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765)
공작님, 회개해주세요!-766화(766/1105)
766회
81. 공작님과 작은 단서들 (4)
“그렇게나 아바마마를 뵙는 게 싫은 거야?”
휴마누스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러자 나를 ‘시온의 몸에 들어간 천사의 영혼’이라고 믿는 알타르 이단 심문관이 반응했다.
알타르는 에일리히 옆에서 조카 바보 모드가 된 그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휴마누스의 말을 듣고는 미심쩍다는 듯 한쪽 눈썹을 추어올렸다.
이단심문관 특유의 덮어놓고 일단 의심부터 해 보는 직업병이 발동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2회차에서 타락펜스를 한계까지 몰아갔다는 의혹이 있는 만큼, 황제를 두둔해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지만 똘똘 뭉쳐야 하는 이 시기에 신성 제국의 황제와 척을 질 수는 없다.
더구나 세르펜스가 선택의 날에 휴마누스를 지지하고 나선 덕분인지, 현재의 황제는 녀석에게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인 휴마누스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알타르가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그냥 불편해서 그렇죠. 저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사람인데, 황제 폐하는 절대 저를 눕지 못하게 만들 것 같다고나 할까요?”
“꼭 아바마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대화할 땐 눕지 않는 게 예의 아닐까?”
아무리 이 세상에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는다.’라는 속담이 없어도 그렇지.
충분히 뉘앙스로 알아들을 법한 얘기였는데, 휴마누스가 진지한 얼굴로 딴소리를···.
‘어라? 과도하게 예의를 차려야 하는 자리가 불편해서 황제와 만나는 게 싫은 거니까,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이곳이 ‘신성’ 루멘 제국이라고 한들. ‘신의 사자’라는 이름이 황제의 권위를 찍어 누를 수는 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교황이 황제보다 위에 있었을 거다.
하지만 교황과 황제의 위치는 동등했다.
심지어 신의 사자는 회사로 따지면 일종의 ‘임원’에 가깝다.
회사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높으신 양반이지만, 계약이 갱신되지 않으면 그대로 퇴사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괜히 우스개로 ‘임원’을 ‘임시 직원’이라 칭하는 게 아니다.
신앙심이 높은 사람들이야, 신의 사자 임무가 끝난 뒤에도 나를 계속 존중해주겠지만.
황제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은 다르다.
내 신분 아닌 신분이 만천하에 밝혀졌으니. 신경이 쓰여서 세르펜스에게 역대 신의 사자들의 취급이 어떠했는지 물어봤다.
원래 성직자였던 이들이나 이후에 교단에 귀의한 경우 추기경 자리에 올랐다는데, 신성력이 없는 나는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교단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리고 속세에 남고자 한 이들은 권력자의 밑으로 들어가, 간판 노릇이나 하며 살았다는 모양이다.
세르펜스의 곁에서 효도를 받으며, 녀석과 똑 닮은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하는 평화로운 노후가 보장되어 있거늘.
각종 행사에 불려다니며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
‘천사의 영혼 설정을 풀면, 악숭이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나를 건들지 못하겠지만···.’
그건 그거대로 피곤한 삶이 보장되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교황이 나를 대하듯이 행동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저기, 눕지 말라는 얘기가 그렇게나 오래 고민해야 할 일이야?”
어처구니 없다는 휴마누스의 목소리에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무튼 예의를 차리고 싶지 않다는 맥락이 상통하니, 굳이 정정하며 속담 풀이를 하는 귀찮은 짓은 그냥 생략하기로 마음먹었다.
“네. 저는 극강의 편함을 추구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공작저에도 왔겠다, 이 갑갑한 갑옷을 벗고 편한 차림으로 있고 싶으니 잠깐 방에 다녀오겠습니다! 얘기는 그다음에 마저 나눕시다!”
나는 휴마누스에게 나중에 놀아주겠다는 뜻으로 훠이훠이 손짓하며, 에일리히와 알타르를 지나쳐 본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방에 간다면서 왜 본관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야 제 방이 본관 5층에 있으니까?”
