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4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48화(748/1105)
748회
79. 공작님과 마인 러스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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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동 중에 음식을 먹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허겁지겁 토스트를 먹어치웠다.
그 와중에도 마인 러스티와 그자가 이끄는 마물 부대(部隊)는 점점 가까워졌다.
‘지금쯤이라면 저쪽에서도 내 기운을 감지했을 텐데?’
마지막으로 입안에 든 토스트를 목구멍 너머로 넘겼을 때.
육안으로도 서로의 모습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이제까지 숨어다니기 바빴던 주제에.
우습게도, 마인은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가장 선두에 나와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무슨 자신감인지 도망가려는 낌새조차 없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만 흘릴 뿐이다.
설마하니 나 한 명 정도는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한 걸까?
지금으로서는 그렇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어지간히도 얕보인 모양이야.’
씁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는 기회다.
적이 나를 피해 숨어다닌다면 찾아다니느라 고생해야 한다. 하나, 적이 나를 무시한다면 실력으로 증명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오판인지.’
흘러내린 소스 때문에 손바닥이 끈적거려 찝찝했으나 싸우는 데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손에 들린 포장지를 구겨서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성검을 뽑아드는 그때.
“내가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가로이 음식물을 섭취하다니! 실로 참신한 모욕이도다.”
마인이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저 소스가 새어 나와 다시 품속에 넣을 수 없어서 그리했을 뿐인데. 듣고 보니 모욕으로 느낄 수도 있겠구나 싶다.
오해였으나 정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보다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어째서 공국을 악마 숭배 세력에 넘긴 거지?”
“후후후. 이제는 그 알량한 존대마저 관두기로 한 것이냐?”
“그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군.”
스메른 왕국을 떠나온 이후로, 나는 매 주일 빠짐없이 2회차의 기억을 보았다.
바스툴 왕국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러지 아니한 국왕은 사태를 관망하며 침묵했다.
그때 가장 먼저 나를 지지하겠노라 나섰던 지도자가, 눈앞의 마인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다.
한 나라의 임금이자 내 든든한 지지자이기도 했던, 국왕 러스티의 상(像)이 마인의 모습 위로 겹쳐 보였다.
마인이 아닌, 그렇다고 공왕도 아닌.
폴드 왕국의 지도자, 러스티 뤼제 폴드는 백성에게 지극히 헌신적인 왕이었다.
계산적인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정의를 아는 자였다.
적어도 내가 본 부분까지는 그러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공국을 온전한 왕국으로 인정받고 싶었다면, 악마 숭배 세력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되잖아. 당신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백성을 제물로 바친 거야?”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이유를 설명한다면 내 죄를 사하여 주기라도 할 텐가? 그것참 자비롭기 짝이 없구나! 아하하하하!”
마인이 조롱기 어린 얼굴로 한껏 소리 높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공왕’을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밤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공왕은 나와 대화할 의지가 없었다. 눈앞의 마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깨달았다.
이자는 내게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음을.
순간 폐허가 된 제국의 수도를 배경으로,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단 한 번도 솔직하게 속마음을 드러낸 적도 없으면서, 어째서 내가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멋대로 나를 재단하는 거야?!”
“제국의 황태자이자 성검의 주인이여. 그대와 내가 언제 속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했던가? 그런 기억은 없거늘 참으로 이상하도다. 방금 그 얘기, 정말 나더러 들으라고 한 얘기가 맞느냐?”
“······!!”
허를 찌르는 그 한 마디에 전신의 근육이 수축하며 몸이 굳는 게 느껴졌다.
마인 따위가 하는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부정할 수가 없다.
어째서냐고 따지고 싶었던 대상은 따로 있다.
내가 눈앞의 마인에게 타락의 이유를 물은 건, 단순히 2회차의 일을 재현한 것에 불과했다.
현재의 세르펜스를 통해, 그 시기의 세르펜스가 바라는 것 따위는 없었을 거라는 답을 듣긴 했다.
본인이 한 말이니 분명 그게 맞을 테다.
‘하지만 그런 대답에 만족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 시기의 나는 간절했다. 정말 애타게 알고 싶었다.
2회차의 기억을 보는 내내, 나는 끊임없는 의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답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니. 그 말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의 기억을 볼 때마다 허무함이 쌓여만 갔다.
끊임없이 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번민하는 내 모습을 지켜볼수록, 가슴에 응어리가 졌다.
그렇기에 눈앞의 사람이 세르펜스가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
세르펜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대답을 들어봤자, 오답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엉뚱한 사람을 붙들고 늘어질 만큼.
답을 잃어버린 질문에 짝을 찾아주고 싶었나 보다.
“···그쪽에게 한 말은 아니지만. 그리고 어떠한 용서도 없을 테지만. 그래도 대답해줬으면 해.”
“그리도 듣고 싶다면야 대답해 주겠노라.”
당연히 침묵하거나 거절할 줄 알았건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놀란 눈을 하며 쳐다보자 마인은 뜻 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한데, 그래도 괜찮겠느냐?
“괜찮겠냐니···. 무엇이?”
“내 특별히 그대에게 시계를 꺼내 볼 시간을 주겠노라.”
도대체 마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얘기에 내가 어리둥절 당황하자, 상대의 얼굴에 조롱이 떠올랐다.
