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6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61화(761/1105)
761회
80. 공작님과 이해 (3)
‘혹시 내가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따라 세르펜스가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망설임을 완전히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세르펜스가 내 손을 더욱 단단히 감싸 쥐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미숙하다. 그래서 선우가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는지. 어째서 그토록 상처받은 얼굴로 울고 싶다고 말했는지. 그 어떤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제가···, 그랬어요?”
“그랬다. 너무 위태로워 보여서 안아주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직시하며 말하는 세르펜스의 모습에 괜한 멋쩍음이 밀려들었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어어···.’ 하고 맥없는 소리만 흘렸다.
이런 나를 보며 세르펜스가 슬퍼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원인을 제공한 주제에, 이렇게 잘난 듯이 굴며 위로를 건넬 자격이 내게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세르펜스에게 자격이 없으면 대체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내 말에 세르펜스가 정말이냐고 묻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고 확인시켜 주었다.
이는 침울해하는 녀석을 달래고자 기분을 맞춰주는 게 아니다. 나는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세르펜스는 내가 자라온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살던 곳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누구보다도 나를 배려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아까 리빙 데드가 폭발할 때에도 그렇다.
이 세상에 와서 시체를 보는 게 오늘 처음 있는 일도 아닐진대, 녀석은 구태여 겉옷을 벗어서 리빙 데드의 육편을 가려 주었다.
이제 내게 그런 배려를 해 주는 건 세르펜스밖에 없다.
다른 일행들의 배려심이 부족한 건 결코 아니다.
싸우느라 바쁘기도 하고, 이제 슬슬 괜찮아질 때가 되었으니까. 이곳은 그런 세상이니까.
그렇기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걸 테다.
요약하자면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다.
나보다 늦게 일행에 합류한 에드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마탑에 콕 박혀서 연구하거나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는 게 전부인, 살생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을 텐데.
법숭이들이 흑마법으로 시체를 뻥뻥 터트려댔을 때.
산산이 흩어지는 육편을 보고 하얗게 질린 건 나뿐이었다.
“세르펜스가 짐작한 대로 이유 없이 답변을 피한 게 아닙니다. 말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요. 사실은 전부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침묵을 택한 거지?”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인 제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너무 수치스러웠어요. 그리고 세르펜스는 저를 완벽한 선인이라 여기잖아요? 그래서 세르펜스가 그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게 너무 무서워서 얘기하기 꺼려졌어요.”
“대체, ‘그런 생각’이라는 게 뭐길래···?”
세르펜스가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질로 붙잡힌 어린아이를 직접 구해냈으면서도, 그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하지 못한 눈치다.
그럴 만도 하다.
진짜 어린아이도 아닌 자신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애지중지 보살펴주는 내가.
진짜 어린아이의 희생으로부터 눈을 돌리려 했으리라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애써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망설임이 빠끔 고개를 내밀었다.
“···거짓말쟁이.”
갑자기 세르펜스가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며, 배신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잠깐 머뭇거린 것뿐인데,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누가 그것 때문에 이러는 줄 아나?”
“아니면요?”
“완벽한 선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면서. 그리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런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더니···! 내 반응이 신경 쓰여서 얘기하기 꺼려졌다고? 설마 예전에 내게 했던 말은 전부 거짓이었던 건가?”
확실히 바스툴 왕국에서 녀석에게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있다.
그때 거들먹거리며 떠들어댔던 말이 지금 이 순간 거짓이 되었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나는 선우가 완벽한 선인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선우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설령 선우가 희대의 악인이었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과 똑같이 선우를 대했을 거다.”
희대의 악인쯤 되면 상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지라 차마 딴지를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선우는 메말라 죽어가는 내 마음에 단비처럼 찾아와 온정을 베풀어 주었잖은가. 희망과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려 주었지. 나조차 모르던 나를 발견해 주었고, 나를 진심으로 아끼며 걱정해 준 첫 번째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보좌관으로든 친구로든 보호자로든, 받아들이고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더 거대한 존재로 느껴져서,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얘기는 즉···.”
“이제 와 선우가 결점을 보인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선우를 과도하게 칭송한다 해도 그것을 족쇄로 여기지 마라. 그저 고마움이 너무 과해서 그런 것뿐이니.”
고마운 사람이라서 존경하게 되고, 그렇기에 장점이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더구나 선우라고 나를 과대평가하지 않는 건 아니잖은가?”
“예? 제가요?”
“나를 보살핌이 필요한 새끼 고양이처럼 대하는 건 오로지 선우 뿐이다.”
“······.”
언제부터 사람을 고양이 취급하는 게 과대평가가 된 건지 모르겠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머릿속 저울 양 끝에 ‘인간 성인 남성’과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보고 있노라면 행복한 미소가 번지는 아기 고양이’를 각각 올려놔 보았다.
반대편에 올려진 ‘인간 성인 남성’이 튕겨져 날아갈 정도로, 저울은 빠르고 확실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아기 고양이의 완벽한 승리다.
