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5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59화(759/1105)
759회
80. 공작님과 이해 (1)
나는 한숨을 푹 내신 뒤, 내게 귀찮음을 떠안긴 원흉이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인 러스티의 시선은 한데 모인 병사들의 시신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화의 힘을 담은 세르펜스의 은빛 신성력이 그 시신을 감싸고, 그 빛이 다시 사라질 때까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렇게 병사들의 시신이 정화되는 모든 과정을 한눈에 담아내고 나서야, 마인 러스티는 휴마누스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마인은 조금도 홀가분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휴마누스가 장담했던 대로다.
“이대로 신전에 이송할 생각인데 괜찮지?”
여전히 성검으로 마인의 목을 겨눈 채, 휴마누스가 일행들의 의사를 확인했다.
적절한 판단이었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길 한복판에서 악숭 세력의 정보를 듣는 건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으니까.’
마인 러스티의 입에서 나올 정보가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들이 악숭 세력을 더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성직자 납치라던가 신성력 억제 주사와 같은 교단에 불리한 정보가 나올 수도 있고.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반면에 마인을 제압하여 신전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무조건 이득이다.
아스페르 연방을 괴롭혔던 마인이 최후를 맞이했노라 대대적으로 알리면서, 우리가 악숭 세력의 정보를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홍보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열광하며 희망을 품게 되겠지.
‘한 가지 불안 요소가 있다면, 어디선가 악숭이가 튀어나와 마인을 죽여서 입을 막으려 들지도 모른다는 건데···.’
그마저도 휴마누스가 함께 간다면 안심할 수 있다.
“잘 다녀오세요.”
“응? 너는 안 가?”
“귀찮게 뭐하러 우르르 몰려갑니까? 한 명만 가서 듣고 오면 되지.”
“그것도 그러네? 그럼 갔다 올 테니까 다들 쉬고 있어.”
사람 좋은 휴마누스는 귀찮음을 무릅쓰는 한 명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휴마누스는 마인의 목에 마력 구속구를 채우고 뒤에서 검을 겨누며 신전으로 향했다.
그 뒤를 성기사단장이 따랐다.
나머지 성기사들은 호기심 많은 이들이 겁도 없이 마물 시체에 다가갔다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현장을 지켰다.
기절한 신관들은 일단 용병단 숙소에 눕혀두기로 했다.
아니마가 마법을 써서 창문을 통해 빈방이 있는 2층으로 신관들을 올렸고, 윈스톤과 푸로르와 유지스. 세 사람이 방까지 옮겼다.
이삿짐 나르는 풍경이 따로 없다.
나는 잠시 신관들을 동정의 눈길로 쳐다보다가 세르펜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따라와요.”
두어 걸음 떨어진 곳에서 소심하게 찌그러져 있던 세르펜스가 흠칫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어찌나 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계속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녀석을 용서할 것 같다.
그래서 고개를 팩 돌려버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먼저 방에 들어서자 뒤따라 들어온 세르펜스가 아주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아서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닫힌 줄도 모를 뻔했다.
행여나 문 닫히는 소리가 내 심기를 거스르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질 정도로, 세르펜스는 긴장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아─···.”
내 입에서 긴 한숨이 튀어나오자, 세르펜스가 목을 움츠렸다.
잔뜩 겁을 먹은 녀석이 안쓰러우면서도 울컥하고 짜증이 솟구쳤다.
세르펜스가 정찰을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전투도 있었고 마인 러스티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좀 진정된 줄 알았는데···.’
그때를 다시 돌이켜 떠올려 보니 마음속에 격랑이 몰아치는 듯하다.
나는 세르펜스를 지그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며 심호흡했다.
그러고 있자니 귓가에 ‘으음···.’ 하고 익숙한 침음이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안다.
차마 내 이름을 부르며 괜찮으냐고 물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여, 발만 동동 구르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는 고개를 내리고 녀석을 쏘아보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방음 스크롤을 거칠게 찢었다.
“본인이 잘못했다는 거, 알고는 계시죠?”
“으음···.”
“아직 말 못 뗀 거 아니잖아요. 으음거리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요. 알아요, 몰라요?”
“알···고 있다.”
세르펜스가 미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녀석을 보고 있자니, 목이 콱 막힌 듯 갑갑하다.
“얘기해 봐요. 뭘 잘못했는지.”
“멀리 정찰을 나간 척만 하고···, 상공에 머물러 있었다. 악마 숭배자들이···, 숙소를 둘러싸고. 인질까지 잡으며 위협했는데,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읏, 선우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을 이어나가는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녀석의 뺨 위로 흐른 눈물이 미려한 턱선을 타고 나무바닥에 똑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녀석을 달래려고 손을 뻗었다가 주먹을 꽉 쥐고 아래로 내렸다.
아무리 우는 모습을 보는 게 가슴 아프더라도, 잘못을 덮어놓고 달래주는 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렇게나 자신의 잘못을 잘 아는 사람이. 사과도 안 하고 그러고 있어요?”
“아···!”
자신이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던 걸까?
내 지적에 세르펜스가 당황한 얼굴로 어리바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냅다 바닥에 무릎 꿇었다.
“미안하다, 내가 경황이 없어서···. 사과를, 흣, 먼저 해야 했는데···.”
“사과를 먼저 안 한 것 때문에 사과하시는 겁니까? 그것만 미안해요?”
“아, 아니다! 그냥 다···, 미안해서···. 흐윽! 내가···, 잘못했다.”
무릎 꿇고 울면서 사과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이 무척이나 절박해 보인다.
