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4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49화(749/1105)
749회
79. 공작님과 마인 러스티 (3)
* * *
■
내가 불안감을 느끼며 굳어있을 때.
“절대, 사람들을 다치게 두지 않겠어요!”
리에나가 다부지게 외치며 신성 결계를 펼쳤다.
기도하듯 양손을 꽉 맞잡아 가슴 앞에 모은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숭고해 보였다.
은은한 백색광을 발하는 투명한 결계가 우리뿐만이 아니라 악숭이들까지 감싸, 거대한 돔 형태를 이루었다.
악숭이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거나 인질로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중상급 악마로부터 거대한 배를 보호했던 리에나다.
악숭이들이 결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적의 수가 많은 고로, 전원이 결계를 부수는 것에 집중하여 화력을 쏟아낸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놈들은 우리를 상대해야 한다. 그럴 여유는 없을 거다.
지켜야 할 사람들과 악숭이들을 분리해 놓은 이상, 이제 거리낄 건 없다. 눈앞의 싸움에만 신경 쓰면 된다.
‘굳이 세르펜스나 휴마누스가 올 때까지 버틸 필요 없이. 잘하면 이곳에 남은 일행들의 힘만으로 적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을지도···.’
그리고 신전의 지원까지 더해진다면 일은 더 쉬워질 거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미소가 입가에 번질 무렵.
“킥···.”
법숭이의 비웃음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불길하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다.
“설마하니 성검의 동료들을 상대로 우리가 겨우 이 정도 인원만 끌고 왔을까 봐?”
우리의 반응이 기대된다는 듯, 법숭이가 희열에 찬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딱!’ 하는 소리가 나도록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사전에 약속한 신호였던 걸까?
결계 너머, 용병단 숙소와 마주 본 건물 뒤편에서 언뜻 평범해 보이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한 사람은 뒤에 있는 사내에 의해 목이 잡힌 채로 공중에 떠서 바동거리고 있었다.
대략 열다섯쯤으로 추정되는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다.
목을 틀어쥔 사내의 손가락이 소년의 동맥이라도 누른 걸까? 아니면 그저 겁을 먹은 탓일까?
소년의 안색이 푸르죽죽했다.
“사, 살려 주세요···!!”
앞이 아니라 뒤에서 목이 잡힌 자세인지라 말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는지, 소년이 허공에 발버둥치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소년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을 느꼈을 텐데도 소년의 목을 쥔 자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얼굴에서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생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옷차림은 어디에서나 쉽게 볼 법한 ‘평범한 마을 사람 1’인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저 얼굴 때문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설마, 리빙 데드···?”
“정답이다.”
법숭이가 킬킬 웃으며 내 중얼거림에 대답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칠 때. 그들 사이에 리빙 데드를 풀어놓은 것이 틀림없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신전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왜요? 그쪽도 여기처럼 포위한 채로 인질극이라도 벌이는 중인가 봅니다?”
“잘 아는군!”
내 빈정거림이 그저 태연한 척 위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법숭이는 여유롭게 느릿한 박자로 ‘짝, 짝, 짝.’ 손뼉까지 쳐 가며, 내 말이 맞노라 긍정했다.
영화에서 흔히 보았던 악역의 행동 그 자체라서 겉멋만 든 삼류 악당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 법숭이가 바로 리빙 데드의 주인이겠지? 방금 신호를 보낸 게 저놈이니까.”
아이의 목숨이 저 법숭이의 손에 달렸다. 함부로 기분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인질을 함부로 죽이지 않을 거라고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인질로 쓸만한 사람을 새로 잡아오면 그만이니까.
“···어떻게 하죠?”
리에나가 목소리를 잔뜩 낮춰 물었다.
결계를 해제한다면 유지스가 화살을 쏘든, 에드나와 아니마가 마법을 쓰든. 아무튼 인질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계에 갇힌 악숭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꼴이 된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더 많은 인질을 잡아 우리를 협박하려 들 테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 도시 밖에서는 악마 소환을 준비 중이니까.”
