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5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60화(760/1105)
760회
80. 공작님과 이해 (2)
나는 조용히 세르펜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키는 대로 사과를 했음에도 내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자, 녀석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불안 너머로 절망이 엿보였다.
그 위태로워 보이는 표정을 본 나는 충동적으로···.
– 빡!!
세르펜스의 이마를 들이받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녀석의 머리가 단단했던 건지, 아니면 내가 힘 조절을 잘못한 건지.
머리가 울리고 이마가 얼얼해 ‘윽.’ 하는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서, 선우?! 갑자기 어째서 자해를 하는 거지?!”
당황이 앞서 불안함마저 잊어버린 듯한 세르펜스의 놀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좀 봐줄 만한 표정이 됐다.
“박치기가 무슨 자해입니까? 아니, 것보다 세르펜스는 왜 멀쩡해요? 두개골은 단련할 수 없는 부위 아닌가?”
“아픈 건 익숙해서···.”
“아! 그렇네, 젠장!”
내가 이마에 손을 얹고 끙끙 앓자, 세르펜스가 머뭇머뭇 손을 뻗었다.
치료를 해 주고는 싶은데 내가 원치 않을까 봐 주저하는 걸 테다.
나는 ‘쯧!’ 하고 혀를 찬 뒤, 허공에서 갈피를 잃은 녀석의 손을 잡아채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이제는 낯설지 않은 따스한 기운이 이마에 머물렀다가 아픔과 함께 사라졌다.
“세르펜스도 제대로 치료하세요.”
“으음···, 알겠다.”
세르펜스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고 신성력을 발휘했다.
녀석의 앞머리를 슬쩍 걷어 이마를 살폈다. 붉은 기 하나 없이 하얗고 매끈한 걸 보니 잘 치료했나 보다.
“그래서 갑자기 박치기는 왜 한 거지?”
“세르펜스의 표정이 너무 구려서?”
“언제는 내 얼굴이 최고로 예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보기 좋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설마 그 모든 말이 거짓이었던 건가?”
최고로 예쁘다고까지는 말한 적이 없건만.
그래도 세르펜스가 대륙 최고의 미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고, 녀석이 자신의 얼굴에 자부심을 느끼는 건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정정하지 말고 내버려 두자.
“거짓말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떤 점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거지?”
“그런 걸 알아서 뭘 하려고요?”
“그래야 내가 그런 표정을 짓지 않도록 조심할 것 아닌가.”
“······.”
뭐라 할 말이 없다.
얼굴이 아니라 다른 쪽에 자신감을 줬어야 했나?
“어휴, 우리 공작님 얼굴이야 항상 예쁘고 보기 좋죠!”
“장난하지 마라. 나는 진지하니까.”
“저도 진담으로 하는 소립니다.”
“우리,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었나? 방금까지 울면서 용서를 빌라던 사람이, 갑자기 이마를 들이받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사과를 받아주기 싫을 정도로 내가 꼴 보기 싫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 건가? 아니면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끌고 가서 흐지부지 넘길 속셈이었나?”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세르펜스가 물음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몰아붙였다.
집요할 정도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는 녹색 눈동자 한 쌍이 굉장히 부담스러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왜 시선을 피하지? 어째서 반박조차 하지 않는 건가? 그렇다는 건 내 추측이 맞는다고 받아들여도 되는가?”
“······.”
가만히 있으면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겠다는 세르펜스의 얘기에도,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일부러 대화의 흐름을 끊고자 작정하고 박치기를 시도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내심 그런 의도가 아예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부정할 수 없다.
“내게는 시선을 피하지 말라더니. 선우는 어찌하여 대화마저 피하는가?”
세르펜스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강제로 고개를 돌리게 해 눈을 마주쳤다.
투명한 녹색 눈동자가 세르펜스의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쳤다.
녀석은 나를 걱정하고 있었고, 또 슬퍼하고 있었다.
“대답, 안 할 건가?”
언젠가 이와 비슷한 말을 이 녀석에게 들어본 적이 있다.
나를 잔뜩 경계하며 싸늘한 미소를 머금고 대답을 촉구했던 녀석이, 지금은 당장에라도 울면서 매달리고 싶다는 듯 절박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러면서도 울음을 꾹꾹 억누르며 조곤조곤한 말투를 구사하려 애썼다.
내가 울지 말라고 다그친 탓이다.
“···방금 전까지는 제가 세르펜스를 혼내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선우가 이상한 짓을 해서 대화를 피하려 한 탓이잖은가? 이런 상황이 되기 싫었으면 대화의 주도권을 내어주지 말고, 나를 계속 혼냈어야지.”
“···그것도 그렇네요.”
“내가 잘못을 했다는 건 인정하니, 나중에라도 마저 혼나겠다. 하지만 선우도 지금 잘못을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라.”
세르펜스의 말이 옳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아이 앞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얘기할 테니까, 좀 놔 줘요.”
“그 말 꼭 지켜라.”
말 한마디에 얼굴을 감싸고 있던 세르펜스의 손이 쉽게도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내 입술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앉아서 얘기해요. 바닥 말고 의자에.”
아직 용서해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세르펜스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따라서 일어났다.
나는 의자에 앉자마자 말을 꺼내는 대신, 미리 우려둔 세계수 잎 차를 꺼내어 잔에 따랐다.
그리고 버릇처럼 세르펜스가 먹을 간식도 함께 꺼냈다.
평소라면 바로 간식에 손을 뻗었을 녀석이 오늘은 찻잔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면서도 향긋한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술렁거리는 마음이 조금 진정된 듯하다.
내가 계속 딴짓을 하고 있는데도, 맞은편에 앉은 세르펜스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나···?’