“제가 세르펜스를 과대평가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세르펜스를 그렇게 여기는 건 유지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래도 선우만큼은 아니다.”
그렇긴 하다. 유지스는 세르펜스를 마냥 귀엽게 여기지 않으니까.
반전 매력을 사랑하는 유지스는 녀석의 서스펜스한 부분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자니, 세르펜스가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이 이상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 돌아오라는 뜻이다.
“이런 얘기 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부담을 조금 덜어냈어요.”
“따지고 보면 내가 선우에게 부담을 준 탓이니, 감사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냥 받아 둬요. 100% 세르펜스 때문만은 아니니까. 세르펜스가 그런 부담을 주지 않았어도 저는 분명 망설였을 겁니다. 어쩌면 세르펜스 때문이라는 것도 그냥 핑계일 뿐이고, 실은 제가 저 자신에게 실망한 걸지도 몰라요.”
내 얘기를 들은 세르펜스가 애처롭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단순히 나를 가엾이 여겨 동정하는 게 아니라는 듯. 녀석은 내가 너무나도 걱정되어 견딜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우가 완벽한 선인이 아니어도 좋다. 모범이 되는 어른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래도 선우는 내게 있어 훌륭한 보호자고, 닮고 싶은 친구다. 그러니 부족한 모습도 숨김없이 보여다오. 내가 선우, 그대를 더 많이 알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은 종종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의외의 말을 꺼내어 부모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더니.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걸 보니 그 얘기가 사실이었나 보다.
“이제 슬슬 말해줄 때가 되지 않았나?”
“네, 저도 이제 얘기할 용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
세르펜스는 오늘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질문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입에 담았다.
그러면서도 지겹다거나 답답하다는 낌새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녀석의 진득한 태도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이제 녀석의 기다림에 보답을 할 때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입술을 뗐다.
“리빙 데드에게 붙잡힌 어린아이가···, 죽도록 놔두는 한이 있더라도···. 제가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으음···.”
나에 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세르펜스는 이 짧은 문장만 듣고도 모든 정황을 파악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 말을 고르는 건지, 녀석의 입술이 몇 번이고 달싹거렸다.
그러다 마침내 생각 정리를 끝내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선우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이유가 크겠지. 만일 누군가가 선우를 인질로 잡고 협박한다면 나는 휘둘릴 수밖에 없으니까.”
“부정은 못 하겠지만, 세르펜스의 탓으로만 돌리고 싶지는 않아요.”
“하아···, 유선우.”
세르펜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무언가를 언짢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이름을 불렀다.
그것도 성까지 붙여서.
반사적으로 허리에 힘이 들어가며 등줄기가 쭉 펴졌다.
“왜, 왜···. 왜요?”
“만약 내가 선우를 구하기 위해. 혹은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죽음을 외면했다면, 선우는 나를 지탄할 건가?”
“···아뇨.”
“그러고 나서 내가 자괴감에 빠져 있다면, 위로하지 않고 내버려 둘 텐가? 선우나 내 목숨보다 타인의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은 건 잘못된 행동이니까?”
“그건 잘못된 행동이 아니니까···. 괴로워하지 말라고 위로해 줬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째서 그 생각을 자신에게는 반영하지 못하는 거지? 자신은 완벽한 선인이 아니라며 칭송하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선우는 어째서 자신을 검열하며 무결한 사람이 되려 하는가?”
“그···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녀석의 말이 백번 옳았으니까.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질로 잡힌 소년을 외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인질로 잡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거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항상 이성을 따르는 게 아니라서.
그리고 마음뿐 아니라 머릿속에도, 아이는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지라.
그래서 이성이 마비되고 말았다. 나 자신이 한없이 실망스러웠다.
내가 나를 실망스럽게 여기니, 다른 사람도 나를 그리 여길 것만 같았고 덜컥 겁이 났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그때 세르펜스가 나타나서 소년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그 기억과 그때의 선택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선우.”
“···네?”
마음이 편해진 만큼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서 대답하는 게 한 박자 늦어졌다.
그래도 세르펜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 이해한다는 듯 자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가만히 내 손등을 쓰다듬는가 싶더니 그대로 자신의 이마로 가져다 댔다.
“미안하다. 선우가 그런 고민을 하며 괴로워하게 될 줄도 모르고, 나는 일이 잘 해결되면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철없는 생각이나 했다. 선우에게 잔소리 몇 마디 듣는 게 무서워, 적이 습격할 수도 있다고 짐작했으면서 모두에게 숨겼다.”
“···알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작전상 모두에게 숨겨야 하더라도, 저에게만은 알려주셔야 합니다.”
“반드시 그리하겠다.”
“지켜볼 겁니다?”
“고맙다. 내게 다시 기회를 줘서. 그리고···.”
말을 잘 이어나가던 세르펜스가 돌연 말끝을 흐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침묵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르펜스는 내 손등에서 이마를 떼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였다.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에도 그 자세는 계속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