“악마 소환까지?!”
“크히히힛, 많이 놀랐나 보군. 아주 좋아!”
내 반응이 마음에 든 걸까?
법숭이가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놈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다른 악숭이들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얘네 나랑 대화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었나? 그렇다는 얘기를 틀림없이 들었던 것 같은데···.’
위협이 되는 세르펜스와 휴마누스가 돌아오려면 한참 멀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니.
확실한 승기를 쥔 게 즐거워서 우리를 조롱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나 보다.
놈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간을 끌어서 나쁠 건 없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시간을 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지간하면 나를 제재했을 윈스톤도 지금만큼은 내게 침묵을 요구하지 않았다.
법숭이의 기분을 맞춰주며 최대한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 보자.
“굳이 악마까지 소환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르펜스와 휴마누스 없이, 우리만으로는 도시 사람들을 지키면서 그쪽들을 상대하는 것조차 벅찬데요.”
“크하하하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그래, 우리의 계획을 알 턱이 없지!”
이제까지 소인배처럼 킬킬거리며 웃었던 법숭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 자랑을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 보였다.
나는 겁먹은 척 몸을 움츠리며, 눈을 끔벅거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꾸며냈다.
“자아, 선택해라. 지금 당장 우리에게 얌전히 항복할 건지, 아니면 곧 소환될 악마님께서 이 도시의 사람들을 전부 죽인 뒤에 제압당할 건지.”
헛소리다.
우리가 먼저 항복한다고 사람들을 안 죽일 것도 아니면서.
따지고 싶은 걸 참느라 내가 입을 꾹 다물자, 법숭이가 실실 웃으며 검숭이 중 한 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시선을 받은 검숭이가 제법 묵직해 보이는 자루를 던졌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자루 안의 내용물이 쏟아졌다.
저 무식해 보이는 검은 쇳덩이들은 분명 마력 구속구였다.
“다들 저걸 목에 하나씩 착용하도록. 아! 그리고 거기 성직자는 이걸 맞아줘야겠어.”
법숭이가 리에나를 바라보며, 소매 안에서 신성력 억제 주사를 꺼냈다.
아주 작정을 하고 준비해 온 모양이다.
“우리를 인질로 잡아 놓고, 이후에 돌아올 세르펜스와 휴마누스를 협박할 생각인가요? 하지만 자신들의 능력만으로는 인질을 뺏기기 십상이니, 악마의 도움을 받으려는 거로군요.”
인질을 걱정하느라, 유지스가 시위조차 당기지 못하고 활의 몸체를 꽉 움켜쥔 채 입을 열었다.
마력 구속구를 미리 자루에 담아놓은 것도 그렇고, 법숭이가 말하는 것도 그렇고.
놈들은 우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제압하고자 했다.
그럴 만한 이유는 당연히 우리를 인질로 써먹기 위함일 터.
그러니 유지스의 말이 정답일 텐데도, 법숭이의 입에 교만한 비웃음이 걸렸다.
마치 너희가 대체 뭘 알겠느냐고 깔보는 듯한 표정이다.
“정확히는 프라시더스 한 명뿐이다. 성검의 주인에게는 아주 맛있는 미끼를 던져줬으니까. 그게 독이 든 술인 줄도 모르고, 공명심에 취해 돌아왔을 때. 도시의 사람들은 전부 죽고, 일행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면. 성검의 주인이 얼마나 절망할지···! 크흐, 상상만으로도 짜릿하구나!”
늙은 법숭이가 주름진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환희에 차 몸을 떠는 꼴이 매우 역겨워 고개를 돌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눈에 힘을 주고 놈을 노려보았다.
휴마누스는 마인 러스티가 나타난 지역으로 향했다.
그러니 공명심을 안겨줄 수 있는 미끼란 바로 그녀일 터.
“마인 러스티에게 휴마누스를 최대한 붙잡아 두라는 지시를 내렸구나!”
“낄낄낄낄! 지금 눈치채 봐야 늦었다!”