어쩐지 관계가 뒤집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세르펜스가 말을 하기 힘들어하면, 잘 달래며 기다려주는 게 내 역할이었는데.
어쩐지 입안이 써서 차를 또 한 모금 들이켰다.
잔이 비워질 때쯤, 스크롤 효과가 다하여 방음막이 사라졌다.
그러자마자 세르펜스가 주저 없이 방음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이제 슬슬 말을 꺼내보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순간, 부담스럽고 버겁게 느껴져서 그랬어요.”
“머리를 박은 것 말인가?”
“네. 제 생각과 감정을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데, 세르펜스의 얼굴에서 보이는 감정들이 너무 무거워서···. 그것까지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 그냥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그랬어요.”
내 말을 들은 세르펜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수심이 드리워진 그 얼굴을 본 순간 아차 싶었다.
“하, 하지만! 세르펜스더러 감정을 숨겨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냥 잠깐···. 아주 잠깐 그랬을 뿐입니다. 만약 저를 걱정하느라 세르펜스가 제게 감정을 숨기면, 저는 못 견디게···.”
“못 견디게···?”
“서럽고···.”
“그리고?”
“···외로울 것 같아요.”
내가 자꾸 말을 하다 말자, 세르펜스가 잔잔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호응하며 뒷말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유도당하듯 털어놓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녀석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세르펜스가 내게 의지하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것보다 더하게.
‘이런 게 아이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편부모의 마음인가···?’
차갑게 식어버린 빈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노라니 손등에 세르펜스의 손이 얹어졌다.
녀석은 내 두 손을 모아서 테이블 중앙에 가져다 놓고, 자신의 양손으로 감쌌다.
“선우가 내게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선우에게 그러지 말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 책임감이 선우를 내 곁에 붙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선우를 떠나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많이 솔직해지셨네요.”
“전부 그대 덕분이다. 그런데 선우는···. 반대로 숨기는 게 많아졌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또 한 번 대화를 회피하면 겨우겨우 용기를 내 열어 놓은 말문이 닫혀버릴 것 같아서.
나는 맹탕 아무 말이나 내뱉어 말문을 계속 열어두었다.
“내가 나를 이기적이라 말하면 선우는 싫어하겠지. 그래도 이런 이기적인 나를 품어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군.”
“뭐···, 천만에요?”
“그러나. 선우가 내 감정 하나하나를 전부 감당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건···, 어···.”
녀석의 말이 꼭 자기 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들려서, 아주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거 아니다.”
“저 방금 무슨 말 했어요?”
“표정으로 말한 것도 말한 것에 포함된다면 그러하다.”
세르펜스가 내 손을 어루만지며 달래듯이 말했다.
그 손길이 마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느껴져, 서운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선우가 나를 위로해 줄 수는 있어도, 감정을 받아들이고 추스르는 건 온전히 내 몫이잖은가?”
“그렇···죠.”
“그리고 앞으로는 나보다 선우 본인을 더 신경 써도 괜찮다. 아니, 그래 주었으면 한다. 선우가 힘들어하는 것보다 내게 괴로운 일은 없으니까. 선우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내가 잘 처신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까짓 거, 부담을 줄 수도 있죠. 인간관계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요? 저만 해도 지금 세르펜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데.”
“선우.”
그냥 이름만 불렸을 뿐인데 괜히 가슴이 뜨끔했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지그시 쳐다보는 세르펜스의 시선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제대로 알아들었으니까, 화내지 마세요. 앞으로는 저 자신부터 챙길 수 있도록 잘 노력해 보겠습니다.”
“지켜보겠다.”
“하지만 바로 적용하기는 힘들고, 약간의 말미가 필요할 것 같은데···.”
“최대한 노력해서 시간을 단축해 봐라.”
“눼에···.”
내 대답에 담긴 불만을 알아채고, 세르펜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구태여 지적하지는 않았다.
너무 몰아붙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라는 걸 알기에 그런 거겠지.
“위로해주는 솜씨가 많이 늘었네요.”
“전부 선우에게 배운 거다.”
“그럼 세르펜스를 잘 가르친 절 칭찬해야겠네요.”
“그렇군. 선우는 정말 잘하고 있다. 이 낯선 세상에서 꿋꿋이 버티며 적응하려 애쓰고, 노력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 나는 선우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늘 고맙게 생각한다.”
반쯤 농담으로 받아친 말에 진짜 칭찬이 돌아왔다.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고, 나아가기는커녕 홀로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서 자신이 없었는데.
진심 가득한 세르펜스의 목소리를 들으니 찔끔 눈물이 났다.
“선우. 기분이 나아졌다면, 이제 얘기해 주지 않겠는가?”
“뜬금없이 박치기를 한 이유라면 설명했잖아요.”
“그 전에. 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울고 싶었던 건지, 그리고 어째서 그에 관해 얘기하기 싫은 건지. 그 이유를, 아직 말하지 않았다.”
“그···랬네요.”
따지고 보면 그 질문을 회피해서 지금 이 상황에 다다르게 된 것인데.
가장 중요한 걸 말하지 않고 넘어갈 뻔했다.
‘얘기해도···, 되나?’
다시 망설임이 찾아왔다.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내 손을 감싸 쥔 세르펜스의 손이 보였다.
나보다 키가 커서 그런가, 내 손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컸다.
‘얘기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툭 하면 울상을 짓고, 입을 삐죽 내밀고.
쓰다듬어주면 헤실거리고, 칭찬해 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고.
순수한 모습을 자주 보여 주길래 어린아이로만 여겼는데.
“한 번에 전부 말하는 게 어렵다면, 우선 대답을 피했던 이유부터 설명해도 괜찮다.”
오늘따라 세르펜스가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만큼 내가 어려진 것 같다.
마치 녀석에게 나이를 뺏기기라도 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