“···어?”
“유지스랑 윈스톤, 에드나의 방도 5층으로 옮겼습니다.”
“뭐?! 하지만 5층은···.”
“맞습니다, 휴마누스는 발조차 디뎌본 적 없는 프라시더스 가문의 전용 공간, 진정한 의미의 세르펜스네 집이죠!”
나는 한껏 으스대며 말했고, 휴마누스의 얼굴에 패배감이 깃들었다.
그러면서도 두 눈은 오기로 빛나는 게 가만히 두면 5층까지 따라오게 생겼다.
사실 따라오든 말든 별 상관없었지만, 조금 더 놀려주고 싶어서 떼어놓기로 했다.
“집사님? 손님분들 별관으로 안내해 주세요.”
“······.”
내 부름에 제온이 생태계 파괴범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체 그게 어떤 눈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해주기 힘들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실례했습니다. 본인이 주인님과 황태자 전하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자각이 있으신지, 너무 의심스러운 나머지···.”
“아차!! ···가 아니라. 악숭 퇴치가 끝날 때까지는 다 함께 동등한 동료로 지내기로 했거든요. 우리끼리의 규칙입니다.”
“방금 아차라고···.”
“어흠! 이 형님 말을 못 믿으시는 겁니까, 아우님?”
“······.”
제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내가 시키는 대로 따라도 되느냐는 뜻이겠지.
당연히 세르펜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제온이 성검 일행에게 별관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나섰다.
휴마누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세르펜스의 얼굴을 힐끔 본 후 제온을 따라갔다.
막무가내로 5층에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초대받고 싶은가 보다.
‘멋대로 일행들을 데리고 공작저에 들이닥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많이 발전했네.’
나는 서쪽 별관으로 향하는 휴마누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봐 준 뒤, 잠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내 방에 도착하여 갑옷을 벗고 내친김에 그 아래에 받쳐 입었던 옷까지 갈아입었다.
그러고 나서 복도로 나오자 세르펜스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오랜만에 여행자 복장 대신, ‘프라시더스 공작’이란 이름과 걸맞게 고귀하고 우아한 옷차림을 갖춘 상태였다.
세르펜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는 분명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부토니에를 꺼내서 건네자, 녀석이 내 옷깃에 그것을 달아주었다.
그리고 창문가에 둔 유니어를 손에 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그걸 왜 들고 다닙니까? 창가에 그냥 두세요. 햇빛 보게.”
“하지만 오랜만에 만났는데···.”
“어허. 블루 데이즈는 햇빛을 많이 봐야 한다고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응접실 창가에 두겠다. 그럼 되는 것 아닌가?”
정론이다.
나는 반박할 말이 없어서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였고, 세르펜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유지스가 처음 집무실에 화병을 놓았던 날. 책상 공간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물건이라며 삭막하게 굴었던 주제에.
지금은 소담하게 피어난 꽃송이에 코를 가져다 대고 그 향기를 맡고 있었다.
“누가 꽃인지 모르겠네요.”
때마침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방에서 나온 유지스가 세르펜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작업 거는 듯한 멘트를 던졌다.
그에 요즘 따라 부쩍 얼굴에 자부심이 넘치는 세르펜스가 엄청난 소리를 내뱉었다.
“유지스도 제 얼굴이 좋습니까?”
“네, 네?! 꼭 얼굴 때문에 좋은 건 아닌데···.”
“아닙···니까?”
“어, 얼굴도 좋아요!”
하필이면 유지스가 그렇게 외쳤을 때, 윈스톤과 에드나가 옷을 갈아입고 복도로 나왔다.
붉어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파닥거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오래 보고 있기에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고로, 유지스를 구제해 주고자 응접실로 발길을 옮겼다.
세르펜스가 화분을 소중히 품에 안고 나를 따라왔다.
