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4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50화(750/1105)
750회
79. 공작님과 마인 러스티 (4)
“세르펜스?!”
녀석이 벌써 돌아왔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익숙한 은빛에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외치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악마 소환 때문에 새까맣게 변했던 하늘은 어느새 선연한 노을로 물들어, 다채로운 색을 뽐내고 있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보랏빛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 날개를 펼친 세르펜스의 모습이 보였다.
“저, 저자가 어떻게 벌써···?!”
법숭이가 세르펜스의 등장에 당황을 넘어 황망하다는 감정을 드러냈다.
조금 전까지 계획을 늘어놓으며 으스대던 목소리에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예상치 못한 이 상황에 머리가 굳어버린 건지, 법숭이는 리빙 데드에게 인질을 다시 붙잡으라는 명령조차 내리지 못했다.
놈이 그렇게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세르펜스는 날개를 접고 하강하여 인질이었던 소년과 리빙 데드 사이에 착지했다.
이어서 리빙 데드의 심장을 찌르고, 검을 회수하는 일련의 동작이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그리고 리빙 데드의 자폭 기능이 발동되기 전에 재빨리 결계를 펼쳐 놈을 감쌌다.
– 콰앙!!
세르펜스가 입고 있던 망토를 벗어서 결계를 덮은 것과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이 귓전을 때렸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결계를 해제했는지 망토가 나풀대며 내려앉았다. 그 아래에 깔린 실루엣은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폭발한 리빙 데드가 어떤 모습일지는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괜찮으니, 집으로 돌아가 계십시오.”
세르펜스가 바닥에 쓰러진 소년을 일으켜 세우고, 신성력으로 목에 새겨진 멍을 치료하며 말했다.
소년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외친 뒤 허겁지겁 어디론가 뛰어갔다.
“느껴지는 기운으로 보아, 소환된 악마는 하급 하나입니다. 악마는 제가 상대할 테니, 여러분은 이곳을 맡아 주십시오.”
세르펜스는 우리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소환된 악마가 고작 하급이라니 실소가 흘러나왔다.
주변에 악마 소환을 진행한 악숭이들도 함께 있을 테지만, 놈들의 방해가 있어도 하급 악마 정도는 세르펜스가 능히 해치울 수 있다.
‘어차피 우리를 인질로 잡을 거고 제물도 아껴야 하니, 하급 악마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거겠지.’
안도감이 밀려들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가 털썩 주저앉아 버리자, 일행의 치료를 책임지는 리에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웃으며 손을 내저어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리에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은 이미 전투태세에 들어간 지 오래였기에, 나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저자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네놈들을 붙잡아 인질로 써야겠다! 아니지? 굳이 다 붙잡을 필요가 있나? 저기 주저앉은 놈 하나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죄다 죽여버려!”
이제야 현실 도피를 끝냈는지, 법숭이가 악을 쓰며 흑마력을 뽑아내 마법진을 그렸다.
놈을 시작으로 꽤 젊어 보이는 부하 법숭이 셋도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검숭이들은 검푸른 오러를 뿜어내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봤자 우리 일행은 이미 싸울 준비를 끝낸 뒤였다.
유지스가 연속으로 불과 바람의 힘이 담긴 화살을 쏘아대며, 법숭이들의 마법을 방해했다.
검숭이 중 몇몇은 우리에게 돌진하는 대신, 법숭이들 곁에 남아 그들을 보호하려 애썼다.
그러나 모든 화살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척 봐도 위협적으로 불타오르는 화살을 우선해서 막느라, 바람의 힘이 담긴 화살 두 발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 두 발의 화살은 각각 말 많은 늙은 법숭이와 부하 법숭이 중 한 명에게 쇄도했다.
늙은 법숭이는 연륜을 살려, 그리고 있던 마법진을 수정해서 자신에게로 날아온 화살을 막아냈다.
하지만 부하 법숭이는 그냥 화살에 맞을 수밖에 없었다. 화살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팔 한 짝이 아예 날아가 버렸다.
그 고통에 놈이 그리던 마법진이 흩어지고, 입에서는 비명이 튀어나왔다.
“아아악-!”
비명에 놀란 동료 법숭이들의 집중력이 약해져, 그리던 마법진을 수성한 흑마력이 살짝 흐릿해졌다.
그렇게 법숭이들이 주춤한 사이, 에드나와 아니마의 마법이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검숭이들에게 작렬했다.
– 콰과광!!
넓은 범위에 불덩이가 쏟아졌다.
한 점에 힘을 집중한 게 아닌지라, 오러를 사용하는 검숭이들을 단숨에 죽일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놈들의 발을 멈추고 휘청거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푸로르가 검숭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빠르게 네 발로 뛰어다니며, 마법의 여파에 시달리는 검숭이들의 목숨을 거둬갔다.
윈스톤은 다른 일행들처럼 화려하고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직하게 나와 유지스, 에드나, 아니마, 리에나. 우리 다섯의 앞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윈스톤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유지스와 에드나, 아니마. 이 세 사람이 마음 편히 공격에 집중하고, 푸로르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건.
전부 윈스톤이 후위에 있는 우리 다섯 명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덕분이니까.
그리고 당장은 활약이 없을지 몰라도, 검숭이들이 가까워지면 누구보다도 바빠질 테다.
‘···이제 일어나자.’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그리고 세니어를 뽑아들었다.
훈련을 거듭해 온 것이 무색하게도 세니어의 결계는 오늘도 나를 보호했다.