“아~, 소스가 묻은 손으로는 시계를 꺼내 확인하기 곤란하려나? 그렇다면 내 친히 알려주겠느니라. 현 시각은···. 이런! 그새 시간이 10분이나 지났구나.”
마인이 회중시계를 보면서 과장되게 놀란 척했다.
누가 보아도 연기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인위적인 나머지, 익살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에 원인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내게 10분 정도는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쪽에게는 아닐 테지. 어쩌면 내가 그대를 동정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혹시 출발하면서 시간을 확인했느냐?”
“갑자기 그런 건 왜 묻는 거지?”
“안 했나 보구나. 그대가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그래. 악마 숭배자들이 포웨아 지방에 마물을 풀어놓기로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약 한 시간가량 흘렀구나.”
대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고 대답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나는 여유롭지 못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다는 이유로 선우에게 놀림받는 나라도.
이제껏 대화를 나눈 10분도 아쉬울 거라며 대놓고 얘기해 줬는데,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나는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곧장 몸을 돌려 크게 날갯짓했다.
‘이런 곳에서 마인을 만났을 때 바로 눈치를 챘어야지, 이 멍청아!’
포웨아 지방은 나를 유인해 내기 위한 미끼였다.
정찰 나간 세르펜스도 아직 복귀하지 못했을 거다.
이러한 상황에 악마 숭배 세력이 리베타르시(市)를 공격한다면, 남은 일행들만으로 그곳의 사람들을 전부 지키기란 다난하다.
행여나 악마라도 소환된다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다.
“이거 아쉽게 되었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본다면, 성검의 주인이 내게 쫓기어 꽁지 빠지게 도망간다고 생각했을 터이거늘. 혹시 고도를 낮출 의향은 없느냐?”
마인이 따라오며 재밌지 않은 농을 건넸다.
나는 왼손에 들고 있던 토스트 포장지에 신성력을 담아서 뒤로 던졌다.
“제국의 황태자 씩이나 되는 자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쓰나.”
조준도 안 하고 아무렇게나 던진 쓰레기에 맞아줄 거라는 기대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약 올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괜히 울컥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기분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쓰레기를 버린 덕에 비게 된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마력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멀쩡한데?’
어쩌면 마인이 나를 놀리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혹은 위기가 아직 닥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마력석을 부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일 가능성도 있다.
아주 티끌만 한 가능성이라도 일행들이 위험하다면, 나는 돌아가야 한다.
내가 자리를 이탈한 탓에 그들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세르펜스를 볼 낯이 없다.
‘마력석을 부숴서 일행들에게 경고할까?’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뜻을 전달하기 힘들다.
내가 위험에 빠져서 마력석을 부순 거라고 일행들이 오인하여, 안 해도 될 걱정을 하며 불안에 떨지도 모른다.
차라리 일행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바로 알 수 있도록 그냥 두는 게 낫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날개를 이루는 신성력을 조작하는 데 집중했다.
일 분 일 초라도 더 빠르게 나아가기 위해.
“본래라면 지금은 그대가 일행들 곁을 지켜야 할 시간이라지? 어쭙잖은 정의감 때문에 소중한 이들을 방치하다니 참으로 어리석구나.”
“······.”
“아! 그게 아니면 혹시 공명심 때문이냐? 하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성검의 선택을 받은 지 무려 두 해가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프라시더스 공작과 비교나 당하고 있으니. 초조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내 이해할 수 있도다.”
“······.”
내가 무시해도 마인은 마치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과장된 말투로 나를 조롱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대체 무슨 의도로 내게 이러는지 모르겠다.
포웨아 지방이 나를 유인해내기 위한 미끼였고, 나와 세르펜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일행들을 공격하는 게 악마 숭배 세력의 목적이라면.
이자에게 주어질 만한 역할은 하나뿐이다.
‘함정을 눈치챈 내가 일행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시간을 끄는 것.’
그러나 마인 러스티는 정 반대의 행동을 했다.
은연중에 일행들의 위험을 알리며 빨리 돌아가 보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흘렸다.
– 파삭.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빠르게 움직이느라 귓가에 매서운 바람 소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계속 신경 쓰고 있었기에 들을 수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과연 마력석이 쪼개져 있었다.
마인 러스티의 경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을 꼼꼼히 파악하고 있을 정도라면, 분명 모든 작전은 예정된 시간에 맞춰 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일행들이 위기에 빠지기 전에 미리 내게 경고했다.
“어째서 내게 중요한 정보를 흘린 거지?”
“나는 그저 시간을 알려주었을 뿐이거늘,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하느냐? 괜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얘기는 삼가 주었으면 하노라.”
무슨 금제라도 걸린 건지, 내 물음에 마인이 시치미를 뗐다.
“나를 따라오는 이유는 뭐지?”
“오늘 내게 주어진 임무는 그대와 싸우는 것이니라. 한데 그대가 도망가니 쫓을 수밖에.”
“그런 것치고는 공격 한 번 하지 않고 너무 얌전히 따라오는 것 같은데.”
“지는 게 뻔한 싸움에 막무가내로 덤벼들 수는 없지 않으냐? 기왕이면 얌전히 따라간다는 표현보다, 적의 움직임을 보며 견제 중이라 표현해 주었으면 하노라.”
대체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자가 지금 말장난 중이라는 건 잘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