조금만 더 다그쳤다간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매달릴 기세다.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뭔가 이상하다. 괜히 내가 나쁜 놈이 된 것만 같다.
“무릎 꿇으라곤 안 했어요. 일어나세요.”
“그럴 수는 없다. 아직···, 흐읍! 선우의 화가··· 안 풀렸잖은가.”
“그럼 계속 그러고 계시던가.”
“······!”
세르펜스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놀라서 눈을 크게 뜬 모습이 내가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뭘 그렇게 놀라요? 무릎 꿇고 적당히 울면서 사과하면, 제가 손수 일으켜주며 용서라도 해 줄 거라 계산했습니까?”
“계산하고 한 행동이 아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흑! 나도 모르게···. 저, 정말이다. 믿어다오···!”
“아니면 말고요.”
“······.”
세르펜스가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가, 도로 꾹 닫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슬그머니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입에서 쯧 하고 혀 차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팔은 내리고, 다시 고개나 드세요. 시선 피하지 말고.”
“···화, 많이 났는가?”
세르펜스는 들어올렸던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두고 나를 올려보았다.
나는 가만히 녀석을 내려보며 반문했다.
“제가 이렇게까지 화낼 줄 몰랐어요? 그래서 일부러 말을 안 했던 겁니까?”
“그, 그런 게···.”
“그런 게 아니면. 알고 있었는데도 말을 안 했던 겁니까?”
“아···, 흐읏···.”
모르고 그랬든 알고 그랬든. 녀석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자신이 막다른 길에 내몰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세르펜스의 떨리는 입술은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고 탄식과 울음만 흘렸다.
“···그만 울어요.”
“흐윽! 미안하다, 잘못한 주제에···. 울 자격이 없는데···. 그런데, 나도 주체가···.”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건지 세르펜스가 옷소매로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하지만 울음은 그칠 줄 몰랐고,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왈칵 치밀어 올랐다.
“제발, 그만 울라고요!”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닦아내는 녀석의 팔을 붙잡고 그렇게 소리치자, 세르펜스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물이 차올라 평소보다 더 반드러워 보이는 녀석의 눈동자 속에 시온의 얼굴이 비쳤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선···우···?”
“저야말로, 울고 싶으니까···. 그만 우세요. 세르펜스는 저를 달래 주셔야죠.”
나는 붙잡고 있던 세르펜스의 팔을 놓아주고,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러고 있자니 내 어깨를 끌어안고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귓가에 대고 미안하다며 끊임없이 사과하는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계획이 있었으면, 저한테는 미리 얘기했어야죠!”
“내가, 잘못했다.”
“사과하면 답니까?! 제가, 제가···. 무슨 생각까지 했는 줄 아세요?”
“미안하다···. 잘 모르겠다.”
세르펜스의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왔다.
이게 내가 울고 있어서 그렇게 들리는 건지, 얘가 울고 있어서 그런 소리를 내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이유를, 말해주지 않겠는가···?”
“으···.”
어디든 털어놓고 싶어서. 그리고 위로를 듣고 싶어서.
말을 하고 싶은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니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눈앞의 인질로 잡힌 아이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살 궁리를 했다는 것이.
그런 생각을 해 놓고도, 그럴 만도 했다든가 누구든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든가. 그런 대답을 바라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내게 변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달라고 말했던 세르펜스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덜컥 겁이 났다.
이 녀석이라면 내가 어떻게 변하든 자신의 곁에만 있어준다면 만족할 테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멀어지려 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다.
하지만 실망 정도는 하겠지. 그리고 내 변화를 자신의 탓으로 돌릴 게 분명했다.
“···말 안 할래요.”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아뇨, 그냥 말하기 싫어서요.”
“어째서 싫은 거지?”
“그냥에 이유가 어딨어요.”
“그냥이 아니잖은가.”
“······.”
내가 입을 다물고 대답을 회피하자, 세르펜스는 얼굴을 가린 내 손을 치워냈다.
제대로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자는 뜻이다.
“나와 휴마누스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 사이를 틈타. 어쩌면 악마 숭배 세력이 기습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선우에게 바로 그 사실을 얘기하고 논의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미안하다. 확실히 그럴 거란 보장도 없는데 정찰을 나가지 않겠다고 얘기한다면···. 또 자신을 과보호하는 거냐고 할까 봐···. 아니면 자신과 떨어지기 싫어서 변명하는 거냐고 다그칠까 봐···. 그래서···.”
중간중간 울음을 삼키느라 끊기고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끝까지 모를 테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막으면 그만이니까. 미리 얘기하지 않은 것쯤은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고···. 일이 잘 해결되면, 선우에게 칭찬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미안하다.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내가···, 선우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딱 어린애가 할 법한 생각이다.
하지만 ‘어린애가 그럴 수도 있지, 상처 같은 건 받지 않았으니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원망이라도 좋으니, 제발 무슨 말이든 해다오.”
“진짜 너무해요. 세르펜스가 나타났을 때 엄청 반갑고 기뻤는데. 정말 안도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지켜보면서,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다 잘못했다.”
내 원망을 듣고도 세르펜스는 용케도 눈물을 쏟지 않고 버텨냈다.
언제까지 버티나 싶어 모진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녀석의 울대뼈가 크게 움직였다.
목구멍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울음을 삼켜내느라 애쓰고 있는 거다.
“···왜 용서해 달라는 말은 안 해요?”
“선우가 너무 상처받은 것 같아서···.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서···. 그래서 못 하겠다.”
“염치 따위 없어도 되니까, 비세요.”
“미안하다, 제발 용서해다오.”
세르펜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