‘이제까지는 어차피 결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그냥 손 놓고 관전이나 했지만···.’
오늘은 세니어를 세워 들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주변을 경계하며 근육을 긴장시켰다. 언제든지 싸울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나를 응원이라도 하겠다는 듯 세니어를 잡은 손바닥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결계는 여전하니 정말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 기분이 그러했을 뿐일 테지만.
불현듯 볼타 산맥에서 세니어를 뽑아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게 세니어가 완성된 후로 처음 있는 전투였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대규모 전장이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이런 식으로 세니어를 손에 쥐고 주변을 살폈다.
하늘에는 마물들이 날아다니고,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이 들렸으며, 세르펜스는 악마를 상대하느라 먼 곳에 있었던 탓에.
나는 잔뜩 겁먹고 움츠러든 상태였다. 세니어로부터 전해지는 온기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잠깐만, 그때는 결계가 없었잖아···?’
그때 병사 하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세니어가 가늘게 진동했다.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내 반응이 늦어 위기에 처하자, 그제야 세니어의 결계가 펼쳐졌다.
‘설마 나는 그때 세니어의 신용을 잃어버렸던 건가?’
세르펜스와 세니어의 과보호만 탓할 일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무방비했고, 적과 싸울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진정한 원인이었다.
직접 적과 무기를 맞대며 싸우지 않더라도, 어차피 세니어의 결계가 나를 지켜줄 테니까.
그런 생각에 안도하며 그대로 안주해 버렸다.
‘만약 내가 그때 이후로, 세니어를 허공에라도 휘두르며 꾸준히 수련해 왔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결계를 펼치며 나를 과보호 하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다.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다.
내가 너무 약해서 세르펜스가 불안해하는 것도 그만 보고 싶고, 일행들에게도 걱정을 그만 끼치고 싶다.
‘긴장하자. 그리고 집중하자. 계속 경계하면서 주변을 살피자.’
마음을 달리 먹는다고 세니어가 갑자기 결계를 거두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윈스톤과 대련할 때처럼 세니어를 단단히 쥐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보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넓게 보려 애썼다.
유지스의 화살이 공기를 찢으며 쉼 없이 날아갔고, 에드나와 아니마의 마법이 쏟아졌다.
푸로르는 검숭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놈들의 수를 착실히 줄여나갔다.
윈스톤은 접근하는 검숭이들의 공격을 검으로 막고, 때때로 발로 걷어차거나 어깨 갑주로 들이받아 밀쳐내며 뒤에 있는 일행들을 지켰다.
악마와 싸우러 간 세르펜스가 돌아오기 전에 나를 인질로 잡아야 하기에, 악숭이들은 결계를 부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 우리를 공격해 왔다.
그 덕에 리에나는 결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생겼다.
리에나가 푸로르와 윈스톤을 향해 손을 뻗고 신성력을 발휘했다.
두 사람의 몸에 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사라지고, 체력이 회복되며 거칠게 몰아쉬던 숨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후에도 리에나는 두 사람의 상태를 유심히 살폈다.
– 끼익···.
계속 긴장하고 있던 덕분일까?
온갖 소음이 난무한 와중에 이 작디작은 소리를 눈치챌 수 있었던 건.
세니어의 버프도 한몫을 했겠지만, 평소처럼 느긋하게 있었다면 놓쳤을 게 분명했다.
소리가 난 방향은 전투가 벌어지는 전면이 아닌, 숙소 건물이 있는 뒤였다.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고, 문을 열고 슬그머니 건물에서 나오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타이트한 검은 옷에 얼굴까지 검은 천으로 가린 모습은 그야말로 암살자 그 자체였다.
암살자 타입 악숭이. 즉, 암숭이가 분명하다.
놈들은 기운을 숨기고 다녀야 하기에, 흑마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내게 들켰으니 암숭이는 더 이상 몰래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놈이 강하게 땅을 박차며 리에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힐러부터 처리할 생각이겠지.
“리에나! 뒤! 조심!”
자세히 설명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최대한 짧고 간략하게 경고했다.
리에나가 뒤를 돌아 자신에게로 접근하는 암숭이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리고 ‘앗!’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에게 들이밀어지는 단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었던 걸까?
리에나는 자기가 피하고도 놀랐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암숭이도 리에나가 피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때 유지스가 활대를 휘둘러 암숭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 빠악!!
그렇게 암숭이는 궁수의 기습에 당하여 쓰러졌다.
소리도 장난이 아니었고 피까지 흘렀지만, 유지스는 방심하지 않고 놈의 등에 단검을 꽂아 주었다.
그것도 정확히 심장이 있을 위치에.
완벽한 확인 사살이다.
유지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서둘러 암숭이 시체를 멀리 던져버렸다.
세르펜스가 리빙 데드의 육편을 망토로 가려준 보람도 없이, 아까부터 법숭이들이 흑마법으로 죽은 검숭이들의 시체를 터트려댄 까닭이다.
– 쾅!
아니나 다를까, 암숭이 시체는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폭발했다.
속이 메스껍다. 그러나 눈을 감을 수는 없다.
평소라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참았을 테지만, 오늘은 세니어를 더 세게 움켜쥐며 계속해서 심호흡했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래도 숨을 죽이며 벌벌 떨었을 때보다는 견딜만한 것 같다.
“다들 괜찮아?!”
하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휴마누스의 것이었다.
세르펜스에 이어 휴마누스까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자, 악숭이들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