나머지 일행들도 우리를 뒤쫓아왔다. 그들 중에서도 유지스는 맨 꼴찌였다.
응접실에 도착하고 세르펜스는 약속했던 대로 화분을 창가에 놓았다.
그리고 서쪽 별관에 갔던 성검 일행이 올 때까지 창문 앞에 꼭 붙어서, 자신이 ‘유니어’라 명명한 꽃을 관찰했다.
“제가 없는 동안 유니어를 잘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백부님.”
드디어 자리에 앉은 세르펜스가 에일리히에게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휴마누스가 설마 식물에 이름을 붙인 거냐고 뭐라 뭐라 말했지만, 세르펜스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유니어’를 그냥 식물 취급해서 삐친 걸 테다.
“감사하기는. 유니어가 있어서 네가 없는 동안 나도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단다. 그보다 이것 좀 먹어보련? 네가 없는 동안 시녀들이 열심히 연습해서 만든 ‘테린느’라는 디저트인데, 아주 맛있더구나.”
휴마눈새 때문에 토라진 세르펜스를 달래준 건 달콤한 디저트···가 아니라, 녀석의 삼촌인 에일리히였다.
세르펜스는 바로 포크를 들지 아니하고, 경건하게 시녀들이 준비한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초코 테린느를 한 입 맛봤다.
“어떠니?”
“으음,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진한 초콜릿 맛이 무척이나 훌륭해서···. 마음에 듭니다.”
“시녀들이 들으면 좋아하겠구나.”
굳이 시녀들의 반응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에일리히가 좋아 죽는 표정을 지었으니까. 직접 디저트를 만든 시녀들은 더 좋아하겠지.
“그건 그렇고, 그간 무탈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냈지. 아 참. 그리고 여기, 네가 보내준 편지들의 답장이란다. 사실 답장만 있는 게 아니지만, 네 생각이 날 때마다 한 장씩 적다 보니···. 기간이 많이 지난 편지들이니 일일이 답장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잘 지냈느냐는 세르펜스의 물음에 에일리히는 자신이 어떻게 잘 지냈는지 설명하는 대신, 그간 자신이 쓴 편지를 한 뭉텅이 꺼내 놓았다.
저번에 공작저를 떠나기 전, 두 사람이 약속했던 거다.
세르펜스는 공작저를 떠나고 나서도 가끔 편지를 써서 공작저로 보내고, 에일리히는 그 답장을 써서 보관했다가 세르펜스가 돌아오면 주기로.
그런데 편지의 양과 말한 내용으로 보건대, 에일리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무 때나 편지를 써내려간 듯하다.
엄청난 편지의 양에 세르펜스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그때, 알타르가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려는 조카와 삼촌 사이에 끼어들었다.
“에일리히 님. 그보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지 않습니까?”
“크흠! 그 얘기는 알타르 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예? 제가요?”
“악마 숭배자들과 관련이 된 얘기를 교단 소속의 성직자분께서 말씀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습니까?”
현 이단 심문관과 전 이단 심문관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에게 설명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묘하게 불안하다.
심지어 알타르가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게 보여서 더더욱 그러했다.
“이것 참···. 결론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과정을 순서대로 말씀드려야 할지···.”
망설이는 알타르의 모습에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 순서대로 듣다 보면 불안감이 점차 증폭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자고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다.
“그냥 쌈박하게 결론부터 가죠?”
“리벨론 가문의 막내 자제분을 살해하려던 자가 있었고, 그 범인은 리벨론 백작 부인의 오랜 친우인 아이루고 자작 부인입니다.”
나는 알타르의 말에 대답할 시간도 아껴가며 곧장 시온의 기억을 뒤적였다.
아이루고 자작 부인은 시온의 어머니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영지 간 거리도 가까워 왕래가 잦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리벨론 삼 형제와도 친해졌는데, 시온이 그녀를 많이 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자작 부인이 비비···. 다시 말해 시온을 죽이려 했다고?’