법숭이는 늦었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사태 파악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다.
나는 계속 생각해야 한다.
고작 마물을 부리는 능력이 전부인 마인은 휴마누스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어지간한 기사만큼 강한 병사들이 마물의 등에 타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수적 우세도 어느 정도 실력이 비슷해야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목적이 시간 끌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검을 많이 휘둘러야 하고 시간 또한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마물들 사이로 파고들어 단숨에 마인부터 죽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통제를 잃은 마물들이 성검의 힘을 느끼고 도망치기라도 한다면···. 분명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겠지?’
그런 걸 휴마누스 성격에 가만히 둘 리가 없다.
마물들이 흩어지기 전에 최대한 해치우고자 바삐 움직일 게 뻔하다.
‘악숭이들이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세웠을 리가 없어.’
세르펜스의 추측대로 악숭 세력이 마인 러스티를 버린 건 확실해 보였다.
본래라면 마물과 병사들을 조금씩 잃어가며, 마지막까지 제물을 모으다 죽기를 바랐을 거다.
하지만 우리를 감시하다가 정찰 나간 세르펜스가 돌아오기도 전에, 휴마누스가 어디론가 나가는 걸 목격하고는 계획을 바꾼 거겠지.
심지어 그게 한두 번이 아니다.
계획을 점검하고 악숭이들을 모으는 동안, 성공에 대한 확신은 더 짙어졌으리라.
‘세르펜스가 정찰을 나가고, 3시간 뒤에 휴마누스가 나간 것도 악숭 세력의 계획에 포함된 거려나?’
정찰을 나가는 방향은 몰라도, 나갔다가 6시간 뒤에 돌아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을 터.
게다가 용병들을 숨겨둔 곳에 한해, 휴마누스가 마인의 공격을 바로 알아채고 해당 지역으로 향했으며.
그럴 때마다 세르펜스는 6시간을 채우기 전에 돌아왔다.
우리가 원거리에서 신호를 주고받을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세르펜스가 이 도시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을 3시간 뒤, 일부러 용병들이 숨어있는 지역 중 하나를 건드린 걸 테다.
마인 러스티는 몰라도, 악숭 세력의 정보력이라면 용병들이 숨어든 지역 한두 군데쯤은 눈치챌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걸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을 뿐.
‘미끼로 던져 주려면 마인 러스티가 휴마누스와 만나야 하니까···. 자기네들이 이곳을 공격할 시간에 맞춰서 마주칠 수 있게끔, 휴마누스의 이동 경로에 마인을 대기시켜 두고. 용병들을 공격하는 건 다른 악숭이들에게 시켰으려나?’
법숭이가 잘난 체하며 떠들어댄 계획이 성공한다면.
휴마누스는 본인의 선택을 책망하고 스스로를 원망하게 될 거다.
자신도 세르펜스처럼 숙소에 꼭 붙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고자 일행들을 위기에 빠트렸다고.
한탄하며 절망할 거다. 심하면 자신의 정의에 회의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문제는 휴마누스 하나가 아니다.
내가 악숭이들에게 붙잡혀 있는 걸 세르펜스가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그리고 악숭이들이 녀석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감히 상상할 엄두조차 안 난다.
다른 일행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듯했다. 모두의 면면에 결의가 어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무사해야 한다.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
“제, 제발···. 흐윽! 살려 주세요···.”
리빙 데드에게 붙잡힌 소년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도 그 목소리는 피할 수 없는 창이 되어 내 심장을 찔렀다. 가슴이 아프다.
‘저런 어린아이가 죽든 말든, 나 자신을 지키라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게 무력이 없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모든 책임을 일행들에게 전가하고, 나 혼자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니.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인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걸 알면, 세르펜스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암담하다.
상황도 암담했고, 하늘도 암담해졌다.
“오, 드디어 악마 소환진이 완성되었구나!”
악마 소환 징후에 법숭이가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때,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내리쬐었다.
신성하디 신성한 은빛이 소년의 목을 틀어쥔 리빙 데드의 손목을 잘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