마인이 식량을 챙겨갈 만한 곳이 있었다.”
“그 말은 즉···?”
“당장은 식량이 급하지 않으니, 용병을 발견하자마자 바로 도망쳤을 거다.”
즉, 휴마누스는 괜히 나갔다는 뜻이다.
세르펜스처럼 마인 러스티의 행적에 관한 정보를 꼬박꼬박 챙겨 보며, 잘 기억해 뒀더라면 헛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아닌가?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오늘처럼 바로 날아갔으려나?’
휴마누스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한 명의 목숨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부딪혀 보는 성격이니까.
“자큰 지방이라면 정찰 범위 내인데, 하필이면 그 반대 방향으로···.”
마인 러스티를 잡을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한 걸까?
있는 대로 미간을 찡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세르펜스의 목소리에, 아쉬움과 후회가 뚝뚝 흘러넘쳤다.
“세르펜스가 어딜 돌아보고 있는지 알고 피한 건 아니겠죠?”
“놈들이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근접했다면 내가 먼저 알아챘을 거다.”
“그럼 그냥 운이 나빴나 보네요.”
“후우···.”
세르펜스가 급하게 날아오느라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없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로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해 줄 얘기가 없었다. 정말로 운이 나빴을 뿐이었으니까.
“방금 한 얘기, 다른 일행들에게도 알려주러 갈까요?”
“꼭 해야 하나?”
“다들 신경 쓰고 있을 테니까, 그러는 게 좋겠죠.”
“으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세르펜스가 숙제를 안 해 와서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는 학생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이 정찰 하나 제대로 못 한 거냐고 자신을 혼내기라도 할 줄 아나 보다.
우리는 유지스가 마력석을 지켜보고 있는 방으로 나머지 일행들을 불렀다.
그리고 방금 내 방에서 나눴던 대화 내용을 얘기했다.
세르펜스의 우려와 달리, 녀석을 혼내거나 화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쩔 수 없죠.”
“그치. 자큰 지방에 마인이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어?”
리에나가 먼저 말문을 열었고 푸로르가 그에 동의했다.
에드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했다. 일행 중 성격이 가장 더러운 아니마조차 심술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윈스톤은 원래 말이 없었다.
“세르펜스가 정찰한 지역의 반대 방향에서 마인이 나타난 건 그냥 우연일 뿐이잖아요. 저희에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유지스가 은근슬쩍 세르펜스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세르펜스는 그 사심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마냥 안도하며 비난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